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동남아와 한국의 외환 난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유태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하였다.
마하티르 수상은 말레이시아의 화폐인 링깃의 급격한 가치 하락은 국제 유태자본의 숨은 음모라고 주장하고,
국제 환 기업인 소로스가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짜고 개혁에 미온적인태국 경제에 대한 악성루머를 유포시켜 바트화의 가치를 폭락시켰다고 폭로하였다.
유태민족은 기원 후 70년에 나라를 잃은 이래 1948년 이스라엘의 재건까지 1,900년간 박해와 추방의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그 고난 속에서 신과 구약성서에 대한 신앙, 자기 민족 재건에 대한 확신 위에 서서, 예술,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세계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
예를 들면 종교-사상계에는 모세로부터 예수, 스피노자, 칼-마르크스, 베르그송, 국부론의 아담-스미스를 들 수 있고
예술계에는 음악가 바그너, 작곡가 멘델스죤, 쇼팡, 화가인 샤갈, 영화배우인 찰리-채플린이 있으며
학계에는 아인슈타인, 독가스 발명자 하버, 법의학자 롬브로조,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 등이 있다.
재계에는 독일의 로스차일드, 프랑스의 로칠드, 오스트리아의 호프만슈탈, 미국의 록펠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세계적인 대기업인 록펠러, 모건, 듀폰, 로열더치, GE, GM, ATT, IBM, 보잉, US스틸, 제록스 등도 유태인 자본가들이 이룬 대기업이다.
이와 같이 미국은 1차 산업에서부터 제조, 서비스업까지 유태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유럽의 로스차일드, 해운왕 오나시스 등 각국에 퍼져 있는 자본력까지 감안하면 세계 경제는 뉴욕의 월가에서 홍콩자본까지 그물 같은 유태 자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북미대륙의 자유경제 블록 과 유럽의 경제통합, 아시아의 경제몰락 등은 모두 유태재벌의 입김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미국의 정치에서 유태 커넥션 의 영향은 경제, 방위, 문화면에서 더욱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후 미국의 대통령은 유태계시오니스트나 이스라엘 압력단체 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도 이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지 케네디나 닉슨처럼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루즈벨트정권 이래로 미국의 정책 결정에 크게 관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전직 배우출신의 대통령 레이건 은 1985년 12월 2일 미국 하원의원 연설회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물원에 취직한 사나이가 죽은 고릴라의 후임자가 올 때까지 봉제 옷을 입고 고릴라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하여 누워있는 것도 대단히 지루하므로 구경꾼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늘어져 있는 로프에 매달려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너무 심하게 흔들자 옆에 있는 사자의 울에 떨어져 버렸다. 사자는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그 바람에 겁이 난 가짜 고릴라는 '여기서 내보내 줘요.'하고 큰소리로 구원을 요청하자
사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조용히 해. 떠들면 우리 둘 다 실직하게 될 것이 아닌가."
정책결정의 아무런 주권도 없는 허수아비 미국대통령의 처지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짜 유태인
유태인은 혈통적으로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 아들 야곱의 자손이 진짜 유태인이다. 기원 70년 로마군에 의해 에루살렘이 함락되었다. 그곳에 있었던 유태교 신전은 완전 파괴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떠났다.
기원 135년 에는 발-코호바 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유태의 제2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한 전쟁이었지만 도리어 로마군으로부터 가차없는 타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남아 있었던 소수의 유태인들도 모두 다른 나라로 흩어져갔다. 물론 그들은 로마에 가는 것을 피하고 주로 북아프리카로 향했다.
시대는 흘러 622년, 사라센 제국을 수립한 아랍인들은 유태민족에 대하여 매우 관대했고, 심지어 존경까지도 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평온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많은 유태인들은 점차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그 후 스페인은 유태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스파라디는 이산한 유태인 중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한 스파라디는 중세에 세계 유태인의 약 절반을 점했고 라디노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문화와도 동화하는 등 활동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 스페인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스파라디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1492년 바로 그 스페인에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그 때 이미 강력한 카톨릭국가가 되었다. 유태인들은 카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만약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떠나라 명령하였다. 이때 약 25만 명이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으로 이주했다.
이에 반하여 아슈케나지 유태인 들은 북동 유럽계 유태인으로 옛날 카자르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자손 이다.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인종적으로 말하자면
터키계 카자르인의 자손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 소급하면
12환국시절 (18대 환웅천황 배달국이전 12열국시대-지금의 국가 개념의 나라를 쓴것이 아니라 부족전체를 가리키는 지칭임) 터키지역과
메소포타미야 지역의 수밀국, 우루국의 후예들이니
지금의 한민족과 비교해 본다면 형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투르크계 민족.
투르크(T犧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지방에 살았던 투르크 종족)의 한 부족으로서 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柔然: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의 족장 토문(土門:만인의 長이라는 뜻)이 유연 ·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伊利可汗]이라 칭하였다(552).
이 무렵부터 그의 아우 디자불로스는 서방으로 진출하였고,
3대 목간가한(木杆可汗) 때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563∼567). 그 결과 돌궐은 동쪽으로는 중국 둥베이[東北:만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이 미쳤으나 동족간의 다툼으로 583년 분열하여 동돌궐은 몽골고원,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였다.
동돌궐은 수(隋)나라 말기에서 당(唐)나라 초기에 걸친 중국 내부의 혼란을 틈타 중앙집권화를 도모하여 그 세력이 강대해졌으나, 당나라의 공격과 철륵 제부족의 독립 등으로 630년 멸망하고 당나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682년 다시 몽골고원에 독립국가를 세워 카파간가한[默綴可汗] ·빌케가한[毗伽可汗] 등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한때 중앙아시아에 원정할 만큼 세력을 떨쳤으나, 다시 동족간의 다툼으로 쇠약해져 744년 철륵의 한 부족인 위구르에게 멸망하였다.
서돌궐 은 동로마제국과 결탁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토벌하기도 하였으나 둘로 분열하였다.
당나라는 이 틈을 이용하여 이주(伊州:하미)와 서주(西州:투르판) 등의 주현(州縣)을 설치하였다. 그 후 서돌궐은 한때 통일을 이룩하였으나 당은 657년 이를 토벌하고 2명의 가한을 두어 통제하였다. 7세기 말 돌기시(突騎施)가 일어나 이 두 가한을 추방함으로써 서돌궐은 멸망하였다.
돌궐의 국가는 일(il)이라 부르며 가한(可汗) 밑에 소가한(小可汗)과 야부그[葉護] ·샤드[設] 등의 제후가 일종의 봉건영지를 소유하여 영내의 모든 부족을 통치하였다.
이들은 ‘베크[牢羽]’라는 지배계층을 구성하였고, 일반 민중은 ‘부둔’이라고 하였다. 베크들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기록, 즉 돌궐비문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믿고 있으나, 한때 불교가 가한을 중심으로 한 상층계급에서 유행하였다.
카자르 지방은 남러시아의 평원 을 말한다.
8세기 경 이 광대한 초원에서 터키계의 사람들, 즉 카자르족이 상인, 직인, 무사로서 살았다.
이 무렵 카자르 왕국은 비잔틴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보통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면 어느 강한 쪽의 세력을 선택하지만 카자르 왕은 용케도 양쪽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유태교로 개종하였다.
만약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교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며, 반대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다면 이슬람교도가 불쾌해 할 것이다. 그러나 양파가 다같이 예언자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인종적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유태인이 된다면 이슬람교 및 그리스도교 양파로부터의 증오를 잘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전 국민들이 개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태교를 국교로 삼은 결과, 수십 년 내에 민족 전체가 유태교도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
자기들은 혈통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유태의 가면을 쓴 셈이다.
이는 민족적 환부 역조 를 한것이다.
조상을 바꾸어 믿기 때문에 ,,,
카자르 왕국 은 9세기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슬라브족의 침략 을 받게 되었으며 급기야 965년 우크라이나 스비아토스라브 왕의 침략 을 받고 몰락했다.
그후 아시아로부터 온 몽골군이 유럽으로 원정을 하자 그들은 몽골의 대군을 피하여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러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등의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구성하여 카자르 인이 아니라 유태인으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유태교를 믿는 종교집단이지 유태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아리안족의 발상지인 코카서스로부터 왔던 것이다.
유전학적으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 아니고 백인계로서 셈족계열이 아니다. 셈족 계열은 스파라디나 아랍인 등이다.
그렇지만 이들 아슈케나지 유태인 들을 우리는 진짜 유태인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전 유태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