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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일단 제가 사는 지역 활터들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시가지 안에 있는 한 이웃 활터에는 근 1~2년 사이에 신사들의 숫자가 수십 명 폭증해서 활터가 너무 번잡해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비교적 사원 수가 적고 면리 단위에 위치한 저희 활터에도 한 1년 사이에 신사들이 열 명 가까이 등록을 했습니다. 2~30대의 젊은 사람을 포함하여 50~60대의 중노년 층이 많긴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비중이 남성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중도에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등록자의 대략 80퍼센트 이상은 꾸준히 활터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대학가의 국궁 동아리들도 회원들이 느는 추세라고 합니다. 국궁의 저변 확대 현상으로서 일단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사(新射)들이 활터에서 전통 활쏘기를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두루 아시는대로, 우리 활판의 사범님들 대다수가 <조선의 궁술>(1929) 하나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나온 <정사론>이나 <사예결해> 등은 아예 이름 자체를 모르거나 혹 이름은 들어봤어도 진지하게 내용을 살펴 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뒤의 두 문헌이 한문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핑계거리가 안 됩니다. 최고의 한문 전문가이자 30년 이상의 궁력을 지닌 안대영 고문님의 훌륭한 번역문이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죠. 전통 활쏘기에 입문한 요즘 신사들이, 이전 시대에 활의 달인이었던 분들이 남긴 주옥같은 말씀들에 거의 무지한 사범님들에게 활쏘기를 처음 배운다는 사실은 우리 활판의 커다란 블랙코미디(희비극)일 것입니다.
활터의 사범은 보통 10년 이상의 궁력을 가지고 대한궁도협회(이하:대궁)에서 4~5단 이상을 따거나 대회 입상을 한 분들이 맡습니다. 요즘은 대궁에서 일정기간 연수를 받기도 하죠. 하지만 그들이 배운 사법은 대개 소속 활터 선배들이나 대회에서 좀 잘 나가는 고단자들에게서 눈귀로 동냥하며 각자의 경험을 통해 보충한 것들이지요. 대궁에서 나온 교본도 있긴 하지만 제가 살펴본 바로는, 그리고 조금 공부를 해 본 이들이라면 알 수 있는 대로, 그 내용도 실상 옛 사법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한 활쏘기는 결국, (여러 번 다른 곳에서 얘기한 것입니다만) 오직 145미터 장거리 대회의 시수 내기에만 특화돼 있는 절름발이 사법이자, 양궁을 적당히 모방한 정체불명, 뇌피셜 창작 사법입니다. 한마디로 족보나 근거가 거의 없는 활쏘기로서, 진정한 의미의 국궁이라 보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가야금으로 에델바이스를 연주한다고 그것이 우리 음악이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뒤에서 다시 언급될 터인데, 비슷한 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 활판의 사법이 궁사에 따라 제각각, 중구난방이 된 것은 바로 이런 데에 큰 원인이 있죠.
그러면 이제, 당신들이 늘상 주장하는 (철전) 사법이 진정한, 제대로 된 국궁 활쏘기라는 근거는 도대체 뭐냐고 당연히 물으시겠지요. 저는 이 질문에 답할 때, 곧 사법 선택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 보통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합니다. 정법, 진실, 최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숱한 선택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자 기준이라 봅니다. 이 셋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1. 정법(正法)
인간이 만들어내고 전승되는 모든 기예나 스포츠에는 예외 없이, 오랜 세월과 숱한 선배들을 거쳐 확립된 정법이 존재합니다. 정은 올바르다는 뜻이고 법은 방법, 방식, 법도, 형식, 폼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몸이 아니라 두뇌로 하는 바둑에도 '정석(定石)'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바둑돌이 당연히 놓여져야 하는, 거의 정해진 곳들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인 어떤 상황(주로 바둑의 초중반이 되겠네요)에서 최선의 착점(着點) 또는 바른 행마(行馬)라고도 말하지요. 초보자들은 먼저 정석을 잘 익혀두어야 실력이 빨리 늡니다. 물론 고수가 되거나 대국(對局)이 복잡해지면 더러 정석을 벗어나 변형을 추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석을 이미 알지만 필요에 의해 정석을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정석도 제대로 모르면서 알량한 잔머리만 써서 이리저리, 주먹구구로 바둑을 배워 변칙을 즐겨 쓰면(바둑에서는 이런 것을 '꼼수'라고 부르지요) 동네 바둑이나 하수들에겐 통할지 몰라도 맞수나 고수를 상대론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자랄 수 있는 실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구요. 이는 서예나 그림, 악기 연주, 각종 수공예나 스포츠 등 사람의 몸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 예외가 없습니다. 적어도 2천 년 이상을 이어 온(알타이 암각화에 남아있는 그림을 고려하면 1만 년까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5중만곡궁(각궁)이라는 특별한 활을 쓰는 우리 전통무예 활쏘기는 어떨까요? 정법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시대의 활판에선, 활이 아직도 실전에서 중요하게 쓰이던 시대에 (조금 과장하면) 밥먹고 활만 쏘던 최고의 궁사들이 남겨 준 활쏘기 교본들에 관해 거의 무지한 채로, (어떻게 쏴도 화살은 앞으로 날아가니까?^^) 국궁이라고 배워 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요?
그럼 모든 기예나 스포츠에 정법이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정법이, 특정 분야에서 어떤 도구를 다루면서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몸을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곧, (특별한 신체적 장애 등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가장 효과적인 몸쓰기 방법을 말합니다. 이것을 보통 기본기라고도 표현하는데, 모든 기예나 스포츠에서 기본기를 익히지 않고 진정한 고수가 되는 방법은 절대 없습니다. 기본기를 다 익히고 진작 넘어서서, 정법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유별난’ 고수는 혹 있을지 모르지만요. 따라서 일부 궁사들이 너무나 쉽게, 다양성 존중이나 각자의 신체적 특성을 운운하며 우리 활판의 중구난방 사법 현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결국 한 초식밖에 한 되는 활쏘기 동작인데도, 자세히 보면 발디딤, 줌손 모양, 화살대 높이와 시위를 끄는 거리, 앞뒷손 움직임이 사람마다 각양각색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 활판엔 공통으로 정립된 기본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엉터리가 많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정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정법 곧 올바른 사법에 관심을 갖는다 해도 아직 의문이 일어납니다. 활쏘기에서 올바른 건 뭐고 아닌 건 도대체 뭐야, 무슨 기준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올바르단 말도 너무 추상적이 아닌가.. 하는 것들이죠. 맞습니다. 바르다, 그르다 하는 것은 반드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판단의 잣대가 필요하죠. 그래서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말을 이미 위에서 했습니다.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몸 쓰기 방법이라구요. 그럼 여기서, 활쏘기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를 또한 짚어 봐야겠네요.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답이 나올 것입니다. 활? 그거 과녁 맞추기 아냐? 활쏘기의 목표는 당연히 과녁을 잘 맞추는 거지.. 라구요. 하지만 전통 활쏘기를 좀 공부해 본 궁사는 그리 단순하게 알고 있으면 안 되지요. 과녁 맞추기는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활쏘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본중에 기본 목표구요, 적어도 우리의 전통 활쏘기에는 그에 덧붙여 아니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강력하게 쏘기입니다. 사냥이나 전투라는 실전성을 중시했기에 나온 목표라 할 수 있겠지요. 단지 장력이 쎈 활과 근력이 쎈 궁사를 통해 나오는 강력함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활-장력, 화살-무게, 궁사-근력) 안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활쏘기를 뜻합니다.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우리 활쏘기에서 잘 맞추는 것과 잘 쏘는 것은 다릅니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잘 맞추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 잘 쏘는 것, 곧 강력한 활쏘기는 물 건너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잘 쏘는 데 먼저 목표를 두면 잘 맞추는 것도 시간이 지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가 목표라 할 수 있지만, 잘 쏘기의 우선순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활판은 잘 맞추기(그것도 145미터 장거리)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보니 진정한 의미의 잘 쏘기에는 거의 무지하죠. 오직 잘 맞추기만을 추구하는 활쏘기는 본질적으로, 활이란 도구 하나만 추가되었지, 전통 놀이 투호나 서양 놀이 다트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살을 정확하게 한 곳으로 날려 보내기, 그것이 목표라는 점에서요. 이해 되십니까?
그럼 이제 중요한 결론 하나가 나왔습니다. 제한된 조건에서 ‘가장 강력하게 쏘기’ 위한 효과적인 몸쓰기, 그것이 바로 올바른 사법의 첫 번째 기준이 되겠네요.
여기서 올바른 사법과 관련하여 하나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르다는 것에는 중요하고 구체적인 사법 내용이 포함됩니다. 활판에서 늘 회자(膾炙)되는 활 격언 ‘정심정기’란 말에 들어 있는 정기, 곧 바른 몸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정기(正己)’의 뜻은 뭘까요? 곧, 몸을 바르게 하는 게 어떻게 하라는 의미일까요? 그건 <조선의 궁술>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몸통과 얼굴(시선)을 과녁과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것이지요. 우리 전통 사법에서 이 몸가짐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모든 궁체와 사법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몸과 얼굴이 과녁 정면을 향해야 하는 데엔 몇 가지 실질적인 이유도 있구요(여기서 그것까지 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질 듯 하네요. 뒤에서 좀 더 언급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활판 대다수 궁사들의 몸자세와 발디딤은 양궁을 따라가서 과녁과 비스듬히 어긋나 있죠. 당연히 과녁을 바라보는 얼굴과 시선, 몸통도 비딱해 집니다. 단순 상식으로도, 올바른 자세는 정면을 보며 똑바로 서서, 목과 가슴을 쭉 펴고 좌우가 잘 균형을 이루는 자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잘 살펴보시면 지금의 주류 또는 관행적 사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 ‘정법’인지는 이런 데서도 판별할 수 있지요. 그래서 과녁을 향해 정면으로 마주서기, 이것이 올바른 사법을 판단하는 두 번째 기준입니다.
2. 진실
활쏘기 얘기하는데 웬 진실? 하는 분도 있겠지요. 배경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활판엔 사법을 둘러싸고 십수 년 전에 시작된 논쟁이 있습니다. 누구의(어떤) 사법이 진정한 전통을 계승한 활쏘기냐, 하는 말싸움이죠. 2000년대 초 활동을 시작한 온깍지 문파가 시작하고, 2010년쯤 발견된 ‘북관유적도첩’이란 조선 시대 그림이 논쟁에 불을 당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통 사법 논쟁으로서, 이에 대해선 제가 자세히 정리를 하면서 의견도 낸 글(https://cafe.daum.net/CHOSUNarchery/oOfS/27 붙임3)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요지는 전통 사법에 참으로 관심이 있는 궁사라면 현재 우리 활판에서 자칭 전통 사법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단체 혹은 선생들의 주장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지 잘 판단을 해서 선택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전통이라 주장되는 몇몇 사법들 가운데 어떤 사법이 정말 우리의 선대 무장(武將)들이 실제로 구사하던 최상의 사법인지 가려내자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요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으로 뜨신(?) 양규, 지채문 장군이나 조선의 최윤덕, 이징옥 그리고 이순신 장군 같은 특급 무장들이 어떤 사법을 구사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ㅎㅎ
물론, 사냥과 전투를 활로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 굳이 옛 무장들의 실전적인 전통 사법을 찾아서 활을 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궁사들 가운데 활쏘기에 진심인 어떤 이들은 옛 사법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내서 실제 몸으로도 익히고 싶어 하지요. 이는 한편으로, 우리 시대의 관행적 활쏘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기도 하구요. 어쨌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진짜 전통이다라는 몇몇 주장들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논쟁은 일종의 진실 게임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 논쟁과 연관이 깊은 대표적인 단체와 선생들의 사법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먼저 정진명, 류근원 접장을 필두로 한 온깍지 사법이 있고, 대한궁술원의 장영민 접장이 주장한 활대엎기 또는 북관 사법이 있습니다. 그 외에 조영석 명궁이 창시한 정연 궁체, 백인학 명궁이 주로 <조선의 궁술>을 근거로 설명하는 전통 사법도 있지요. 제가 속한 조선철전사법연구회(이하:철사연)의 이정우 접장도 2019년 이후 줄기차게, 별절 궁체에 기반한 철전 사법을 우리의 진정한 전통 사법이라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몇몇 활쏘기 문파들이 각각 전통 사법임을 내세우며 여러 경로로 자기 주장을 펼치며 서로 견제와 비판도 하면서 제자들을 키워냈지요.
그런데 저희 철전 문파가 보기엔, 다른 문파들의 주장들이 일단 문헌적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온라인 다음(daum) 포탈의 철사연 카페에 많은 글들이 있으니 구체적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간추리면, 철전 문파가 문헌(가장 오래된 중국 사법 문헌 <사의> <사경>을 먼 배경으로 삼고 주로는 우리 조선의 사법 문헌인 <사예결해> <정사론> <사결> <조선의 궁술>을 말함)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일관되게 이어져 왔던 ‘별절’ 궁체에 근거한 철전 사법을 복원하여 주장을 펼치는 데 비해, 다른 문파들은 190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살았던 특정 선배 궁사들의 전언이나 오직 <조선의 궁술>만을 근거로 삼아, ‘별절’을 배제한 그들만의 자의적인 사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2023년)에 1930년대 서울 황학정에서 벌어진 활쏘기 대회 동영상이 예상치 못하게 발견되어 알려지면서, 그간 철사연에서 문헌에만 근거해 주장했던 별절 궁체가 (좀 변질되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까지도 확연히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1930년대 활쏘기에 드러난 별절 궁체(철전사법) - YouTube).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앞뒷손을 동시에 수직으로 힘차게 뿌리는 이 ‘별절’ 궁체야말로 각궁 전통 사법의 최고봉이요 정수라는 진실이 아직도 우리 활판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정관념과 익숙한 사법을 바꾸고 싶지 않은 기존 궁사들의 완고함과 소심함, 그리고 자존심과 권위 의식이 주요 원인일 텐데요, 그래서 앞으로 기대할 사람들은 바로 새롭게 활을 배우는 여러분 후배 궁사들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활판에서 ‘진실’이 왜 중요한지 좀 이해하시겠습니까?^^
3. 최선
우리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전승된 무장들의 주류 사법(곧, 철전사법)이 잊혀지거나 변질되고, 이제는 중구난방으로 다양하게 된 근본 원인은 우리 활쏘기의 궁극적 목표 또는 정신이 옛것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금 주류 국궁판에는 오직 145m 과녁 맞추기만 있지, 30~50m 전후의 가까운 과녁 맞추기나, 같은 조건(활, 화살, 궁사)에서 최대한 강력하게(또는 멀리) 쏘기 같은 우리 활쏘기의 중요한 목표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먼저, 우리 활쏘기가 이제 사냥이나 전투용이 아니라 취미나 스포츠 시합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대궁 주도의 145m 과녁 맞추기 대회만 주로 열리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죠. 앞뒷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과녁을 맞추는 양궁식 사법이 시수 내기에 유리할 것이라는 자연스런(?) 생각이 거기에 주요 동력을 제공했구요. 하지만 그러한 양궁식 관행 사법이나, 위에서 언급한 자칭 전통 사법들은 결코 ‘최선’의 사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상식적인 활쏘기라면 가까운 과녁부터 잘 맞추고 점점 먼 거리를 맞추어 가는 게 자연스럽겠지요. 그런데 현재 화살대를 입꼬리나 주로 턱밑의 낮은 높이에 대고 쏘는 사법들은 대략 50미터 이하의 단거리 과녁은 거의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10년이 훨씬 넘은 궁력을 지닌 관행사법 궁사가 불과 5m 거리도 안 되는 사방 1m 과녁에다 활을 쏘는데 화살이 계속 과녁을 훌러덩 넘어가는 모습도 본 적이 있습니다. 화살대의 높이, 곧 뒷(깍지)손의 높이가 너무 낮기에 단거리는 제대로 조준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 높이로 과녁을 맞추려면 앞(줌)손을 한참 낮추어서 촉으로는 과녁이 아니라 거의 땅을 겨냥하고 쏴야하죠. 이게 뭘 말합니까. 낮은 살대 높이의 관행식 사법은 오직 145미터 먼거리 과녁에만 적용되는 사법이란 뜻입니다. 가까운 과녁을 먼저 잘 맞추려면 살대 높이가 광대나 눈높이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앞손이 올라가며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죠. 그러면 또 어떤 이는, 거꾸로 앞손은 고정하고 뒷손을 거리에 따라 움직이면 되지 않느냐고 할라나요? 이런... 곡사포를 생각해 보세요. 앞의 포신 각도는 늘 고정하고 거리에 따라 포탑(뒷 몸체)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대포 보셨나요? 활도 뒷손은 늘 고정돼 있고, 앞손이 움직이며 거리를 맞추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안정되지요. 결국 지금의 관행 사법은 먼 거리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제한된 또는 절름발이 같은 사법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전통이라 불리는 대다수 다른 사법들을 포함하여 관행 사법은 대개 과녁과 비스듬히 서서 활을 쏩니다. 비정비팔이란 말을 하면서 발디딤과 몸통이 과녁 정면에서 시계 방향으로 꽤 돌아가 있지요,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비껴서서 계속 연습하던 궁사가 말 위에 올라가면 제대로 활을 쏠 수 있을까요? 땅 위에서 서서든 말 위에서든 사법이 거의 바뀌지 않아야 온전한 사법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헛똑똑이들은,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면 말 위에서는 거의 (우궁의 경우) 왼쪽 옆으로 또는 뒤로(이른바 파르티안 샷) 활을 쏘던데요, 합니다. 지금 서서 쏘는 자세보다 상체를 더 왼쪽으로 돌려서 쏘지 않느냐는 얘기이죠. 이런, 그럼 옛날 말 위에서 활을 쏘던 궁사들은 적을 옆이나 뒤에만 놓고 활을 쏘았을까요? 적을 추격하면서 앞을 향해서는 활을 못 쏘구요. 이게 말이 될까요? 사냥이든 전투든, 말을 타고 목표물을 추격하며 뒤에서 활을 쏘는 건 기본입니다(앞서 얘기한 ‘북관유적도첩’이란 그림을 한번 찾아보세요). 그러러면 과녁을 향해 몸통(하체)을 정면으로 두고, 곧 등자에 두 발을 잘 걸어 다리에 힘을 꽉 주고 허리(상체)를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시계방향)으로 돌려 활을 쏘아야만 하죠. 그게 기본적 상황이고, 옆이나 뒤로 쏘는 건 오히려 부차적 상황입니다. 옆, 뒤 쏘기는 훨씬 쉽기도 하구요. 이해가 되십니까? 말 위에서 정면을 향해 쏠 수 있는 궁사는 옆이나 뒤로 쏘는 것이 쉬우니까 별 문제가 안 되는 데 비해, 옆이나 뒤로는 쏘면서도 (연습이 안 돼 있다면) 정면으로는 잘 못 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더 어려우니까요. 그럼 이러한 궁사는 정식 사냥이나 전투에는 참가를 못하겠죠. 따라서 기사(騎射)까지도 고려할 때 측면 서기 사법은 온전치 못한 사법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최선의 사법이 될 수 없지요.
지금 말 위에서 쏘는 기사법을 중심으로 정면 서기 사법이 우월한 사법이라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면에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곧, 몸통을 과녁 정면으로 대하고 허리(상체)를 최대한 돌려서 활을 쏘아야만 앞팔을 몸 중심을 따라 아래로 뿌리며 힘을 실어 활을 제대로 채줄 수 있습니다. 이건 몇 번 몸으로 해보면 알 수 있구요,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육상에서 창 던지기 선수가 창을 던질 때를 떠올려 봐도 됩니다. 모두, 정면을 보면서 팔이 몸통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뿌려지지요. <조선의 궁술>에 나오는 보석과 같은 말씀,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아랫배)으로 져야 가장 좋은 사법이니라”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서서 쏠 때도 왜 이렇게 허리를 돌리고 양팔을 뿌리며 굳이 어렵게 쏘았을까요? 바로 화살을 가장 강력하고 힘차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뒷손과 앞손을 동시에 힘차게 몸 중심에서 수직으로 내리꽂으며 쏘아야 우리 몸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여 화살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어렵게 보이지만 실은 온 몸의 기운을 가장 자연스럽게 화살에 투사하는 방식입니다(최근 제게 배우는 몇 명의 젊은 신사들은 정말 '간지'가 나는 사법이라고도 하더군요^^). 바로 우리의 별절 궁체를 가리키는 것인데, 현재 5중만곡궁(각궁)을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유일한 (다만, 튀르키예의 ‘카트라’ 궁체가 그나마 손목으로 활 고자를 조금 앞으로 채 주는데, 옛날에는 각궁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이 별절의 잔재라 보입니다) 그리고 제일의 사법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세계의 활 가운데 각궁의 우수성을 최고로 친다면, 우리의 철전 사법이야말로 단연 세계 최고이자 최선의 활쏘기라는 뜻이지요.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정법, 진실, 최선의 관점에서 우리 후배와 신사들이 왜 철전 사법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여러 경로로, 그리고 산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특히 아직 궁체가 굳어지지 않고 고정관념이 형성되지 않은 신사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간추리거나 반복, 보충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을 접한 기존 궁사들은 보통 두 가지로 대응을 해 왔지요. 하나는 대충 흘려 듣고 그냥 무시해 버리기이구요, 또 하나는, 보라는 달은 안 보고 대신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트집 잡기입니다. 철전 문파 사람들의 말투와 태도가 건방지다는 둥, 개량궁만 쓰면서(이건 완전히 사실 왜곡이죠) 무슨 전통 사법이냐는 둥, 대회에 나와 시수나 잘 내고서 사법에 대해 운운해라는 둥 죄다 본질에서 벗어난 비난이지요. 우리 활쏘기를 제대로 알리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저희의 충정이 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과 맑은 눈, 들을 귀를 가진 이들이 그래도 더 많아 보이는 우리 활판의 후배이자 신사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 봅니다.^^
나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말) 그런데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평범한 활터 사범님과 대거리하며 싸우지는 마세요.^^; 조금 운을 띄어보면 아마 대개는 (대회 시수 운운하며) 이빨도 안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일단은 가르쳐 주시는대로 배워서 최소 접장은 되고 나서야, 여러분 뜻대로 다른 사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본래 우리 활판의 분위기가 그러하니 널리 이해하시고, 활 배우며 스트레스는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ㅎㅎ
첫댓글 이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고도 했는데, 또 장황한(?) 글을 오랜만에 하나 썼습니다.^^;
신사들에게 초점을 맞춘 글입니다. 활 밴드 한 곳과 국문연 카페에도 올릴 예정인데.. 혹 고치거나 뺐으면 하는 문구가 눈에 띄어 의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명문장입니다..ㅎㅎ
@백산 별 말씀을요.. 암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유투브에 짧은 댓글 달기도 벅찬데... 하늘서기님의 궁력과 필력이 부럽고 본받고 싶어지네요.
밴드 등에 올리실 땐 글을 나눠서 올리면 어떨까합니다. 젊은 후배들의 글호흡에 맞추면 받아들이기에 더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하다보니 짧은 글이 집중하고 읽기에 수월하더라구요 @@!
아차, 이제야 뫼사람님의 댓글을 봤네요. 엊그제 이미 활마당 밴드에 글을 올리고 댓글들도 몇개 달려서 다시 올리긴 어려울듯 하구요.. 담부턴 꼭 그리 하겠습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음... 빈틈이 별로 보이지 않는 글인 것 같습니다. 신사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