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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
류인혜
* 퐁네프 다리
버스는 길을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 세느 강변을 끼고 달리게 되었다. 가이드가 “퐁네프 다리”라며 심드렁하게 건성으로 지나가는 듯 말했다. 낮은 소리에도 귀가 번쩍 뜨여 차창에 바짝 눈을 대고 그 다리를 보았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난 후 다리는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자리 잡았다. 지독히도 못생겼던 남자 주인공의 얼굴을 참고 끝까지 영화를 보았던 것은 아름다운 다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두고 있던 ‘퐁네프’ 다리를 드디어 보았다. 전등으로 불을 밝힌 야경이 아름다웠다. 영화 속의 환상적이던 불꽃놀이의 장면이 떠오른다. 모두 파리에 가면 아폴리네에르의 ‘미라보 다리’를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네프가 보고 싶었다. 스쳐 지나가는 다리 저쪽 건너편에 기세등등한 모습의 기마상이 있다.
호텔(Novotel Bagnolet Hotel) 앞으로는 큰 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가까운 곳에 내려서 걸었다. 로비에서 파리 지도를 찾으니 없다. 어느 책에 실려 있는 파리 시내 지도를 참고하려고 들고 갔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방 키(카드 모양)로 기계를 통과해야만 탈 수가 있다. 단체 손님을 처음 받는다는 호텔에는 방에 슬리퍼가 없다. 어두침침한 색깔의 카펫 위를 맨발로 다니기가 찜찜하여 걸어 다니는 동선에 따라 비행기 안에서 읽다가 들고 온 신문을 깔았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종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듣기가 심히 괴롭다. 발을 가볍게 옮겨도 마찬가지다.
룸메이트인 허 선생은 외국 여행이 여러 번인지라 모든 면에서 아는 것이 많지만 내가 그러는 모양을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다. 점잖은 사람은 다르다. 룸메이트를 잘 만난 것이다. 바닥에 신문이 주르르 깔린 광경을 상상해 보시라. 이틀째부터는 그래도 적응이 되어서 카펫 위를 맨발로 다녔다.
피곤한 김에 깜박 한숨을 자고 나니 잠이 오지 않아서 계속 어둠 속에서 서성거렸다. 시간이 가지 않으니 화장실 들어가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아서 여행기를 쓴답시고 끄적거리다가 발이 시려서 나왔다. 다행히 현관과 방 사이에 문이 있어 그 문을 닫고 현관에 불을 켜놓고 화장대의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성경을 읽었다. 언제나 여행의 첫날은 이렇게 잠을 자지 못하고 애를 먹는다. 시차 때문이기도 하겠다.
퐁네프다리 (뽕Pont=다리, 네프Neuf=새로운)
파리의 세느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시테섬을 지나야만 하는데 16세기까지 세느강에는 4개의 다리가 있었다. 시가 팽창하여 통행량이 많아지자 1577년 앙리 3세(Henri Ⅲ) 때에 다섯 번째 다리인 퐁네프다리의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30년이 지난 1607년 앙리 4세(Henri Ⅳ) 때에 완공했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 생겨난 후 의사들이 전염병은 도시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왕에게 읍소를 해, 바람이 잘 통하도록 다리 위에 집을 짓지 않도록 명령을 했기에 최초로 가옥이 없는 순수한 교량의 역할을 하는 다리로 지어졌다.
세느강 좌안에서 시작하여 시테섬의 끝자락을 지나 우안으로 연결되는 퐁네프의 교각에는 385개의 각기 다른 사람의 얼굴이 다리를 받치고 있다. 다리 위에 있는 20개의 반원형 돌출부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그 다리는 산책과 사교의 다리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인기가 높았다. 다리 중앙의 광장에는 앙리 4세의 부인인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가의 출신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s)’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1792년 파괴되었다.
1818년 프랑스와 프레드릭 레모가 만든 앙리 4세의 기마 동상이 다리 끝부분에 있다. 동상 뒤편 계단을 내려가면 섬의 끝자락이 세느강과 맞닿고 있는 ‘벨 가랑’ 광장은 중세 시대 마녀들의 처형과 국가에 반역한 역도들을 화형한 곳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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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 - 창으로 엿보기
파리입니다. 드디어 10시간 30분의 비행시간과 도시 진입 2시간이 걸려서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기까지 공장과 도로와 광고 간판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현대적인 광경이었지요.
공장지대의 작은 바에는 남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실내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그 안을 들여다보니 건장한 남자들이 앉아 있어 하루의 일을 끝내고 고단한 몸을 잠시 쉬려고 들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도시와 인사를 하며 만남을 시작하려는 중인데 그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도심, 번화가에 들어서자 비슷한 높이로 지은 건물들이 반깁니다. 좁은 길 양편에 즐비한 건물들은 아래는 상점이고 2층부터는 주거 공간이라고 합니다. 난간의 철로 된 장식이 아름답고, 꽃을 내다 놓고 비추는 조명이 멋있습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석조 건물들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건물에 의해서 그 생활 방법이 다스려지니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이 너무 크면 사람을 지배한다는 우리나라 말이 있지요. 그 집들을 보존하여 세계적인 관광 명물로 내놓고 자부심을 갖는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지니고 있을까요.
파리의 낭만은 이 낡고 오래된 유적들이 품고 있는 찬란한 예술과 그것을 아끼는 현대의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풍스러운 집들이 늘어선 이 도시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더욱 오래 남아있기 위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떠받치고 있는지 구경하며 알아봐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이곳 파리를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어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꿈처럼 이렇게 와 있습니다. 한국수필가협회의 해외심포지엄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왔는데 그 딱딱한 모임보다도 그저 이 도시에서 나그네처럼 떠돌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주신 조경희 회장님의 배려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차역이라면 조그마한 역사 하나를 생각하는데 오래전에 지었다는 기차역은 박물관만큼 큰 규모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 파리까지 온다는 가정을 해보았습니다. 여러 날이(한 달 이상) 걸려 기차여행을 하고 온다면 즐거울까요?
파리의 길은 아주 좁습니다. 주차해놓은 차들이 길 양편을 메우고 있는데 우리를 태운 버스는 잘도 달립니다. ‘삼성’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상점에 최신형 TV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가게들은 조그맣고 바나 음식점이 눈에 많이 뜨이고, 건물 밖으로 내다 놓은 의자는 아주 작습니다. 의자의 방향이 모두 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있더군요. 거리를 보면서 느긋이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창밖으로 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이제 겨울로 향하는 계절 탓인지 두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멋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색깔은 무채색으로 어둡습니다. 도시와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의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어 내년에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고 물건을 살펴보았더니 작은 신발 하나가 60유로에 가깝습니다. 우리 돈으로 거의 8만 원이 넘어요. 오늘의 네 번째 식사는 불고기 백반입니다. 반찬은 묵과 김치, 시금치나물, 숙주나물, 무채가 나왔습니다. 된장국은 작은 공기에 반쯤 담아주었는데 아주 싱거웠습니다. 이곳에서는 된장의 값이 비싸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맛이 부족해도 너그럽게 용서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길이 막혔습니다. 덕분에 오페라 하우스의 아름다운 모양을 오래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건축양식의 좋은 점만 따서 절충식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길에는 많은 경찰이 서 있고 도로를 차단하여 이리저리 돌아서 세느강변으로 나왔기에 예정에도 없던 퐁네프 다리를 구경하고 콩코드 광장도 지나갔습니다. 에펠탑의 야경도 근사했답니다. 경찰들이 왜 그렇게 서서 있었는지 내일 아침 뉴스에 나올까요?
버스 속의 시계가 20:20이라는 숫자로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뜨였습니다. 지금 서울에는 새벽일 것입니다. 7시간의 시차에 빨리 적응해야 관광이 수월하다는군요. 오늘은 하루가 그만큼 늘어나는 바람에 밥을 네 끼나 먹은 것입니다. 이곳은 물이 귀해서 음식점에 서 나오는 물은 값을 낸 것이기에 남은 물을 들고 호텔로 왔습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파리의 중심에 있습니다. 일반 관광객보다는 일을 위해서 파리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랍니다. 이렇게 단체 손님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는군요. 서너 명만 모이면 시끌벅적한 한국 사람들에게 잘 적응할지 모르겠습니다. 객실에는 슬리퍼가 없습니다. 카펫 위를 맨발로 다니기 싫어서 비행기 안에서 들고 온 신문을 깔아놓고 걸어 다닙니다. 발밑에서 종이가 버석거리니 이것도 이상한 노릇입니다.
한숨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에 불을 켜놓고 이 글을 씁니다. 언제나 여행의 첫날에는 이렇게 잠을 설쳐 밤새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게 됩니다. 모닝콜을 한다고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시간을 몰라서 조금 우왕좌왕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같은 방에서 습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여행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극히 조심스럽습니다. 이렇게 파리에서의 첫날이 지나갑니다.
첫댓글 옆에 분의 수면방해가 우려되어 변기에 앉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