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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24장10~25절
제목 : 축복과 저주의 반전
발람은 아무리 많은 은금을 준다 해도 예언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미래와 열방에 대한 예언을 마치고 발락과 결별합니다.
1. 발락의 항의(10~13절)
1) 발락이 발람에게 분노합니다(10절)
“[10]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손뼉을 치며. – 급한 마음으로 손벽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경멸과 조소의 의미를 담은 상징적 행동입니다(욥 27:23; 겔21:17).
*욥27:23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겔21: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2) 당장 너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11절).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 공동 번역은 이를 '당장 너 살던 곳으로 물러가라'로 번역함으로써, 그 당시 발락의 노기 어린 심기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발락은 술사(術士)로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발람을 쫓아 보내려 한것입니다.
한편, 그런데 이일 후 발람의 행적에 대해 31:16과 벧후 2:15;유1:11;계2:14 등에서 유추해 살펴보면, 그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발락에게 이스라엘로 하여금 스스로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자행하게 하여 끝내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형벌을 받도록 만드는 사악한 술수를 조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24장).
물론 그러한 발람의 부정한 계획은 그대로 이뤄졌으나, 그 역시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맙니다(31:8).
*31:8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처럼 불의의 삯에 매달려 타인을 그릇 인도하는 자는 자신도 같은 종국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 발락의 이말은 지존자(至尊者) 하나님께 대한 극도의 모욕이요 힐난입니다(Clalk).
즉 발락은 하나님이 발람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음으로써, 발람이 얻을 수 있었던 재산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인간과 아귀다툼이나 하는 하급 신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음을 이야기 했습니다(12,13절).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는 22:18을 두고 한 발람의 자기 변호입니다.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2.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14~19절)
1) 발람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가기전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예언합니다(14절).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 발람은 끝내 발락의 나라 모압이 멸망할 것을 알고있었습니다(17절).
따라서 그는 모압이 멸망 당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스스로 붕괴되도록 하는 묘책을 발락에게 주지시키려 했습니다(25장;31:16).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는 모압과 이스라엘과 근동 지역의 미래에 대한 개괄적 예언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하리이다'는 말은 '충고 하겠읍니다'는 말로 번역함이 좋습니다(Calvin, Ainsworth).
한편 그러한 발람의 예언을 간추리면
(1) 이스라엘에 한 별, 곧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17절)
(2) 모압. 에돔, 아말렉, 가인 족속에 대한이스라엘의 승리(18-21절),
(3)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 된 셈(22절),
(4) 깃딤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헬라인)이 앗수르와 에벨(셈 족속)을 괴롭힐 것(23,24절)등입니다.
2) 네 번째 예언의 선언입니다(15,16절)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발람은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전처럼(3, 4절) 예언 서두에,
하나님께로부터 영감받은 사실(2절)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네 번째 예언의 서언(15, 16절)은 세번째 예언의 서언(3, 4절)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자세한 주석은 그곳을(참조하라).
다만 이곳에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란 수식어가 덧붙여 있을 뿐입니다.
한편 비록 발람의 예언 동기와 태도는 불경스러웠으나, 그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예언만은 영감된 신적 권위를 지녔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 이 말은 발람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영은 이미 세번째 예언시 발람에게 임한 영이었습니다.(2절).
즉 그때 임한 영이 아직도 발람을 주관하고 있어,
이 네 번째 예언까지도 그 효력을 발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세 번째 예언(3-9절)과 네 번째 예언(15-24절)과의 시간적 간격은 극히 짧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번째 예언 후 분명 하나님의 영(the Sprit of God)은 이방의 간교한 술사 발람을 영원히 떠나갔을 것입니다.
3) 모합이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17절)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여기서 발람은 한 별의 출현과 한 규의 등장이 이미 일어난 일이나, 혹은 미구에 일어날 일이 아님을 두 병행 구절로 분명히 묘사했습니다.
즉 한 별(=한 규)의 출현은 먼 '후일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한편 발람은 예언의 핵심어로 '그'는 불특정 3인칭 대명사로 표현되는 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뒤와 연결시켜 볼 때 '그'는 분명 이스라엘의 궁극적 희망인 '메시야'(Messiah)를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별'은 성경에서 왕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며(마 2:2; 계22:16), '홀'(쉐베트) - 한 나라의 통치적 주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지휘봉입니다(창49:10).
따라서 이는 결국 이스라엘(야곱)의 혈통을 따라 만백성의 '왕'(통치자)으로
임재하셔서 나라들을 통치하시고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심판을 내리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품격을 예시합니다(사42:1-9; 계22:16).
모압. – 현상적으로는 발락이 통치하는 사해 근방의 민족을 가리키지만, 총체적으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 모압(Moab)은 그러한 적대 세력들을 대표하는 주동적인 민족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현재 이스라엘을 저주코자 하는 모압 왕 발락의 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바입니다.
소동하는 자식들(콜 베네 쉐트). - 직역하면 '셋의 모든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셋의 후손들'이란 아담의 셋째 아들(창 4:25)인 셋(Seth)의 자손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 특별히 모압 자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Calvin).
여기서 '모압 자손'이 '소동하는 자식들'로 이해 된 것은 그들이 호전적이고 교만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Keil &Delitzsch).
한편 발람은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해 교만하고 분쟁을 좋아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려던 발락과 그의 나라 모압을 힐난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호전적인 모압 족속은 넓은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열방세력을 암시하며 더 나아가 주의 복음을 거부하고 적극
적으로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발람의 예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규, 또는 한 별이신 메시야의 도래로 결국 그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마 3:10,12;요3:18,19)
4) 에돔이 망할 것을 예언합니다(18~19절).
(1) 에돔과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18절).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 – 여기서 '세일'이란
에돔 땅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남북으로 아카바만 어귀까지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데, 결국 앞의 '에돔'이란 말과 대구(對句)를 이루며 '에돔 족속'을 상징합니다(창 32:3;36:8).
한편 에돔 족속은 이삭 계열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과는 형제국 이지만 전날 이스라엘이 자국의 영토를 통과하고자 할 때 적극적으로 방해함으로써(20:40-21;신2:4), 비록 멸망이 예고된 가나안 7족속은 아니나,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에돔 역시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들의 '산업'과 더불어 최후를 맞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
곧 순종치 않는 자는 멸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롬2:28,29).
*롬2:28,29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용감히 행동하리로다(오세 하일) - 직역하면 '권력(힘)을 가지고 다스릴 것이다'입니다.
즉 에돔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를 시사합니다(삼하8:14;대상18:11-13).
그런데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는 다윗 왕 시대 때로부터 분명히 현실화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유대 하스몬 왕조시대 때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로 말미암아 에돔(이두매)지역이 유대 영토로 귀속되면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B.C.129년, Joesephus).
그러나 구속사적으로는 메시야의 출현과 그 통치로 말미암아 에돔으로 상징된 악의 세력들이 완전 십자가 아래 굴복될 때에야 비로소 성취될 것이었습니다.
(2) 주권자가 나와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할 것입니다(19절).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 여기서 '주권자'란 '짓밟다', '정복하다','통치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라다'에서 유래한 말로, 곧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한 절대권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는 어느 특정 왕을 가리키기보다 하나님이 인준하신 이스라엘의 왕권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17절에 규('홀')과 '별'로 상징 된 바 곧 메시야와 그 통치를 나타냅니다.
진정 메시야는 야곱의 혈통을 빌어 나셔서(롬1:3;9:5),
온 세상을 당신의 강력한 주권으로 통치, 심판하실 것입니다.
남은 자들. – 곧 에돔 족속 중 멸절되지 않고 남은 무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최후 심판대 앞에 설 사단의 무리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결국 한 의(義)의 주권자에 의해 종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왕상 11:16).
*왕상11:16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애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 달 동안 그 곳에 머물렀더라”
3. 열방을 향한 예언(20~25절)
1) 아말렉의 멸망을 예언합니다(20절).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
아말렉을 바라보며. – 이는 발람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바 되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으로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곧 심령의 눈으로 아말렉의 미래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적으로 발람이 아말렉 족속이 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크노벨(Knobel)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실제 아말렉(Amalek)이 그 역사와 힘과 명성에 있어서 열국 중 가장 탁월했다고 하였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자주 나타나는 에서 계열(창36:12))의 한 베두윈(Bedoudin) 족속 아말렉은(삼상 15장) 결코 당시의 상황으로 볼때 주변 열강들보다 탁월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의 예언 속에서 '열국 중 으뜸'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들이 열국 중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을 '최초로' 괴롭힌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이스라엘의 적대국이 되었고,
끝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대상이 된 민족이었습니다(출17:8,16).
*출17:8,16 “[8]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16]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 역사적으로는 사울 왕 시대 때로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하여 히스기야 시대 때 완전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한 의(義)의 주권자(메시야)로 말미암아 최종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 역시 모압, 에돔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적대시 한 바 곧 사단의 세력을 상징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2) 겐 족속의 멸망을 예언합니다(21,22,23절).
“[21]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22]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겐 족속. – 여기서 '겐'은 히브리어의 정확한 발음으로 '케니'(겐족속)의 어원(語源)이 되는 '가인'으로서 결국 '겐 족속'(Kenites)을 지칭하는 말이됩니다.
그런데 이 족속이 가나안의 '겐'인지(창15:19) 혹은 미디안의 '겐'인지(삿1:16;4:11) 분명한 성경적 근거는 없으나, 뒤에 연결된 내용으로 보아 모세의 처가(妻家)가 속한 미디안의 겐 족속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Calvin).
즉 이어지는 발람의 예언 속에서 이 족속은 이스라엘의 우호 족속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Hofmann).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 여기 등장하는 가인(겐) 족속을 미디안의 겐 족속이라 볼 때, 이 말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거처가 바위가 많은 호렙 산 주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발람의 이 예언은 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곧 이는 가인(겐) 족속의 삶이 평탄할 것을 가리킵니다(Hofmann).
그들은 모세의 처가가 속한 족속으로서 매우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모세의 처남 호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습니다(10:29-32).
*10:29~32 “[29]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타민족처럼 적대적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보금자리는 대체적으로 견고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복 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던 발람 예언(9절)의 현세적 열매입니다.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당시 가인(겐) 족속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무리들로서 우상을 숭배하는 다른 이방 족속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우호적인 관계로 인해(삼상15:6) 순간의 안녕<21절>은 누렸었으나, 불신앙의 무리였다는 점에서 끝내 멸망에 이를 것이었습니다.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 후일 그들 분파 중 일부 납달리 지역에 거주한 자들은 실제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정복된 후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왕하15:29).
*왕하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여기 앗수르가 세상 열강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인 만
큼 겐 족속이 그러한 열강들에 의해 멸절되리라는 의미입니다(Keil)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 발람은 자기의 동족 역시 장차 멸망당할 것을 이상으로 깨닫자(24절), 그 심판의 준엄함과 비참한 결과로 인하여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공동 번역은 이때 발람의 심경을 '푸념하듯이 읊었다'라고 적절히 표현 하였습니다.
그는 동족애로 인해 회복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 이는 장차 임할 세계적인 대심판의 준엄함과 처절함을 단적으로 시사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행하시기로 '작정한 때'를 가리킵니다.
3) 앗수르와 에벨과 그를 괴롭힌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24절).
“[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깃딤 해변에서. - '깃딤'이란 지중해의 '구브로'(Cyprus) 섬을 일컫습니다.
이 섬은 통상 성경에서 '서방의 섬'이란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데(렘 2:10;겔27:6;단11:30) 당시 베니게 해상 교역의 주요 기항지였습니다.
따라서 서방에서 동방 쪽으로 항해하는 모든 배들은 일단 이곳을 거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발람은 '앗수르'와 '에벨'을 학대하고 괴롭게 할 세력이 '서방 쪽에서' 오리라는 예언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서방(西方)의 나라가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는 예언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편 역사적으로는 마케도냐의 알렉산더가B.C 4세기경 근동 지역을 점령했을 때, 헬라인들이 유대와 앗수르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틴 탈굼(the Palestinian Targum)과 벌겟역(the vulgate)은 이 나라를 '이탈리아'(로마)로 언급하고 있어 주목을 끕니다.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 여기서 '에벧'의 문자적 의미는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입니다.
따라서 혹자(Onkelos)는 여기 '에벨'이 '유프라테스 강건너' 쪽의 민족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칠십인역(LXX)과 벌겟역(Vulgate), 그리고 페쉬타역(Peshtta)이 취하고 있듯이, 순전히 '히브리인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발람은 그 민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이스라엘' 혹은 '야곱'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여기'에벨'은 아마 '에벨 온 자손'(창10:21) 곧 셈족속의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인 듯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카일(Keil)은 여기서
'앗수르'는 유프라테스 동편에 위치하는 겐 족속의 대표로,
'에벨'은 서편에 위치하는 셈 족속의 대표로 각기 사용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여기서 학대하며...괴롭게는 원어상 둘다 '멸시하다', '거칠게 대하다', '모욕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아나'에서 파생된 말인데, 이 말은 일찍이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예시될 때 적용된 단어입니다(창15:13).
그도 멸망하리로다. – 서방쪽(깃딤 해변 쪽)에서 올 막강한 세력(헬라 ?)도 역시 멸망될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실제로 헬라인들은 후에 발흥한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앗수르에서 바벨로니아로, 그에서 폐르시아,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근동의 패권자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B.C.1400년대의 예언은
그후 A.D.1세기 전까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세계'란 무대 위에서 최후 승리한 강국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세상 나라 역시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 곧 메시야(Messiah)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말미암아 멸망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는 오직 그분이 통치하시는 ‘규(圭)’'홀'(笏)만이 충만하게 넘칠 것입니다.
4) 발람과 발락이 각각 자기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25절).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 이말은 실제 발람이 400마일(약 640km)이나 되는 먼 자기 고향으로 곧장 되돌아 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단지 발람이 자기 고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후 진행되는 상황으로 보면 발람은 예언 직후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신23:4)로 가지 않았습니다.
*신23: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그는 자기를 발람에게로 인도해 왔던 미디안 장로들과 함께 미디안 땅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하는 사악한 꾀를 발락에게 일러줌으로써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주(심판) 받도록 했습니다(계2:14).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후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에 그는 미디안 다섯 왕들과 함께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31:7,8).
한편 행스텐베르그(Hengstengbrg)는 발람의 이후 행적을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발락과 해어진 발람은 자기의 예언이 이스라엘에게 길(吉)함을 알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찾아가 그 예언의 의미를 풀이해 준 뒤, 발락이 보장해주었을 부(富)와 명예를 모세에게 요구하다가 거절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격분한 그는 이스라엘에게 보복하기 위해 미디안 족속에게로 가서 사악한 꾀를 베풀어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Keil & Delitzsch,Vol. I-iii. p.203).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 번이나 저주를 요구했는데도 발람이 응하지 않자,
발락은 불쾌한 심장을 드러냅니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죄악은 없습니까? 겸손히 수용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발람의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후손’(5~9절)에 이어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합니다(17~19절).
이스라엘의 희망을 노래하던 발람은 이방 민족의 멸망에 대해 예언합니다(20~25절)
하나님 없는 오늘의 영광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영광을 추구합시다.
발락의 발악, 발람의 성장, 흥할 나라와 망할 나라에 대안 묵상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세 번이나 저주를 요구했는데도 발람이 응하지 않자, 발락은 불쾌한 심장을 드러냅니다(10,11절).
그 다음에는 질책하더니 (23,25) 마지막에는 분노 섞인 비난을 퍼붓습니다.
어떤 수단으로도 발람의 예언 방향을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기 뜻을 거두어들이지 않습니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죄악은 없습니까?
악으로 치닫는 내 맘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뼈아픈 말씀을 들었다면 겸손히 수용합시다.
2) 발락이 크게 화를 내자, 발람은 아무리 많은 은금을 준다 해도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말할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12~19절).
“세 번에 걸친 발람의 축복과 세 번씩이나 맞선 발락의 좌절은 출애굽 1세대의 우울한 종말 가운데서도 희망의 세대가 자라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발람의 예언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회복에 대한 희망이 움트자 대적(발락)이 절망하고 분노하며 집요하게 훼방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꺾지 마십시오, 결국 악의 세력이 절망할 것입니다.
3) 발람의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후손’(5~9절)에 이어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합니다(17~19절).
후일에 이스라엘에서 한 왕이 나와서 모압을 치고 에돔을 정복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이었고, 다윗과 솔로몬에게서 성취되며, 마침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꼐서 열방의 왕으로 등극함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의 희망을 노래하던 발람은 이방 민족의 멸망에 대해 예언합니다(20~25절).
으뜸이라고 기고만장하던 아말렉도, 견고한 요새를 자랑하던 겐 족속도, 그들을 정복한 앗수르도, 앗수르를 학대한 자들마저 멸망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제국도, 영원한 번영도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부와 권력을 우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오늘의 영광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영광을 추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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