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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향일암’과 ‘오동도’를 찍고
남해 일원
- [2001년] 신년 이벤트 행사철인 겨울방학이 다가오다.
그동안 회원들이 윤번제로 운행하는 자가운전의 부담 때문에 겨울철 행사는 조심이 되었다.
추운 계절인 관계로 도로 여건상 북쪽 보다는 비교적 따뜻한 남해안을 찾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전라남도 여수에 소재한 ‘향일암’과 남해 일원을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하였다. -
☞ 2001년 1월 28(일) ~ 29일(월) 1박 2일 겨울방학 이벤트 탐방
미국의 뉴스채널인 CNN이 뽑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에 여수 돌산도 ‘향일암’이 포함이 되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동오산악회’ 연간 계획의 일환으로 전라남도 여수시에 소재한 ‘향일암’과 남해일원을 찾았다.
6명의 회원이 참여 하였으며 2대의 승용차를 이용하였다.
♣ [향일암]은?
여수반도에서 돌산대교로 이어진 전라남도 남단의 돌산도에는 여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출 풍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향일암]이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이 절은 화엄사의 말사다.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가 있다.
'향일암'은 해를 향해 있다는 뜻이다
이 암자를 품고 있는 산이 ‘금오산’이다.
향일암에는 금거북이의 전설이 있다.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뵈는 야트막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머리이고 향일암이 있는 자리가 거북의 몸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산 이름이 쇠 금(金)자 , 거북 오(鰲)자를 쓴 금오산이다.
이러한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꾸며주는 것이 이 일대 바위의 무늬다.
바위마다 한결 같이 거북의 등 무늬를 닮은 문양이 나 있다.
향일암에서 백미를 이루는 경관은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관음전은 대웅전 뒤쪽으로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대웅전 뒤에 있는 흔들바위는 어른이 흔들거나 아이가 흔들어도 똑같이 흔들리는데 설악산 흔들바위 보다 조금 작은 이 바위는 흡사 경전을 펼친 모양이라 이를 한번 흔들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흔들바위 입구에서 5분쯤 비탈길을 오르면 곧 시야가 확 트이는 바위지대에 이른다.
촛대바위, 기둥바위 등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경관은 장관이다.
1984년에 문화재 자료 제 40호로 지정 하였다.
▶ 1일차 : 28일(일)
여수시에 도착을 한 후 중식을 해결한 우리들은 [돌산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에 들어가기 위하여 ‘돌산대교’를 통과하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재촉하여 일출이 일품이라는 목표지점인 ‘향일암’ 입구에 도착했다.
향일암으로 가는 입구는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길이다,
길 양쪽에는 갓김치를 비롯하여 맛있는 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고 시식과 명함을 가져갈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맨입에는 짜기 때문에 여러 집의 김치를 모두 다 맛을 볼 수는 없다.
향일암은 해발 323m인 ‘금오산’이라는 작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와 율림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향일암에서 바라다 본 남해안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특히 발밑에 위치한 ‘임포마을’은 머물고 싶도록 포근한 포구마을이다.
아기자기한 ‘향일암’을 여유롭게 돌아본 후 여수로 되돌아 나올 때는 자갈로 이루어진 ‘무슬목 해수욕장’을 통과하다.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모래로 되어 있는데 비하여 이곳은 바닥이 잔자갈로 되어 있어서 해수욕을 해도 발바닥에 모래가 묻어나는 일이 없어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류의 해수욕장은 나의 외가댁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관성리 부근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여수로 나오기 위하여 어두워진 거리를 달려서 ‘돌산대교’를 통과하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의 야경이 대부분 아름답듯이 이곳 돌산대교의 야경 또한 일품이다.
▶ 2일차 : 29일(월)
늦은 아침을 해결한 우리들은 여수에 들리는 사람들이 한번 씩은 찾아가는 [오동도]를 찾았다.
방파제를 따라서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을 지나서 섬에 도착하였다.
겨울이면 대부분의 식물도 휴면기에 들어가는데, 유독 ‘동백나무’는 붉디붉은 예쁜 꽃을 피운다.
고목이 된 ‘동백나무군락지’를 둘러보는 재미는 ‘오동도’를 찾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이 꽃을 보는 순간 나는 아주 예전에 실물 꽃을 보기 전에 사진으로만 본 ‘동백꽃’이 생각났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노래에 등장하는 동백이 그 동백이라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고, 어릴 적 마을 어른들이 마시던 소주 중에 [동백소주]라는 술이 있었다.
그 소주병 상표에 등장하는 그림이 [동백꽃]사진이었는데 이 순간에 왜 그 그림이 생각이 날까?
아마도 애주가 흔적을 남기려고 술병 얘기가 나온 것이리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리하야 이 순간에 술 얘기를 꺼낸 주책으로 [보너스 스토리]에서 ‘동백소주’얘기를 다루고자 한다.
♣ [오동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 속한 섬이다.
여수시 동남단에 조성된 신항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1935년에 준공된 연장 1,213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다.
멀리서 볼 때 마치 오동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여 오동도라 했다 하나 지금 오동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신이대나무(시눗대라고도 함)가 섬 전체에 자생하여 죽도라고도 부른다.
섬 전체가 높이 10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지를 이룬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소라바위·병풍바위·지붕바위·코끼리바위·용굴 등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온난하고 비가 많은 지역으로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자생한다.
동백나무·신이대나무·후박나무·예덕나무·광나무·돈나무 등 총 193종의 수목이 자란다.
특히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군락지를 이루어,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절정을 이루는데 이 시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이 섬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 연병장으로 이용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신이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여수시박물관을 비롯하여 동백림·죽림 등의 식물경관과 기암절벽의 해안경치 및 해돋이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 1968년 일찍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었고, 1969년 국유지에서 시유지로 변경되었다.
섬 남단에 오동도 등대가 있으며 면적은 0.13㎢, 해안선길이 14㎞이다.
♣ 보너스 스토리 : [동백소주]는?
소주의 종류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가 있다.
희석식 소주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대 말 조선시대였다.
희석식 소주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며 대중 사이에 서서히 퍼져나갔다.
1909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법 발표 이후로 1910년부터 고구마로 주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직접 주정 생산을 시작했다.
1919년 6월 평양에 한반도 최초의 희석식 소주 공장이 세워졌고, 10월에는 인천에 남한 지역 최초로 ‘조일 양조장’이 세워졌다.
현재의 진로소주 전신인 ‘진천양조상회’는 1924년 설립되었다.
이렇게 문을 열기 시작한 희석식 소주 덕분에 증류식 소주는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가게 됐다.
일제는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인해, 1940년부터 조선에서는 탁주를 제외하고는 주류의 전면 배급제를 시행했다.
에탄올을 2차 세계대전에서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 내 모든 소주 공장에서 알코올 연료 생산을 의무화했고 생산된 에탄올은 징발했다.
그래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던 한반도 내의 소주 공장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주류산업이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에 6.25로 인하여 또다시 무너지게 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다른 산업들처럼 서서히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증류식 소주는 재료 부족과 높은 생산 가격으로 인해서 생산에 어려움을 겪게 된 반면에 희석식 소주는 낮은 생산 가격을 무기로 대중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1965년에는 부족한 식량 사정으로 인해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양곡관리법]이 반포되었다.
막걸리나 증류식 소주를 비롯한 전통주는 대부분 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증류식 소주 등 기존 주류의 대체제로 희석식 소주가 떠오르게 되었다.
쌀 대신 고구마나 감자 등의 주정을 발효시키면 가격을 절감하여 술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30여 년이 지난 1995년에 와서야 풀리고, 안동소주 등 일부 증류식 소주의 판매가 허가되었다.
소주의 도수는 25도가 주류였고 그 이하의 소주는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면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로가 1998년에 제품화시킨 23도의 ‘참이슬’이 순식간에 전국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순식간에 전국에서는 낮은 도수의 소주 신제품이 앞 다투어 쏟아졌다.
오늘날에는 향을 집어넣은 술들은 14도까지 내려가서 20도 이상의 술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낮은 도수의 소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건강에 좋다는 핑계와 여성 주당들을 노려서 도수를 점점 떨어뜨려 매출 증가와 원가 절감으로 이익을 극대화 한다는 비판의 의견이 있는 한편, 취하는 것이 술을 잘 마시는 것이라는 기존의 술자리 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라는 의견도 있다.
전자의 입장은 보다 많은 알코올 섭취를 요하는 주당들에게서 나오는 반면 후자와 같은 입장은 주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사실 젊은 사람이나 여성 주당들은 술을 많이 마시기 싫어하고 옛날과는 달리 특색이 있는 소주를 찾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대부분 후자의 의견에 가깝다.
술의 도수가 떨어지면서 여러 가지 첨가물을 집어넣는 바람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2013년부터는 도수 내리기 경쟁이 더 심화되어 17.5도로 떨어지더니 2015년에는 17.2도, 2015년 8월에는 급기야 16.9도까지 내려갔다.
그러니 예전 25도 소주 2병 주량의 꾼들은 17도짜리 2병을 마셔도 취하지를 않으니 더 마시게 되고 그러다보니 결국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게 된다.
소주가 대중의 술로 자리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고려 말 몽고군의 침입 때, 그들이 주둔했던 개성과 안동, 제주 등지에 소주가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안동에서는 뼈대 있는 가문의 종부에 의해 ‘안동소주’가 명맥을 이어왔고, 그와 함께 지역의 소주 업계가 합동으로 설립한 경북소주공업(주)이 내놓은 ‘제비원소주’가 한 시절을 풍미했었다.
증류식으로 제조하는 소주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황제나 제후가 마시던 최고급 술이었다.
소주를 다른 말로 한주(汗酒)라 했었는데, 땀이 나는 술이란 뜻이다.
또한 허약한 사람에게 고아 주거나 환부를 소독해 주는 약으로도 인식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민가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을 사치스런 일로 여겨 금지했었다.
6.25가 끝난 다음에는 소주의 춘추전국 시대가 다시 열렸다.
대구에서는 풍국주정(이병철)의 삼성, 명성양조장(권의호)의 명성, 대구음료(박기수)의 금성, 삼미소주(이석룡)의 삼미, 협화소주(최원달)의 칠선주, 산격양조(김재소)의 백구 같은 업체들이 패권을 노리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백구소주], [동백소주], [금복주]의 3파전이 벌어졌다.
이중 백구소주의 인기가 가장 좋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백구소주를 즐긴다는 신문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금복주는 1957년 대구시 달성동에서 삼산물산사로 시작하였다.
처음 출시한 상표는 ‘진성소주’였으며, 1960년 금복주의 상징인 복영감 마크가 찍힌 복주(福酎)가 등장했다.
그러자 경쟁업체에서
“복주라니, 자기들 소주만 복이 있고 우리 소주는 복이 없다는 말인가?”
하고 반발하자 1963년 금복주로 이름을 바꾸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와중에 금복주는 상품을 주는 등으로 가장 기민한 판촉행사를 벌였다.
금복주는 홍보 판촉에 남다른 순발력을 보였다.
제1탄은 ‘퀴즈건 광고’였다.
병마개 안에 들어 있는 [최고 소주는 금복주]라는 퀴즈건 8개를 모아오면 고급 스테인리스 식기나 자개 상을 주었는데 주부들이 경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점유가 높아졌다.
제2탄은 ‘식당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름난 음식점은 물론, 뒷골목의 구이 집까지 판촉 사원들을 보냈다.
간판이 귀하던 시절이라 필요하면 홍보용 간판을 달아주기도 했었다.
1969년에는 MBC방송국과 합작으로 인기 연예인들을 불러 도민 위안잔치를 열어 경품을 나누어주었고, 뒤이어 ‘코로나 자동차’를 경품으로 걸고 홍보 판촉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전속 모델의 등장’ ‘일곱 잔 작전’ 같은 다양한 홍보 전략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백구소주도 [전신만신 백구소주]라고 해서 병뚜껑 속에 적힌 글자 8개를 모아오면 상품을 주는 등의 판촉행사를 벌였다.
이에 뒤질세라 [오나가나 동백소주]도 홍보전에 뛰어들었다.
병뚜껑 속에 들어있는 8자를 모아오면 경품을 주는 식이었는데 선수를 치고 나간 금복주를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래 경품내역을 확대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특상이 '코로나 택시'이고 1,2등은 '금성 Tv'와 '금성 트란지스터라디오'다.
'금성'은 오늘날 'LG'를 말한다.
'삼성'은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964년에는 심각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을 원료로 술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금복주가 판촉의 힘으로 약간 앞선 시기인 1970년대 초에는 ‘1도 1소주’ 정책을 통해 시장을 통폐합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지역을 대표한 10개의 대표 소주만 남게 되었는데 대구권은 [금복주]가 남게 되었다.
따라서 금복주 외의 모든 소주 회사들이 정부시책으로 문을 닫으면서 대구·경북은 금복주 판이 된다.
곡주 브랜드인 [경주법주]도 물론 금복주 계열이 되었다.
퇴근 길이다.
허름한 술집에 둘러앉은 나를 포함한 애주가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랜다.
웬만큼 취기가 오르면
“마지막으로 한 병만 더!”
하면서 호기를 부린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마지막 병은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하면서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런가 하면 시인 백석은
‘흰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 한다.’
라고 토로했다.
또한 양명문은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라고 소주를 노래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이 '남해군'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정년퇴임을 한 지금도 [하모니카 동아리]에서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청강’님이 갑자기
“이곳까지 왔으니 제가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있으니 잠시만 그곳에 들렸다가 가시죠?”
라고 한다.
사연인즉 초임 발령을 받은 이곳 남해에서 예쁜 아가씨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처가댁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단다.
남의 처가댁 방문에 우리들은 우연찮게 동행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와!
언제 연락을 해두었는지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의 저녁상을 대접 받고 말았다.
연락을 받지 않고는 그렇게 귀한 음식들을 짧은 시간에 마련하기는 쉽지가 않았으리라!
남해안 토속적인 음식을 비롯하여 생전 처음 접하는 귀한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을 받은 것이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남의 장모님 감사합니다!”
암튼 남의 장모님이 차려준 저녁상을 거하게 받고 보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남의 장모님 파이팅!
장모님 덕분에 귀한 대접 잘 받았습니다.
Ps : ‘청강님’ 잘 계시지요?
하모애에 등록은 했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상견례가 미루어져서 많이 아쉽습니다.
하루빨리 만날 뵐 것을 기대하며 허락도 없이 ‘남의 처가댁’사연을 올리게 되어 조심스럽습니다.
평소의 너그러우신 인품처럼 이해를 해 주시리라 믿으며 기냥 탑재를 하기로 했심다.
첫댓글 송이골님 기행문 보면 기가 팍 죽습니다.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하셨을까?
감동 먹으며 쪼매만 더 젊었다면 가보고싶다 부러워하며 읽습니다.
참으로 멋지십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과감하게 도전해 보세요^^^
송이골님이 저의 처가집의 기억을 이렇게 좋은 글로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동오 산악회 회원(포항동부초 5학년 동학년 모임) 맴버들과 추억들이 그리워지네요.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주셔서 더욱 갑사합니다.^^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은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