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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서울 출생. 건설업.
∥당선작
물수제비뜨기
면장갑을 벗어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저절로 고개가 갸웃했다. 퇴근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더 남아있는데 사장의 호출이라니. 무슨 일일까. 나는 작업복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에는 사장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저씨가 일 시작한지 대략 이 주일 정도 된 것 같더군요.” 나는 긴장을 떨치지 못하고 사장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사장은 이런저런 공장 형편을 장황하게 설명하더니 슬쩍 구렁이처럼 담을 넘었다. 해고였다.
이 주일 전 나는 바로 이 사무실, 이 자리에서 사장과 면접했었다. 생활정보지에서 ‘초보자 가능’이란 문구가 적힌 구인광고는 모조리 전화해댔지만 열이면 열, 대답은 모두 같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쉰일곱의 늙다리가 공장에서 초보자로 일하기에는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돈이 필요했다. 일자리가 절실했다. “아직 건강합니다. 한번 일하게 해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대팻밥처럼 돌돌 말리는 비애가 목덜미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밑동이 썩어 버팀목에 기댄 고목처럼 과거의 감상에 젖어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십 대 중반쯤, 땅딸막한 몸집의 수더분한 인상을 풍기는 사장은 대답 대신 맞은편 책상에 앉은 그의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저씨, 여기서 일하게 되면 오래 해야 돼요. 며칠 하다가 관두면 우리에겐 무척 손해거든요.” 사장의 아내는 가뜩이나 좁아서 답답해 보이는 미간을 잔뜩 좁혔다. 전체적으로 강퍅해보이는 인상에 양옆으로 째져 올라가 붙은 눈은 몰인정하게 보였다.
사장은 여자의 말이 끝나자 나에게 포장반에서 일할 것을 지시했다. 취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생활정보지를 이 잡듯이 뒤지지 않아도 되었다. 매번 용도폐기에 근접한 고령임을 확인해야 하는 일은 뼛속까지 고통을 심어놓았다. 이제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기뻤다. 왜 살아야 하는지 캐어물어볼 틈도 없이 경사진 언덕에서 내팽개쳐진 듯 미끄러져 내려오던 요즈음이다. 붙잡고 몸을 의지할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내리막을 미끄러지며 점점 더 붙어가는 가속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나도 모르게 감격을 누르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사장을 향해 깊게 허리를 꺾었다. 나는 큰절이라도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장반에서는 편직과 가공 단계를 거쳐서 완성품이 된 양말을 종이 상자에 담는 일, 포장된 상자를 창고에 보관하는 일, 그리고 출하 시에 트럭에 싣는 일 등을 주로 했다. 원사를 하역하여 창고에 보관하는 것 역시 포장반에서 하는 일이었다. 어지간히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에 삼십 년 가까이 책상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르고 쌓는 따위의 일이 쉽게 익숙해질 리 없었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아무나 할 것 같은 일이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포장된 박스의 중량이 가볍지 않은데다가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돈하는 일은 자칫하면 뱅글뱅글 맴을 돌리기 십상이어서 기운을 곱절이나 빼내버렸다. 그러니 힘에 부쳐 속도가 더뎌지고 포장반 선임격인 천씨와 손발을 맞추려고 무리하다가 헉헉대기 일쑤였다. 중국교포인 천씨의 눈치 역시 힘든 일만큼이나 감당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세모꼴의 얼굴에 수염이 몇 가닥밖에 없는 그는 어딘가 교활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은근히 나의 잘못을 지적할 때면 그의 눈매는 회초리처럼 매서워졌다. 그가 비록 경력자이긴 했지만 중국교포라는 처지를 염두에 둔 때문인지 언성을 높이는 따위의 행동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초리는 나를 압도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사장의 아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서 뒤에서 나를 지켜보곤 했는데 그럴 때는 진땀이 흘렀다. 고되고 익숙하지 않은 일과 여러 개의 날카로운 눈초리들. 그러나 미끄러져 내려오며 붙은 가속을 제어하는 브레이크 역을 해내고 있으니 참아야 했다. 더러 참기가 어려워 지쳐갈 때면 나는 속으로 곱씹었다. 공무 팀 김 이사는 죽었다. 이젠 김씨다.
“제가 아직 서툴다는 거 인정합니다. 이제 보름밖에 안 됐으니 차차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기회를 좀 주시면……” 내 음성이 기어들어갔다. 일자리를 잃은 다음의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제발, 마음을 바꾸십시오! 사장은 TV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나의 시선을 피했다.
“형편이 그런 걸 어쩝니까! 힘이 덜 드는 일자리도 있을 테니 찾아보시지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장은 자신의 의지가 변할까봐 두려운 듯 서둘렀다.
“급여지급일이 20일입니다. 보름 후니까 그때 급여 정산해서 드리지요.”
나는 탈의실에 들러 비닐봉지에 작업복과 신발, 모자 등속을 챙겨 담고 도망치듯 공장을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귀까지 먹먹해졌다. 공장을 벗어나 길게 이어진 도랑을 따라 무작정 큰길을 향해 걸었다. 걷는 내내 흐르는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생각들이 풀려나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디서부터 어떤 생각을 먼저 해야 풀려지려나. 도무지 생각의 단초가 잡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걸음도 자꾸만 허청거렸다. 나는 일부러 도랑 옆에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지금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그리고 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이 내가 생각해야 할 첫 번째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도랑을 따라 걷기만 했다.
도랑을 벗어나 큰길에 이르러 버스종점에 다다랐다. 공장에서 쫓겨난 몸이고 여길 벗어나려면 버스에 타야 한다는 생각을 간신히 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초점 잃은 눈을 그저 두리번거렸다. 어깨는 자꾸 땅으로 꺼져가고 서 있는 것도 힘이 부쳤다. 그러던 참에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단추가 채워지듯 딸칵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오늘이 아내의 1주기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나름대로 어떻게 아내를 위로해야 좋을지 궁리했었다. 비록 1주기였지만 격식을 차려야 할 처지도 아니었다. 수선을 피운다고 해서 떠난 아내가 달가워하지도 않을 터였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아내의 고마움을 되새기기로 마음먹었었다. 하필이면 오늘 쫓겨날 건 뭐람! 느닷없는 해고통지에 혼비백산된 나는 버스종점에 이르러서야 아침에 세워두었던 계획을 기억해낸 것이다.
아내의 1주기. 아들 진호와 함께 아내를 위로할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아내를 위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진호는 대학을 휴학하고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1주기 운운하며 아내의 죽음을 상기시켜서 그 애의 원망 어린 눈초리를 받아내는 일은 견디기 어려웠다. 엄마의 죽음이 전적으로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는 진호에게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나를 향한 진호의 눈초리가 날이 갈수록 차가워졌고 마치 살을 벨 것처럼 시퍼레져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게다가 공장에서 불의의 내몰림까지 당하다니.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땅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나는 종점에서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실내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소주잔 두 개를 마주놓고 한 잔씩 채웠다. 이건 당신 것, 이건 내 것. 술이 채워진 잔을 마주놓고 가슴으로 말했다. “여보! 오늘이 당신 떠난 지 한 해가 되는 날이오. 우리 술이라도 한 잔씩 나눕시다.” 일자리를 잃었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어김없이 날아오는 청구서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분량만큼 피가 말랐다. 줄이고 줄여서 방 한 칸짜리 지하 월세방으로 옮겼지만 소득 없이는 헤쳐갈 길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일자리가 빚 독촉은 겨우 피하게 해줄 것 같아서 몸이 저리도록 기뻤던 때가 불과 보름 전인데. 무슨 일이 이토록 꼬이나. 정말 코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전 재산을 날렸을 때도 이처럼 막막하지는 않았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여보! 우리 한 잔 더 합시다.” 나는 아내 것까지 두 잔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나는 토목회사에서 공무담당으로 일했다. 서너 차례 직장을 옮기기는 하였지만 삼십 년 가까이 일했으니 어엿한 가장 노릇하면서 평탄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던 두 해 전, 어느 날이었다. 나의 직장 선배였던 최 이사가 찾아왔다.
“김 이사, 아직 나이도 창창한데 퇴직했다고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나하고 사업 같이 안 해볼 텐가? 떼돈은 못 벌어도 봉급쟁이에다 댈 것은 아니니까.” 최 이사는 연립주택을 신축하여 분양하는 사업을 했다. 건축비 단가나 분양가격이 빤하니 예전처럼 부풀릴 수는 없지만 토지 구매만 잘한다면 많은 이익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시행한 사업들을 열거하며 어디에서 몇 억, 어디에서 몇 억씩 건졌다고 자랑하였는데, 마치 여울에서 뜰채로 물고기 건지듯 건져 올리는 것이 돈이라는 투였다.
“자네가 퇴직금이나 연금으로 생활하겠다고 하면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예순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면 폐인 되기 십상 아니겠어? 생각해보게, 인생이 아깝잖아. 봉급쟁이 끝내고 기 한번 펴볼 좋은 기회야. 이 업계는 나이가 없어. 칠십 넘기고도 씽씽하게 사업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 막말로 집 못 팔면 가지고 있어도 두둑하잖아? 슬슬 시간 보내면서 돈 만지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니까.” 최 이사는 열 오른 쇼핑호스트처럼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입에 침을 물었다. 그는 목이 마르는지 물 한 컵을 벌컥 들이켜고는 손으로 입에 묻은 물을 쓰윽 닦았다. 그러고는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두 눈이 실뱀처럼 가늘어지더니 음성이 한껏 낮아졌다.
“내가 여태껏 혼자 곧잘 해왔는데 왜 자네를 끼우겠나? 할 말은 아니지만 자네 위해서 그러는 거야. 선후배 좋다는 게 다 무언가!” 그의 두턱진 목덜미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한 직장에서 상사로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평판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업하다 보면 더러 나쁜 평판도 따르게 마련 아니겠나 싶었다. 나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그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살던 아파트를 처분해 전세로 옮기고, 저축통장을 털고, 퇴직금 등을 더해 적지 않은 자금을 모았다. 사업을 시작하면 집이 몇 채가 될 텐데 그깟 몇 달 동안 전세로 산다고 해서 기죽을 일도 없었다. 최 이사는 공인중개사를 동반하고 토지구매 작업에 착수했다. 토지 구매가 끝나면 사업허가를 받고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퇴직 후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최 이사는 구원의 손길을 건넨 인도자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매우 고마운 사람이었다.
잘 되는 일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문제를 내포한 일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계획이 지연되며 시간이 질질 끌렸다. 우려를 제기하는 나에게 최 이사는 별일 아니라고 둘러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와 공인중개사가 작당을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둘은 동시에 행방을 감추었다. 연결할 수 있는 연줄을 모두 동원하여 그들의 행방을 추적하였지만, 미리 계획된 일을 저지른 자들이 적절한 도피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들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고 꽁꽁 숨어버렸다.
사기사건은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벌어졌고, 내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더구나 피해자의 신분으로……. 원망과 자학으로 뭉쳐진 철퇴로 머리통이 깨지도록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말았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나는 결국 경찰을 찾았다. 나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지만 경찰에게는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고소사건에 불과했다. 내가 공권력을 독점할 수 없었기에 분배된 공권력의 도움 받기를 기다리는 것은 홀로 도피자들을 찾아다녔던 만큼이나 지루하고 힘겨운 일이 되었다. 숯덩이로 변한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권력은 쉽게 그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옷장 속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던 영화처럼 나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다만 그 새로운 세계는 고통과 분노와 절망이 뒤엉킨 지옥과 같은 세계였다.
소유한 모든 재산이 일거에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작별의 인사도 없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없이. 최저 생계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리자 전세금을 빼내 월세로 옮겼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그 고민도 행복했으리라. 그 와중에 심약한 아내는 끝내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말이 조금도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나의 인생이 뒤틀리고 어그러지며 절망의 무덤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두 해도 되지 않았다. “여보, 내킨 김에 우리 한 잔 더 합시다.” 나는 다시 술잔을 채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이 폐를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티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목멘 음성을 감추려고 헛기침을 몇 차례 뱉었다.
“아저씨! 티노예요. 공장 그만두었다는 얘기 들었어요.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말끝을 흐리는 티노의 음성이 평소와 달리 한풀 꺾여있었다. 나는 대답할 마땅한 말도 없고 맞장구 할 기분도 아니어서 듣고만 있었다.
“내일 퇴근하면 나하고 아저씨하고 만나요. 송별회해요.” 그의 음성에서 섭섭함이 묻어났다. 티노는 공장에서 알게 된 필리핀인이었다. 오래전 나는 필리핀에서 약 2년가량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필리핀에서 항만공사를 시행할 때 공무담당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티노는 그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매우 붙임성 있게 굴었다. “저는 14년째 한국에 있어요. 지금은 불법체류자 신세지만요. 하하!” 마른 체구에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티노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고국에는 어머니와 동생들 여섯이 있는데 막내는 그가 필리핀을 떠날 때에는 세상에 없었다면서 씨익 웃었다. 그럴 때면 썩은 이빨 두어 개가 드러났다.
대개의 필리핀인들이 낙천적이고 친절하듯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해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할 때에는 그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티노가 가장이 되었으니 자연히 그의 귀국은 연기되고 불법체류자의 신분도 더불어 연장되었다. “동생들도 보고 싶지만, 엄마가 가장 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으니……. 한 번만이라도 엄마를 본다면 십 년은 더 견딜 수 있을 거 같아요.” 서른일곱 살의 사내가 아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티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힘든 일도 잊게 되고 꼭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번민도 사라졌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술 실력이 대단해서 나와 두어 차례 어울리기도 했다. 주로 그가 머무는 공장의 기숙사에서 어울렸는데 긴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갔기 때문이었다.
티노는 배달할 때만 운전기사 윤씨와 동승해서 외부 출입을 했다. 공장이 밀집한 공업단지에는 주기적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들이닥쳐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불안해요. 우리 공장에도 그들이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마침 배달 중이라 피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쯤 필리핀에서 일거리 찾느라 헤매고 있을 거예요.”
저녁 무렵 티노와 약속장소로 갈 차비를 하는데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필리핀에 있는 진희의 전화였다. 나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후배에게 티노 어머니의 비자 발급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후배의 아내 진희는 대사관에서 영사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 내가 필리핀 근무 당시 어려운 처지였던 유학생 후배를 필리핀에 정착하도록 도운 일이 있었다. 그 계기로 교민이었던 진희와 후배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늘 고맙게 여겼다. 진희에게서 들은 바로는 티노 어머니는 비자발급에 다소 부적격했다. 재정적으로 발급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귀국을 보장할 장치가 미흡했다.
“아저씨, 저 진희에요. 티노 엄마 비자가 발급될 것 같아요. 제가 잘 아는 필리핀 사람이 재정보증을 서주겠대요.” 진희의 명랑한 음성을 티노가 들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의 음성이라고 했을 것이다. 출입문을 등지고 식당 구석에 앉은 티노에게 곧바로 진희와 통화한 내용을 전했다. 티노는 깜짝 놀라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더니만 급기야 눈물을 글썽였다. 그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략 이 달 말쯤 입국할 수 있단다.”
“아저씨 같은 분 처음 만나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닦아냈다. 살집이 없어서 유난히 불거진 어깨가 흔들렸다. 잠시 후 흥분이 가라앉은 티노가 씨익 웃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썩은 이 두 개가 살짝 엿보였다. 어머니를 만난다니 오죽 반가우려나.
“어머니가 오면 어디서 지낼 거야?”
“공장 기숙사에서요. 사장이 그러라고 했어요.” 사장에게 티노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낮은 임금으로 그와 같은 기술자를 구할 수는 없었다.
“불편하지 않을까? 적당한 곳이 있으면 휴가기간 동안 공장을 벗어나 있어도 좋을 텐데.”
“아무 곳이면 어떻겠어요. 함께 있는 것으로도 행복할걸요.”
“내가 적당한 곳 알아보마. 생각나는 곳이 한 군데 있긴 있다. 멀지도 않아. 약수터 입구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인데, 빌릴 수 있을 거야.”
“괜찮아요, 아저씨도 걱정이 많으실 텐데요. 근데, 아저씨 일은 정말 안됐어요.” 티노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일자리야 찾아보면 또 있겠지.”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제발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을까,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제가 알아봤어요. 천씨가 그랬더군요.” 천씨도 10여 년째 불법체류하고 있는 처지였다. 공장에는 불법체류자가 그 말고도 중국교포 한 명과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등 세 명이 더 있었다.
“천씨가 사모한테 아저씨가 일을 못한다고 했대요.” 그녀의 서늘하고 꼬집는 시선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첫날, 천씨는 나에게 나이가 많으니 쉬엄쉬엄 하라며 제법 편의를 봐주듯 말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잘하게 될 것이라며 격려도 했었다. 능력 없는 자를 솎아내는 것이 회사를 이롭게 한다는 투철한 애사심의 발로였나, 말과 행동이 다른 자였다. 천씨를 생각하니 은근히 화가 났다.
“사모는 유명한 사람이에요. 우리가 연장근무 하는 건 기록하지도 않고, 십 분만 일찍 일을 마쳐도 야단을 쳐요. 자재가 떨어져서 그런데도 말이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티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나는 다른 공장에서 오라고 하는 곳도 많아요. 돈도 더 준다고 하고. 근데 다 거기가 거기에요. 약점 잡히고 있는 한은 꼼짝달싹 못하죠.” 티노는 공장들의 생리를 꿰뚫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을 때는 일 년을 버티지 못하였다. 노임 체불로 떠나기도 했고, 자연적 임금인상을 피하고자 다른 공장으로 넘겨지는 일도 허다했다.
“아저씨 걱정이 크시겠어요. 제가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티노는 제 일처럼 나를 걱정했다. 내 고단한 처지가 자꾸 화제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나는 말을 돌렸다.
“나는 지금도 반싯이 먹고 싶다.” 내 말에 티노의 얼굴이 환해졌다.
“단속이 심하지 않던 시절에는 일요일에 필리핀인들이 모이는 시장엘 가곤 했어요. 거기 가면 제대로 만든 반싯을 먹을 수 있었거든요.” 반싯은 필리핀식 잡채였다. 면발이 가늘고 찰기가 없는데다 고명도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네 잡채와 비슷해서 필리핀 근무 당시에는 곧잘 먹던 음식이었다. 티노는 어머니가 방문하면 반드시 나를 초대해 반싯을 요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초대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공장에 가는 일도 부담스러워 건성으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티노와 함께 소위 송별회란 것을 하였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위로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은 어떻게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구해지기는 할지 걱정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다시 전봇대에 매달려있는 신문함에서 생활정보지를 가져다 훑었다. 예전 같았으면 ‘초보자 가능’이란 문구를 발견하는 대로 지체 없이 전화했겠지만 전과 달리 선뜻 내키지 않았다. 열흘 남짓한 공장경험이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하릴없어 방구석을 지키며 정보지를 뒤지기는 하였지만 마땅한 곳이 찾아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차츰 알듯 모를 듯 모멸감이 솥뚜껑에서 새는 김처럼 솟아올랐다. 공무 팀 김 이사의 사망신고는 처리되었다지? 이제 죽어 없어진 거야. 그래 돈 없으면 사람취급도 못 받잖아. 그러다가 빚 독촉에 시달리면 혀라도 깨물어야 한다는 것쯤 김씨도 잘 알잖아? 삼십 년 경력의 공무 팀 김 이사, 그는 죽었다니까. 공장에서 하역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쥐꼬리 일당으로 연명하는 김씨만 살아있다니까.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절망이 몸을 꽁꽁 묶었다. 머리는 자포자기로 가득 찬 시궁창에 처박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급여일이었다. 아침부터 연락을 기다리던 나는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일부러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척 전화해서 지불약속을 상기시킬까 생각했다. 그러나 옹색해 보일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송금하려면 당연히 계좌번호를 묻지 않겠는가. 기다려보기로 했다. 지루하게 시간이 흘렀다. 어둠이 비좁은 방안으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졌다. 하루종일의 기다림이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고의일 것이다. 뒷골을 쑤셔대는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였다. 샐닢도 되지 않는 노임마저 떼이는 덜떨어진 놈. 나는 밤새 뒤척이다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오전 10시를 기다려 공장에 전화했다. “누구라구요?” 사장 아내의 날카로운 음성이 되물었다. 나는 이름을 거듭 말하고 급여지급을 요구하였다. 여자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지체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우리는 아저씨 때문에 손해를 얼마나 봤는지 아세요? 매일 아저씨 점심값 지불했지요, 게다가 물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다 다시 손봤지요. 손해 본 게 얼만데 지금 월급 얘길 하세요? 한 달도 채우지 않은 사람한테는 월급 나가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식대며 받아야 할 입장이라구요.” 쇳소리가 섞인 고음이 귓속을 파고들어서 수화기를 멀찍이 떨어뜨리고 들어야 했다. 식대를 물어낼 입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자의 악다구니에 소름마저 돋았다. 똥물에 빠진 놈 대가리를 눌러대다니. 이런!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몇 푼이지만 지금은 매우 소중한 돈이었다. 밀리면 안 되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제가 놀았단 말입니까?” 나는 순간, 잘못되어 가는 것을 직감했다. 음성에 기가 살아있지도 않았고, 대적할 전의를 확실하게 드러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지는데, 아! 이런, 모질게, 악착같이 살자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만날 남에게만 당하고 사는 것이 지겹지도 않단 말인가.
“우리는 일하는 사람에게만 월급 주는 회사예요. 일 안 한 사람에게 월급 주는 자선단체는 아니라구요.” 그녀의 억지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억울한 노릇이지만 여자와 상대해서 뜻을 관철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부아가 치밀고 어이가 없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지만 전열의 재정비가 필요했다. 금쪽보다 귀한 돈이었다. 나를 모멸감에서 구해줄 돈이었다. 나는 분을 삭이며 오후에 사장의 휴대전화로 전화했다.
“어제 송금해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어떻게 된 거지요?” 노기를 누르고 간신히 말을 마쳤다. 사장은 사람들 틈에 있는지 주변이 시끄러웠다. 그는 잘 모르겠다며 확인해보고 전화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일찍 사장의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했다. 사장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는 기다리라며 송화기를 손으로 가렸다. 잠시 후 사장이 더듬더듬 말했다.
“말일 날 드릴게요. 그때 다시 전화주세요.” 내가 계좌번호를 일러주려는데 전화는 이미 끊기고 말았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을 참아내려니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식은땀이 쏟아졌다. 사장은 아내와 상의한 것이다. 아내는 거절했을 테고 사장은 성격대로 시간만 끌었음이 분명했다. 그들이 나를 놀리고 있구나. 내가 공깃돌이 되어 그들의 손바닥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한 걸 생각하니 그만 기절할 것 같았다. 구차하게 전화하지 않으리라. 절대 구걸하지 않겠다. 당하고 사는 자신이 밉고 한심했지만 실낱 같은 자존심은 보호하고 싶었다. 나는 사장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내 은행계좌번호를 전송하였다. 다시 전화하지 않겠다는 구절을 넣으려다 마치 아이들의 으름장 같아 하지 않았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했다. 무는 개가 되어야지.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속 시원히 되갚음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월말을 나흘 남긴 날, 진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티노 어머니가 다음 달 초하루에 출국예정이란 소식이었다. 진희가 고마웠다. 내가 필리핀에서 근무할 때 그녀는 대학생이었고 지금은 두 아이를 둔 엄마였다. 크게 도운 것도 없었는데 오랜 시간 잊지 않고 도움을 주다니. 그들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자 기분이 숙연해졌다. 나는 곧바로 티노에게 전화했다.
“제가 공항에 나갈 거예요.” 티노의 음성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근데 아저씨, 돈 받았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두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
“안 줬지요? 사모가 원래 그래요. 참, 너무들 하네.”
“말일 날 준다고 했어. 약속했으니 주겠지.”
“줄 거면 제 날짜에 줘야지. 자꾸만 미루기만 하고. 아,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티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말일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모멸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마음의 진정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였지만 흥분도, 분노의 폭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차가운 머리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믿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정식으로 고용된 입장이 아니니 법적인 장치에 기댈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주는 사람 맘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고 으름장을 놓고 멱살잡이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럴 재주도 없었다. 그들의 손바닥에서 까불려지는 공깃돌이라고 해도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 뜻이 있다면 그들을 응징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틈을 비집고 파고드는 힐난의 음성마저 못들은 체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밟혀도 꿈틀대지 못하는 자의 가엾은 자기연민이라는 송곳 같은 단정이었다.
네 시가 지났다. 나는 온갖 상념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했다. 그 여자의 강퍅한 얼굴이 떠올랐다. 네 시든, 다섯 시든,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을 것이다. 진작 깨달았어야 했을 것을. 미욱한 나의 미련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구차하게 전화하지 않겠다고 한 다짐은 정말 잘한 것이다. 짖어서는 안 된다. 무는 개가 되어야 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나는 컴퓨터를 켜고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참여마당」을 통하여 「출입국사범 신고」 페이지를 펼쳤다. 안내사항에는 신고자의 비밀이 철저히 보장된다고 적혀있었다. 덧붙여 사무소 사정에 의해서 신고 접수 후 단속시기가 다소 지연될 수도 있음을 명시하였다. 접수 후 단속시점까지 대략 얼마의 시일이 걸리는지 그것이 중요했다. 확실히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는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안내원은 통상 접수 후 일주일 안에 곧바로 수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신고사항이 있으면 접수받겠다는 안내원에게 다음에 다시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공공의 질서를 위해서 누구를 고발한 경험이 없는 나는 전화신고가 꺼림칙했다. 실명이라도 인터넷은 대면을 하지 않으니 편리한 면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인터넷 신고를 이용하기로 계획했다. 신고가 접수되고 단속이 실시되면 공장은 적지 않은 벌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것이다. 과거에 단속을 당한 일이 있으니 가중 처벌될 것이다. 티노는 공장이 영업정지 되어도 사장이 월급을 주며 붙잡고 있을 것이다. 사장에게 티노는 비중이 있는 위치였다. 사장이 입을 영업 손실을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비로소 무언가 매듭이 하나 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들은 다 하는 일인데 왜 나만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따랐지만 지난일에 연연하지 말자며 애써 외면했다.
안내에 따라 신고서의 빈칸을 채웠다. 중국교포 2명, 방글라데시인 1명, 파키스탄인 1명 등 모두 네 명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장의 주소와 연락번호를 기입하였다. 신고서는 잘 작성되었다. 단속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비밀번호도 설정하고 「확인」을 클릭하였다. 신고가 종료된 셈이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신고가 제대로 접수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마련된 「확인하기」페이지로 옮겼다.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클릭하였다. 그러나 원하는 페이지는 나타나지 않고 신고서 작성 페이지가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 여러 차례 되풀이 하였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웠다. 국가기관의 홈페이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니. 이런 낭패가 없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미 근무시간이 종료되었으니 내일 오전 9시 이후에 문의하라는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정말 배배 꼬이는군. 이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번민하였는데 이런 오류가 생기다니. 도무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일을 기다리는 수밖에.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약수터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이 승낙했다는 것이었다. 혼자 결정할 수 없는 할머니는 딸에게 물어볼 말미를 달라고 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일 오후부터 머물겠다고 말하고 곧바로 티노에게 전화했다. 몇 차례 반복하였지만 티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티노네가 묵을 곳으로 약수터 근처에 있는 허름한 슬레이트집을 생각했었다. 연로한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데 몇 차례 찾은 적이 있어서 낯이 익었다. 그곳에는 취사시설이 갖추어진 방이 따로 있었다. 택시도 그 앞까지 운행되니 티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집에서 티노가 휴가를 보내는 동안 단속반 수사관들이 공장에 다녀갈 것이다. 티노는 단속을 피하면서 어머니와 오붓하게 지낼 수 있을 테고, 휴가가 끝난 후 공장에 복귀하면 그만일 것이다. 신고가 접수되어도 출동까지는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급히 연락할 사항은 아니었지만, 좋은 조건에 머물 곳을 구한 것은 티노가 기뻐할 일이어서 바로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티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9시가 되었다. 그 전에 몇 차례 티노에게 전화하였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시 해보리라 마음먹고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 전화하였다. 확인한 결과, 어제 실행한 인터넷신고는 접수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안내원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것 같으니 지금 전화로 접수하라고 했다. 잠깐 망설이던 나는 어제 기록했던 사항을 다시 되풀이하고 공장의 위치를 일러주었다. 언제 단속을 나갈 것인가 묻자 담당자는 접수 후 일주일 이내에 나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대답을 마친 담당자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곧바로 수사관과 연결시켰다. 수사관은 방금 접수된 사항에 대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신고하신 공장이 지금 우리가 출동하려는 작전지역 안에 있습니다. 지금 접수 완료되었으니 바로 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며칠 뒤로 일정이 잡힐 뻔했는데 시간이 잘 맞았군요.” 나는 피가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침 오늘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촌각을 다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티노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그는 급박하게 돌변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고 있을까? 공항에 간다면 당연히 휴대전화를 가져갔을 것이고 나에게도 전화했을 터인데, 어찌된 노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제 저녁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티노네가 머물 집을 구한 것을 알리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닥치기 전에 티노가 피신하는 것이 다급한 일이 되어버렸다. 시뻘건 불덩이가 발등에 툭 떨어졌다. 나는 전전긍긍했다. 하필 오늘이라니.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의 전개였다. 티노, 제발 전화를 받아라! 그러나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나는 다른 직원들의 전화번호를 알지 못했다. 오래 근무한 것도 아니고 그들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다. 공장 사무실로 전화해서 티노를 바꾸어달라고 할까? 송금해달라는 독촉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전화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긴 하였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갈등이 회오리치고 있는데, 여전히 티노의 휴대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초조하고 다급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이 궁리 저 궁리하는 사이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동거리를 감안하면 지금쯤 수사관들이 공업단지에서 업무를 개시했을 시간이었다. 어쩌면 공장에 들이닥쳐 티노가 변을 당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 이런, 왜 전화는 계속 불통인 거야? 오금이 저리고 맥박이 불퉁불퉁,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공장으로 가볼까?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티노? 사장이었다. 벌써 수사관들이 다녀갔나? 제보자가 나라는 걸 알고 해코지라도 하려는가? 해코지라면 미리 대응할 준비를 해두었다. 노임도 주지 않는 주제에, 더구나 불법을 저지른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나? 자꾸 이러면 다시 신고해서 더 매운맛을 보여주겠어! 불호령을 칠 계획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것이다. 나는 가까스로 호흡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도 잘 아시겠지만, 마누라가 좀 빡빡하잖아요. 내가 마누라 모르게 송금하겠습니다. 그런 줄 아시고 없던 일로 하시죠. 서운했어도 그러려니 이해해주세요.” 땅딸막한 사장의 모습이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에이, 별 말씀을. 내가 미안하지요.”
“참, 그런데 티노는 전화연락이 안되네요. 티노 좀 바꿔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지금 은행에 와 있어요. 티노는 어저께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숙사에 누워있습니다. 사고 와중에 티노의 전화기가 부서져 버려서 통화가 안되는 겁니다.” 사고?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사고라니! 사장의 설명에 의하면, 어제 티노는 운전기사 윤씨와 함께 배달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윤씨는 찰과상을 입었지만, 티노는 경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할 처지가 아니어서 인근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고 곧장 기숙사로 돌아와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장님, 공장에 돌아가시면 티노와 통화 좀 하게 해주십시오. 급한 일이거든요!”
“은행 일 보고 공항으로 바로 갈 예정이니까 다녀와서 티노에게 전화하라고 하지요. 공항 가는 길에 티노 전화기도 하나 구입할 겁니다. 티노가 그 지경이 되어서 내가 대신 공항엘 가기는 하는데 티노 엄마의 얼굴을 모르니 제대로 만나질지 모르겠습니다. 이름표를 크게 만들어 가지고 가기는 하지만, 하하! 자, 그럼 이만.”
아뜩했다. 공항엘 먼저 갔다가 공장으로 간다고? 지금 이 순간 수사관들은 공단을 뒤지고 다닐 테고 티노는 기숙사에 누워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쏜살같이 튀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공장으로 향하는 길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티노, 티노를 택시에 싣고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면? 아! 안타까운 마음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에게 서두르라고 닦달하며 발을 굴러대었다. 그때였다. 휴대전화에서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입금 확인 문자였다.
|당선소감|
우공이산(愚公移山)
옛날 중국 북산에 90세 된 우공이란 노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자식들을 모아놓고, 사방이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하니 험한 산들을 모두 깎아 사통팔달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식과 손자를 데리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수라는 자가 우공을 비웃었습니다. 우공은 태연히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곧 죽을 것이나 아들이 남을 것이고 아들은 손자를 낳겠지.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것이네.”
당선의 영광으로 의욕의 삼태기를 갖게 해주신 『시에티카』와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심사평|
‘노동소설’의 새로운 지평 활짝 열어가기를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하나코 한 잔」, 「검은 선글라스」, 「물수제비뜨기」 총 세 편이다. 이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김수민 씨와 이선규 씨의 작품에 우선적으로 주목했다.
김수민 씨의 「하나코 한 잔」은 문장이 간결하고 안정적이며, 예비 작가 특유의 작품 구성 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특히 속도감 있는 서사의 전개는 오랜 습작과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작품은 기존 서사의 진부한 이야기가 부분적으로 오버랩 되고 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들은 마지막까지 떨치기 어려웠다.
이선규 씨의 「물수제비뜨기」는 근자에 많은 관심을 환기하고 있는 ‘다문화’의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현실자본주의 생활세계의 모순상을 놓치지 않은 작품이다. 이선규 씨의 이 작품 역시 문장구조가 안정적이고 소설 언어의 운용이 탄력적이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동시대가 직면한 현실 삶의 문제를 다소 평이할지라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이 소설의 큰 장점으로 심사위원들은 판단했다.
당선자로 결정된 이선규 씨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물수제비뜨기」에 이어서 앞으로 발표될 씨의 작품들이 한국문단에서 이미 나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소설’계보의 21세기적 적자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아울러 심사위원들 간의 의견대립이 팽팽했던 만큼 당선작을 내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는 점을 부기함으로써, 김수민 씨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오윤호(문학평론가·이화여대 HK교수)
이성천(문학평론가)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2년 · 하반기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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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선작 소설이 참 싱싱합니다.
소설을 대설 처럼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부러움으로 !
이선규 소설가님 시에와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소설 많이 쓰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