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여행기(3)****
루마니아 (1) 부쿠레슈티
연희동 김 숙자
10월 12일(토)
아침 8:35분에 '카타르' 공항에서 QR943기로 출발한 우리 일행은 13:30분에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에 도착하였다. 현지 안내자가 깃발을 들고 우릴 환영한다. 이 안내자의 안내로 버스에 짐을 가득
싣고 '부쿠레슈티'의 시내로 이동한다. 기내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지금부터 루마니아의 관광이 시작된다.
루마니아는 BC 1세기 동로마의 속주로 지배를 당하면서 '로마인이 사는 땅' 이라는 의미로
루마니아라는 국가 이름이 유래하게 되었단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후까지 헝가리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며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일으키지만, 다시 러시아의 간섭을 받게 된다.
1877년이 되어서야 독립국으로 최대의 전성기를 맞지만, 1944년 다시 소련군의 발칸 진출로 위기 상황을
맞게되어 1947년에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1989년 12월, 유혈혁명으로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처형하므로써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민주정부인
루마니아 공화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루마니아의 인구는 약 2천300만 명, 면적은 23만㎢로 한반도의 약 1.1배이다. 기후는 온화한 대륙성기후이다.
인구구성은 루마니아인, 약간의 헝가리아인, 이탈리아인 등으로 언어는 루마니아어, 헝가리아어. 독일어를
사용한단다. 이 나라 어린이는 적어도 3개 국어를 활용할수 있다는 것이 몹시 부럽다.
이 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시달려온 민족이지만, 중세풍의 아름다운 古성들과 잘 보존된 자연환경, 그 들만이
간직한 민족성으로 독특한 문화를 소중이 계승하고 있다.
숱한 변화와 어려운 경제로 루마니아인들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앞날은 그리 어둡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루마니아는 예전부터 동유럽권에서 체조로 명성(코마네치 선수)을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1)부쿠레슈티의 시가지 모습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는 인구 225만 명으로 발라키아 지방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발라키아 공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옛 도시이다. 이 지명은 이곳에 처음 거주한 양치기 Bucur에서 유래하여 발라키아왕
시대부터(15세기)이렇게 불렸단다.
넓은 도로와 아름진 나무의 가로수, 고풍스러운 옛 건물의 거대한 규모, 도로의 구획정리가 잘된
구시가지엔 옛 도로와 작은 골목길이 잘 보존되었다.
도시 중심에 군데군데 있는 아름다운 공원, 넓은 광장이 깊은 숲속에 묻힌 듯 싶었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프랑스)라고 할만큼 품위와 역사를 느끼게 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거리의 도로가 굉장히 넓다. 도로의 폭이 100m가 넘을 듯하다.
넓은 차도의 양쪽의 가로수 가에는 또 작은 두 도로(인도)가 있다.
차도와 인도에도 가로수가 우거져 있어서 마치 공원속 같다.
인도 양쪽의 가로수 가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나무관리(전지)도 하지 않고 멋대로 자란 대부분의 가로수들의 키는 50m가 넘을 듯 싶다.
양쪽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져 있어도 차량 통행에 지장이 전혀 없는 넓은 길이 아주 인상적이다.
차에서 내려서 걷고 싶었다.
루마니아의 부크레슈티는 끈임없는 분쟁과 지배를 겪어가면서도 몇 백년을 내다보며 도시 형성을 계획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의 안목이 대단해 보인다.
넓게 터를 잡은 웅장한 건물, 사방으로 뚫린 큰 길과 골목길, 길가의 가로수, 도심 속의 많은 공원.......
러시아의 '상트페테브르크'를 여행하면서 감격스러워 했던 기분을 여기서도 느낀다
1차 세계대전을 축하하기 위에 세워진 개선문
이 개선문은 '헤러스트러우'공원으로 통한는 '키셀레푸'거리 중간의 로터리에 있다.
처음에는 목조에 회반죽을 칠한 것이었으나 1930년 현재의 석조로 개축하였단다.
거리의 양쪽에는 '보리수'와 '마로니에'가 무성한 녹지대로 개선문의 백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96년도 서유럽 여행 때 프랑스 파리에서 너무 더워 개선문 밑의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던 추억이 떠 오른다.
개선문의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다.
혁명광장(공화당 광장)
25년간 장기 집권한 차우셰스쿠를 몰아낸 시민혁명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로 예전에는 공화당 광장으로 불리음.
1989년 12월 22일 차우셰스쿠의 연설도중 퇴진을 요구하자 시민들을 향하야 무차별 사격을 가함.
무차별 사격이 있은 후 차우셰스쿠는 헬리콥터를 타고 피신하지만 3일 만에 잡혀 부인 엘레나와 함께 총살당했다.
주변에는 대학도서관, 박물관 음악당 등 많은 유서깊은 건물들이 있음
구 공화당 본부
광장 중앙에 있음. 1989년 12원 22일 차우셰스쿠가 마지막으로 연설을 했던 곳.
혁명 당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짐
루마니아 국립미술관
차우셰스쿠의 대통령 관저였으나 현재는 궁전 일부를 미술관으로 사용함.
7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루마니아의 최대의 미술관
아테네 음악당
1886~1888년에 프랑스 건축가 알베르트 갈레론이 네오클래식. 바르코 . 이오닉양식을 혼용해서 지은 건축물.
예전에는 서커스 장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각종 콘서트장으로 이용함.
크레출레스쿠 교회
신학생 출신인 현지 가이드는 교회의 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한다.
크레출레스쿠(Biserica Cretulescu)교회는 18세기에 지어진 교회로 이 교회
안에는 그 당시 유명한 화가 '게오르게 따따레스쿠'가 그린 '선악을
심판하는 신의 모습'이란 그림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교회 안은 보지 못하고 외부의 관광과 현지 가이드의 설명만 들었다.
인민 궁전(의회궁)
멀리 보이는 건물은 엘레나(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부인)를 위해 지은 궁이라고 함(현재 과학관으로 이용함)
의회궁은 1981년에서 1988년까지 7년에 걸쳐 루마니아의 유명한 건축가 'Anca Petrescu' 에 의해
설계되었단다. 이 건물은 단일 건물로 세계에서 손 꼽힐 만큼 대규모의 건물이란다.
25개의 홀과 3000 여개의 크고 작은 방이 있단다.
지금은 하원위원의 사무실, 국제회의장, 결혼식 피로연장 등 행사장으로 사용한단다,
1992년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이 곳에서 공연을 하였단다.
인민 궁정 앞 3.7㎞의 Boulebard의 거리
시청앞 분수대
달리는 버스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깊은 가을이라 분수대의 분수 분무기가 많이 닫힌듯......,
구시가 옛도시의 뒷골목
거리의 모습들
그리스도의 정교회
위 하얀 건물인 그리스도정교회의 내부
왜 교회 내부가 이렇게 화려할까? 현지 가이드가 정교회만 나온면 교회의 변천 과정과 역사적인
흐름을 전문인 답게 설명하는데 교회 내부의 화려함에 도취되어 설명을 듣지 않았다. 중간에 신부님(?)
이 나와서 조명등을 켜주었다.
루마니아에서 이틀을 묵은 호텔의 라운지에
루마니아에서만 같은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계속 여행의 나라와 호텔이 바뀌어서 바쁘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