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명품구두 세켤레가 있다. 처음 선생이 되던 시절에는 국민 소득이 백달러도 안되던 시절이다. 그 시절부터 가난한 시골 선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나는 청년시절 번듯한 양복이나 구두 한켤레 신어 본 적도 없다. 운동화만 신고 재건복을 입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구두를 신은 것은 늦게 결혼식을 올릴 때 큰 맘 먹고 양화점에서 구두를 맞추어 신고 실비양봉점에서 정장 옷을 맞추어 입고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기억만 있다. 그때 최고급으로 맞추어 신은 구두는 거의 나와 함께 청년 중년시절을 함께 했다. 구두 뒷창이 닳으면 닳는 곳에 머리가 넓적한 쇠붙이로 만든 구두징을 박았고 앞창이 닳으면 구두 수선소에서 앞창을 갈아 신었다. 그러다가 발바닥 지압에 좋다는 말을 믿고 잡화상을 하는 장장로님에게 구입하여 수십년을 구두 깔창까지 갖추어 신었다. 그러나 구두는 사치품이고 활동을 많이 하는 나에게는 운동화가 제격이었다. 그러니 구두는 오래 신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끼던 구두도 오래 신으니 발이 편하고 구두술도 없이 신게 되어 운동화는 밀려나게 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즐기던 운동을 하지 않고부터 오래된 구두가 편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고 전문적인 일을 하고 그야말로 명품구두를 한켤레 선물 받았다. 모양도 세련되고 몇 년을 신어도 잘 닳지도 않았다. 은행 앞에서 구두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분에게 구두를 닦을 때면 명품 구두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멋을 모르는 아니 멋과는 거리가 먼 나도 그 구두를 신고 나가면 우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머리와 신발이 단정하면 신사처럼 젠틀하게 보인다고 하지만 이발관에서 반질반질하게 이발 한번 해보지 않고 펄펄 날리는 자연스런 머리만 평생 고집한 나에게 반짝이는 명품구두는 아예 어우리지도 않는 것이지만 반짝이는 명품 구두를 신을 때면 괜시리 우쭐해지는 속물이었다. 한 5년이 지나 또 한켤레 선물을 보내왔다. 이렇게 좋은 구두 평생 신을 예정이라며 반품을 요구했지만 맏이는 기어이 두고 갔다. 새구두를 한번 신어보니 발도 불편하고 모양도 마음에 안들어 처삼촌에게 선물로 드렸다. 신명이 많은 처삼촌는 새신을 신은 어린 아이마냥 좋아하셨다. 그러다가 막내가 혼인할 때 또 명품구두를 선물 받았다. 신발장에 모셔두고 귀한 일이 있을 때만 신었다. 새신은 발이 불편하고 헌 명품구두가 나에게는 편하고 좋았다. 발맛사지도 된다는 지압깔창을 깔아도 그렇게 편하고 좋았다.
지난 여름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가을까지 햇볕이 따가왔다. 아침 산책 길에도 그 구두를 신었다. 내 몸의 한 부분처럼 된 구두를 신고 일하고 걷고 출입하고 올해는 10월에 첫눈이 내렸다. 눈내린 풍켱을 좋아하는 나는 예의 그 구두를 신고 강이지마냥 뛰며 걸으며 산책을 즐기고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양말을 벗는데 왼쪽 양말이 흥건이 젖었다. 양말을 다벗기도 전 결벽증 환자처럼 깔끔을 떠는 안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물에 빠졌어요! 젖은 양말을 신고 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후닥닥 달려나가 구두 바닥을 보니 앞창이 닳아 동전보다 큰 구멍이 나고 말았다. 발 지압에 좋다는 신발창이 있어서 바닥이 뚧어져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신고 다녔다. 바닥이 구멍이 나도록 신어도 겉오양은 말장한 명품구두! 밑창만 갈고 남은 세월 그대로 신을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휴에 집에 다니러 온 아이들은 내가 잠든 사이 내발을 그리고 재어갔는지 성탄선물로 보내 온 구두를 신어보니 이번에는 새 구두인데도 처음 신어도 발이 편했다.
절뚝이는 내 걸음과 내 삶에 다시 일어나 걷고 싶은 시간이다. 느즈막에 어리석고 빈약한 내 삶을 장식하는 명품 구두 세 켤레! 아이들은 이 구두 세 켤레 다 닳은 다음 산으로 가라고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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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끼다가 보니 구석마다 구두 천지삐까리 ㆍ 늘어만가는데 나이와
비례하는 숫자 지만
습관이 무섭게도
운동화만 신고다니는 신세
언제 변하여 볼까유
구두 오래 신으면 고무신 보다 편한 것이 헌 구두인데!
젊었을때는 대부분 구두만 신고 직장생활 하다가 이곳에 내려와서 벌을 키우다보니 때론 등산화 때론 장화를 신는데 익숙해 졌습니다.
발이 앞볼은 넓고 길이는 짧아서 신발 고르기가 항상 불편했습니다.
얼마전에 마음 먹고 정장 구두를 쿠팡에서 샀는데 역시나 안 맞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선생님의 구두에 닮긴 스토리는 나이든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갖게 합니다. 한번 사면 적어도 서너번은 밑창갈고 신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곳은 아직 맞춤구두 전문점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양봉 입고 직장생활을 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재건복이라는 간편 복장을 입던 시절입니다.
저의 한참의 선배님들은 재건복입고 근무하신 기억이납니다.
@북두칠성,이치성(영양) ㅎㅎ
저도 결혼할 때까지 재건복 신사였습니다.
구두 추억이 많어네요.
시골만 사니 장화를 많이 신은것 같네요.
이제 저는 구두 부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