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글쓰기 - 회화나무 수피
회화나무 수피를 본다. 조개껍데기 겉면을 감싸고 있는 주름처럼 보인다. 산자락에 일구어 놓은 밭고랑 같기도 하다. 거무스름한 수피에 연등 사이로 오는 햇빛이 유려한 조명 같기도 하다. 더 이상 묘사는 불가해 이만 마친다.
회화나무 해설을 여기저기서 여러 번 들었다. 나도 직접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자수, scholar tree, 괴목, 정승나무, 사찰과 향교에 주로 심은 나무, 콩과 식물이 전부인 것 같다.
나는 거의 매일 회화나무를 본다. 화정역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다. 그런데도 감각 세포가 일지 않는다. 늘 그 모습이 그 모습 같아서다. 눈에 띄는 것은 가지 친 자리에서 다시 가지가 자라는 것뿐이다. 이것도 속도가 더뎌 잘 감지가 안 된다. 그래서 찾은 것이 줄기와 새 가지의 색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짙고 연하고.
저 회화나무는 조계사 앞마당 회화나무다. 수백 년이 되었다.(몇 년이라고 기억해도 또 까먹어 이제 이렇게 표현한다.) 혼자 추리를 해본다. 저 자리에 그대로 있던 나무라면 이 터는 양반이 살던 집이나 근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못 찾았다. 마지막 확인된 게 조계사 자리가 보성사 터였다는 것이다. 천도교에서 직영한 인쇄소다. 그 뒤 각황사가 살짝 자리를 옮기면서 태고사가 되고 한국전쟁 뒤 오늘의 조계사가 되었다는데, 조선시대에는 무슨 자리였을까? 더 추적해 알아봐야겠다. 그러면서 과거를 떠올린다. 오래전(늘 연도가 생각이 안 난다) 불교 공부가 하고 싶어 조계사 신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마지막 날 대웅전에서 밤을 새우다 새벽에 회화나무 주변을 돌았다. 마구 기억을 더듬으니 그때 지도 스님이 이 회화나무에 대해 뭐라고 한 것만 기억난다. 내용은 사라졌다.
다시 회화나무 수피를 본다. 이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책과 검색에 의존해본다.(언제 안 보고 체화시켜 말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글로 쓰고 말로 나누고 하면 언젠가 되겠지. 그런 날을 희망하며 또 가본다.)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회화는 한자로 괴화(槐花)이다. 나무목(木)과 귀신귀(鬼)가 붙었으니 귀신 붙은 나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귀신을 쫓는단다.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래전 언어 사용과 지금 언어 사용은 분명 다르기에.
회화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단다. 그래서 주나라 삼괴구극(三槐九棘)이 등장한다. 주나라 조정에서 삼정승을 뜻한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좌우에 아홉 그루의 멧대추나무(棘木)를 심었단다. 멧대추나무까지 파고들려면 시간이 걸려 패스한다.
여기서 질문이 들어간다. 왜 회화나무였을까? 병충해에 강하고 빨라 자라 좋은 나무 그늘을 만들기 때문에? 꽃과 열매를 이렇게 저렇게 다듬어 먹어보니 몸에 좋아서? 문헌이 있을 법하지만 나중으로 미룬다.
회화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이러다 보니 권력이 개입된다. 아무 데나 심지 못하게 하고 궁궐, 관아, 사찰, 서원, 양반 집에만 주로 심었단다. 이를 알고 요즘 곳곳에서 가급적이면 회화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고 한단다. 오염에 강해 적합한 수종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모두가 잘 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일 것이다.
곁가지로 회화나무 열매를 이용해 부적 색깔을 나타내는 염료로 쓴다고도 하고, 장원급제하면 사모관대에 꽂아주던 꽃이 회화나무 꽃이라고 하는데, 막 당기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회화나무 수피를 본다. 예술의 목적은 행복감 충족이란다. 행복감 충족은 감각 세포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이란다. 명징한 정의다. 그렇다면 숲해설로 행복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런 거는 있을 것이다. 몰랐던 나무를 이런저런 정보를 종합해 인식시켜 주는 것 말이다. 그런 게 행복감으로 이어질까? 어려운 문제다.
공부를 위해 <한국의 나무>(김태영, 김진석 공저)에 나오는 내용을 옮겨온다.
“회화나무 : 한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는 중국 원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중국의 문헌(식물지)에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라고 되어 있어 자생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수종이다. 중국명은 괴이며, 국괴(國傀)라는 별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회화나무를 애호한다. 국명은 ‘화이(중국명)나무’ 또는 ‘괴화나무’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이런 이야기가 감각 세포를 확 깨울까? 모두가 의심 없이 회화나무는 중국 원산지라고 믿고 있는데, 그래서 삼괴구극도 나오고, 역시 그래서 학자를 빙자한 권력욕을 불태우는데, 그게 근거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 이를 어찌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회화나무 수피를 다시 본다. 모든 나무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생리 작용(physiological function)만 한다. 나무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작용이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언어 사용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감정 작용도 생리 작용이다. 그런데 하나는 움직이고, 하나는 움직이지 못하기에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에는 지역을 넘는 국가 단위의 문화가 깊숙이 개입한다. 그런데 갑자기 회화나무가 중국 원산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 이런 말이 감각 세포를 확 깨울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회화나무를 처음 듣는 분들도 있을 테니. 작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