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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섯 번째 동시집 『쌍무지개 서는 날』에 담긴 동시의 세계
가. 서론
박유석의 동시 세계는 서정성이 주조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앞에서 말하였다. 모든 사물로부터의 받아들임이 넉넉해지고 부드러워지는 이순의 나이에 다섯 번째 동시집을 엮었다. 당연히, 등단 30년이란 이력처럼 그 서정성의 아름다움이 제5동시집에 오면 세련미와 정제미로 드러난다.
작가는 동시집의 서두에서 말한다. 그간 때 묻었던 마음들을 씻고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삭막해지는 요즘 인터넷 세상, 아파트에 갇힌 세상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울음, 달빛 별빛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어린이들이기를 바램하며 이글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그의 다섯 번째 동시집에 묶어놓은 내용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나. 본론
<1>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린 동시들
‘순수하다’ 이 말은 천연의 마음이고, 본래부터 있어왔던 때 묻지 않은 마음의 결정체들이라 여겨진다.
꽃들이 우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는데
긴 산울림 뒤
짧은
고요가 왔을 때
귀 종긋 세운
산새가 들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산골아이가 들었다.
- 「누가 꽃이 우는 소리를 들었나」 전문 -
이 글속에 나오는 ‘산골아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여러 편의 동시집에 자주 ‘산골아이’가 등장한다.
박유석이 생각하는 ‘산골아이’는 세상 사람들 중에 가장 때 묻지 않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산골아이는 해를 닮고 별을 보며 자란다. 산속에 홀로 핀 꽃과도 친구를 하고 흘러가는 시냇물에서 맑은 마음을 키우는 아이다. 그렇기에 ‘산골아이’는 동심을 대표하는 아이가 된다.
꽃들이 아파서 울 때에도 아무도 듣지 못하지만 산새가 듣고 산골아이가 들은 것이다.
자연의 사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은 산골아이다. 어쩌면 박유석은 자신이 살아온 아름다운 고향과 자연의 품에서 커온 자신이 그 ‘산골아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일 것이다.
동시 「산마을 아이들」에 오면 바로 우리들이 ‘산마을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작자 자신의 모습도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종달새 웃음으로
푸른 하늘을 나는
우리는
산마을 아이들
꽃으로 피어나는
우리의 고운 마음을
솔바람이 간직해 주네.
일곱 빛깔 무지개
꿈
맑은 눈동자에 키우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야
산마을 아이들.
- 「산마을 아이들」 전문 -
<2>무지개는 박유석에게 있어서 프럭티피케이션(fructification)이다.
사물에 대한 관조는 경이로움이란 열매를 얻는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뛴다’고 말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처럼 동시 「산마을 아이들」에 오면 경이로움과 즐거움, 희망의 세계가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밤새 함박눈이 내리고 난
아침
세상이 바뀌었네.
꿈꾸던
동화속 마을이 만들어졌네.
모든 것 잊고
동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착한 주인공처럼 살아요
오늘 하루 만이라도
위의 작품은 동시 「오늘 하루만이라도」라는 작품이다. 이 글 속에서도 희망과 경이로움에 빠진 산골소년이 함박눈 내린 동화속 마을을 보고 있다. 이런 경이로움은 착한 마음을 꿈꾸는 아이가 된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말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꿈꾸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자의 마음은 첫 시집에서부터 시종일관 견지되고 있는 철학이다.
동시 「첫눈 내리는 날」에서는 설렘을 간직한 소년의 모습이 환하게 다가온다.
오랜 세월
모든 게 변했건만
딱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그것은
첫눈 내리는 날의 설레임
바로 그것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강아지처럼 뛰놀고 싶다.
첫눈 내리는 날에
- 「첫눈 내리는 날」 전문 -
첫눈이 설렘을 주는 것은 왜일까?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첫눈은 기쁨이다. 강아지 까지도 즐거워서 깡총거리며 내달린다. 순수한 동심의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봄비 내리는 소리가 반갑고 여름엔 시원한 소낙비가 즐겁다. 가을은 늦가을 내리는 서리에서 서늘한 냉기의 맛을 즐기고 겨울에 첫눈이 내리면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겨울 첫눈이 내리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은 철없는 듯 아이가 되는 것이다.
작품 「냉이꽃」, 「봄비∙2」등은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서정미를 드러낸 작품이다.
겨우내
누더기 헌 옷
우거지 이파리를 입고
있는 듯 없는 듯
잠들어 있다가
살금살금 얼굴 간지른
봄볕에
살포시 눈 뜬
냉이꽃
그 빛나는 눈빛에
놀란
들판은
노오란 웃음을
까르르 터뜨렸다.
- 「냉이꽃」전문 -
<3>고향의식 내지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
소낙비 / 하늘 곱게 닦아 놓은 / 창가에 서면 //차곡차곡 접혔던 / 고향 여울 이야기 / 풀피리 소리에 실려 / 아련히 들린다. // 여름내 / 물새 꽁지 따라다니던 / 그 아이 / 지금도 / 저 무지개 보고 있을까 // ~ (가운데 줄임) ~ // 미루나무 가지에서는 / 매미가 / 온종일 / 목이 쉬도록 울어댔지 / 아! 그림같이 아름답던 / 이야기들. // 어디 사는 / 누구인지는 몰라도 / 수없이 / 꽃잎 편지 띄우며 즐겁던 / 여름 / 꿈 같은 이야기 / 성큼성큼 걸어오는 / 쌍무지개 서는 날.
- 「쌍무지개 서는 날∙1」-
위 작품에서는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소낙비, 풀피리 소리, 물새 꽁지, 고무신짝과 피라미 떼, 미루나무와 매미, 꽃잎 편지, 유리 구슬 등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들은 추억의 쌍무지개에 어려 꿈같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들은 지극한 즐거움이다. 극락인 것이다. 힘들 때나 화날 때 괴로울 때 고향을 떠올리면 힘이 생기는 것이다.
박유석의 이런 고향 의식은 고향 회복에 대한 간절함으로 채워진다.
아이들이
도시로 다 떠난
산 속은
텅 비었다.
아무도
들어줄 아이 없는
산새들의 울음을
산울림이
혼자
들어주고 있다
오늘도.
- 「산울림」전문 -
아이들은 도시로 다 떠나고 산속은 텅 비었다. 아이들이 살고 있으면 산새들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 새들은 외롭지 않다. 아이들이 없기에 산울림이 혼자 산새들의 노래를 들어주는 외로운 산속의 모습이다. 역설적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 회복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외갓집 다녀오는 밤기차에서도 고향의 모습을 찾는다. 이름 없는 꽃이 수줍게 피어나는 강물에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동화 같은 마을의 고향을 떠올린다. 그러가 하면 펑펑 흰 눈이 온 세상을 잠재우는 겨울밤에도 기차가 달리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린다.
눈 속에 파묻혀
등불만 깜빡이는
꿈꾸는 마을을 지날 때
아, 오랜만에 들어보는
개 짖는 소리
기차 소리에
간간이 끊겼다가는
들린다
꿈속에서처럼.
- 「겨울밤 하얀 꿈꾸는 기차」 일부 -
가차가 눈 속을 달리면 하얀 꿈을 꾸고 달리는 기차로 여긴다. 흰 눈이 내리면 겨울밤은 하얀 꿈을 꾼다고 여긴다. 그러니 그 속을 달리는 기차는 동화속 같은 마을이다.
어렵고 힘든 현실을 지탱해 나가는 것은 판타지이다.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는 어둠의 세상에서 나오는 빛의 향기로 암울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박유석의 많은 동시는 대부분 동화적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가 자란 고향과 어머니, 산골마을의 아이들, 자연에서 자라는 동식물들의 이야기가 모두 판타지가 있는 것들이다. 판타지는, 파괴 되고 고약한 모습의 세상을 견뎌내는데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교가 폐교되어
형아들이
철새처럼 훌쩍 떠나간 후
산 속 마을에
덩그마니 남겨진
아이.
빨래터에서 서성이는
산이
잃어버린
꽃잎 한 장에
소식을 실어 보낸다.
형아들아
어서 돌아와
보고 싶대이
산이 잃어버린
편지 한 장.
- 「산이 잃어버린 편지 한 장」 전문 -
산이 보내고 싶은 편지를 산속 마을에 남겨진 아이가 대신 띄워 보낸다. 그 편지는 꽃잎 한 장이다. 그 꽃잎 편지에 떠난 형아들이 보고 싶다고 돌아오라고 한다. 도시로 떠나간 아이들, 어른 들 모두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4>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황폐성
박유석은 밀렵꾼들에 의해 황폐화된 숲의 모습을 그렸다.
숲의 고요를 깨고 / 울린 / 밀렵꾼의 총성에 / 어린 나무들이 울기 시작했다. // 곳곳에 / 덫과 율무가 설치된 / 산은 / 지뢰밭이었다. // 폭설이 내려 안심했는데 / 그것도 잠시 뿐 / 산짐승들이 /매일 하나 둘 / 실종되었다. // 마지막까지 버티던 / 산새들마저 떠나자 / 메아리도 숨어버려 / 숲은 생기를 잃고 / 텅 비어 갔다. // 나쁜 어른들 보신용으로 / 산짐승들 / 씨가 말라가는 걸 /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던 / 나무들은 / 너무 많이 눈물 흘려 /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 「눈물마저 말라버린 나무들」 전문 -
자연의 숲속은 인간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 자연을 파괴하는 밀렵꾼들 때문에 생태계가 위협을 받는다. 그것은 곧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 나무들은 밀렵꾼의 충성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버렸다고 한다. 환경의 폐해를 고발하는 고발성 문학이다.
이런 환경오염은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산업도시는 환경오염으로 시달리고 도시의 강과 호수는 신음한지 오래이다.
작품「미안해 반딧불들아」에서는 반딧불이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편지를 보낸다. 이것은 도시 삶의 황폐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름밤
온통
불꽃놀이를 벌이던
반딧불들아
다들 어디에 숨었니
옛 선비들은
너희 불빛으로 공부를 해
과거에 장원급제까지 했다던데
너희들을
이 당에 살 수 없게
오염시킨 건
모두
우리들 때문
미안해
반딧불들아.
- 「미안해 반딧불들아」 전문 -
환경오염으로 반딧불이를 옛날처럼 구경할 수 없다. 농약 살포 등 환경오염 때문이다. 환경오염 때문에 반딧불을 구경할 수 없기에 안타까워한다. 더 나아가 모두 우리들 때문이라고 미안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아직도 산골의 모습은 환경의 최후 보루처럼 순수한 곳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곳에 사는 산골아이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시인이 말하는 모습이 「분교의 아이들」에 나타난다.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
옷깃에서는
풀내음이 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솔바람 소리가 난다.
피아노 건반을 타고
새 소리가
음표로 넘실대고
분교의 아이들 몸에서는
비릿한 젖내음
송아지 울음이 맴돈다.
일기장 갈피마다
풀벌레 소리
꽃물이 든
풋풋한 이야기로
가득 넘친다.
풀밭을 펼쳐놓고
새들의 목소리로 조잘대는
분교의 아이들
- 「분교의 아이들」 전문 -
아이들에게는 풀내음과 솔바람소리가 난다. 새소리가 음표로 넘실대고 아이들 몸에서는 송아지 울음이 맴돈다.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자연의 사물들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풀내음 솔바람소리를 닮았다. 아니 그런 것들과 같은 성향이다. 진솔하고 착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반면 도시로 떠난 아이들에게는 불쌍한 시선을 보낸다.
<5>고향의식과 가족사랑
박유석의 고향의식은 할아버지가 지키는 고향의식에서 가족 사랑으로 이러진다. 그것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사랑의 하모니다.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에서는 도시에서 살기 싫어 고향 오두막에 사신다. 그곳에 사시는 깊은 뜻이 있다. 자연에서 얻는 순수한 자연 식품을 가꾸고 그것을 가족들이 먹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골에 사신다. 이런 할아버지에게 또 하나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다.
뒷동산에 잠드신 할머니
혼자 남겨 두고
훌쩍 떠날 수 없어
풀벌레 새들이랑 벗삼아
고향에 사시는
할아버지.
-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끝 연 -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다시 손자 손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 사는 정은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즐거움과 다정함 편안함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이란 곳이다. 손녀를 사랑하는 모습에 정감이 간다.
응석만 부리는 / 코흘리개인 줄만 / 알았는데 / 어느새 / 의젓한 학생이 되었구나 / 훌쩍 커버린 / 너희들. // 다솜아 / 클수록 엄마를 / 쏙 빼닮아 가는구나. // 아직도 / 동생티를 못 벗는 / 다혜 / 그래도 귀엽구나. // 할부지 머리카락 / 반고수머리를 그대로 닮은 / 다연아 / 너희들 사랑한다.
- 「다솜 다혜 다연」전문 -
요즘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자칫 무능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산업 현장이나 직장에서 퇴직이나 해고를 당하고 자식들에게나 아내에게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슬픈 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서글프다. 박유석은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딛고 새로운 생명력과 든든한 믿음의 상징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이웃들의 얼굴을 부상(浮上)시키고 있다.
수문장으로 서 있는
동구 밖
느티나무 한 그루
오늘도
안개 속에서
마을을 낯 씻겨 내놓고서
그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준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도
잘 살펴가게
또 오시게나
귓속말을 주시는
우리 할아버지 닮은
다정한 나무.
마을의 모든 걸
다 알고 아끼는
나무.
- 「동구밖 느티나무」 전문 -
고향 마을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얼마나 든든한가. 가고 오는 모든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 모습이 할아버지를 닮았다. 또 고향 마을에는 산들바람이 있고 멍멍이가 살고 다정한 이웃 사촌들이 있다. 살구꽃 복숭아꽃도 빠질 수 없다. 이런 고향 마을을 늘 꿈꾸는 있는 아름다운 소년, 박유석의 모습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 산마을 떠나 있어도 / 아버지 이마에 흐르는 / 땀방울 / 닦아주던 산들바람 그립다. // 엄마 심부름 가는 / 강 건너 마을까지 / 쫄랑쫄랑 따라오며 / 꼬리 흔들던 / 멍멍이 생각난다. // 싸리울 넘어도 / 콩 반쪽 나눠 먹던 / 이웃 사촌들의 얼굴 / 또렷이 떠오른다. // 살구꽃 복사꽃 / 지금도 그 때처럼 피어 / 우리를 기다릴까 // 꿈 속에서도 / 가끔씩 보이는 / 고향 마을 / 그 곳에 가고 싶다.
- 「그 곳에 가고 싶다」 전문 -
박유석의 시 속에 등장하는 산마을이나 아버지의 땀방울, 그리고 땀방울을 닦아주는 산들바람, 꼬리 흔들며 반가워하는 멍멍이, 살구꽃, 복숭아꽃 등은 모두 우리의 고향이다. 그러니까 박유석의 고향은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고향이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에게 모두 닮은꼴이 있는 것이다. 사랑과 아름다움, 따스함이 묻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그리움은 항상 어머니의 품처럼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인의 모습이 고향 마을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는 한, 그 서정적인 정서의 힘은 한국을 지탱하는 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한국적인 정서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건강한 민족의 생명감
먼저, 첫 동시집의 「송편」에서 보여주었던 한국적인 정서는 두 번째 동시집에서 「추석」으로 이어졌다. 구수한 된장 냄새 속에 섞인 한국적인 맛은 추석의 보름달로 환히 떴다. 세 번째 시집 『어머니의 강』에서는 산새 울음으로 풀어내는 산 도라지의 자색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산새 울음 주워들고
등불 켠다.
별과 이야기 주고받아
예뻐진 마음
바람이 찾아와
머리 빗겨주고
달빛이
융단을 깔아주며
햇님은
금빛 수실로
곱게 수를 놓는다.
한 올
한 올
산새 울음을 풀어내는
산 도라지꽃.
- 「산 도라지꽃」 전문 -
산도라지 주위에는 산새, 별, 바람, 달빛, 햇님이 있다. 그들은 각각 산도라지에게 해야 할 일이 있어 찾아온다. 그들에 의해서 산도라지 꽃은 빛을 발한다. 한국적 미감이 느껴지는 꽃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산 도라지의 정서는 한국적인 정서이다. 그것은 정월대보름 날 달집을 태우는 정서의 꽃밭으로 환히 어둠을 밝힌다.
소박한 희망이 담기고 이웃과의 정리가 소담스럽게 그려져 있다.
제4동시집 『빛들의 이야기』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달빛 엄마’로 의인화하여 국민적인 정서로 잘 그려내고 있다. 제5동시집에서는 인류애의 사랑이 깃든「달집을 태우며」에서 민속의 전통을 끄집어내어 계승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인다.
정월 대보름날 / 달집을 태운다. // 내 부스럼 / 너 다 가져가렴 / 이른 새벽 / 부럼을 깨문다. // 헌집 달집 속에 / 지난 해의 허물일랑 / 활활 / 태워버린다. // 달집으로 새집을 짓고 / 올해의 바램 이루어지길 / 빌고 빈다 / 달님에게 // 소들도 채식만 해 / 광우병 없는 / 그런 세상 되게 해 주소서 / 풍년 들게 해 주소서. // 토라진 친구랑 / 다시 마음을 주고 / 멀리 떨어진 친척들과도 / 소식을 전하며 /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누는 / 정월대보름. // 잡곡밥과 산나물 먹고도 / 즐겁기만 하셨다던 / 할아버지 할머니의 / 어린 시절이 / 달집 속에서 타오른다.
- 「달집을 태우며」 전문 -
달집을 태우며 풍년과 소망을 기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희망을 꿈꾸며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활활 불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한국미의 정취를 통해 건강한 민족의 생명감을 드러낸 점도 특기할 점이다.
<7>사랑의 힘, 작은 것의 위대함을 노래하다
박유석은 작은 것의 힘, 그 위대함을 안다. 아는 것에서 한발 성큼 나아가 그것을 노래한다. 약해 보이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말한다. 그것은 놀라움이다.
나는 / 보잘 것 없이 작은 / 빗방울이랍니다 / 그러나 얕보지 마세요 / 내 힘은 세답니다 / 내 끈기는 대단하답니다 // 수백만 번 지치지 않고 / 단단한 바위에도 / 구멍을 냅니다 / 그리고 그 곳에 / 풀씨 하나 살게 합니다 / 꽃 한 송이 피게 합니다 / 그래도 / 내가 힘없다고 얕보시겠어요
- 「얕보지 마세요」 전문 -
작은 물방울이 생명의 꽃을 피우는 것, 이것은 전 우주적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는 곳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으로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지혜로운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긴 겨울밤 / 우리는 따뜻한 방 안에서도 / 춥다고 / 난로까지 피우는데 //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 / 어디쯤에서 / 오늘밤도 /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 새야 겨울새야 / 네가 잘 참고 기다리기 때문에 / 위안을 받고 / 꽃눈들도 /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하나 보다 // 고치 속에 고이 잠든 / 풀벌레들도 / 네 고운 마음에 / 용기를 잃지 않고 / 예쁜 노래를 준비하나 보다. // 새야 / 이름도 모르는 겨울새야 / 오늘밤도 / 추위를 찍어내며 / 봄이 어서 오라고 푸득이며 / 어디서 / 잠을 자니
- 「새야 겨울새야」 전문 -
박유석 동시집 속에서의 ‘새’는 자연에 깃을 품고 사는 순수의 대표성을 지닌 동물이다. 전나무 숲속에서 아침을 여는 것이 산새이다. 또 ‘종달새 노래소리 여울물로 흐른다’고 했다. 즐거움과 기쁨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산새가 겨울이 되어 추위에 떠는 모습을 애처로워한다. 추위 속에서도 산새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작고 약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눈밭의 소나무’도 새봄의 요정이 찾아오게 한 꿋꿋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희망이란 씨앗을 작품의 곳곳에 매달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박유석은 고향 홍천에서 태어난 후 성장하여서는 줄곧 춘천에서 살았다. 춘천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은 것은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적 마음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작품의 탄생이라고 보여진다.
춘천의 여름은 한 마리 용이다
호수에 물안개 피어오르면
아, 눈부신
승천.
영롱한 무지개 다리로
고도 맥국의 전설
아련히 되살아나면
숨었다 나오는
섬.
강태공의 낚시에 찌로 솟는
연못 속 동화나라 같은
한 폭의 산수화로 아름다운 춘천
병풍 펼치고 앉아 있는
봉의산
그 속에
호수 같은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춘천의 아이들.
강물로 흘러버린
시간의 금싸라기를 주우며
호수 없이는
꿈도 없는
춘천의 여름이여.
한 폭의 산수화로 만나는
춘천의 여름이여.
- 「한 폭의 산수화 속 춘천의 여름이여」 전문 -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고 한다. 소양강댐은 국내 최대의 담수량을 자랑한다. 춘천댐과 의암댐도 춘천을 호수의 도시로 이름 하는데 큰 몫을 한다. 위의 동시에서 보면 호반의 도시 춘천에 대한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연못 속의 동화 같은 도시, 봉의산과 춘천의 아이들은 한 폭의 산수화로 다시태어나고 있다. 이처럼 춘천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다른 작품 ‘춘천 막국수’, ‘콧구멍 다리’, ‘옹달샘골의 아줌마들’, ‘양구 가는 소양호 뱃길에서’ 등에서 향토적인 색채로 녹여내고 있다.
다. 정리하는 말
한 시인이 일생을 통해 이루어낸 작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생 동안 시인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의식적인 것 또는 무의식적인 것들이 살아온 과정과 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집요하게 떠나지 않은 시인의 시적 서정성과 성과는 그가 일구어낸 작품집 속에 모두 표현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것들은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중요한 의의가 된다.
박유석은 다섯 번째의 동시집에 그의 정신적인 사리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그것은 처음, 동시집을 내면서부터 이어온 끈 같은 것들이기에 대체로 그의 문학적 세계를 조명하는데 주요한 흐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 작품 전체를 통관하는 것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린 자연과의 감응과 소통이다.
<2> 밝음과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박유석의 동심적 표출은 무지개로 상징된다.
<3>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서정미를 드러내고 있다.
<4> 고향의식 내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짙은 미의식으로 나타난다.
<5> 동화 같은 내용의 동시들이다. 많은 동시는 대부분 동화적 향기를 머금고 있다.
<6> 작품 속에는 환경의 폐해를 고발하는 고발성 짙은 작품도 있다.
<7>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고향의식은 할아버지가 지키는 고향의식에서 가족 사랑으로 이러진다. 그것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사랑의 하모니다. 그것은 따스함이 묻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항상 어머니의 품처럼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8> 민속의 전통을 끄집어내어 계승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인다.
<9> 사랑의 힘, 작은 것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다.
<10> 지역문화의 도시적 정취를 향토적인 색채로 녹여내고 있다.
(6) 여섯 번째 동시집 『탄차를 밀어주던 달』에 담긴 동시의 세계
가. 서론
동시집 「탄 차를 밀어주던 달」은 「쌍무지개 서는 날」을 출간한지 3년째 되는 해인 2004년 8월이다. 이때의 나이, 64세이다. 첫 동시집 「꽃이 되면」이 나온 후 28년이 되었다. 「탄 차를 밀어주던 달」의 작품집 이후 동시집 발간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동시집 중에서는 가장 나중 나온 작품집이다. 박유석은 이 동시집을 발간하며 아이들과 함께 따뜻함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동시집 「탄 차를 밀어주던 달」은 최종 동시집이란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동시의 총 결산이란 의미도 담겨 있고 가장 필력이 담긴 작품이란 뜻도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동시의 형태면에서나 의미면에서 어떤 결실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진다. 이런 측면에 관심을 두면서 여섯 번째 동시집 「탄 차를 밀어주던 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 본론
<1> 시형의 변화와 간결미의 성과
대체로 박유석의 동시 형태적 특징은 행과 연이 매우 길다는 점이다. 그러나 제 6 동시집에 오면 이런 형태적 특징은 변화를 가져온다.
제1부에 수록한 작품들은 동시 「바다를 나누어 가진 아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2연이나 3연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형들이다. 이런 모습은 동시집「꽃이 되면」과 그 이후 작품집에 드러나던 5연, 7연 또는 8연 이상으로 나타나던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들판을
타박타박 걸어서
선잠 깬 꽃다지
노란 볼을
간질이며 온다
우거지 이파리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의 귀여운 손에 묻은
먼지를
호호 불어대며 온다
산비탈 응달말
아직 남은 얼음조각에
바늘로
송송
구멍을 뚫으며
곰실곰실 기어온다.
- 「봄비」 전문 -
시형이 짧아지면서 압축된 미의식이 돋보인다. 봄이 오는 소식을 알리는 봄비의 생동성이 긴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단시 적인 특징과 함축미를 내포한 작품들은 여섯 번째 시집 전반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시의 소재 역시 달, 풀꽃, 가을, 소나무, 봄비, 햇살, 까치, 봉숭아 등의 자연물이 주조를 이루고 그밖에 간이역, 과수원집 아이, 의암호 안개 등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는 제목 등이 눈길을 끈다.
<2> 전설, 민속 등 유적들에 대한 시적 형상화로 뿌리 의식을 내면화
제2부에 수록한 시편들은 모두 전설이나 민속, 역사적 인물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아기 장수 전설’, ‘울산 바위’, ‘영금정, 점봉산 전설’, ‘신필 이야기’, ‘백담사에 관한 이야기’, ‘달우물 전설’, ‘은혜 갚은 까치’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의 뿌리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다.
몇 편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수마노탑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
금탑 은탑
볼 수 없었는데
착한 일들이
하나 둘
꽃망울로 맺히며
일기장 갈피에서
나이테를 새겨지던 날
보았네
깨끗한 마음
정직한 마음은
금탑이고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돕는 마음은
은탑인 것을.
- 「마음이 착해야 보이는 탑」 전문 -
「갈래사사적기」에는 금탑 은탑의 전설이 전해진다. 자장 율사가 정선읍 사북리의 산 정상에 불탑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간절히 기도한 보람이 있었던지 하룻밤 사이에 칡 세줄기가 눈위로 뻗어 있었다. 그곳에 탑과 절을 세웠는데 수마노탑, 적멸보궁 터이다. 이 절을 처음에는 ‘갈래사’라 하였는데 지금의 정암사이다.
금탑 은탑도 세웠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보인다고 한다. 위 동시에 나온 것처럼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탑은 금탑이고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돕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탑은 은탑이라 한다.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고
군사들의 울음소리에
산도 울었다는
울음산
6∙25 때는
국군,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이
뺏고 뺏기는
싸움에서
포성도 울고
병사들도 운 곳
오성산.
- 「울음산」 전문 -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하면 명성산(鳴聲山)이다. 그 높이는 923m이다. 궁예가 왕건(王建)에게 쫓기어 피신하였다가 이곳에서 피살되었다고 한다. 궁예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여 울자, 산도 따라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주군을 잃은 신하들이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니 산도 따라 울었다고도 한다.
나라를 잃는 것이 얼마나 큰 설움인가를 알게 해 주는 설화를 모태로 하였다.
석탄 박물관 찾아가는 길에
낙동강 발원지
황지 연못에서 쉬었다.
황부자 집터는 연못이 되었고
구사리 마루에는
아기 업은 바위가
며느리 모습으로 서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악한 일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데
물고기는
보지 못했다
연못에서.
- 「황지 연못」 전문 -
‘황지 연못’의 전설은 부자면서도 인색하게 살면 벌을 받는 다는 권선징악적인 설화이다. 앞의 ‘마음이 착해야 보이는 탑’이나 ‘울음산’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착하게 사는 것, 국가의 소중함, 이웃에 대한 사랑 등 인간이 도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지역의 설화나 유뮬 유적이 갖는 상징적의미를 시로 형상화하여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민족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나가고 있다.
<3> 자연에 대한 서정서의 유로(流路) - 노란 꿈이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
박유석 동시의 특징은 자연에 대한 서정성이다. 후반기에 오면 간결하며 압축미를 드러내는 서정성을 보게 된다. 마치 겨울 밤 하늘에 비추는 달빛 같다.
자연에 대한 서정과 동심이 잘 드러난 작품은 많다. 첫 번째 동시집 『꽃이 되면』에 수록된 「물새알」, 「봄 종소리」등이나 두 번째 동시집 『바람의 합창』에 수록된 「산수 공부」등이다. 또 세 번 째 동시집 『어머니의 강』에 수록된 「달밤」과 네 번 째 동시집 『빛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홍시」등이다. 다섯 번 째 동시집 『쌍무지개 서는 날』에 수록된 「봄비∙2」와 여섯 번째 동시집 『탄차를 밀어주던 달』에 수록된 「가을 햇살」과 「민들레 꽃씨가 여는 세상」등의 작품은 동시의 완성도가 높은 서정성 동시들이다.
토담 아래로
햇살이
은행잎으로
팔랑팔랑 떨어진다.
억새풀들은
서로 몸을 부벼대며
햇살 부스러기를
줍고
나비 몇 마리
풀잎 갈피에서
젖은 이슬을
쥐꼬리만한
가을 햇살에
말린다.
- 「가을 햇살」 전문 -
가을날의 풍경이 조용하고 한가로운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다가오는 것은 은행잎 날리는 모습, 하얀 억새들의 흔들림, 몇 마리 날아다니는 나비 등이다.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조용하고 담백하여 적막감마저 감돈다. 짧은 시행에 가을 햇볕과 가을의 냄새를 다 그려넣었다.
민들레 꽃씨는 / 눈이 부시도록 / 샛노란 꿈을 / 솜털 보송보송한 / 포대기에 싸 / 고이 간직한 채 / 풍선을 띄우며 /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 산을 넘고 / 여울을 건너 / 소풍 가는 아이처럼 / 신이 나 / 피곤함도 모른다. // 농부 아저씨의 밭둑 / 모퉁이에서 / 작은 오두막을 짓는 / 친구 // 하늘 나라 계신 / 할머니 보고 싶어 / 매일 연을 날리는 / 아이 곁에서 /함께 놀아주는 / 동생 // 시집간 누나가 / 엄마 부르며 달려올 / 버스 정류장 옆 / 어머니 곁에서 / 재롱을 떠는 / 오빠 // 꽃씨 하나하나에는 / 설레이는 마음이 / 꼬깃꼬깃 접혀 있어 / 더욱 소중한 / 민들레 꽃씨 // 민들레 꽃씨가 여는 / 세상은 / 무지갯빛 세상이다 // 고 작은 꽃씨가 / 이 마을 저 마을로 / 찾아가 / 온통 / 꿈꾸는 샛노란 세상으로 바꾼다.
- 「민들레 꽃씨가 여는 세상」 전문 -
박유석의 문학적 세계를 한 마디로 압축하여 드러내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답고 행복을 꿈꾸는 사랑의 씨앗을 풍선에 띄운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몸짓이다. 그런 행위는 신이 나 피곤함도 모른다. 민들레 씨앗은 농부 아저씨의 오두막 옆에 작은 생명의 집을 짓기도 하고 하늘나라에 계시는 할머니 보고 싶어 매일 연을 날리는 아이 곁에도 친구처럼 놀아준다. 민들레 꽃씨가 여는 세상은 무지갯빛 세상이다. 끝내는 작은 꽃씨가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가 꿈꾸는 샛노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문학으로 만들고 싶은 세계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노란 꿈이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인 것이다.
<4> 병든 세상에 대한 아픔과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긍정의 힘
박유석의 동시가 갖는 특징 하나는 환경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다. 그런 면은 각각의 동시집에서 드러나고 있다. 제6동시집에 오면 아픔과 치유에 대한 기대 또한 저버리지 않는다.
숲에
딱따구리 한쌍이
이동병원 열었다.
이 나무 저 나무
진찰을 한다.
청진기도 없이
부리로만
아픈 곳
기생충 있는 곳
찾아내는
딱따구리 부부는
나무의 명의(名醫).
왜 딱따구리가 숲속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이동병원을 열었을까? 자연이 병들고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산속에 새들이 먼저 병원을 차려 치료를 하는 것이다. 박유석의 심안(心眼)에는 천연의 산이 병들어 보인다. 그리고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까치도 참새도 예전처럼 반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 모두가 우리 인간의 탓이라 하며 자연의 동식물에 대한 애정의 심도는 더 깊어만 간다.
농약 묻은 벌레
먹고
참새가
떼로 죽었다.
곡식이 자라던
논밭에는
아파트가
하늘로 솟는다.
광우병 조류독감
때문에
엄마 아빠는
너희에겐
관심도 없다
짹째그르
떼지어 날면
귀 따갑게 울어대던
그때가 그립다.
- 「참새가 시끄럽던 때 그립다」 전문 -
옛날, 그러니까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시골 농촌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초가지붕 안쪽 흙벽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초가지붕 끝자락 볏짚 속에는 참새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 시절엔 참새들도 모두 한 집안 식구들처럼 정겨웠다.
도시가 산업화되면서 농촌의 영농방법도 기계화되기 시작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한 농약 살포가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농약 묻은 벌레 먹고 참새가 떼죽음을 하고 강물은 공장 폐수로 오염이 되었다. 논밭은 점점 아파트가 들어섰다. 조류독감 때문에 사람들은 참새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 옛날 농약 없던 시절 조류 독감 모르고 살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짹짹거리며 떼 지어 날던 참새들이 그리운 것이다. 도시 보다는 농촌에서 바라보던 별과 달, 나무와 벼이삭, 참새와 민들레꽃의 순수함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 스며있고 순박한 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박유석에게 있어 동시집 전편을 관통하는 동시의 정신은 진실과 믿음, 사랑의 불변성이다. 이러한 것들은 도시에서보다는 시골에서 찾을 수 있고 기계적인 것에서 보다는 자연적이고 순수한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기에 시종일관 농촌과 고향,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은 꿈꾸듯 그리움으로 박혀 있다. 박유석의 깊은 동심 속에 살아있는 것은 이런 때 묻지 않은 첫눈 같은 천연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속삭인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새가 없는 산
기형 물고기가 사는 강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새가 있어
숲이 생기 넘치는 산
유리구슬 하나 빠져도
훤히 보이는 그런 강.
- 「아직 늦지 않았어요」 전문 -
새가 없고 기형 물고기가 사는 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노력만 하면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새가 있어 생기 넘치는 산과 유리구슬 하나 빠져도 훤히 보이는 강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박유석 동시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일가? 그것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주저앉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긍정의 힘’인 것이다.
다. 정리하는 말
이제 동시집 『탄차를 밀어주던 달』에 담긴 시 세계를 정리할 차례이다.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시형의 단순성과 간결미의 성과를 들 수 있다.
첫 동시집에서부터 줄곧 이어져 온 전설, 민속 등 유적 유물에 대한 관심은 시적 형상화의 작업을 거쳐 내면화 시킨 점이다.
자연을 보는 시각이 아름답다. 그 서정성의 유로는 노란 꿈이 꽃으로 피어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발걸음을 감지 할 수 있었다.
박유석의 동시집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였다. 꽃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 행복을 주는 매개체이다. 꽃이 열어가는 향기와 아름다움의 세상은 밝고 따뜻하다. 박유석은 민들레 꽃씨가 여는 무지갯빛 세상을 꿈꾼다.
병든 세상을 아파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긍정의 힘은 박유석 동시의 강점이었다.
[3] 박유석 동시의 전체적 특징
지금까지 박유석 동시집을 통해 박유석 동시의 여러 가지 면모를 디스커션(discussion) 해 보았다.
(1) 박유석 동시에서 드러나는 형태적 특성
‘만물무상(萬物無常)’이란 말은 모든 만물은 변화하기 때문에 일정함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이런 바탕에 의한 시적 수사의 방법이 은유(隱喩)의 방법, 메타퍼(metapher)이다. 은유는 숨겨서 깨우쳐주는 방법이다. 그러니 전하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는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방법이다. 박유석의 동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방법은 바로 메타퍼이다. 메타퍼는 변용의 힘을 갖고 있기에 훨씬 많은 신선함과 새로움을 주고 깊은 의미까지 담을 수 있는 방법이다. 메타퍼의 사용 방법도 특이하다. ‘ ~ 이 되다’ 또는 ‘ ~로 하다’의 방법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동시 ‘꽃이 되면’은 ‘ ~ 되다’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 외 많은 작품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메타퍼의 빈번한 사용은 자칫 어린이들에게 시의 전달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초기의 많은 동시에서는 흐름이 긴 작품들이 주조를 이룬다. 연의 수가 5연 이상이 많고 글의 흐름도 산문적 흐름이 많았다. 이런 연유는 시의 내용이 판타지 형태의 동화적 기법, 즉 서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 이미지 보다는 서사적 흐름으로 시를 이끌어가고 있다. 점점 후기로 넘어오면서도 간결하고 함축미를 드러낸 작품들이 중심을 이룬다. 서사적 흐름보다는 시적 이미지에 더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의 전달력도 매우 강해짐을 알 수 있었다.
(2) 박유석 동시에서 드러나는 내용적 특성
가. 유독 꽃을 통해 드러내는 빛과 밝음의 노래가 많았다. 해바라기가 주는 밝음과 희망의 이미지에 매우 집중하였음을 보았다. 꽃의 구체적인 이미지는 웃음, 평화, 귀여움, 예쁨, 순수와 사랑, 희망, 즐거움, 다정함, 생명의 힘 등이다. 이러한 주제를 함유한 동시는 여타의 동시에서도 발견되었다.
나. 서정성이 주조를 이루는 작품은 한국적 소재와 한국적인 맛과 멋을 그려내고 있다. 산을 떠난 외로움 등 심리적 변화도 소박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작품 후반기에 들어서면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서정미의 완숙을 보게 된다.
다. 불교적 색채에 근접한 작품성이 표출되었다. 동시 「꽃이 되면」의 작품에서 보면 윤회적 세계관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동시집에 오면 불교적 세계관이나 향토적 특징을 한결 발전적이고 심층적으로 이미지화 하였다.
라.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염원,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고발성을 담았다.
마. 작품 창작의 표현적 특징은 은유적 표현, 의인화, 동화적 서사적 구조 등이었다.
바. 역사적 유적물에 대한 관심을 작품화하여 한국적 문화 특색을 형상화 하였다. 민속의 전통을 끄집어내어 계승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인다.
사. ‘바람’과 ‘새’의 연작시를 통해 자연의 순수성과 인간 회복 정서를 추구하였다.
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로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과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살아가는 삶의 긴요한 철학임을 은유적으로 표출하였다.
자.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극대화되어 고향과 자연사랑 속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연작동시 <어머니의 강>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게서 어머니의 사랑과 정리(情理)를 다룬 것을 보게 됨은 그 때문이라 여겨진다.
차. 순수한 서정성을 담보로 한 자연시의 작품 경향에서는 고향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고향의식 내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짙은 미의식으로 나타난다. 향토적인 서정성은 자연의 미를 내면화하여 약동하는 희망의 불꽃으로 피워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고향의식은 할아버지가 지키는 고향의식에서 가족 사랑으로 이러진다. 그것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사랑의 하모니다. 따스함이 묻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항상 어머니의 품처럼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카. 제4동시집 『빛들의 이야기』는 모든 사물이 빛으로 일어난다. 그것은 생명의 움직임이다. 그 구체적인 궤적들은 무엇이었나? 이런 일련의 사물들은 빛으로 집약되고 빛은 영롱한 순수와 위대한 사랑의 상징으로 매듭짓는다. 박유석은 모든 사물이 빛으로 다가오는 눈부심의 세계에 닿아 있다. 그곳은 동심의 근원 자리이고 어머니, 고향과 함께 영원한 마음의 안주하는 곳이었다. 또한 밝음과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박유석의 동심적 표출은 무지개로 상징된다.
타. 지역문화의 도시적 정취마저 향토적인 색채로 녹여내고 있다. 작품 전체를 통관하는 것은 동화적 세계, 동심의 세계를 그린 자연과 사람과의 감응과 소통이었다.
[4] 결론 및 제언
이제 결론을 말할 차례이다.
박유석은 일생을 문단과 교단에서 발걸음을 옮겨왔다. 그의 기나긴 발걸음만큼 발자취도 남아 있을 것이기에 그 족적을 먼저 더듬어 보았다.
현재 이 시점에서 박유석의 문학에 대한 탐색은 좋은 점도 있지만 허물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고 잘 알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작고한 인물이 아니어서 객관적이고 자유스럽지 못했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허물을 알면서도 연구를 진행한 것은 문단의 선배라는 점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었기에 그 점은 장점이라 여겨졌다. 또한 한 작가의 문학적 족적이 50여년이 넘는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문학적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문학, 특히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한 작가의 문학적 족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엄하다. 박유석은 첫째, 이런 면에서 장엄한 문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그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아니하였든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고여 있다는 점이다.
박유석은 늘 소년처럼 꿈꾸어 왔다. ‘꽃’과 ‘빛’이라는 사물은 자신이 인생에서 찾아낸 최고의 보물이었다. 밝음과 희망 서정의 아름다움을 거기에 투영하였다.
아름다운 마음의 눈에는 아름답지 못한 일상의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박유석의 아름다운 동심은 현실적 고향의 부재와 파괴된 환경 오염은 큰 상처로 남았다. 환경오염에 대한 치유는 어머니와 고향의식, 한국적 정서의 발견으로 가능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이타적 자비의 철학을 담고 있는 불교적 색채의 작품은 ‘꽃이 되면’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불교적인 색채와 작품이 주변의 구조물과 피상적 시각으로 접근된 점으로 볼 때 더 이상 깊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유석이 일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동시 세계는 사람과 동식물이 서로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감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빛과 같은 희망으로 소통하고자 하였다. 그가 그려낸 고향의식과 한국적인 정서는 우리 모두에게 무지개를 보는 것처럼 설렘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환경오염의 고발성 짙은 작품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현재진행형 작품으로 다가오고 있다.
박유석은 현재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아동문학계의 원로작가이다. 앞으로 그의 동시 세계가 또 어떻게 무르익어 펼쳐질지에 대한 것은 기대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2.박유석 시 연구
[Ⅰ] 박유석의 대표 시
나무의 사랑법
나무의 사랑법은
짝사랑법이다.
바람은 수도 없이 스쳐가고
구름도 종종 쉬다 가며
초승달 가지에 걸렸다 도망친다
새들도 둥지를 틀었다
뿔뿔이 흩어져 날아간 후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원망 한번 하지 않으며
모든 것 줄 뿐
마냥 기다린다.
(시집: 산하고도 정이 들면)
모든 짐을 벗고
후회와 연민을 숨긴 채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던 날
나는
노을 지는 강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장승으로
그는
한마디 말도
못 남겼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평온한 모습으로
이승의 고된 강을 건너갔다
모든 짐을 벗고
(시집: 연민과 용서의 강)
생 애
하얗게
내려
쌓이다가
쌓였다가
흔적 없이 녹는
눈.
(시집:정선 별곡)
생사는
떨어지는 낙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사는
(시집: 하늘가는 길)
백목련
은빛 날개로
하얗게 울었다
간절한 소망도
못 들은 척
미워할 사이도 없이
달빛이 되었구나
너.
(시집: 밤으로 흐르는 강)
겨울산
바라보기만 해도
그냥 좋은
저 산은
누구 입일까
추악한 일
다 덮어버리고
바람에 뒤척이며
하얀 꿈을 꾸는
세상을 순하게 바꿔주는 집.
(시집: 와동 가는 길)
어머니의 강∙5
고향 강변에 서면
나는 듣는다
여울물 소리 갈피로
맴돌아 나오는
어머니의 빨래 방망이 소리
지금도
나의 귓가를 맴도는
어머니
이야기의 물살.
(시집: 이야기와 시가 흐르는 강)
그냥 남겨진 채
섶다리 건너고
오리나무 숲 지나
굴참나무 광장을 돌아서면
불꺼진
둥지 하나
아기새들
다
떠나고 없는
집에
엄마새 혼자 있다
그냥 남겨진 채
바람에 흔들리며
(시집: 이야기와 시가 흐르는 강)
아버지
노을 타는 뒷산을
풀지게에 지고
풀꽃으로 웃으시던
아버지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며
별빛을 등대 삼아
고개 넘어 논물 대러 가셔도
발걸음 가벼우셨던
큰 바위 얼굴
고향을 잊고 사는
이웃에게도
허허허 웃으시며
낙천적으로 사시는
아버지
골목 가득
달빛을 깔아주고
오늘도 골목을 맴돌며
고향집에서
고향 빛을 간수하며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시집: 이야기와 시가 흐르는 강)
너에게 준 산
작은 산 하나
너에게 주던 날
은하수가 떴었지
떡
버티고 앉아
숲과 샘
별과 달
새와 바람을 다스린다
그 견고함
믿음
산의 뿌리를 심어 준
너.
(시집: 너에게 준 산)
산하고도 정이 들면서
화천에 처음 와서는
내가
산으로 갔는데
산하고 정이들면서
이제는
산이 내게로 오느라
아장 아장
걸음마를 배운다.
(시집: 산하고도 정이 들면)
[2]박유석의 시 작품 세계
(1) 첫 시집 『정선별곡』의 시 세계
니힐리즘과 침잠된 고뇌의 어지럼증
가. 서론
박유석은 한동안 정선군의 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한 이후 화천의 다목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하였다. 시집 『정선별곡』은 나중에 시집 『잠못 이루는 산』으로 다시 제목을 바꾸어 펴낸 시집이다. 이 시편들은 모두 정선에 체류해 있을 때와 정선을 떠나온 후 아픔을 그려놓은 작품들이다. 작품의 제목도 ‘정선’을 소재로 14편의 연작시를 쓴 것이나 정선의 지명과 연관된 것들을 제목으로 한 것을 보면 정선에 대해 각별한 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집의 제목을 『잠못 이루는 산』이라 한 것이나 같은 시집을『정선별곡』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움과 이별의 정서가 묻어있다. 이러한 정서는 전통적 서정의 맥락과도 이어져 있으면서 비탄이나 절망 같은 어둠도 스며있다. 이러한 비낭만적 정서는 실존주의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착안하여 작품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나. 본론
<1>새로 태어나기, 따뜻함의 발견
실존주의는 개인적인 자아와 타아의 존재를 인정한다. 독자의 실존적 존재를 부각한다. 야스퍼스는 실존적 개체를 사유하고 행동하는 근원자로 파악한다. 그리고 실존적 자아는 타아와의 관계 속에서 모색된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데 개인의 완전한 자유로움의 바탕에서 스스로 인간 존재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불교의 원리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이때 자유에는 책임이 깃드는 것이다.
니힐리즘은 무(無)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 어원이다. 불교의 깨달음이 ‘무(無)’라는 것도 비슷하다. 전에는 이것을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뜻했지만 지금은 절대적 진리나 가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의 무(無)는 깨달음의 가치이며 진리의 최고 정점인 것이다.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를 떠나 있음을 의미한다.
니힐리즘은 일체를 허망하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렇게 행동하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이나 자유를 표방하는 삶은 불교의 깨달음과도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박유석의 시 작품을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박유석은 이 시집을 5부까지 나누어놓았다. 1부에서는 정선에 있었던 생활을 느낌에 담은 연작시 「정선∙1」에서 「정선∙14」까지를 모아놓았다.
정선∙2
산이
내게로 와
산이
내게로 와
달빛도
청산을 품을 때
날아오지 않는
새
탓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는
나무의 사랑법 배웁니다
정선에서.
달빛이 청산을 품은 상황에서는 극도의 외로움, 사물과의 단절감이 엿보인다. 새가 날아오지 않음은 불만을 넘어, 불안의 상태이다. 그러나 탓하지 않음은 왜일까? 모든 허물을 탓하지 않고 품어 안고 가는 고독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는 사랑법을 배운다고 하였다.
정선∙7
잊을 것
다
잊고
잃을 것
다
잃어
담백해진
하늘
있는 듯 없는 듯
살리라.
잊을 것은 다 잊는다. 또 잃을 것도 다 잃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서면 눈이 맑아진다. 소유의 짐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백해진 하늘’을 만날 수 있다. 체념과 수용의 미학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흐르는 강한 의지가 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교적 공(空)의 세계가 흐르고 있다.
꽃잎
피 흘리며 지는 밤
접동새 되어
슬피 운다.
몸은
첩첩산중에 갇혔어도
기다림의 성 쌓으며
비상을 꿈 꾼다.
그리움의 그물
안개의 머리칼로 기우는 밤
임이여
내 노래 들으시나이까.
- 「정선∙5」 전문 -
매우 강렬하고 진한 정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첩첩산중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비상을 꿈꾸는 의식의 날개를 파득이고 있다. 임을 향한 호소는 간절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유석에게 있어 시 속의 이미지는 감정과 매우 진한 고리로 연결된 것을 보게 된다. 쟌느베르니스가 지은 책 『상상력』(이재희 譯.탐구당.1985)에 의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말한다. 상상력의 기능이 잠재의식의 감정적인 충돌을 해결하는데 있을 것이라고 …. 이 말은 박유석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의 말이다.
박유석이 이끌어내는 연속적인 상상력은 질곡과 아픔의 환상으로 이어지며 감정의 충돌과 화해라는 기다림의 끈에 이어지며 절망과 교환되기도 한다.
『정선∙13』에 오면 기다림은 다시 절망으로 바뀜을 본다.
산이 낮아지면
떠날 때라는데
저 산이 저리 높은데
검은 개여울 흐르고
까마귀 떼
푸석한 아침 쪼아대는
초봄
떠난다 정선
기억은 빗장 열고
눈밭 사이로
천일의 사진첩 펼치는데
산에 묶였던 하늘
까치집 사이로
햇살 토해내고
규페의 기침 소리에
무너진다
견고한 성
풀 한 포기 마저
정을 쏟아주던 곳
그러나 이제
슬픔을 숨긴채
이별 연습을 하네
기차가
터널 속 어둠 배설할 때
듣는 산새 울음
아쉬움의 강물 흐르고
떠나는 길손 하나 없는데
역장 혼자 손 흔드는
간이역의 쓸쓸함에
아련한 그리움이 되는
정선.
정선을 떠나는 모습이다. 그 풍경은 검은 개여울과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는 상황이다. 규폐의 기침소리에 무너지기도 한다. 정을 쏟던 곳에서는 슬픔을 숨긴 채 이별 연습을 하고 아쉬움의 강물이 흐른다. 그의 상상력은 상황을 매우 비극적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분명히 상상력은 이미지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이미지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에 대한 상상적 자극은 떠나는 길손 하나 없는 간이역에서 역장 혼자 손 흔드는 이미지를 창출해 낸다.
제2부 중에서 작품 「나그네의 잠」은 분출된 상상력이 다양한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나의 잠은
죽음에서 환생하는 길
투명한 그물에서
건져내는 목숨
명암 벗기는
기억의 빗장
잠은
불멸의 꽃
이승과 저승의 가지에
걸어둔
등불
날마다
시간의 일과 속에서다.
- 「나그네의 잠」 전문 -
잠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실에서 괴리되어 있는 환상적 사실은 여러 갈래로 입체적인 모습들이다. 모든 것이 시간의 일과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그 질감과 색채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잠속에서의 상징은 죽음에서의 환생으로 비치기도 하고 투명한 그물로 건져내는 목숨이기도 하다. 또 명암 벗기는 기억의 빗장으로 닫히거나 열려 있기도 한다. 결국 잠마저도 한 송이 꽃으로 비화하는데 그것은 불멸의 꽃이다. 또 이승과 저승의 가지에 걸어둔 등으로 비쳐진다. 이러한 것은 시간의 일과 속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잠의 색깔이다. 그것들은 무의식의 층을 이루고 있기에 흐릿한 등불처럼 애매하다. 삶의 희망보다는 절망의 그늘이나 기억에 더 친근하다. 날마다 다가서는 일상의 자취는 삶의 버려짐, 또는 기억하기 위한 비석 같은 존재이기도하다.
카프카의 변신처럼 사물의 낯선 세계 앞에 익숙해지려면 캄캄한 혼란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것은 현실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고 내면의 방황을 이상하고 외진 곳으로 부채질하기도 한다.
믿음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 느끼지만
조금 전에 악수를 하고 헤어진
친구의 얼굴도
아주 낯설고
그가 누구였는지
캄캄한 혼란이 온다
- 「부활수업∙2」 첫 연 -
존재와의 거부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이어진다. 그곳으로부터 얻는 허무의 결실은 상실과 혼돈이다. 그렇기에 새벽잠은 아련하고 새벽 잠결에 듣는 뻐꾸기 소리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혼란이 인다.
박유석 무의식의 저변에는 이런 아주 반갑지 않은 낯선 편린들이 있다.
박유석은 ‘눈을 가등기 냈다며 웃는 친구의 행동’에서 존재의 가벼움 같은 것을 발견하고 희롱하기도 한다. 따뜻하고 맑은 웃음 몇 송이가 그들 사이에 떠다니는 것을 본다. 그것은 점차 그리움으로 바뀐다.
눈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등기 냈다고
허락 받고 보라며
희죽 웃는
봉이 김선달 같은 그
눈오는 날이면
구멍가게 일 접어두고
쏘다니다
어김없이 전화하는
그가 밉지 않아
한밤중이라도 달려가는 나에게
빙그레 웃는 아내
눈 같은 시를 쓰는
그 친구가
그리운 정선의 밤.
- 「눈을 가등기 냈다는 친구」 전문 -
50대에 삶과 죽음, 혼돈의 강을 건너는 박유석의 내면세계는 혼돈과 두려움, 애처로움의 길이다.
꽃상여 하나가 조각배로 떠가는 것 같은 슬픔이나 비애의 강을 발견하고 허무의 닻을 내리기도 한다. 돌무더기 돌 틈에 할미새가 알을 낳았다. 기차가 설 때에는 울면서 안절부절 못한다. 우리들의 삶도 알을 낳고 두려워하는 할미새와 무엇이 다르겠냐고 자신에게 묻는다. 세상을 사는 일이 퍽 귀찮기도 하다.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발을 내딛는 곳은 난전에 앉아 나물 파는 사람들의 모습 앞이다. 그곳에서 안심이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사는 일
다 귀찮은 날
장터로 간다.
부추 두어 단
풋고추 무더기 놓고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양심 지키는
촛불 하나 켜들고
가진 자들의 박힌 못 뽑아주며
평화스럽기만한 노파
싱싱한 햇살로 건져 올린
생선 몇 마리 놓고
비린내 풍기는 자들에게
소금기로 간 절여주는 어부
허물 벗고
가슴에 무덤 파 놓고
다시 사는 법 배운다.
- 「근황」 전문 -
박유석에게는 늘 꿈꾸는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다시 삭혀내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의식의 방법은 가슴에 무덤을 파놓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눈빛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다. 거기에서 따뜻함을 발견해낸다. 그들은 가진 자들에게 박혀 있는 못까지 뽑아주며 평화를 실천해 가는 삶이다. 그것을 본 시인은 부끄러워하며 다시 사는 법을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2>현실에 대한 탈출과 비상(飛上)에 대한 시도
박유석의 시적 언어는 극히 개성적인 언어이다. 그가 사물에 대해 말을 거는 것을 보면 매우 침착하고 사유적이다. 글의 구성면에서는 데코럼(Decorum)적이다. 독자적인 그의 리듬은 어느 때는 호소력 짙게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독백의 기호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제3부에서도 그는 의식의 꿈을 꾸며 부자유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하늘을 만난다.
- 앞 부분 생략 -
이제 그 슬픔의 무게 만큼의
금촉의 행렬은
봄비의 파장 속에 풋풋이 빛나고
산은 겨울을 털며 돌아눕는다.
튼튼한 야성으로
경이의 시력을 회복하였다.
- 가운데 일부 줄임 -
실패를 감추기 위해 쌓은 달을 허물고
불만을 날리며
이승의 진주
개화의 아침을 준비하는 봄비
물 묻은 하늘
아, 뉘우쳐도 깨어나지 못했던
어머니!
어머니!
다시 태어날 뿐인 靈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고 있습니다
조양강의 봄비는.
- 「조양강에 내리는 봄비」-
조양강에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봄의 기운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움에 사무친 어머니의 모습을 봄비로 만난다. 자식의 입장에서보면 어머니는 위대하고 강력한 힘으로 상징되는 여신이다. 그가 꿈꾸던 하늘은 이집트의 어머니 신으로 여기는 이시스와 같은 위대한 어머니이다. 그렇기에 박유석은 봄비로 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개화의 아침을 희망처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시집 속에 흔히 발견되는 강의 이미지는 박유석에게 있어 매우 색다른 상징의 모습이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어둠의 갈피일수도 있고 성난 파도 또는 절망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박유석은 다음 작품 「비상하는 강에서」에서 보듯 끊임없는 강의 비상을 갈구한다.
밤을 흔쾌히 깔고 앉아 / 무소유의 전파를 띄우면 / 틀니를 드러낸 강은 / 안개의 은빛 날개 사이로 / 비상을 준비하고 / 풋잠 턴 낚시 끝 부표로 깨어나는 몰입
어둠의 중심에 닻을 내린 정착 / 낡은 사슬에도 탈출 허물어지고 / 숲은 / 수초로 흔들리며 떠돌았다
밤새 도끼로 허공을 찍어내던 / 쑥국새의 의지를 들으며 / 나는 보았다 / 우리가 던진 혼탁이 / 슬픔으로 떠도는 것을, / 붕대에 감긴 달의 고통 / 쏟아지는 이 시대의 빈혈
욕망의 그물은 암초에 찢기고 /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던 이웃의 보호에 / 정물화이던 꽃들이 / 상한 물결 갈피에서 무너져 내릴 즈음 / 보채다 투명해진 잠이여 / 불빛 몇 올에 묻어온 하루살이의 / 허망한 춤을 /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창을 등에 맞은 밤이 / 비틀대는 / 새벽 4시의 수심에 / 적막은 몇 숟가락의 어둠을 흔들고 / 놓아준 물고기의 비늘에서 / 새롭게 열리던 하늘 / 자유의 가지 사이로 시력은 회복되어갔다 / 그러나 허약하여 시들어버린 풀잎은 / 소생하지 못하였다
반새 생애의 얼룩은 씻겨 / 마음의 보석 순수가 / 맑은 공기의 속살을 솎아 / 심금(心琴)을 펼쳐놓는 아침 / 잠 깬 풀꽃이 / 햇살 갈피로 걸어나올 때 / 안개의 날개로 비상하는 / 금빛 강의 품에 / 나는 숨고 싶었다 / 오래.
- 「비상하는 강가에서」전문 -
닻을 내리고 정착한 곳은 어둠의 중심이다. 그 기반은 매우 허약한 상태이다. 시대의 암울한 상황이 제시되는 가운데 모든 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쑥국새는 허공을 찍어낸다고 하였다. 혼탁은 슬픔이 되어 떠돌고 달은 붕대에 감겨 고통스럽다. 청정한 자연은 모두 파괴된 모습이다. 하루살이의 허망한 춤을 허락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이 모든 어둠과 절망은 밤 사이에 떠돌다 사라졌다. 아침은 다시 새롭게 펼쳐졌다. 잠깬 풀꽃이 햇살 사이로 걸어나오고 금빛 강의 물결이 출렁이는 것이다. 비상하는 강에서 작가는 숨고 싶은 것이다. 상실과 허기의 시간들을 감추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유석 의식의 깊은 속살에 스며있는 정서의 올들은 매우 전통적이고 원형적이고 원태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성황당 고갯마루
까치집 짓고
슬픔 삭이는 강변
소박 맞은 벙어리 가슴 속
동굴
나룻배로 흘러가고
눈물빚은 하늘가
올동박은 지는데
한숨의 여울에
원앙금침 부초로 떠간다
- 「아우라지강」중의 첫 1연과 2연 -
정선아라리의 모태가 되는 강이 아우라지 강이다. 정선아라리에는 슬픔이 배여 있다. 슬픔을 풍자하여 익살스럽기까지 하지만 근본적인 한의 덩어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동서고금의 시를 보면 기쁨보다는 슬픔을 노래한 시가 더욱 많다. 아름다움의 빛깔은 환희로움보다 비가(悲歌)적인 성질을 띈 것이 그 까닭일 것이다. 즉 기쁠 때 보다는 슬플 때 마음이 더 정화되고 안정을 찾는 것이 아닐까?
고구려 초기(기원전 17)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외로움을 나타낸 ‘황조가’라는 노래를 비롯하여 신라시대 향가의 작품 중에서 월명사의 ‘제망매가’ 등은 모두 슬픔을 노래한 글이다. 박유석 또한 정선에 기거하면서 한국적 한(恨)의 표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제3부에서는 자아에 대한 탐색이 매우 인상적이다. 꾸준히 진행되는 것은 생에 대한 갈증이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갈증이 정신의 고독한 여행자로 만들기도 한다.
마흔 아홉의 강∙3
몽유도원도에서도
목이 탄다
마셔도 자꾸 생기는 갈증
마흔 아홉의
짐승
가슴에
큰 연못 만들어
하늘이 비치게 하라는
말
이렇게 어렵다니
아직도 초립동인가
길들어지면
전진 뿐
좌우회전과 후진을 모른 채
탁류에서
철 없는 아이.
박유석은 마흔 아홉이라는 시간의 흐름 위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에 대한 부재이다. 갈증과 동물적 인간을 만난다. 사람은 영적인 것과 동시에 동물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다. 양면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에 이중성이 있다. 박유석의 경우에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동물적 성질의 것만을 인식한다. 스스로에게 탄식의 채찍을 가한다. 현실적 생활에서 초립동이 같은 모습을 보고 꿈꿀 수 있는 생활을 그린다. 가슴에 큰 연못을 만들어 하늘이 비치게 하라는 그 말에 대한 실천이 실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가슴에 큰 연못을 만드는 것은 마치 작중 화자가 산이 되고 산 위에 연못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면 하늘을 비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주역의 ‘택산함’ 괘에 속한다. ‘택(澤)’은 못을 뜻하고 ‘함(咸)’은 ‘느낀다’는 뜻이다. ‘택산’의 괘 이름은 ‘함(咸)’이라는 것이다. 산과 연못이 만나면 기운이 통한다. 하늘은 산을 성기로 하고 산은 못을 성기로 하니 음양이 서로 만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산에게 못이 있어 하늘을 담으니 서로 조화로운 기운이 통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위의 시 작품 역시 가슴에 큰 연못을 만들면 하늘이 비치게 되니 조화와 아름다움이 있어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작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좌우회전을 모른 채 탁류에서 철 없는 아이라고 자신을 자조하는 것이다.
<3> 실존적 불안과 아픔, 그리고 삶의 그늘
제4부는 광부들의 삶을 연작시 형태로 그렸다. 풍자(諷刺:Satire)는 세타이어라고도 한다. 박유석의 시에는 이러한 풍자 내지 풍유의 모습이 ‘광원’ 연작시에 강하게 나타난다.
관의 뚜껑을 열어놓고
시작하는
생존
매몰된 빛을 채굴하는
선산부의 곡괭이 끝에
잠들지 못하는 아내의 욕망
탐욕의 이빨 세운 채
바람으로 떠돌고
참담함이 고여 썩는 시간
마왕의 잠
간간이 쏟아지고
식솔들의 생계 풀잎으로 흔들린다
후산부가 퍼담는 삽 속에
익사한 고향의 청산
광차에 실리는
신생대의 하늘
우울한 몽상으로 헤매는 미로에
규폐의 기침
폐석에 수북히 쌓인다.
날마다
갱 속에서 환생하는
生
- 「광원∙2」 전문 -
풍자는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 공격하는 글이다. 따라서 현실 문제를 시의 테마로 잡아 목적한 바를 매우 의도적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표현이 풍유법보다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심지어는 언어의 난폭성마저 드러난다. 그러나 그 표현이 저속한 언어의 유희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풍자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자는 많은 사람에게 세척감(洗滌感)과 웃음을 준다는 점에서 법이나 언론 보도와는 차별되며 미적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시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의 시에서 광원들의 생존은 관의 뚜껑을 열어놓고 시작한다고 풍자한다. 참담한 비애에 대한 페르소나 적인 풍자이다. 고향의 청산은 이미 후산부가 퍼 담는 삽 속에 익사하였다고 한다. 날마다 갱 속에서 환생하는 생은 비애의 그림자로 드리워진 페르소나이다.
다음의 작품 「불면증」도 페르소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지금 나의 멀미는
상해버린 순수
내장 깊숙이에서 토해내는
어떤 상실
환부의 중심에서
돋아나기 시작하는
새 살
별처럼 쏟아지는
빈혈
어느
탄광촌의 폐석 하치장에서다.
- 「불면증」 전문 -
진실이란 삶의 그늘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내장 깊숙이에서 토해내는 상실감이다. 환부의 중심에서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하지만 별처럼 빈혈이 쏟아지는 어지럼증을 겪어야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물질문명의 힘에 의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은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풍자적으로 나타내었다.
이러한 참담한 모습은 작가의 내면세계에 그려지는 페르소나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
(4)우화의 하늘에 침잠되어 있는 고뇌의 어지럼증
우화(寓話)는 의인화처럼 동식물이나 사물을 내세워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나 교훈의 뜻을 전하는 이야기 글에 속한다. 이 우화의 한 형태를 빌려 시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제 5부에는 ‘우화의 하늘’이라는 연작시를 발표하였다. 역시 페르소나적 성격이 강하고 풍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마치 굴원의 ‘초사’를 보는 듯하다.
우화의 하늘에서 보이는 의식의 덩어리들은 매우 어둡다. ‘지는 꽃잎, 질식, 잃어버린 번지, 허수아비, 불치병, 혼돈의 세상, 표류, 모순, 어둠, 자폐증 증상, 허망, 꺾여버린 날개, 박제된 새들, 실종, 노폐물, 찢긴 하늘, 폐선, 혼돈의 미로’ 등에서 보여주는 시어들은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런 의식은 충분히, 진실이 외면된 세계임을 드러내는 상징임을 감지할 수 있다.
지는 꽃잎 아래
우화의 하늘은
질식하고 있었네
유년의 풀밭 그리며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나섰지만
숫자 놀음에
울고 웃는
허수아비들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깨는
사내들
걸레가 된채
몇 개의 반지를 갈아 끼고
불치병을 앓는
누이
혼돈의 세상
조화의 들판에
무섭게 칼날은 번뜩이고
거꾸로 도는
우화의 하늘이여.
- 「우화의 하늘∙1(누이) 」 -
시에 있어서의 상징(象徵)은 대상이나 관념을 암시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표상(mark), 증표(token), 신표(sign) 등을 가리킨 말이었다. 문학의 경우 상징이란 가시(可視)의 세계나 물질의 세계가 불가시(不可視)의 세계나 정신의 세계를 대신하는 표현양식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연상의 힘, 곧 상상력에 의해 관념 또는 사상이라고 불리는 광막한 정신의 세계가 감각의 차원 즉 이미지에 의하여 환기되는 경우를 상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징은 논리성을 초월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문학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잠재의식에서 상징의 메시지를 받으며 그것을 지감하여 삶을 이어나가는 고리로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꿈속에서의 일들은 상징의 부호들이며 그것은 이미지로 나타난다. 어떤 환자가 꿈에 맑은 물속에서 헤엄을 치면 얼마 안 있어 그 환자는 병이 완쾌됨을 상징화하여 알려주는 것이다. ‘맑은 물’이라는 사물의 이미지가 ‘깨끗함’의 상징성을 띄고 있다. 반대로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꿈을 꾸면 곧 질병에 걸릴 것이란 것도 암시해 준다. 오염된 물은 정화하거나 깨끗함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물의 상징성은 다양하다. 꿈속에서 방안에 물이 가득 고이면 재물이 모이는 징조이다. 여기서 물은 재물 내지 돈을 상징하고 있다. 프라이는 그의 저서 ‘비평의 해부’에서 물의 상징을 순환적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 샘, 강, 바다, 눈’을 ‘청년, 장년, 노년, 죽음’ 등으로 각각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똑같은 사물도 상징하는 바가 다른 것은 주위 사물과의 만남이 어떤 고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의미이다. 하늘이 상징하는 바는 신(神)이다. 그러나 ‘남편이 하늘’이라고 할 때 하늘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높고 귀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또 아내가 ‘땅’이라는 상대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상징은 문맥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 그 뜻하는 바가 각각 다른 것이다.
상징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다.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것과 문맥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것이 그것이다. ‘십자가’하면 예수를 상징하고 ‘연꽃’하면 불가에서 ‘깨달음’을 상지와는 것 등은 고착화된 예이다. 또 명리학에서 말하는 갑(甲)을(乙)을 목(木)으로, 병(丙)정(丁)을 화(火)로, 무(戊)기(己)를 토(土)로, 경(庚)신(申)을 금(金)으로 나타내는 것 등도 고착화된 상징이다. 이와 같은 것은 이미 오랜 시간을 흐르면서 굳어져 왔기에 ‘관습적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장이나 시어에서 유기적으로 관계되어 새로운 의미가 나타나는 것은 그때 그때에 새로운 의미로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적 상징’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문학 작품 속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것은 관습적 상징보다 창조적 상징이며, 창조적 상징은 작품 속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것이다.
박유석 시의 많은 부분은 은유가 차지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은유(隱喩)도 상징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빠는 하늘나라의 천사’라고 했을 때 아빠는 ‘돌아가신 아빠’ 또는 ‘선한 아빠’로 상징화되고 잇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가 일반적인 상징체계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공통적인 특성을 추출하여 나타내지만 상징은 그 특성을 초월하고 있다.
석가는 오묘한 진리를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상징과 비유로 전하고 있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할 때 그는 스스로 법열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석가의 주위로 우담발화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석가는 꽃 한 송이를 들어 제자들에게 보였는데 가섭만이 홀로 그 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 내용은 석가가 가섭에게 법을 전한 ‘염화시중의 미소’로 유명한 일화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불법의 진리를 연꽃으로 상징하여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은 ‘연꽃’이 불가(佛家)에서 진리를 상징하면서도 ‘꽃’과 ‘진리’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이것을 ‘잠재된 논리’ 라고 부른다. 잠재된 논리란 이치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의한 필연성 때문에 그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징화된 언어의 구조물을 말한다. 따라서 잠재된 논리는 논증 불가능한 세계에 있는 실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은유보다 훨씬 폭넓은 기능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투명하던 언어는
표백되었고
세상은
속이 빈 채
상실한 시력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오늘
꺾여버린 날개로
비상의 꿈
추락한 벼랑에
차라리
바위가 되어라
이 시대
박제된
새들이여.
- 「우화의 하늘∙10 (박제인 새에게)」 일부 -
박유석의 연작시 ‘우화의 하늘’에는 절망과 아픔, 고뇌의 사유들이 물묻은 별처럼 반짝인다. 그것은 슬픔의 빛이다. 약속을 깬 사내들에 의해 불치병을 앓는 누이의 고통이 있고 이익을 위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못한 채 보호색으로 바꾸지도 못하는 슬픈 님이 있다. 그렇기에 모순의 땅으로 남아 있다. 모순의 땅에서 고향은 부표로 떠돌고 용기를 상실하고 여성화된 슬픈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
새들은 비상을 꿈꾸고 희망에 대해 늘 열려있다. 그런 새들이 이제는 중병을 앓거나 박제된 새가 되었다. 혼돈의 미로에서 남은 생은 죽음과 해후해야 함을 인식한다. 철저한 자기인식의 확인을 한, 암울한 내면의식에는 방황이 자라고 산발한 채 일어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다. 정리하는 말
박유석이 이끌어내는 연속적인 상상력은 절망과 아픔의 환상으로 이어진다.
삶의 희망보다는 우울한 기억에 더 다가선다. 일상의 자취는 삶의 버려짐, 또는 기억하기 위한 비석 같은 니힐리즘의 실존이다.
박유석에게는 늘 꿈꾸는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은 자신을 다시 곰삭혀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눈빛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닿는다. 거기에서 따뜻함을 발견한다. 그들은 놀랍게도 가진 자들에게 박혀 있는 못까지 뽑아주며 평화를 실천해 간다. 그것을 본 시인은 부끄러워하며 다시 사는 법을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박유석 의식의 깊은 속살에 스며있는 정서의 올들은 매우 전통적이고 원태적이다.
실존적 불안과 아픔, 그리고 삶의 그늘은 작가의 내면세계에 그려지는 페르소나의 한 모습이다.
박유석의 시집 『정선별곡』에는 아픔과 고뇌가 보인다. 존재의 바닥에는 죽음이 깔려 있다. 육신의 죽음보다는 정신의 온전한 죽음위에 부활하고자 하는 죽음이다. 철저한 자기인식의 확인위에서 벌어지는 방황과 절망은 정신의 부활을 꿈꾸는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고통임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