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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삼 <아동문학사랑방> 제 50 호 ․ 2002년 8월 1일 ♧441-837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1267 한성아파트 809동 605호 ☏031-235-0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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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대 회장이 되고 나서 도움을 받아 만든 카페
【이달의 시】
사랑이란 말
(―알아두시면 좋을 듯) 하다고 여겨
적어보기로 한다
영어, I love you. (아이 러브 유)
독일어, Ich liebe dich. (이히 리베 디히)
불어, Je t'aime. (즈 뗌므)
일본어, 愛(あい)している. (아이시떼이루)
러시아어, Я Вас Люблю. (야 바스 류블류)
이태리어, Ti amo. (띠 아모)
서반아어, Te qiero. (떼 끼에로)
에스페란토, Mi amas vin. (미 아마스 빈)
한국어,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여
사랑할 때의 눈빛은
인종이나 말의 다름과는 관계없이 똑같으리
인류는 말이 있기 전에
눈빛으로 사랑하는 법을
지혜롭게도 미리 터득했으니
사랑이여
우린 말보다 타는 눈빛으로
사랑하기로 하자
사랑을 주고받기로 하자
(2002. 6)
-이 시에 대하여
예전에는 사랑을 눈빛으로 했지만, 요새는 사랑을 말로 하는 시대.
【당달봉사와 아동문학인들】
내가 소년일 때 다른 아이들이 ‘저 사람 당달봉사다’, ‘야, 당달봉사 간다’ 하고 놀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당달봉사란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기껏해야 장님에 가까운 눈 나쁜 사람을 놀려대는 말이겠거니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새로 나온 《국어 대사전 (민중서관)》을 펼쳐보니 당달봉사는 ‘청맹과니’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다. 청맹과니는, 靑盲-과니로 겉으로 보기에는 눈동자가 성한 것 같으나 실상은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러한 사람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또 당달봉사, 청맹과니 같다 하면 → 사람됨이 똑똑하지 못해서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청맹과니가 표준말이고 당달봉사가 사투리라 하니 어째 좀 이상하다. 표준말과 사투리가 뒤바뀐 느낌이다. 당달봉사는 순우리말이고 청맹과니는 靑盲이라는 한자말과 과니라는 우리말이 합쳐서 된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순우리말인 당달봉사가 표준말이어야지 왜 사투리여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국어학자가 아니어서 이쯤에서 끝내고, 하고 싶은 이야기로 들어갈까 한다.
옛말에 문인상경(文人相經)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문인들은 서로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다. 즉 서로 우습게 보고 저만 잘났다고 떠드는 꼴이라는 것이다. 문인들은 자존심이 강해 대부분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이것이 문인들의 직업병이라면 실없는 말이라고 웃어 넘길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직업병에 걸리고도 걸린 줄 모른다는 것이다.
좀 지나친 말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 아동문학인들 중에도 이런 직업병에 걸린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지 않을까 한다.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 못하는 당달봉사처럼 작품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 또는 다른 작가는 눈에 안 보이는지 자기 외의 작가에 대해선 아주 깜깜한 이, 이런 이들이 주로 그런 병에 잘 걸린다고 본다.
이렇다 보니 이들이 지닌 작품에 대한 정보라는 것도, 자신이 속한 단체의 작가들이 보내준 작품집이나, 자비 출판하여 보내 준 작품집 읽기 정도가 고작 아닌가 한다.
한편, 자비 출판된 작품집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이렇다. 자비 출판된 책들은 대체로 자료집 성격이 짙은 것이어서 검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즉 상품으로 치면 굵기와 빛깔, 신선도를 제대로 선별하지 않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넣고 포장한 상품과도 같다. 그래서 펼쳐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설령 자비 출판이 아니라 해도 작품 보는 눈이 신통찮은 곳에서 출판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작품집만 읽거나 아니면 특정 월간지의 작품만 읽고 다른 작가를 평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게 또 당달봉사와 같은 것이다.
한편, 우리 아동문학인들은 동료 아동문학인들의 작품집을 사는 데에 인색하고, 책 사는 걸 아까워하는 것 같다. 자비 출판된 책은 판매가 어려우니 동료 작가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모조리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인쇄 받고 출판한 작품집은 증정본이 몇 부 되지 않다 보니 많은 동료 작가들에게 증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를 통해 동료 작가의 작품집이 출간된 것을 보면 사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돈 아깝다고 허구한날 자비출판의 작품집만 본다면 작품 보는 눈이 낮아진다. 다른 건 몰라도 작품을 보는 눈은 아주 높아야 한다. 까다로워야 한다. 미식가처럼 호사스러워야 한다. 이러려면 얼굴도 모르는 작가이든 어느 단체의 작가이든 개의치 말고, 출판사에서 작품집이 출판되었다 하면 살펴보고 사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러다 보면 작품을 보는 눈이 저절로 높아진다.
20년이고 30년이고 자기가 속한 단체의 동료 작품, 자기가 구독하는 월간 잡지에만 시선을 고정시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지 못한다면, 당달봉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시력이란 것도 자주자주 먼 하늘이나 먼 산을 바라 볼 때 좋아지는 법이다. 책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봐야지 눈을 바짝 붙여 가지고 보면 시력이 나빠진다. 이런 것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귀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그리고 30년 전의 누구, 20년 전의 누구, 또는 30년 전의 나, 20년 전의 나도 오늘 현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몇 십 년 전에 좋게 보았던 작품도 지금 보면 빛이 바래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숱하다. 또 대부분 그렇게 된다.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 낼 수 있는 작품을 쓰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상품에도 생명 주기란 게 있다. 10년을 못 살고 죽는 상품,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상품, 식품 회사들은 특히 그 생명 주기에 맞추어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음료수 제품을 봐도 그렇고 드링크제를 봐도 그렇다.
이런 세상인데, 작품이라고 하여 다를 리 있겠는가. 몇 십 년 전의 낡은 사고와 상투적인 표현 수단으로 창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이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가? 그 작품이 왜 호평을 받고 있는가? 살피고 연구하여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으며 날로 새로워지려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나는, 내가 만난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배타적, 수구적이고 소아병적인 데에 놀랐고, 그들이 또한 당달봉사인 것에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은 이러고도 이들이 태평스럽다는 데에 있다.
이런 예는 기성뿐만 아니라 갓 등단한 신인들한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어설픈 작품으로 당선하여 칭찬을 들으면 그만 우쭐하는 마음이 되어 그때부터 당달봉사가 된다. 어쩌다 호평이라도 받으면 도도한 마음이 되어 자신이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착각한다.
이런 이들을 보면 절대로 충고의 말 따위는 할 생각을 말라고 단단히 부탁해 두고 싶다. 이런 이들에게 한 마디 쓴 소리를 했다가는 십중팔구 봉변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불쾌감만 맛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이들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 자신이 작품을 잘 쓰는 작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건 좀 거부감이 들 예에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미식을 많이 해 본 사람한테는 어지간한 음식으로는 칭찬 받기 힘들다. 고급 옷만 입어 본 사람한테는 어지간한 옷으로는 눈길을 받지 못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발전하려면 작품 보는 눈을 높여야 한다. 이러려면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겸손한 자세로 남의 작품에서 좋은 점을 배우려 해야 한다. 그게 학구적이고 깨어 있는 것이고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늘 자신에 대해 돌아보며, 작은 칭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련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작가란 괴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다. 작가의 길은 자갈밭길이다. 때로는 왜 이 길로 들어섰던가 후회하고 낙담하는 길이다. 특히 아동문학은 더 하다. 산골의 무명교사와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도 낡고 설득력이 없는 말로 돼버렸다.
작품도 상품이 된 시대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청맹과니로 작품을 쓰고 우쭐댈 것인가. 당달봉사가 되어 남의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인가.
자신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봐도 다 못 볼 지경인데, 언제까지 자신의 단점으로 남의 장점을 평가하며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빠져 있을 것인가. 작가란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이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200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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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영순 선생의 장편소년소설 ‘우차꾼의 아들’을 읽고
저학년 동화만 판을 치는 요즘에 고학년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김영순 선생의 장편동화 ‘우차꾼의 아들’을 읽었다. 받은 지 두 달이 되어서 읽은 셈이다. 겉장에는 ‘장편동화’라 되어 있지만 사실은 ‘장편소년소설’이다. 41년부터 45년 해방될 때까지 당시의 학교 생활과 농촌 아이들, 농촌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수작이다. 그런데 제목이 너무 투박해(?) 흥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끌어당기는 맛이 있어 쉽게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는 작가의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서 그렇다. 요즘 나오는 고만고만한 저학년 동화책에 견주어 상업성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쓴 소설이기에 참으로 귀하게 여겨진다. 이 책이 인세를 주는 출판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자비 출판에 가까운 조건으로 나온 것이 안타깝다. 12회 방정환 문학상을 수상할만한 작품이다.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다시 세련되게 만들고, 제목도 좀 고쳐서 청소년이 읽을 책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시류에 맞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작품을 쓰신 김영순 선생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류에 맞춰 작품 쓰는 작가들과 비교하면 김영순 선생이야말로 촌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분이라고 본다.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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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어린이문학》7월호에 실린 정보주 교수(진주교대)의 평론을 읽고
1. 어린이문학(아동문학)을 -어린이의 문학 / 어린이를 위한 문학 /이라고 했다.
2. 어린이들이 쓴 시를 동시라고 지칭했다. (같은 대학의 어떤 교수도 관련 홈페이지에서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었다.) -동시와 어린이시에 대해서는 이오덕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미 오래 전에 그 차이를 밝힌 바가 있고 이젠 동시와 어린이시를 모두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교수가 ‘어린이의 문학’이라고 한 것은 - 어린이들이 동화는 못 써도 아동문학의 한 장르인 동시(?)를 쓰니 ‘어린이들이 창작하는 어린이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린이가 문학을 한다? 어린이가 국어 학습의 한 과정으로 배우고 쓰는 시(어린이시)와 시인이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를 독자 대상으로 삼아 창작한 동시를 같은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것 참 큰일이다. 교육대학에 계시는 분들이 이러니 더 큰일이다. (200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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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를 꾸짖는다】-양계초가 1900년에 발표한 글
양계초가 4억 중국인민에게 외친 글에서 방관자의 유형을 정리하면 이렇다.
1. 혼돈파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모르는 사람.
2. 爲我派 -나에게 이익이 없다면 이 나라가 망해도 그저 방관할 뿐이다. -가장 전염성이 크다.
3. 嗚呼派 -입으로만 한탄하고 걱정하는 파
한숨을 쉬고 한탄을 하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사람들이다.
-이 자들의 방관은 입으로 하는 것.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의 일을 글(시)의 소재로 삼고 있으며, 시국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시국을 화제거리로 여기고 있다. 나라의 이름 있는 자들은 모두 이 부류에 속하며, 손실도 도움도 주지 않지만 발전을 저해시키기에 잘못이 적지 않다.
4. 笑罵派 -냉소주의자
이들은 방관자라고 하기 보다 오히려 後觀者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언제나 뒤에서 냉정하고 격렬한 말로써 비판만 한다. 수구파든, 유신파든, 소인배든, 군자든, 싸잡아서 욕지거리나 한다. 노인에 대해서는 생기가 시들었다고 하고, 청년에 대해서는 조급히 나서기를 좋아한다고 매도한다. 성공하면 풋내기가 요행히 이름을 얻었다고 하고, 실패를 하면 일찍이 예상했던 일이라고 한다. 일은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의 등뒤에 서서 줄을 잡아당기고 발을 흔들면서 비웃고 공격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수법으로, 용기있는 자들을 기죽게 만들고 겁쟁이에게는 풀죽게 만단다. 이들은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눈만 크게 뜬 채 대답이 없다. 이들은 방관이라는 것을 빙자해서 비웃고 욕설을 하지만, 방관의 지위를 잃어버리면 비웃고 욕설도 하지 못한다.(성격이 삐딱한데다 시기심으로 가득 찬 소인배.)
5. 포기파 - 언제나 남에게 의지하며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이다.
6. 待時派
실제로 방관자이면서 방관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방관은 시간을 방관한다는 뜻인데, 반드시 어떠어떠한 때를 지나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원칙이 없다. 일을 하는 사람은 때를 가리지 않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일할 때가 없다. 뜻이 있는 선비들은 때를 만들어가지만 기다린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쉽게 이득을 얻으려 한다. 방관파의 가장 교묘한 수법이다.
<양계초의 결론>
1의 혼돈파는 책임을 모르는 사람, 나머지 5개 파는 책임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방관의 반대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면 내가 이것을 바로 잡고자 할 필요가 없다’(논어 미자편)라고 했으며, 맹자도 말하기를 ‘천하를 바로 다스리고자 한다면 지금 같은 때 나를 제외하고 누가 있겠는가’(맹자 공손축) 라고 했다. 이것은 모두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200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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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아동문학사랑방으로 보내 주신 귀한 마음(존칭 생략) *도착순
현대문학어린이 - 이 붕 동화집 ‘우리 엄마는 걱정 대장’
오원석, 이영호, 권영상 - 사랑방 49호 읽은 소감 / 이재복 - 이야기밥 35호
김미영 - 동시집 ‘손수건에게’ (아동문예)/ 한국글쓰기연구회 - 글쓰기 제 82호
김종완 - 동시집 ‘해야, 놀다 가거라’(21문학과 문화)/민족문학작가회의 -작가 여름호
문삼석 - 동시집 ‘말놀이 동시’(글송이)/ 한국문협 - 월간문학 7월호(*종이 아까운 잡지)
문학공간사 -문학공간 7월호 (*졸시 1편 게재)
어도연 - 동화 읽는 어른 2002년 7월호
달리(고선아․홍진숙) - 지역사와 지역문화론 / 당신들의 대한민국 / 기타
박혜선. 양재홍 -초록손가락 동인 동시집 -붕어빵 아저씨 결석하다
이상교 - 동시집 ‘자전거 타는 내 그림자’(베틀북) /아평사 - 아동문학평론 여름호
현대문학어린이 - 김용택 엮음 ‘김용택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나라 좋은 동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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