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2:1~9 간사한 혀 2021. 5. 19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2)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표제어입니다. “다윗의 1)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표제어의 배경은 사무엘상 20~23장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가 분명함을 요나단이 다윗에게 알려줍니다. 다윗이 도망가다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떡과 칼을 받아 갔습니다. 이 사실을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보고하자 사울이 아히멜렉을 불러 네가 다윗과 함께 나를 반역한다고 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충성스러운 신하임을 사울에게 말하지만, 사울이 호위병들에게 아히멜렉의 집안사람을 다 죽이라고 합니다. 호위병들이 제사장 치기를 머뭇거리자 사울 왕이 도엑에게 명합니다. 그러자 도엑이 아히멜렉 제사장의 가족 85명을 죽이는데 그중에 한 아들이 다윗에게 도망합니다. 그가 아비아달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도엑을 포악한 자 또는 간사한 혀를 가진 자로 말하고 다윗은 주의 인자함을 의지하는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포악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용사, 영웅, 힘 있는 자로 사용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는(잠16:32) 말씀에서 용사가 포악한 자와 같은 단어입니다. 잠언에서는 지혜가 용사보다 낫다고 하기 위하여 용사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일지라도 누구에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뜻을 달리하는 겁니다. 이런 포악한 자는 자기의 악한 계획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항상 있지만, 그 하나님의 인자함보다 자신의 악한 계획을 자랑합니다. 물론 본인은 악한 계획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악한 계획인 줄도 모르는 자들이 죄인들의 특징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의 계획보다 방주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계획이 악한 계획인 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남을 해쳐서라도 자기의 힘을 키우는 자들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네 혀가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하게 행한다고 합니다. 도엑의 말 한마디로 제사장 가족 85명이 죽습니다. 그런데 도엑은 에돔 사람으로 사울의 목축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왕에게 충성한 겁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와서 행한 일을 사실대로 보고한 겁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악을 꾀하는 말이며 날카로운 면도칼로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겁니다. 이미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사울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는 신세입니다. 이럴 때 사울 편에 서는 일이 권세와 부를 얻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간사한 일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한 것이 악이며 거짓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2절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도엑은 사울 왕에게 충성하였습니다. 신하가 왕에게 충성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선보다 악을 사랑하는 것이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한다고 합니까? 역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누가 기름 부음 받은 자인가에 달린 겁니다.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난 것을 일반 백성들이 모른다고 하여도 사울 왕이 행하는 그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한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에게 충성함이 선보다 악을 의보다 거짓을 사랑하는 겁니다.
3절의 내용을 성경의 다른 구절과 비교하여 보겠습니다. 이사야 5:20절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미가서 3:1~3절입니다.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사랑함보다 거짓을 사랑한 결과가 이러합니다. 이러한 일이 이스라엘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이야기입니다. 히틀러 정권에서 수많은 사람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이 신분을 바꾸어 아르헨티나에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이 이 사람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서 재판한 내용의 책입니다. 이 재판을 기록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해서 유명한 말이 됐습니다. 아이히만은 국가 공무원으로 충성하였을 뿐이기에 신 앞에서 유죄라고 하여도 법적으로는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정신 감정을 의뢰받은 의사는 그 사람의 정신상태는 자기보다 더 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죄를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오늘 본문의 배경인 도엑을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이 사람은 사울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국가에서 공무원이었습니다. 사울의 짐승 떼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다윗의 행적을 묻는 일에 사실대로 정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엑의 혀를 간사한 혀라고 합니다. 그 혀가 간사한 혀가 되는 것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기름 부음이 떠난 자에 의하여 추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누구 편에 서는 것이 세상의 이익입니까? 강한 자 편에 서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간사한 혀를 가진 자는 어떻게 됩니까?
4~5절입니다. 간사한 혀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합니다. 도엑의 말 한마디로 제사장과 그 집안사람 85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런 자를 멸하며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신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잠언 2:22절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악인 곧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힐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간사한 혀를 가진 악인들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이사야 32:6~7절 입니다. “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이사야 32장은 의로운 왕이 다스릴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의로운 왕이 다스리면 포악하며 간사한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의로운 왕이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그 왕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간사한 자로 드러납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이 의로운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세상의 권세 자인 빌라도에게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합니다(요19:15). 이보다 더한 간사한 혀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 해야 마땅한 대제사장이 세상의 권세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자들이 추구하는 내용은 본문 7절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2)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2)각주를 보면 성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성으로 삼지 않고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든든하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부인하며 돌아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는 현장에서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것이 간사한 혀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간사한 혀, 포악한 자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아는 자가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간사한 자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전혀 간사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가 되셔서 심판을 받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자신이 간사한 혀를 가진 자임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본문 5~7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간사한 자를 심판하여 영원히 멸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심판을 보고 두려워하여 또 그를 비웃어 말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엑이 사울 왕에게 다윗을 고발함으로 자신의 재물이 풍부해지고 권세가 확대되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성경은 포악한 자의 일이며 이런 말을 하는 혀가 간사한 혀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나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합니까? 나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려면 재물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세상 구조입니다. 청부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깨끗하면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축적하여 부자가 될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상을 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큰 상을 받으려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기와 질투를 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 길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나의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에 관하여 죽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는 길로 이끌려 가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사람들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간사한 혀가 됩니다.
본문 8절입니다. “봉독”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힘으로 삼고 그 입에 간사함이 없이 하나님의 인자함을 영원히 의지하겠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의 시편이기에 다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앞의 시편 51편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아는 자가 세상의 어떤 것을 힘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자함만을 영원히 의지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일방적이고 신실한 그 인자함이 없으면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겁니다.
본문 9절입니다. “봉독”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고 합니다. 재물의 풍부함을 자기 힘으로, 자기의 성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자함을 영원히 의지하는 일은 사람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일을 행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주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어떤 행위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의 인자함만 영원히 의지하는 길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기에 주께만 감사하는 겁니다. 이 일을 해시는 주의 이름이 선하시기에 주의 성도들 앞에서 주의 이름을 사모한다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주의 이름을 의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로 모였다면 무엇만 의지하게 됩니까? 주의 인자함만을 영원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미 앞에서 본 말씀입니다만 사람이 믿는 것이 얼마나 허사인지를 알고 오직 주의 인자함만을 영원히 의지하는 자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4:1~4절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1)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참으로 엄중한 말씀을 합니다. 그 이유는 때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귀에 좋은 말만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귀가 간사한 말을 분별하도록 또한 우리의 혀가 간사한 말을 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1~12절입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1)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2)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 간사한 혀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합니다.
이어지는 13~18절입니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우리의 혀가 간사한 혀임을 안다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인자를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