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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 최해림 번역
* 無心智무심지 朴美子 박미자 會員회원님 提供제공.
[최해림] [오후 4:55] 선생님, 잘 지내시는지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는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저는 강원도 00여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최해림] [오후 4:56] 다음은 지난 8월에 제가 사는 지역 '고양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송구합니다만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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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 오피니언
슬펐기에 더 아름다웠던 행주산성, 어두웠기에 더 뚜렷했던 행주대첩 |
[광복 79주년 특별기고]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행주산성과 덕양산 배경으로 쓴 한시 발췌
독립 염원했던 회한과 의지 생생히 담겨
[고양신문] 올해 2024년이 광복 79주년, 2025년이면 광복 80년이다.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선생의 한시집에서 행주산성(배성)이 위치한 덕양산(배산)과 관련한 시를 뽑아보았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적을 상대로 전공을 세웠던 곳이다. 행주대첩은 진주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의 하나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 원문과 국역을 병기하고, 간단한 감상을 덧붙였다. 선생께서 남긴 시를 읽으면서 행주산성의 풍경을 떠올려 보고, 행주산성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자. 그리고 시간은 1920년대, 30년대로 되돌리자. 선생과 눈을 맞추어 선생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러주고 싶으신 목소리가 한강 푸른 물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들려오리라.
(詩시 24篇편)
1. 山影倒江산영도강 산 그림자 강에 거꾸로 비치다 | ||
暮山歸客滿江行 | 모산귀객만강항 | 저문 산 돌아가는 나그네 강에 가득 비치고 |
步步輕裝踏水聲 | 보보경장답수성 | 걸음마다 가벼운 행장 물소리를 밟네 |
幻境潮生天半落 | 환경조생천반락 | 꿈같은 경치 물속에 살아나 하늘은 반쯤 잠겼고 |
漁歌樵笛互相爭 | 어가초적호상쟁 | 어부의 노래 소리 나무꾼 피리 소리 서로 다투네 |
해질녘 산성이 자리잡고 있는 평화로운 강변의 풍경이다. 나그네의 그림자가 강물에 잠겼고, 나그네의 발소리는 물소리를 밟으며 지나가는 듯하다. 푸른 하늘은 푸른 강물과 이어지고, 어부의 노래와 나무꾼의 피리 소리가 자연의 향연과 어우러진다. ‘빼앗긴 들’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었기에 이 시를 읊는 선생의 목은 더욱 눈물로 잠겼을 터이다. |
2. 杯城古墟 배성고허 배성 옛터 | ||
杯山一抹古城門 | 배산일말고성문 | 배산 한 끝자락 옛 성문에는 |
落日依依鳥自喧 | 낙일의의조자훤 | 지는 해 아련하고 새 소리만 시끄럽네 |
碑面蒼苔公舊蹟 | 비면창태공구적 | 대첩비 푸른 이끼 도원수 권율 장군 옛 자취 뒤덮고 |
將坮碧草墓荒原 | 장대벽초묘황원 | 가을 소리에도 영웅의 한은 다함이 없고 |
秋聲不盡英雄恨 | 추성부진영웅한 | 강물 모습에도 장사의 기백 그침이 없네 |
江色無窮壯士魂 | 강색무궁장사혼 | 강물 모습에도 장사의 기백 그침이 없네 |
挑戰當時勝捷地 | 도전당시승첩지 | 왜적의 도발에 맞서 싸울 땐 승첩지였는데 |
三分半入野人園 | 삼분반입야인원 | 거진 반은 뭇사람 차지가 되었구나 |
해가 지면 하루가 다하고 가을이 가면 한해가 끝난다. 돌고 도는 세월과 더불어 영웅과 장수의 그 함성과 그 기백은 강물처럼 영원하다. 하지만 대첩비의 명문(銘文)은 이끼로 뒤덮이고 승리의 함성을 울리던 그곳은 야인들의 동산(野人園)이 되었다. 선생께서 낙향하여 행주산성의 한 모퉁이를 차지했을 때 눈에 들어왔던 모습이리라. |
3. 德陽山中덕양산중 덕양산 가운데서 | ||
德陽山立杏湖洲 | 덕양산립행호주 | 덕양산은 행호 물가에 서 있는데 |
六十重來已白頭 | 육십중래이백두 | 육십이 되어 다시 와보니 이미 백발일세 |
萬壑蕭蕭霜葉下 | 만학소소상엽하 | 온 골짜기 쓸쓸히 서리맞아 나뭇잎이 떨어지니 |
浮生多感故園秋 | 부생다감고원추 | 덧없는 인생 고향 가을에 상념도 많네 |
1922년 3·1운동 3주기를 앞두고 제2의 3·1만세 운동을 도모하였던 것이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고 1924년 고향 행주로 돌아왔을 때의 감회를 읊은 시로 보인다. 선생은 1867년에 태어나 60세 무렵에 덕양산에 거처를 정하셨으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이다. |
4. 始聞鶯시문앵 예부터 들었던 꾀꼬리 울음소리 | ||
德陽山上爾初生 | 덕양산상이초생 | 덕양산 위에서 네가 처음 태어나 |
百囀年年不變聲 | 백전년년불변성 | 수다스런 지저귐 소리 매년 변치 않았네 |
身被黃金金幾重 | 신피황금금기중 | 몸에 두른 황금은 무게가 얼마인가 |
千條碧柳滿江城 | 천조벽류만강성 | 천 갈래 푸른 버들은 강성에 가득하네 |
시대가 바뀐들 꾀꼬리 울음소리가 바뀌겠는가. 산과 강은 그 주인이 누구인지 무심하듯이 짐승들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여기서 꾀꼬리는 잠시 살다 떠나는 한 마리의 꾀꼬리가 아니라 ‘나고 가고’를 반복하더라도 그 소리 변함없이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이다. 푸른 버드나무(碧柳) 또한 그러하다. 산도, 물도, 산새 울음소리도, 강가의 푸른 버들도 옛날 그대로였기에 국권이 빼앗기고 달라진 세상이 더욱더 안타까웠으리라. 시제(詩題)의 시(始)는 ‘시작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의 어감(語感)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5. 德陽山덕양산 | ||
五百年前舊杏州 | 오백년전구행주 | 오백 년 전에도 옛 행주에서도 |
德陽山立大江流 | 덕양산립대강류 | 덕양산이 솟아 있고 큰 강이 흘렀겠지 |
將軍勝捷歸墟地 | 장군승첩귀허지 | 장군이 적을 물리친 곳 옛터에 돌아왔건만 |
半島波瀾問白鷗 | 반도파란문백구 | 파란(波瀾)에 빠진 반도, 갈매기야 너에게 물어보자 |
한 지식인의 고뇌에 누가 무슨 답을 해줄까? 갈매기가 답을 해줄 리 없다. 미물(微物)을 빌려오기는 했지만 결국 자문자답(自問自答)이다. |
6. 牧童목동 소치는 아이 | ||
牛背長驅牧笛風 | 우배장구목적풍 | 소등 타고 멀리 가는 목동의 피리 소리 들리고 |
杯山半入夕陽紅 | 배산반입석양홍 | 배산은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어 가네 |
此人不是無心者 | 차인불시무심자 | 이 사람은 무심한 사람이 아닌데 |
扣角千秋宇宙空 | 구각천추우주공 | 소뿔 두드리는 소리 천추에 같으련만 저 하늘에 덧없이 울리는구나 |
산천경개(山川景槪)며 초립목동(草笠牧童)의 모습은 의구(依舊)하다. 달라진 것은 거짓 주인이 이 땅에서 행세한다는 것뿐. 그 거짓 주인은 소년의 꿈도 청년의 혈기도 장년의 기개도 모두 억누르고 있다. 같은 하늘에 같은 구름이 떠 있어도 그것은 청운(靑雲)이 아니라 암운(暗雲)으로 보였을 터이다. 그래서 목동의 소 모는 소리가 여느 세월이라면 ‘희망가’로 들렸겠지만 작금의 시절은 그렇지 아니하다. 우주가 공활(空豁)하여 호연(浩然)하던 것이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
7. 蟬선 매미 | ||
暮鶯去後早蟬還 | 모앵거후조선환 | 늦봄 꾀꼬리 떠나 초여름 매미 돌아오고 |
響出疎桐客夢寒 | 향출소동객몽한 | 오동나무에 가을소리 울리니 나그네 꿈도 쓸쓸하네 |
來者何聲聲在樹 | 내자하성성재수 | 들리노니 무슨 소리인가 나무에서 나는 소리 |
一年秋色上杯山 | 일년추색상배산 | 올 한해도 가을빛 물들이며 배산 위를 넘어가네 |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시상(詩想)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모앵(暮鶯)에서 ‘모(暮)’는 늦봄으로 조선(早蟬)의 조(早)는 이른 여름, 향출소동(響出疎桐)에서 ‘향(響)’은 오동잎 지는 소리로, 일년추색(一年秋色)은 가을 단풍이 지고 겨울 문턱을 들어서는 것으로 보고, 시의 내용을 풀었다. |
8. 閑居한거 한가로이 지내며 | ||
杯山以北碧松林 | 배산이북벽송림 | 배산 북쪽 푸른 소나무 숲에 |
老鶴徘徊洞府深 | 노학배회동부심 | 늙은 학 배회하니 신선 세상 깊어라 |
出峀白雲塵世隔 | 출수백운진세격 | 흰 구름 이는 산은 티끌세상과 멀고 |
永歌一曲少知音 | 영가일곡소지음 | 노래 한 곡 길게 불러도 내 마음 아는 사람 적네 |
동부(洞府)는 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이다. 행주산성에서 바라보는 가을날의 저녁놀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사방에서 한강을 향해 자연 그대로의 지류(支流)가 흘러들었던 100년 전에는 더욱 고왔으리라. 소나무 숲에서 흥에 겨워 조용히 절로 나오던 노래가 사방을 향해 목 놓아 외치는 절규로 바뀌어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았을 고독감이 느껴진다. |
9. 夕陽在山석양재산 석양이 산에 걸렸네 | ||
千尺杯山一小堂 | 천척배산일소당 | 천 척 되는 배산에 자그마한 집 하나 |
半天遙落十分光 | 반천요락십분광 | 중천 저 멀리 밝은 빛 가득하네 |
人生從此居然老 | 인생종차거연로 | 인생도 이를 따라 어느덧 늙어가서 |
白髮緣愁似個長 | 백발연수사개장 | 백발에 얽힌 근심 한올 한올 자랐구나 |
위의 ‘목동’에서부터 ‘매미’, ‘한가로이 지내며’, ‘석양이 산에 걸렸네’까지는 국권은 섬나라의 손으로 넘어가고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의 속절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총독부의 감시하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심에 빠진 지식인의 내심을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다. |
10. 蜘蛛網지주망 거미 줄 | ||
蜘蛛結網短墻邊 | 지주결망단장변 | 낮은 담장 가에 거미가 줄을 치니 |
滿腹絲綸正豁然 | 만복사륜정활연 | 배에 가득한 실타래 넓게도 펼쳤네 |
緯地經天千緖織 | 위지경천천서직 | 가로세로 천 가닥 실마리로 짰으니 |
㫄風通雨一綱連 | 방풍통우일강련 | 바람도 비키고 비도 통하며 그물 하나로 이어졌네 |
回如方席虛明月 | 회여방석허명월 | 방석같이 두르고 명월(明月)같이 텅 비어 |
掛似踈簾鎖暮烟 | 괘사소렴쇄모연 | 성긴 발처럼 걸려 있어도 저녁연기 가두네 |
戒爾蟬兒來莫近 | 계이선아래막근 | 너 매미는 경계하여 가까이 오지 말아라 |
去年獵線又今年 | 거년렵선우금년 | 작년 올가미 올해도 또 쳤노라 |
담장 가의 거미줄엔 곤충의 잔해들이 걸려 있다. 시끄럽게 우는 매미이기에 거미가 도망갈 듯하지만 거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늘고 가는 거미줄이라 금세라도 끊일 듯하고 성글어 쉽사리 헤치고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번 걸려 빠져나가고자 발버둥 칠수록 올가미는 온몸을 휘감아 온다. 아무리 뜻이 크고 굳다 한들 사방에 조용히 깔려있는 밀정들에 우리의 지사들이 수없이 걸려들고 날개가 꺾였던 세상이었다. 조선 민중의 삶 역시도 그 질곡(桎梏)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었으랴. 경각심(警覺心)을 호소하는 시이다. |
11. 雨後杯山우후배산 비 온 뒤의 배산 | ||
靑山雨後杜鵑啼 | 청산우후두견제 | 청산에 비온 뒤 두견새 우는 소리 |
半雜峰雲半雜溪 | 반잡봉운반잡계 | 산봉우리 반은 구름에 묻히고 반은 계곡 물소리에 젖네 |
草色樹陰如繡畵 | 초색수음여수화 | 풀잎 빛깔 나무 그늘은 수놓은 그림 같은데 |
行人立馬水生蹄 | 행인립마수생제 | 행인이 말 세우니 말발굽에서 물이 솟아나네 |
말을 타고 온 행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풍경을 사실적(寫實的)으로 읊고 있다. 특히 ‘말발굽에서 물이 솟아난다(水生蹄)’는 표현은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눈에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
12. 卽事즉사 즉석에서 읊다 | ||
杯城一面繡屛開 | 배성일면수병개 | 배성 온통 자수 병풍을 펼친 듯하니 |
黃菊丹楓疊疊回 | 황국단풍첩첩회 |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이 겹겹이 둘렀네 |
秋色山家新酒熟 | 추색산가신주숙 | 가을빛 짙은 산가(山家)에 새 술이 익었는데 |
柴門三叩故人來 | 시문삼고고인래 | 사립문 두드리는 소리, 옛 벗이 찾아왔네 |
시제(詩題)가 즉사(卽事)이다. 만추(晩秋)에 즉흥적으로 읊었던 시를 기록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술도 꼭 누구를 정하여 마시자고 담근 것도 아니요, 사립문을 두드린 사람도 기일을 정하여 초대한 사람도 아닐 터이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였으니 즐겁지 아니하였을까(不亦樂乎). |
13. 友人送別杯山上우인송별배산상 배산 위에서 친구를 송별하다 | ||
暇日登臨伴友遊 | 가일등림반우유 | 한가한 날 산에 올라 친구와 노니는데 |
感懷古跡水長流 | 감회고적수장류 | 감회 새롭네, 옛 자취 물길 따라 멀리까지 흘러가니 |
元帥豊功堪語石 | 원수풍공감어석 | 도원수 권율 장군 큰 공은 비에 새겨져 있고 |
敵兵寒骨必成邱 | 적병한골필성구 | 적병 차가운 뼈 틀림없이 언덕을 이룬 것이네 |
謀酒纔來城北里 | 모주재래성북리 | 나는 술을 챙겨 이제 막 산성 북쪽 마을에서 왔는데 |
催裝欲向漢南洲 | 최장욕향한남주 | 그대는 급히 여장 꾸려 한수 남쪽 마을로 떠나려 하네 |
霎逢旋別依如夢 | 삽봉선별의여몽 | 만나자마자 이별하니 꿈결 같아 |
去客留人多少愁 | 거객류인다소수 | 가는 손님이나 남은 사람이나 못내 아쉽구나 |
선생을 찾아온 객을 보내는 아쉬움을 읊고 있다. 도원수 권율 장군의 공을 기리면서 만남을 이룬 객이라면 뜻을 함께했던 벗이리라. 멀리서 찾아왔으니 이별 또한 아쉬웠을 터이다. |
14. 又우 또 한 수 | ||
斜陽古渡幾人行 | 사양고도기인행 | 해는 기우는데 옛 나루터 몇 사람이나 건너나 |
棹外靑山半水聲 | 도외청산반수성 | 노 젓는 소리 저 멀리 푸른 산 중턱까지 물소리 들리네 |
層岳平鋪高浪動 | 층악평포고랑동 | 솟은 산 평평히 펼쳐지고 높은 물결 요동치니 |
龍盤虎據若相爭 | 용반호거약상쟁 | 용 서리고 범 웅크려 서로 다투는 듯하네 |
앞의 ‘배산 위에서 친구를 송별하다(友人送別杯山上)’에 이어서 쓴 시이다. 객을 태우고 강을 건너는 배를 바라보며 들려오는 물결소리에 용호상박의 포효를 연상한다. 행주산성은 곧 용의 기운이 서려있고 호랑이의 용맹한 기상이 깃든 곳으로 선생이 의지하였던 정신적 언덕이다. 선생의 집에 손님들이 드나든다. 오랜만에 회포도 풀고 울분도 토로했을 것이다. ‘비온 뒤의 배산’, ‘배산 위에서 친구를 송별하다’ 등 일련의 시는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을 읊고 있다. |
15. 夜寒야한 밤은 찬데 | ||
宿雨初晴夜漸寒 | 숙우초청야점한 | 계속 오던 비는 개어 밤은 점점 차가워지니 |
杯山秋氣壓靑欄 | 배산추기압청란 | 배산의 가을 기운 푸른 난간을 누르네 |
浹旬病骨多淸夢 | 협순병골다청몽 | 열흘 앓던 병골 맑은 꿈은 많은데 |
行盡城南別處看 | 행진성남별처간 | 성 남쪽 끝까지 가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네 |
선생은 가을날에 열흘을 앓아누워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날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가고, 청운의 뜻(淸夢)도 덧없는 아침이슬처럼 간 곳 없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라본 서울, 님이 없는 그곳이 얼마나 낯선 곳(別處)으로 느껴졌을까. |
16. 杯山上배산상 배산 위에서 | ||
扁舟風棹下如飛 | 편주풍도하여비 | 작은 배 바람에 노 저으니 나는 듯 내려가는데 |
萬里滄波何處歸 | 만리창파하처귀 | 저 멀리 푸른 물결 어디로 돌아가나 |
回首長安依舊不 | 회수장안의구불 | 머리 돌려 한양을 바라보니 옛날 같지 않건만 |
終南山色上春衣 | 종남산색상춘의 | 종남산 빛깔은 봄옷을 입었네 |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근정전 앞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동서로 가로놓였다. 경복궁은 일제의 그늘에 가리어졌던 것이다. 인간사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명(明)만 기억해서도 암(暗)만 기억해서도 안 될 일이요, 둘 다 잊어서도 물론 안 될 일이다. 개인사(個人史) 역시도 어제의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때로는 성찰해야 할 일도 있다. 산색이 봄빛으로 바뀌었다 하여 한양 가는 길이 희망의 거리가 될 수는 없었던 시대였다. |
17. 杯山배산 暮景모경 배산의 저녁 풍경 | ||
杯山城角枕江濆 | 배산성각침강분 | 배산 성 모퉁이는 강변을 베고 누웠고 |
大野三分水一分 | 대야삼분수일분 | 큰 들이 대부분이고 물은 조금일세 |
孤棹載來千里月 | 고도재래천리월 | 외로운 배는 천리 달빛을 싣고 오고 |
老僧踏下萬重雲 | 노승답하만중운 | 늙은 중은 겹겹이 쌓인 구름을 밟고 내려 가네 |
烟生海島知漁戶 | 연생해도지어호 | 연기 이는 섬은 어부 집인 줄 알았건만 |
天濶東南渡雁群 | 천활동남도안군 | 넓은 하늘 동남쪽 기러기는 떼로 건너오네 |
指点京華回首立 | 지점경화회수립 | 한성을 향해 머리 돌려 서 있으니 |
驛風汽笛數聲聞 | 역풍기적삭성문 | 역에서 부는 바람 타고 기적 소리 자주도 들리네 |
덕양산과 가까운 곳에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1904년 부설한 경의선 능곡역이 자리하고 있다. 선생이 이 시를 쓰면서, 가까이서 수시로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필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이라 하여 마냥 감동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제5구의 섬, 어부 집을 ‘해국(海國)’으로, 동남쪽 기러기를 ‘왜인’으로, 기적 소리를 ‘일제가 지배하는 세상 분위기’로 보면 억측일까? |
18. 山城感懷산성감회 행주산성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다 | ||
杏湖一帶故山城 | 행호일대고산성 | 행호 주변은 옛 산성으로 둘렀는데 |
碑立坮空水自淸 | 비립대공수자청 | 비석 세워진 장대(將臺) 주인은 없고 물만 홀로 맑구나 |
大捷元戎何處去 | 대첩원융하처거 | 대첩을 거둔 도원수는 어디로 갔나 |
南山寇幕電燈明 | 남산구막전등명 | 남산의 왜놈들 군영, 전등불 밝기도 하구나 |
일제강점기에 산양수북(山陽水北)의 명당자리에 조선총독부의 대본영이 있었다. 지금의 용산이다. |
19. 懷古회고 옛 감회 | ||
杏畔杯山一草亭 | 행반배산일초정 | 행호 물가 배산에 띠풀 정자 하나 |
槿花滿發不飄零 | 근화만발불표령 | 무궁화 가득히 피어나 바람 불어도 떨어지지 않네 |
千年古國誰眞主 | 천년고국수진주 | 수천 년 고국은 누가 참 주인이던가 |
三角高峰萬点靑 | 삼각고봉만점청 | 삼각산 높은 봉우리 일만 바위마다 푸른 기상 서렸네 |
띠풀 정자(草亭)는 선생이 서 있는 처지요, 떨어지지 않는 무궁화(槿花不零)는 선생의 의지며, 누천년 고국의 주인(千年古主)이 바뀔 수 없음은 국권회복의 투지다. 그리고 고봉만청(高峰萬靑)은 이 땅을 지켜온 기상이요 뜻을 잃지 않은 동지들이다. |
20. 江城강성 散步산보 강가의 성을 거닐다 | ||
呼兒換酒下江城 | 호아환주하강성 | 아이 불러 술 사러 강성에 내려보내 |
路轉峰回趣味淸 | 노전봉회취미청 | 산길 돌고돌아 받아온 술 그 맛 맑구나 |
地僻孤村殘雪白 | 지벽고촌잔설백 | 후미진 외딴 마을 남은 눈이 희고 |
雲收遠浦夕陽明 | 운수원포석양명 | 구름 걷힌 저 포구 석양이 빛나네 |
天低野曠千山重 | 천저야광천산중 | 하늘은 낮고 들은 넓어 산은 첩첩이요 |
風打潮生一棹輕 | 풍타조생일도경 | 바람 불고 파도 쳐도 일엽 놋배 가볍게 달려가네 |
更進一杯山影倒 | 갱진일배산영도 | 다시 든 술잔에는 산 그림자 잠겼으니 |
杯山千古不虛名 | 배산천고불허명 | 배산 천고(千古)의 명성은 헛되지 않구나 |
술잔을 기울이다가도 잔에 비친 배산을 보며 임란 당시 대첩의 함성을 떠올린다. 술을 마셔도 정신이 탁해질 수 없고 거짓 주인이 행세해도 승리했던 역사는 빛이 바래지 않는다. 선생은 다시 울분을 삼키며 주먹을 쥔다. |
21. 德陽山中덕양산중 덕양 산중에서 | ||
德陽山立大江中 | 덕양산립대강중 | 덕양산은 큰강 가운데 솟아 있는데 |
雲峀烟波萬折東 | 운수연파만절동 | 구름 솟아나는 봉우리는 수만 고비 동으로 감아도네 |
立石紀功秋幾度 | 입석기공추기도 | 공을 기려 비를 세운 지 몇 해이던가 |
將臺不盡令旗風 | 장대부진령기풍 | 장대의 장군 깃발은 바람 끊이지 않네 |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의 모습을 한강 건너 서편에서 바라보면 봉우리들이 가파른 경사로 요새를 이루며 서북방향에서 동쪽으로 휘감기듯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시인은 ‘만절동(萬折東)’이라 표현하였다. 선생은 1931년에 ‘충장공 권율장군 기공사수리기성회’를 조직해 행주산성 권율 장군 사당을 다시 세우는 일을 주도했다.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물리친 권율 장군의 업적을 기림으로 지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함이었다. 앞의 ‘배성 옛터(杯城古墟)’는 황폐화되어 있던 행주산성의 모습을, ‘덕양 산중에서(德陽山中)’는 권율 장군의 사당을 다시 짓고 장군기를 내걸어 다소나마 얼을 살린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22. 又우 또 한 수 | ||
西落孤峰復轉東 | 서락고봉부전동 | 서쪽으로 떨어진 높은 봉우리 다시 동으로 돌고 |
壬辰大捷此山中 | 임진대첩차산중 | 임진 대첩이 이 산중에서 있었네 |
杏湖欲瀉英雄恨 | 행호욕사영웅한 | 행호는 영웅의 한을 쏟아내려 하고 |
萬里歸帆一席風 | 만리귀범일석풍 | 먼 곳에서 돌아오는 돛배 한바탕 바람을 일으키는구나 |
행호에 흐르는 물은 영웅이 한을 쏟아내어 물결치는 것으로, 돛배에 매달려 바람에 날리는 돛은 오히려 바람을 뿜어내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눈앞에 전개되는 객체(客體)들을 역발상적으로 심상(心象)화하고 있다. |
23. 大寒已過대한이과 대한이 이미 지나다 | ||
開花山對德陽山 | 개화산대덕양산 | 개화산(開花山)이 덕양산(德陽山)을 마주하고 있으니 |
春意將舒一望間 | 춘의장서일망간 | 봄기운은 한번 바라보는 사이에 펴지는구나 |
起傍窓梅消息問 | 기방창매소식문 | 일어나 창가에서 매화의 소식을 묻노니 |
陰崖殘雪幾時寒 | 음애잔설기시한 | 그늘진 언덕에 남은 눈 어느 때까지 얼어 있을소냐? |
언뜻 읽으면 무심히 계절의 변화를 읊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봄이 옴에 잔설이 녹고 매화가 피듯이 내외 독립운동의 기운과 우방들의 지원이 마주 비추는 봄기운이 되어 서서히 일제의 기세를 물리치고 있음을 암유(暗喩)하고 있다. |
24. 德陽山덕양산 永懷영회 덕양산의 오랜 회포 | ||
當時戰捷此高峰 | 당시전첩차고봉 | 당시에 전승(戰勝) 거둔 이 높은 봉우리 |
一朶芙蓉擁陣容 | 일타부용옹진용 | 한 송이 연꽃으로 진을 친 모습일세 |
北接白雲三角出 | 북접백운삼각출 | 북쪽에 이어진 흰 구름은 삼각산에서 나오고 |
南橫玄海萬瀾重 | 남횡현해만란중 | 남쪽으로 가로놓인 현해는 만 겹 파도 출렁이네 |
掛弓老樹風相轉 | 괘궁로수풍상전 | 활 걸었던 늙은 나무는 바람에 서로 흔들리고 |
洗釼餘波夜自舂 | 세일여파야자용 | 칼날 씻던 잔물결은 밤에 홀로 방아 찧네 |
一敗一勝時正熟 | 일패일승시정숙 | 한 번 지고 한 번 이기는 싸움 때는 실로 무르익었으니 |
英雄何事不先鋒 | 영웅하사불선봉 | 영웅이 어찌 선봉에 서지 않으랴 |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피어난다. 사방에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떨쳐 일어서고 있는 기운을 읊고 있다. 一敗一勝은 곧 ‘一勝一敗兵家之常事’라는 뜻으로 읽힌다.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전투에서 늘 있는 일인데다, 지금은 일본제국은 연합국 진영과의 싸움에서 패색이 짙어가고 있는 때이다. 그래서 때가 무르익었다(時正熟)고 한 것이다. |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80613
*****(202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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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