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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로마사 논고(3)
-변화에 적응하는 정부
인간은 끊임없는 부침, 즉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스파르타나 베네치아처럼, 또는 로마와 같이 나름대로 뛰어난 지도자들이 자신 나름대로의 길을 정해 어떤 국가와 그에 합당한 정치체제를 유지해 가려 해도 자연스럽게 국가가 성장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스파르타나 베네치아 같은 경우는 좀 인위적인 경우이지만, 로마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서 성장해갔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그것이 국가가 성장하는 대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가에는 성장통이 있는데, 로마는 그 성장통을 대비해 나름대로의 방편과 법을 잘 마련했다. 따라서 국가를 건설함에 있어서 가장 명예로운 방책은 국가의 확장과 분열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며, 이 확장이 부득이한 경우 확장의 영토의 유지법을 동시에 강구해야만 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즉 인민을 믿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지금 계속해서 분열의 여지를 이겨나갈 수 있는 대안은 인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보다도 사회를 유지하고 분열을 봉합하는 인민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민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나라가 성장할 때에 한해서다. 나라가 성장할 때는 인민은 건전하다. 인민이 건전했을 때는 공화정일 때였고, 타락했을 때는 빵과 즐거움을 이용한 제정시대이다. 마키아벨리가 이렇게 국가 건설을 위한 명예로운 방법이 분열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은 그럴 만큼 건전한 인민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전제를 두고서 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다. 건전한 인민이 있는 공화정에는 원로원과 호민관이 있는데, 호민관은 ‘탄핵‘이라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즉 원로원과 집정관을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울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로원과 호민관의 세력이 균형을 이룰 수가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시각에 의하면 공화정 시대의 귀족들은 인민들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서로 이 나라가 자신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의 방법이 최선이다
이 제목은 곧 마키아벨리의 사상이기도 하다. 결국 건전한 공화정을 확립하려면 인민과 원로원 사이의 반목을 감당해야 하고, 이것은 공화국 건설의 필요악이다. 결국 공화국이 탄핵을 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탄핵의 권한은 호민관에 부여되어 있다.
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로마의 시대는 카이사르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들이 정비되고, 그 후에 5현제가 나타나 최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카이사르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가기 전 십인 위원회가 있었다. 그것은 호민관, 집정관, 원로원을 대변하는 집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무소불의의 권력이 1년 이상 지속되자 돌변하면서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결국 참주 카이사르에게까지 가게 된 것이다.
7장. 공화국에서 탄핵권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유를 위협한 시민을 탄핵을 수 있는 권한을 민회, 일정한 행정권, 위원회가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시민의 증오, 당파적 증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그 증오는 공화국 전체를 몰락시킬 불법적 방식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오가 합법적으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그는 법의 중요성을 또다시 강조한다. 이 탄핵의 대상은 참주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론을 만들어 그가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밑에서 상소문이 올라오고, 그러면 호민관이 그를 탄핵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 최고의 아픔을 당했던 사람이 바로 스키피오다. 스키피오는 진정한 영웅이다. 그는 정말 죽을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해주고, 그래서 모든 군장병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러자 귀족들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언론을 만들어 스키피오는 참주가 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상소를 올려 결국 스키피오는 탄핵되었다. 그런데 왜 이런 탄핵 제도가 중요할까? 개인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공화정 내에 누구나 불만은 가질 수 있지만, 그 스트레스의 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 출구가 바로 탄핵권이었다. 그래서 로마가 그 많은 갈등과 분쟁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민은 코리올라누스를 미워했다
귀족들은 호민관 제도 덕분에 평민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진 데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마침 로마에 흉년이 들어 원로원이 몇몇 위원들을 식량 원조를 우해 시칠리아에 파견했고, 이에 코리올라누스는 곡물배급을 중지시켜 인민을 굶김으로써 인민을 벌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 의견이 인민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그러나 호민관이 그를 소환하여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게 만듦으로써 평민들이 그를 살해하지 않도록 했다. 탄핵 당한 사람이나, 탄핵자들 모두 자신의 변명을 할 수 있어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기관이 꼭 필요했다.
-사사로운 복수는 국가를 파멸시켜버린다
합법적으로 노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인민은 당장 불법적인 방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국가에 혼란과 붕괴를 불러와 마침내는 괴멸시키는 데까지 이를 수도 있다. 로마는 호민관이라는 조절기구를 갖고 있었기에 개인적, 공적 원한이 무력이 되지 않았다. 어떤 것이든 조절기구가 없으면 거의 필망의 길을 걷게 된다. 사람들이 맨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무력은 필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사례:프란체스코 발로리
프란체스코 발로리가 있던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정부를 손상시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법적인 방법 외에는 그를 제지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합법적 증오의 표출구를 잃은 시민은 무력으로 그것을 표출했다.
-피에로 소데리니
피에로 소데리니 역시 위와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그를 합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자, 시민들은 결국 에스파냐 군대를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했다. 타국의 군대를 자국에 불러들인다면 타국의 군인은 문제가 해결되면 자국에 칼을 겨눔으로써 국가를 붕괴되게 하기 때문에 꼭 합법적 증오 표출제도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분쟁에 개입한 외국 군대의 위험
한 나라가 타국의 군대를 불러들이는 일은 언제나 그 나라의 나쁜 제도가 원인이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는 호민관 제도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로마의 사례
로마에서도 토스카나 지방의 키우지에서 사는 아룬테의 누이동생 루크모네가 가문의 어떤 사람에게 능욕을 당했으나, 그들에게 이길 방법이 없어 결국 갈리아인들에게 복수를 부탁하게 된다. 이 역시 도시에 제대로 된 제도가 없어 외세에 의존하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민관 제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중상은 안 된다. 중상이란 증인이 필요 없는 어떤 뜬소문 같은 것이고, 고소는 증인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뜬소문으로 마구 고소해서는 안 된다.
8장. 탄핵이 소중한 반면, 중상은 해롭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푸리우스 카밀루스가 세운 무공 덕분에 그가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게 된 것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가 가진 질투로 가진 중상모략이 로마에 가져온 혼란에 대해 설명한다. 카밀루스가 갈리아인 때문에 고전하자, 카피톨리누스가 그 갈리아인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공은 카밀루스에게 돌아갔고, 카피톨리누스는 인민들에게 카밀루스가 참주가 되려 한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그래서 의회가 소집되었고, 카피톨리누스에게 그가 한 말에 대해 증거를 대라고 했지만 그가 댈 수 있는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 카피톨리누스는 감옥에 투옥된다. 즉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소자와 고소당한 사람 둘 다가 엄격하게 불이익, 또는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카피톨리누스는 대단한 공을 새운 사람이었는데도 중상으로 인해 투옥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라는 제국이, 공화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상은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결국 중상은 아무 이유 없이 국가를 파탄에 빠트리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이를 제지할 좋은 방법은 각종 고발의 경로를 열어놓는 것이다. 고자질과 고발은 다른 것이다. 고자질은 비방에 가까운 반면, 고발은 공화국에 큰 도움이 된다. 고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제도에는 언제나 중상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그런즉 공화국을 건설하는 자는 고발이 그 공화국 내의 어떤 시민을 상대로 해서든 아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제기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중상은 시민을 화나게 할 수는 있지만, 반성하게 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 중상과 고발을 가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상이 피렌체를 어떻게 괴롭혔는가
피렌체는 중상을 없앨 수 있는 적절한 제도가 없는 국가였다. 조절장치가 없는 상태에서의 증오는 분열을, 분열은 당파를, 당파는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 이런 중상은 확실히 정략적인 면도 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반니 구이차르디니는 피렌체에서 중상을 당했다
그는 피렌체 군대를 이끌고 루카를 포위했으나 이 도시를 함락하는 데 실패한다. 이와 동시에 그의 정적들이 그가 루카와 뒷돈을 주고받았다며 비방하고 중상하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재판에 출두하길 바랐지만, 그에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기회조차 없었다.
반면 로마의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는 처벌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중상을 당한 사람이건 중상한 사람이건 고발할 의무가 있었고, 고발 내용의 진위 유무에 따라 처벌을 받기도 보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함부로 중상하지 않았다.
9장. 새롭게 공화국을 창건하거나, 구제도를 철저히 혁파하여 공화국을 쇄신하는 일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야 한다
-로물루스가 저지른 살인
로물루스의 살인은 옳은가, 그른가? 마키아벨리는 로물루스의 목적과 의도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경우에는 함부로 비판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후에 마키아벨리는 로물루스의 목적과 의도가 공공선을 목적으로 했기에 합법적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오직 한 인물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권위의 속성이다. 뭔가 하나에 미친다는 것은 아무것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모른다. 권력에 미친다는 것도 그렇다. 패가 갈리면 나라가 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국가의 지도자는 한명 뿐이어야 한다. 권력은 나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만일 권력을 잡지 못한다면, 그저 이인자, 삼인자로, 또는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게 한다. 자신에 맞는 적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한 인물에 의해 조직되지 않으면 좋은 국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국자는 초기에는 신중하게 공적인 선을 추구하고, 집단의 모든 권위를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가 국가가 자라게 되면, 건국자의 그림자는 점차 지워지게 되어 있다. 국가의 초창기에는 항상 권력 싸움이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비판해서는 안 된다. 로물루스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는 파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복원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현명한 건국자는 미래에 대비한다
이런 건국자는 신중하고 고결하며, 자신의 권한을 세습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악에 쉽게 물들기에, 후계자가 사적 야망을 채우는 대에 권한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국에는 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즉 마키아벨리는 처음에는 제정이, 그 후에는 공화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힘이 모여야 나라가 위대해질 수 있다. 건국에는 단수성이, 유지에는 다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물루스의 건국이 결국 자신의 야심이 아닌 공공선에 있었다는 것(예컨대 건국 이후 즉각적인 원로원 창설과 원로원에서의 협의를 통한 통치,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군대 통수권과 원로원 소집권 외에는 어떤 것도 자신에게 남기지 않음)을 이유로 들어 그의 악행을 정당화하고 옹호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견해일 뿐, 로물루스가 로마를 혼자서는 다스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원로원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명한 건국자들:모세, 솔론, 리쿠르고스, 클레오메네스
다른 사람들은 제쳐두고 클레오메네스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그는 리쿠르고스의 법률로 되돌아가고자 했는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숙청함으로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마치 이처럼, 한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모든 권한을 장악할 필요가 있으며, 로물루스가 레무스, 티투스 타티우스를 살해한 행위는 비난이 아니라 용서를 받을 가치가 있다.
10장.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는 한편, 참주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
공화국이든 왕국이든, 창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참주가 되는 것은 유사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참주는 모든 이익을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볼 때 질타의 대상이 되어질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왕국을 건설해 영구적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유능한 사람도 종종 참주의 유혹에 넘어간다고 언급한다. 결국 이는 국가를 분란에 빠트리는 원인이 된다.
-역사는 참주를 비난한다
공화국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거기로부터 이득을 얻기 바란다. 그런 사람이라면 카이사르보다는 스키피오가, 나비스, 팔라리스, 디오니시오스보단 아게실라오스나 티몰레온, 디온과 같은 군주로 살기를 바랄 것이다. 전자는 극단적으로 매도되는 반면, 후자는 최상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카이사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시의 역사가들은 카이사르에 대해 좋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는 언제나 승자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렇기에 승리의 역사는 이긴 사람에 의해 편집된 사실들일 뿐이다. 한 세대라는 것은 100년 정도인데, 이런 시기동안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조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모든 것이 애매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카이사르가 역사적으로 찬양받는 것이 이런 일종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한다. 특히 로마제국이 그의 이름아래 통치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보기에는 카이사르가 비난을 받아 마땅하며, 그의 적 부르투스가 찬양받는 것도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적이라는 의미에서 찬양받는다고 생각한다. 공화정에는 원로원과 집정관, 호민관과 평의회가 있었다. 이 두 세력의 갈등에 의해 공화정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평민들의 권력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야금야금 귀족의 입지를 갉아먹다가 마침내 다 없애고 10인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이 10인 위원회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래서 인민들은 귀족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카이사르가 등장해 10인 위원회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참주가 나오기 가장 쉬운 때는, 국가의 분열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인민의 사랑에 의해 방어된다
교주, 독재자, 참주는 결국 다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민중은 그들을 지지하고 떠받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단숨에 추락하게 된다.
공화국의 지도자는 법률에 따라 훌륭한 군주로 처신한 자들이 칭송을 받는다고 언급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대표인물로 티투스, 네르바, 트라야누스, 아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를 든다. 이들은 근위병도 호위군단도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들의 품성, 인민의 호의, 원로원의 사랑으로 방어되었기 때문이다.
독재자나 참주는 이런 훌륭한 군주가 변질된 형태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이 개인에게도 나름대로의 품성이 있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있고 원로원의 지지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교주, 독재자, 참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선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했을 때 한 개인이 이런 것을 갖고 있을 때는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이익은 그대로 자신의 이익이고, 공공선은 하나님의 뜻이 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한 개인이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 갈 때 거기에는 사랑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마침내 교주가 되게 한다. 반면 하나님의 뜻의 흐름속에 한 개인이 신앙 공동체를 끌어가고, 거기에서 사랑이 따르게 되면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건전한 공동체 안에 들어있느냐, 들어 있지 않느냐에 대한 기준이 된다.
반면 사악한 군주들은 아무리 막강한 군대가 있다고 해도 자신을 보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카이사르에서 막시미누스까지 2명의 황제 중 16명은 살해되었고, 10명만이 제대로 삶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지속적으로 세습에 의해 현성된 권력에 비판적인데, 그 이유는 실제로 티투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습 황제들이 사악했단 것을 증거로 든다. 반면 양자로 황제에 오른, 메르바에서 마르쿠스에 이르는 5인은 아주 훌륭한 군주였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 치하의 세계
마키아벨리는 네르바에서 마르쿠스에 이르는 시기를 황금기로 놓고, 그 이후의 시기를 침체기로 본다. 훌륭한 황제는 자신이 통치하던 시대에 안전한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와 정의로 충만된 세계에서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여기서 모든 시민은 공화국 때처럼 하나하나가 시너지를 내며 최상의 선을 구현했다. 반면 다른 황제들은 전쟁으로 인해 광포해지거나, 폭동에 시달리고, 언제나 잔혹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잔혹함의 원인을 모두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있다.
-통치자의 진정한 영광
1인 통치자의 영광은 건국할 때, 타락한 상황을 개혁할 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때 외에는 역시 공화정이 좋다고 마키아벨리는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정치체제에서 공화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공화정이 왜 좋은 정치인가, 일인과 다수의 동치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결국은 공화정이 로마를 대제국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1장. 로마의 종교
-종교에 대한 존중
마키아벨리 입장에서 로마 제국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공화정이라는 환경이 있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종교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의 성공에는 일종의 포르투나, 즉 행운도 뒤따랐는데, 그것은 바로 원로원이 누마 폼필리우스를 로물루스의 후계로 삼은 것이었다. 로물루스가 정치로 공화정을 만들었다면, 누마는 종교화를 이루었다. 누마는 인민이 거칠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키아벨리는 이론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다. 실제적인 것들을 두고 자신의 논리를 펴 나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보며 이것이 하나의 일관된 철학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평화적인 수단으로 인민이 법률에 복종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를 위한 수단이 바로 종교였다. 종교를 기초로 국가를 확립함으로써, 로마를 신에 대한 경외가 강한 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권능보다 신의 권능을 더 존중했기에, 로마인은 법보다는 종교를 더 두려워했다. 하지만 통치자들에게 종교는 하나의 정치수단이었다. 반면 인민에게 이것은 신앙이었다.
-로마인들이 종교를 존중한 실례들
스키피오가 한니발이 로마를 격파한 후 도주하기로 결의한 시민들에게 조국을 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칼로써 받아낸 사건이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는 루키우스 만리우스를 호민고나인 마르쿠스 폼포니우스가 고발하자, 그의 아들 티투스 만리우스가 마르쿠스를 찾아가 고발을 철회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마르쿠스는 겁에 질려 맹세했지만, 고발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칼에 의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로마인들은 그것을 지키는 종교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것들이 지켜졌고, 왜 이런 지켜진 종교를 통치술로 사용했을까? 일단 이들이 왜 이렇게나 종교를 지켰을까를 생각해 보자.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규칙이나 관습은 모양이라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통치자의 기반이 사라진다. 그것을 통치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행동과 말이 일반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규칙과 관습을 지키면, 자동으로 그 신앙심이 다음 세대에도 생겨서, 맹세를 했으면 죽는 것을 불사하고도 적들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누마가 종교를 통치에 사용한 방법
마키아벨리는 건국 이후 로마를 유지하는 데 종교의 힘을 이용한 누마를 건국자인 로물루스보다 더 훌륭하다고 추켜세운다. 종교가 있는 곳에서는 평민을 무장시키기 쉽지만, 무기만 있고 종교가 없는 곳에서는 평민을 무장시키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마는 로마의 문무를 정비하기 위하여 비단 자신의 권위를 넘어서는 존재의 권위가 필요했고, 이런 의미에서 누마는 인민에게 조언하려는 내용이 마치 신으로부터 온 양 위장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새로운 제도를 로마에 도입하기 위해, 누마는 자신의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체, 즉 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왕이 어떤 말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데, 누마는 자신의 뒤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만들어, 어떤 절대적인 것에서 나오는 말인 것처럼 자신의 말을 인민들에게 전해 순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거짓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참된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오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그 메시지 속에 체제가 있어야 한다. 누마는 이것은 깊이 이해하고, 신의 세계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법으로 묶을 수 없는 것을 보이지 않는 세계로 묶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다. 통치자 그룹에 속한 사람은 종교를 반반으로 생각한다. 반은 정치 수단으로, 반은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야훼 종교 외에 모든 종교는 모두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황제가 신이 되는 길도 열리게 된다.
참된 지도자, 진실된 지도자. 참된 지도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서 그 위에 체제를 만드는 지도자이다. 참된 지도자보다 조금 못한 것이 진실된 지도자인데, 진실된 지도자라는 것은 이런 메시지는 없지만 성경의 메시지로 인해 체제를 만드는 지도자이다.
-개혁자들은 신에 호소한다
마키아벨리는 실로 어떤 입법자로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비상시 법률을 제정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외에는 이런 좋은 일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런 점에서 종교의 도입은 인민을 통제하거나 선도하는 데 효율적인 장치가 되는 셈이다. 마키아벨 리가 보는 종교의 특징은 사실 정치를 위한 도구적 차원의 특징 이상은 아닌 셈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르네상스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마는 즉 인민들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강력한 군주인가 종교인다:현명한 군주는 허약한 후계자에 대비한다
마키아벨리는 오직 한 인간의 활력에만 의존하는 왕국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활력은 한 인간의 생명과 함께 사라지며, 세습의 과정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이나 왕국을 구원하는 것이 좋은 군주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이후의 유지라고 보는 것이다.
로물루스는 법을, 누마는 종교를 같이 통치 수단에 결합했다.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이라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반면 지도자는 단명한다. 그러면 또 다른 왕을 세워야 하는데, 세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습하면 필망한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 자체, 법이라는 것 자체는 나름대로의 영원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결국 국가의 유지에 목적이 있다.
12장. 종교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가 로마교회의 처신으로 인해 파멸에 처하게 되었는가
-이교의 신탁
마키아벨리는 누마가 종교룰 도입했기 때문에 로마가 번영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이나 군주가 타락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자신들의 종교나 의식을 타락시키지 않고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국가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도 불특정 종교를 정치적으로 사용하지만 말고 이 종교가 부패하지 않도록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그것을 했던 첫 번째 왕이 샤를 마뉴이다. 그는 유럽을 차지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문화발전의 일환으로 종교를 개혁한 것이다. 종교 쇄신의 항목 중 제일 먼저 들어간 것이 사도신경을 만든 것이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를 마뉴는 그들에게 사도신경을 통해 그들 믿음의 대상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그가 종교개혁을 한 이유는 종교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그래서 대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장치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가 소홀이 되는 것은 국가 파멸의 징조일 수 있다. 종교의 토대를 보존하는 것은 공화국이나 왕국의 통치자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다. 이렇게 되면 종교는 국가를 선하고 단결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교의 기적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종교적 신앙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례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특히 기적이나 신탁이 현명한 자들에 의해 과장되고, 이것이 그들의 권위와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됨으로써 자발적 충성이라는 결과를 산출하는 사례들이 이에 해당한다.
-기독교의 타락
기독교가 대체 몇 나라를, 몇 사람을 몰락시켰을까.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인데 어째서 반대가 되어 버렸을까?
마키아벨리는 기독교의 타락이 로마교회의 우두머리와 그 근처의 있는 사람들의 비 종교성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비종교성은 초창기 교회와의 차이를 통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모든 타락은 로마교회의 우두머리와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서부터 일어난다. 종교 타락도 교황과 추기경부터 시작되었다. 너무 친근해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된다.
-교회는 이탈리아에 해를 입혔다
다수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가 교회를 통해 평안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에 반대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로는 로마 교황청이 나쁜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이탈리아는 경건함과 신앙심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한다.
-교회는 이탈리아를 분열시키고 있다
결국 교회의 타락은 이탈리아인이 신앙심을 잃고 사악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 교회가 쉴새없이 이탈리아의 분열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다섯가지 세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교회다. 그런데 교회는 이탈리아를 통일할 만큼의 세력을 갖고 있지 못했고, 다른 네 개의 세력도 교회를 탄압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교회는 정작 이탈리아를 통일할 세력이 나타나면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타국의 세력을 빌려오는 우를 저질렀다.
-교회는 야만인들을 이탈리아에 불러들였다.
결국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이탈리아는 외세에 쉽게 침입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는 외침과 내분 때문에 결국 분열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홀리 브레인을, 부자와 가난한 자를, 진보와 보수를 나누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13장.
-평민을 다루는 데 사용된 종교
어느 해 로마인들은 집정관의 권한을 가진 호민관을 선출했는데, 이때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민 출신이었다. 마침 이때 질병과 기근, 이상한 징후들이 일어났는데, 귀족들은 이 기회를 틈타 이 일이 호민관의 잘못된 권력의 사용 때문에 신들이 노한 결과라고 선동한다. 그래서 평민들은 이에 겁을 먹고 귀족만 호민관으로 선출하게 된다.
-만족스러운 신탁
종교는 잘 활용되기만 하면 도시를 점령하거나 호민관의 직위를 귀족들에게 돌려주는 데 도움이 된다.
-원로원은 호민관에 대항해 종교를 사용했다
호민관 텔렌틸루스는 농지개혁을 하려 했다. 농지를 몰수해서 평민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불만이 생긴 귀족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종교를 이용한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로 그들은 운명의 서적 시비르를 참고하도록 요청했는데, 거기에 나온 내용은 로마가 그 해에 내분으로 인해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호민관은 속임수를 폭로했음에도, 평민들은 두려움 덕분에 호민관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외부세력에 대한 침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부추겼다. 그 결과 텔렌틸루스는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14장. 로마인들을 새점을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해석했으며, 심지어 종교가 요구하는 바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종교를 준수하는 외양을 신중하게 유지했다; 그리고 그 누구든 성급하게 종교를 경시하면, 그를 처벌했다.
-새에 의한 점
점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교들이 신봉한 고대 종교의 토대였을 분 아니라 로마 공화국에도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집정관의 임명, 사업의 시작, 군대의 출정, 전투의 수행 등과 관련해 새점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풀라리라 불리는 점술가들의 점, 즉 닭이 모이를 먹으면 길조, 그렇지 아니면 길조가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점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로마이들은 닭이 모이를 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필히 수행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점괘와 달라도 전투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에도 그들은 종교를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점을 치는 새를 둘러싼 속임수
집정관 파피리우스는 삼니움 군과의 전투에서 풀라리에게 새점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닭은 모이를 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풀라리의 우두머리는 점괘가 좋게 나왔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몇몇 풀라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자, 집정관은 점괘가 잘 나왔다면 로마군은 승리할 것이고, 만일 풀라리의 우두머리가 거짓말을 했다면 신이 그를 벌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풀라리들을 전투의 선두에 배치하게 했다. 그리고 우연처럼 한 로마군이 풀라리의 우두머리를 창으로 맞추게 하고선, 신이 그를 벌하셨으니 이제 전투가 신의 가호 아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종교의 규칙을 위반했단 것을 교묘히 속이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표적 사례이다.
로마인들은 종교를 무시할 상황에서도 종교의 외양은 준수하는 매너를 발휘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지혜를 이용해 교묘하게 종교를 이용해 승리로 이끌었다. 점술가를 죽여서 군사들이 안도하게 만든 다음, 그런 상태로 승리할 수 있는 베이스를 깔아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렇게 하면 망하고 만다. 하늘나라에는 책이 많다. 책에는 우리의 행적을 적고, 어떤 동기에서 이렇게 했는지 동기를 적는다. 외양을 갖추는 이유는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양을 갖추고 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았을 때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참고 견디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행적이 아니라 동기를 보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신다. 이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다. 수십만 페이지의 하나님과 안 맞는 내용들만 적힌 우리의 인생을 보시면서도, 모든 것을 속아 주신다. 우리는 평생 기독교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산다. 기독교는 딱 두 가지이다. 율법 준수냐, 은혜냐. 이 두 개가 균형을 잡아 우리를 철들게 하는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은 없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나 종교에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는 정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다. 신앙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신앙은 우리를 구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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