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복음 21장 20-22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1.내 멋대로 결정하는 것의 위험성
창세기 12장 10-12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애굽으로 내려간다는 의미 이사야 31장 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아브람이 이 상황을 이전부터 생각하고 계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3절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25년 후 창세기 20장에서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창세기 20장 1.2절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2.하나님과 더불어 풀어가는 인생
나의 믿음 크기의 현주소를 알아차리는 리트머스 시험지
헬라어의 가정법 7가지 헬라어 가정법이 있다.
①현재 중간태(수동태) 가정법 : 예)ωμαι, ῃ, ηται, ωμεθα, ησθε, ωνται
②제1부정과거 능동태 가정법 : 예) ωσω, σῃς, σῃ, σωμεν, σητε, σωσι(ν)
③제1부정과거 중간태 가정법 : σωμαι, σῃ, σηται, σωμεθα, σησθε, σωνται
④제2부정과거 능동태와 중간태 가정법: 제1부정과거 가정법과 똑같이 변화한다. 어간은 제2부정과거 어간에 형성
⑤부정과거 수동태 가정법 : θώ, θῇς, θῇ, θώμεν, θήτε, θώσι(ν)
⑥ειμι의 현재 가정법 : ὦ, ᾖς, ᾖ, ὦμεν, ἦτε, ὦσι(ν)
⑦현재 가정법 : 동작의 계속이나 반복 개념이 있을 때 사용, 부정과거 가정법:계속이나 반복관념 없이 1회적 동작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인다.
⑧ου μη : 가정법에서 미래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사용된다. 가정법의 1인칭 복수는 권고로 쓰인다.
⑨목적에 쓰이는 가정법 : 목적은 ἵνα + 가정법으로 표현한다.
⑩미래 조건으로 쓰이는 가정법 : 미래 조건은 εαν + 가정법을 쓰고, 기타 조건은 ει + 직설법을 쓴다.
⑪사실과 반대되는 조건문은, ει + 제2시상 직설법을 쓴다.
야고보서 1장 2절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쁘게 여기라”
헬라어 제1 수동태 가정법 확실히 일어나는 것을 가정할 때 쓰이는 용법 “내일 아침에 해가 뜨거든”이라는 표현처럼 여러 가지 시험은 당연히 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야고보서에는 이런 표현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1장 5절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기서 "주시리라"도 제1 수동태 가정법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그리하면 주시리라”에 주안점을 두어 난 믿음이 좋아. 하나님의 말씀에 문자 그대로 실천 하는 사람이야 하면서 밑줄 긋고 형광펜으로 칠하면서 거기에만 초점을 둔다.
그러나 대부분은 행위를 강조한 동사 “주시리라“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행간에서 야고보 선지자가 말하고자하는 진짜 의미를 잊어버린다. 여기서 주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법적인 방법, 인간관계를 통해서, 돈으로, 즉 동서남북 등의 방법을 찾다가 최후로 하늘의 방법을 구할 때가 많다. 야고보도 그랬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 이를 경험한 야고보는 :그래 네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이 안되면 나에게 오너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를 알았고 경험했고 그도 하나님께 마지막 방법으로 구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최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대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아침 해가 반드시 뜨듯이 인간사에서 시험이 반드시 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라 하신다.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말씀에서 가장 복된 것은 문제를 풀어줄 아무 사람 아무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뭘 주세요? 해결책요? 우리는 여기서 해결책이라 읽는다 하지만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너의 내면 문제가 해소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하나님께’라는 부분은 작은 글씨로 쓰고
‘구하면 주시리라’에만 자꾸 초점을 둔다.
어린아이에게 구하는 것을 다 주는가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미숙할수록 구함을 100% 충족시켜주지 않아야 한다. 진정한 부모라면 그들이 원하는 단 것, 차가운 것 위험한 것을 주지 않는다. 구하는 대로 다 주시는 부모라면 진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다. 어린아이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필요을 해소 시켜준다.
우리도 자녀가 구하는 대로 다 주지않는다. 구하는 대로 막 주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길 아닌가?
“구하면 주시리라”라는 이 광의적인 말씀은 우리가 미숙하면 미성숙할수록 응답하지 않으시는 응답으로 받아야 한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쓱쓱 문지르면 펑 하고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게 아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다. 고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의 문제를 나눌 곳이 아무 데도 없는 그 때에도 내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 계신다는 것과 내 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
즉 복음인가? 복음은 인간이 볼 때 좋고 아름다고 훌륭하게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과 어떻게 하면 함께할 수 있는가이다. 그게 고난의 길이든 즐거운 길이든지 상관없다. 매사에 하나님의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자 연습의 과정이다.
3, 하나님의 삶의 영역 안에 놓여진 삶의 중요성
하나님의 영역아래의 삶을 사는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일상의 모든의 삶이 명료하게 정돈이 되기 때문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역안에 살았을 때는 그의 삶전체가 하나님께 묻는 삶이 었다.
사무엘상 23:2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
사무엘하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
사무엘하 5:19 "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바다의 파도를 보았는가 밀물때 저 멀리 있다가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파도는 평상시에는 절데로 어느 정도 이상 자가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만약 파도가 자기 영역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본의 관동대 지진때 파도의 반란을 보지 않았는가 그것을 쓰나미(津波)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