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뮤지컬 <Next To Normal>에서 빌려왔습니다.
Maybe - https://youtu.be/0tSpEcQnQvY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짝꿍과 함께 하교하는데 그 애가 내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저기 대문 달린 집, 정신병원이래. 저 앞에 지나가면 끌고 가서 가둬버린대. 우리 언니가 봤대! 온통 붉은 빛인 건물이었다. 버스도 출입할 만큼 너른 대문의 양옆 기둥에는 불교의 사천왕 비슷한 게 그려져 있었다. 왜 애먼 사람을 가두는지 의문이 들기도 전에 험상궂은 천왕이 양 겨드랑이에 팔을 걸어 나를 끌고 들어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나는 친구 손을 꼭 잡고 그 건물을 멀찍이 둘러 집에 왔다.
엄마, 학교 앞에 있는 건물, 정신병원이에요? 어느 건물? 눈 부리부리한 아저씨 그려져 있는 집요. 엄마는 웃었다. 웬 정신병원? 거긴 수련원일걸. 그치만 정신병원에는 진짜 미친 사람을 데려가요?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엄마 어릴 적 동네에 살던 광인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중에는 제집 사립에 서서 오가는 사람에게 은은히 웃어주는 ‘곱게’ 미친 사람도 있었고, 산발하고 죽은 아이를 찾아 맨발로 뛰어다니는 여자도 있었다. 왜 미쳤어요? 아이가 죽어서? 그건 모르지. 여자는 결국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데려갔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소위 ‘정신병자’의 모습을 책에서만 종종 접했다. 대부분 폭력적이고 왜곡되어 있었다. 그림책으로 된 <광인 일기>에서 사람들은 식인을 했고, <제인 에어>의 버사 메이슨은 저택에 불을 질렀으며, 아동용 교육 만화책의 미치광이는 항상 구속복을 입고 입마개를 차고 차디찬 철제 침대 위에 묶였다. 나는 은연중에 정신병자란 미친 사람이고, 현대 사회의 낙오자이며, 어딘가에 가둬야 하는 위험요소라고 학습한 모양이다. 잘못하면 사회의 해악이고 잘하면 알아서 자기파괴에 이를 뿐인 존재. 진짜로 그런 사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말이다.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다. 문항은 이런 식이었다. 1(전혀 아님)부터 10(매우 그렇다) 중에 표시하시오. 질문지에 문장이 이어졌다. ‘나는 우울감을 느낀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뭘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나 싶었지만 솔직하게 7에서 9 사이로 답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맘때에는 친구들도 다 죽고 싶다고 했으니까.
검사에 대해 잊어버릴 때쯤, 결과가 나왔다면서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앉혔다. 책상 위, 막대그래프가 몇 개 출력된 미색 종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스트레스: 고위험군. 우울: 심각함.’ 몇몇 항목을 짚어가며 선생님은 물었다. 이렇게 생각한 지 얼마나 됐냐고. 3, 4학년부터라고 그랬더니,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라고 했다. 뭐 잘못했나 싶어 등골이 오싹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죽고 싶어요’. 생명은 소중하다는 둥, 부모님 생각을 하라는 둥 어르고 달래는 소리를 지나 ‘우울증이니 병원에 가 보세요’ 한 마디에 도달했다. 하지만 말하면 정신병원에 날 가둘 텐데!
그날 밤 쭈뼛거리며 엄마에게 질문지를 가져갔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좀 더 지켜보자는 식이었을 것이다. 다들 힘들고 고달픈 시기였다. 아빠의 반응은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해 보니까 우울이라는 건 노력 부족이다. 그게 대답이었다. 나는 내심 병원에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시간은 흐르고 병은 깊어지면서 나는 점점 공포에 질렸다. 딸을 정상인으로 키웠다고 믿는 엄격한 엄마와 사람이 우울에 빠진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에게는, 저 정신병 있어요, 라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대학 상담 센터에서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그냥 죽어라’라고 들렸다.
J가 약만 받는 건 어떠냐고 했을 때도 내키지 않았다. 절인 청어처럼 약에 찌들고 평생 의지하게 되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지금 당장도 낱말이 생각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없는데, 약을 먹고 더 심해지면 어쩌지? 그냥 숨만 붙어있게 되는 건 아닐까? 낫기는 하나?
혼자 굴을 파서 들어가는 와중에 J는 현장의 온갖 정보를 가져와서 조곤조곤 전했다. 그 상담 선생이 이상한 거야. 우리나라 여덟 명에 한 명 정도가 우울증이래. 비정상 아냐. 하자도 아니야. 아니 만약 하자라고 해도, 뭐 어때? 보수하면 되지. 어머님 아버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게. 나 믿지?
스물다섯의 1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예약한 신경정신과는 훤한 대로변에 있었다. 사방이 다 깨끗하고 조명은 밝고 온화했으며 벽에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작은 액자에 걸려 있었다. 키가 내 허리께에 오는 어린아이부터 임산부,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쨍한 주황색 소파에 앉아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평범 그 자체의, 내 이웃일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정신병이 있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같이 와 주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속삭였다. 사람 되게 많다. 엄마도 놀란 것 같았다. 스스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냄새나고 칙칙한 진료실? 신발도 신지 않고 머리를 풀어 헤친, 낯빛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사람들?
의사 선생님은 내 우울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주셨고, 그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울증이 있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상온 씨가 게으른 것도, 상온 씨의 잘못도 아니고요. 게으른 사람은 상온 씨처럼 치열하게 살 수 없어요. 우울증은 뇌와 호르몬의 문제라, 호르몬을 조절해주면 증상은 사라져요. 우리가 보통 ‘마음의 감기’라고 하잖아요? 이게 금방 낫는다거나 증상이 가볍다고 해서 감기가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걸릴 수 있고, 그때 약을 먹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날 병원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환자였다. 단지 아플 뿐, 미친 사람도, 낙오자도, 위험요소는 더더욱 아닌 보통의 사람들. 나는 이제 환절기 감기약을 챙기듯 가족, 친척, 친구의 친구에게 병원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가 보면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와 있어. 평범 근처의 삶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들 말이야. 정말이야. 이상한 데 아니야. 네가 이상한 것도 절대 아니고.
첫댓글 어린 시절 '정신병원'과 '정신병자'에 대해 갖고 있던 상들을 잘 표현하셨네요! 혹시 중간에 등장하는 J는 첫 문단의 짝꿍인가요? 아니면 첫글에 등장했던 J인가요?
J는 첫글에 나온 J이고, 그를 처음 만난 때는 고등학교 때라 첫 문단의 아이는 그냥 짝꿍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 마음이 아팠던 적이 없는 사람, 마음이 아플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보통의 사람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미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럼요, 마음 아픈 것이 보통의 일이지요. 이상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는 마음의 소리에 꾸준히 귀기울이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 2학년, 25살.. 시간 흐름대로 따라가며 읽으니 이해하기가 쉬웠어요. 오히려 치열하게 살아온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저에게도 지금 위안을 주네요. 보통의 사람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집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을 분명히 나타내라는 점이 지난번 리뷰에서 지도받은 부분이어서 꼭꼭 넣어봤는데 읽기가 좋았다니 기쁘네요! 우리는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제 몸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회의 일정을 따라 속도를 높이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고꾸라지기 마련인 것 같아요.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라는 말씀 기억하고 싶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맞아요. 정신병에 대한 프레임이 아직도 너무 가혹해요.
문학의 힘이 크다는 고증 역시 재미있게 봤어요. 조금 여담일수 있는데 제인에어에서도 다락방에 가둬놓은 미친 전부인이 등장하죠.
그래서 진리스라는 작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라는 제목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소설에서 그 여인은 너무나 당차고 똑똑했었던 것같아요.
그런것처럼 고전은 그렇다 치고, 현대에 와서는 시선이 좀 다양해지고 바뀌어야하는게 맞죠.
미셸푸코 <광기의 역사>에서 흔히 우리가 아는 예술가들이 정신병원에 많이 갇혔다고 하잖아요. 쉽게 얘기하면 시대 당시에 사회 규범에 맞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여기서 포인트는 '이해'일텐데 이제는 이해하기 위한 툴도 많고, 자료도 많은 마당에
그저 '이상하다'라는 말로 퉁쳐버리는게 진짜 이상한거죠 ㅎㅎ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오늑~~ 오늑이 짚어줘서 <오만과 편견>이 아니라 <제인 에어>였음을 깨달았어요.ㅎㅎㅠㅠ 후딱 고쳤어요. 진 리스의 책도 좋았어요. 조금 일찍 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정도로요. <한밤이여, 안녕>도 감명깊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 말하지. 그러나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에 더는 관심이 없을 때,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야.”라는 구절을 적어뒀었네요...
확실히 발견하던 때보다는 훨씬 살기 좋아졌어요! 정부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도 많아졌고요. 그렇죠, ‘이상하다’는 말로 퉁치는 게 진짜 이상해요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왜 눈시울이 붉어질까요. 이전 글과 이번 글이 퍼즐처럼 맞춰지네요. 지난 글이 제 3자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쓴 글처럼 저에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우울의 역사를 전달하고 이해시켜주는 것 같아요. 드론이 찍은 듯한 먼 그림에서 정말 우리 옆에 있는 우울에 대해 바라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어린 상온이 엄마에게 정신병원에 대해 물었던 부분에서는 엄마가 가진 "엄격함"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엄마, 아빠 사이의 고립된 상온의 느낌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구 제가 혜원을 울렸나봐요~~ 드론이 찍은 먼 그림이라는 표현, 옮겨 적고 싶네요. 사실 엄마 부분은 할 얘기가 너무 많고 긴 이야기라 짧게 언급했는데 다음에는 붙들고 말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그냥 죽어라’라고 들렸다.
이 말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새벽 세 기의 몸들에게>에도 '사람답게 살지 못할 바에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들이 우리를 얼마나 강압하고 있는가 하는 말이 나오는데요. '사람답게'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한다는 말이 이 글에서도 통할 것 같아요. 내가 정상 밖으로 밀려났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에 대해 잘 설명해주신 글이라 고맙게 읽었습니다. 다음주 상온 님의 글이 더 기대됩니다.
다정한 고쌤! 저도 글 쓰면서 제게 강요된 정상성이라든가 평범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프레임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꼭 이번 글 하나만큼 더 좋아진 글 쓸 수 있으면 기쁠 것 같아요.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정신병원으로 오인된 수련원에 대한 느낌과 책을 통해 접한 정신병자에 대한 두려움을 미리 제시해 중학교 2학년의 심리검사 결과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두려워하는 소년의 모습이 눈으로 그려졌어요. 읽으면서 우리는 "이상한 것"과 "정상"을 너무 명확히 구분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두려움이 전해졌다니 기쁩니다.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기가 쉬운 세상이면 좋겠어요. 아프다고 말하면 그렇구나 들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요...댓글 고맙습니다. :)♥
이상해도 참 이상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평범'이라는 건 뭘까요. 사람을 가혹하게 떠밀면서 평범하기를 바라는 사회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그 잣대에 맞춰 '평범'하고 싶어하는 제 마음이 모순적이구나 싶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우리 모두가 환자일지 모른다는 말씀 제가 글의 실마리 삼은 <넥스트 투 노멀>의 주제와 연결이 되네요. 각자의 평범에 맞추어 사는 게 조금이나마 덜 아프는 길인 것 같아요.^^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니 기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