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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최치원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요, 가을은 사색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만리타향에 있는 사람에게 가을은 더 없이 쓸쓸했을 것은 분명하다.
868년 어느 날, 당나라로 떠나는 열두 살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10년을 공부하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한마디에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향수에 젖은 나머지 읊조린 시를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②]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글/ 張喜久(장희구 문학박사 / 문학평론가· 시조시인)
秋夜雨中(추야우중) /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가을바람 괴로워서 시 한 수 읊조리니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어찌 이리 없다던가
깊은 밤 등잔불 켜놓으니 만리 고향 서성이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이국땅에서 깊어가는 가을밤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秋夜雨中) 모습을 담은 오언절구다. 고국을 그리는 쓸쓸한 내용이 담겨진 이 시의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운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유명하며, 그는 유교·불교·도교 등에 조예가 깊었다.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읊조리니 /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은 적구나 / 창 밖에 밤 깊도록 비는 내리고 / 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만이 서성인다]라는 시상이다.
▲ 고운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지은 글들을 묶은 ‘ 계원필경’ (최치원 기념관 소장)
최치원은 약관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후, 17년간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한다. 884년 당 희종이 신라왕에게 내리는 조서를 가지고 귀국할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신라 헌강왕은 최치원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요직에 썼으나 다음해에 승하하는 바람에 최치원의 출중한 학문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결국 불운한 일생을 마감한다.
시인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고향산천을 그리워함은 인지상정임을 보인다. 자기의 학문과 인격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으로 보아 외로워하는 정황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외로움이 결국은 고국을 향한 만리심이란 향수로 번지는 고국애로 전개된다.
화자는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자기의 재주를 몰라주는데 대한 서운함과 고국을 향한 만리심에서 엿본다. 예나 이제나 영재는 외롭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한시다. 위 한시는 결구(結句)에서 보인 등잔불 앞에서는 고국심이 서성이고 있음에서 그 격을 높인다.
한자와 어구 秋風: 가을바람. 唯: 오직. 苦吟: 괴롭게 읊다. 世路: 사람들이 다니는 길. 少知音: 소리(괴로운 소리)를 알아듣는 이가 적다. 窓外: 창 밖에는. 三更雨: 삼경(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내리는 비. 燈前: 등잔 앞. 萬里心: 만리타향에 있는 고향(신라)을 그리는 마음. |
(다음호에 계속)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2호 (2014년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