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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오스님의 천 수 경 강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
임언택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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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오스님의 흔적 1.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
;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기를 원합니다.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
(千手千眼觀自在菩薩
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多羅尼經)
*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하는 진언입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 3번 )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구업(口業)을 깨끗이 한다는 말입니다.
입으로는 항상 남을 칭찬해야 합니다.
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숨은 뜻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가지고 있습니다.
호남과 영남지방에서는 정월달이 되면
마을 수호신이라는 당산나무에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 있습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모두 모여 정성을 들이지요.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먼저 나무 주위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주위를 깨끗이 쓸고,
붉은 황토를 뿌리는 의식을 합니다.
그 붉은 황토를 뿌리는 것은
잡귀들이 붉은색을 싫어해서,
잡귀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서, 뿌린다고 합니다.
잡귀는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하얀 무명옷을 입고, 무섭게 보이는
전설 속의 귀신을 말하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전염병 등
나쁜 기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다는 의미가 크다고 봐야 하지요.
또, 절에 가면
기둥 대부분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올에서 채취한 염료(석간주石間硃)를 칠하는데,
그 역시 잡귀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답니다.
매년 동지(冬至)에
팥죽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것들이
우리 몸에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집주위에 팥죽을 뿌리고,
특히 부처님 점안(點眼)을 할 때도 팥을 뿌립니다.
옛 성현들의 말씀 중에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말이 있습니다.
‘입(口)이라는 것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門)이며,
입(口)은 좋은 음식이 들어가는 문(門)이지
더러운 것이 나오는 문(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업(口業)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바이러스가 만연하고 있는데
입도 잘 닦고, 마스크도 잘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입니다.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꼭 내가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것을
예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로 인해서
바이러스가 상대방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는 의미가 더 큽니다.
구취가 심해
옆자리 앉기가 꺼려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비록 구취가 있는 사람이라도
구취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입으로 하는 모든 말 중에서
상대방을 칭찬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이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고,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하는 것이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하는 것입니다.
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죄업(罪業)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네 가지 죄업을 말해보면,
첫째, 망어(妄語)입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허망한 말.
사실이 아니고 거짓된 말.
망령되고 떳떳하지 못한 말.
남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말.
말해서 안 되는 ,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한마디의 헛소리.
책임감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말 등을 하여
망어(妄語)의 죄업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악구(惡口)입니다.
욕지거리.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남을 성내게 할 만한 나쁜 말.
남에게 험한 말 등을 하여
악구(惡口)의 죄업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양설(兩舌)입니다.
양쪽에 다니며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말로
이간질하여 싸움을 붙이는 것과
남을 이간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
양설의 죄입니다.
넷째, 기어(綺語)입니다.
발림 말을 하고,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죄업을
기어(綺語)의 죄업이라 합니다.
이 구업(口業)을 짓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남을 칭찬해주면
구업(口業)을 짓지 않는 것이랍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하는데
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뭐냐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입니다.
이 진언은
원래 경전에서 번역하지 말라고 합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가 범어인데
뜻을 몰라서 번역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알아도 번역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불교(佛敎)는
크게 두 가지 맥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는 현교(顯敎)이고,
다른 하나는 밀교(密敎)입니다.
경전을 완전히 파헤쳐 분석하는 것이
현교(顯敎)입니다.
또, ‘경전’ 그 자체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하는 것을
밀교(密敎)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눈을 깜빡깜빡하면,
아는 사람은 그 뜻을 금방 알아봅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왜 저 사람이 눈을 깜빡깜빡하는 걸까?
눈이 아픈가? 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대한민국이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으면,
사람에 따라 ‘우리 조국’ 이라고 말하는 사람,
‘우리가 사는 땅’ 이라는 등
여러 가지 자기만의 생각을 답하겠지요.
무엇이 정답일까요?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삼천리금수강산이 온통 다 대한민국인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 조국’ 이란 한 마디가
대한민국일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대한민국을 설명해 보라 하면
뭐라고 말해야 정답일까요?
‘제주도에서 백두’까지 다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나주다.’ 라고 했을 때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나주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밀교(密敎)에서는 그냥 진언(眞言)은
진언(眞言)으로 받아들여야지
굳이 그것을 번역하고
나눌 필요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다라니’를 일러 ‘총지(摠持)’라고 합니다.
‘모두 다 감추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않는 것입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를 계속해서 읽으면 입이 깨끗해집니다.
옛 말에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듯이
모든 것이 거기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입에서부터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면
모두가 좋다 하고,
호감을 사는 이치와 같습니다.
*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신을 편안하게 하는 진언입니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 3번 )
‘모든 신(神)’이라고 했는데,
꼭 신(神)은
귀신(鬼神)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쓰는 ‘정신 신(神)’은
싱그러운 것, 아주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오방(五方)은
동(東)쪽, 서(西)쪽, 남(南)쪽, 북(北)쪽
그리고 중앙(中央)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사는 전부(全部)를 말합니다.
또 시방(十方)은
동(東).서(西).남(南).북(北)의 사방(四方)과
각 간방(間方)인 사유(四維)를 뜻합니다.
즉, 동북(東北), 동남(東南),
서남(西南), 서북(西北)에
상(上)과 하(下)를 합한 것으로
무한한 우주 전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오방(五方)은
우리 주위를 말합니다.
안과 밖. 즉, 사방(四方)이나
똑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에서
칭찬의 말을 들으니,
모든 신(神)이 편안하다.
신(神)들의 마음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내가 편안해지고자 하면
주위가 편안해야 합니다.
주위가 시끄러우면 내가 편안할 수가 없지요.
멀리 객지에 나가서 사는 자식들이
자기들 편안하면
부모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귀찮게도 하지 않지요.
나와 더불어 다 같이 편안해진다.
나와 더불어
모두가 같이 편안해져야 살맛이 납니다.
내가 가진 재물을 지키려고 생각하면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도둑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재산만큼
옆 사람도 가지고 있으면
내 재산에 눈독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 재물 지키는데 자유롭고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다 편안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나와 더불어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편안해져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 개경게(開經偈)
개경게(開經偈)는
천수경을 읽는데 경전(經典)을 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위없이 깊은 미묘한 법문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렵다.
내가 이제 이것을 받아서 보고, 듣고, 지니니,
부처님의 진실한 의미가 알아 지이다.”
이 의미가 뭐냐면,
부처님의 깊은 뜻인 무상(無上)을 말합니다.
무상(無上)은 한자로 쓰면
없을 무(無)자(字)와 위 상(上)자(字)로,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무상(無常)은 한자로
없을 무(無)자(字), 항상 상(常)자(字)로
항상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위 상(上)자를 썼습니다.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이 없다.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이 없다는 말은
광주광역시에 가면 무등산(無等山)이 있습니다.
무등산이란 의미도 최고로 높다는 뜻입니다.
무등(無等)이라고 했을 때
한자로 무리 등(等)자를
같을 등(等)로 해석합니다.
즉, 이 무등산과 같은 것이 없이
최고로 높은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무등(無等)이라 한답니다.
또,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무등등(無等等)이란 말이 있습니다.
‘같음이 없는 같음,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
그 진리와 같음’을 무등등(無等等)이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法)중 최고의 높은 법(法)을
무등(無等)이라 하고, 무상(無上)이라 합니다.
그렇게 최고로 높은 것이 천수경에서 말하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입니다.
정구업진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만 실행하면
부처님 말씀이 다 끝나버립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다 편안해져서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걱정만 덜어 버리면 되는 것이지
부처가 되어서 뭐 하게? 하고 하는데,
부처가 되면
모든 근심 걱정을 모두 놓아 버릴 수 있잖아요.
거기에 하나 추가한다면
근심, 걱정을 다 덜어버리는 일을
모든 중생과 더불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법을 무상(無上)이라고 합니다.
최고로 높은 법이기 때문에
반야심경에서 무등(無等)과 같다고 했듯이,
최고 높은 것과 같은 부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일반 대중이
불교는 교리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절차가 복잡하다.
절에 가면 그림이 무섭다는 등
여러 가지 말들을 하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불교는 어렵다. 불교는 심오하다.”
라고 쉽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을 배운 사람은
“불교는 무엇 때문에 심오하다.”
이렇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무엇 때문에’ 는 말하지 않고,
듣는 얘기로만
“불교는 어렵다. 불교의 진리는 어렵다.
또는 쉽다.”하고 하는데
그 말은 아주 잘못된 표현입니다.
‘정구업진언
(淨口業眞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의 심오한 것을
미묘법(微妙法)이라 합니다.
*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최고로 높은 것.
아주 깊은 것.
한자로 심할 심(甚)자를
‘매우, 아주’ 로도 번역합니다.
최고로 높은,
최고로 깊은 미묘한 법이라는 말입니다.
*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백천만(百千萬)’은
숫자로 ‘일백 백(百), 일천 천(千),
일만 만(萬)’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고로 오래된 것을 의미합니다.
‘천만(千萬)’은 천 개, 만 개. 하는 뜻이 아니고,
‘가장 크다’ 라는 의미입니다.
또, ‘백천만겁’에서 ‘겁(劫)’이란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 말하는 겁(劫)은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많은 것을 말할 때,
또는 얼마나 많은가의 양(量)을 물을 때
“겁나게 많다.”라고 말들 합니다.
또 겁(劫)자를 길게 말할수록
더 많은 양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분별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겁(劫)’이라고 한답니다.
그런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부처님 법이란 의미지요.
겁이 지나도 만날 수 없는
부처님 법을 만나는 것을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합니다.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눈먼 거북이가 나무를 만나는 것과 같다.
눈먼 거북이가
태평양처럼 넓디넓은 바닷속에서
천년을 살다가 바다 위로 떠올라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고,
그 나무에 뚫린 구멍에 목을 집어넣고
나무에 의지하면서
세상 구경을 한다는 이야기를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한답니다.
얼마나 어려운 확률이겠습니까?
태평양과 같이 넓은 바다에서
나뭇조각을 만난다는 것도 어려운데
구멍이 뚫린 나무를 만나
그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
세상 구경을 하기처럼 어렵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만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나무를
바다에서 만나는 것과 같이
어렵다는 말씀이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입니다.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좋은 법문(法門)을 해줘도,
법문(法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좋은 법문(法門)을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지닌다는 것이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입니다.
맹구오목(盲龜遇木)처럼
만나 뵙기 어려운 法門을 이제 듣고, 보았으니
내 마음속에 두고 지닌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에
‘수지독송(受持讀誦)’이란 말이 있습니다.
‘수지(受持)’는 받고,
즉 받아서 읽고, 외우고,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는
내가 보고, 듣고, 수지한다.
또 ‘수지’한다는 것은 지닌다. 받아 가진다.
받아 가지면서 그냥 받아 가지기만 하면 뭣해.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여래의 진실한 뜻,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참다운 법을 여는 진언입니다.
법장(法藏)이란?
부처님의 법(法)을 열어주는 것.
부처님 법(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옴 아라남 아라다 ( 3번 )
모든 경전(經典)에서
독송(讀誦)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해서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개경게(開經偈),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까지 독송한 다음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불교 의식에서
어느 경전(經典)을 독송(讀誦)하든
이 순서가 기본입니다.
항상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하고,
진실하게 부처님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 후(後)에
부처님 말씀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모든 경전(經典)은
그냥 길 가다가
길동무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군가와 길을 걷다가
“이것이 무엇이오?” 라고 물으니,
“아! 그것은 그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부처님 경전은
선정(禪定)에서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켜
일심불란(一心不亂) 한 경지인
삼매(三昧)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하는데
애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헐떡하면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를 붙잡고
“이것이 뭐이냐?” 라고 물으면,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정답을 알려줘도 빨리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해할 수가 없지요.
아마도 묻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헐떡거리는 호흡도 좀 조절하고,
몸도 좀 편안히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해야지 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바로 선정(禪定)이라 합니다.
이렇게 선정(禪定)의 상태에서
정구업진언부터
법장(法藏)이 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
千手經 천수경한문
《千手經 천수경》
淨口業眞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3번)
開經偈
개경게
無上甚深微妙法ᆞ 百千萬劫難遭隅 .
무상심심미묘법ᆞ 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修持ᆞ 願解如來眞實義 .
아금문견득수지ᆞ 원해여래진실의
開法藏眞言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