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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명령
이 홍사
22세기 최첨단미디어 시대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소위 말하는 첨단미디어 산업도시에 그 거침없이 달리는 시간과 공간을 팔짱을 끼고 관조하는 황량한 가슴을 지닌 실업자가 있다.
그가 누구인가?
그로 말하자면, 쪽팔리지만 직설적으로 ‘나’라는 인간이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니 한량없이 쪽이 팔리지만 쪽이 밥을 먹여주나? 사실대로 서술할 수밖에는.
-요즘은 조개들이 더 난리다.
이 말은 웨이터 세계에서 왕고참인 지배인 녀석 조영필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유부녀들이 이 나이트에서만큼은 더 난리라는 얘기다. 처음에 그렇게 듣고 이곳에서 두 달을 겪어보니 영판 틀린 말은 아니다. 조영필! 본명이 뭔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개똥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 호박나이트에서 뼈가 굵은 놈이다. 놈은 중퇴한 주제에 개똥고등학교 21회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이 호박나이트에 웨이터 보조로 특채(?) 되던 날 나를 개별면접을 본 놈이 바로 저 조영필이다. 녀석은 나이트클럽 이 층, 개별 룸 끝에 붙은 지배인실 회전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웨이터 보조로 면접을 보러온 나에게 물었다.
-아그야! 학교는 어딜 나와 부렸냐?
-예! 저어기 개똥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뭐여? 개똥고등학교? 짜싸! 내가 개똥 고등학교 21회야. 동상은 몇 횐가?
나는 하마터면 ‘19횐데요, 라고 말할 뻔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잠시 계산하는 시간을 요구하는 면접장이었다.
-예! 저....... 23횝니더.
-역시 개똥고등 출신답게 걸망하게 생겨부렀네. 후밴데 면접이고 지랄이고 볼 필요도 없겠지. 존경하는 선배가 특채로 채용하는 거야.
녀석은 담배를 문채 일어서서 내 대갈통을 한 번 쓰윽 쓰다듬고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는 옆에 까만 양복을 입고 서있는, 조영필보다는 나이가 두어 살 많아 보이는 깍두기 머리의 녀석에게 말했다.
-야! 라후나! 이 자식 이거 좀 어리버리하게 생겨먹었지만 내 후배니까 네 딱가리로 똑 바로 갈키고, 이름을 뭘로 짖지? 가만있자......... 태지나! 태지나가 어때?
차려 자세로 서있던 라후나 라는 녀석은 허공에 대고 거침없이 외쳤다.
-좋습니다. 태진화! 멋지게 키우겠습니다.
-태진화가 아니라 태지나라고 했어 이 자식아! 아무튼 물건으로 만들어 부러!
그날부로 나는 내 본명인 심학수. 할아버지께서 늦게 보신 삼대독자에게 청송 심 씨 집안의 항렬을 따라 심혈을 기울여 지어주신 심학수라는 이름을 버리고 소똥대학의 철학과 출신이라는 학력마저도 숨긴 채 나이 스물아홉에 이 호박 나이트에 태지나로 특채(?)가 되었다. 생각하니 이곳이 두 번째 직장이다. 월급 육십만 원 짜리 웨이터 보조지만 엄연한 직장이고 웨이터인 남지니의 말에 의하면 융통성만 잘 부리면 돈이 되는 곳이라고 했다.
이 호박나이트에는 웨이터가 스무 명이 넘는다. 두 달을 근무했지만 서로 간에 본명을 모른다. 다들 한물 간 가수들이나 개그맨 이름을 살짝 꼬아서 닉네임으로 소통된다. 조영필. 라후나. 남지니. 송대가니. 강오동. 대충 그런 식이고 나는 이곳에서 태지나로 명명된다. 웨이터뿐만 아니라 손님들조차도 조명에 보이도록 커다란 명찰을 달고 다니기에 나를 두고 거리낌 없이 태지나라고 부른다.
세상에!
이 말은 나를 태지나라고 부르는 소릴 들을 때마다 속으로 내지르는 감탄사다. 청송심씨 삼대독자가 태지나로 변해 야간 업소를 뛰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도시는 첨단 산업을 날로 개발하며 거침없이 달린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앞을 내다보면 까마득하다.
엊그제! 일요일에는 소똥대학 동아리 동기중의 한 놈이 결혼을 했다. 예식장은 멀지 않았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제 아버지의 후계자로 첨단 디지털 도시의 국내 굴지 전자회사에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을 인계받을 것이다. 그 자식과 나를 저울대에 얹어 놓고 보니 기울어도 너무 기울어 도저히 예식장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유명호텔의 예식장이었으니 화려하게 결혼을 했겠지. 가볼까 말까 고민과 갈등을 했지만 그곳에 가면 내 자신이 더 초라해질 것 같아 포기했다. 생각하니 입안이 씁쓸하다.
자고로 인간이란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이라고 했다. 전시에 장군을 태우던 군마도 전쟁이 끝나면 잘 실으면 봉물짐이요 못 실으면 똥장군이라고 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만나 용감무쌍한 장군은 고사하고 똥장군마저도 싣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망아지 꼴이 된 것이다.
조기 명퇴, 설비 자동화로 인한 인원감축, 자동 퇴출. 결코 이런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소똥대학의 학사모를 썼으니 갈 곳이 없었다. 만만한 게 공무원시험이라고 9급 행정직에 원서를 두 번이나 냈었다.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수험표를 다운받아 출력했다. 그러나 천이백 대 일이라는 경쟁률을 접하고 서울까지 가는 차비를 아끼는 게 마땅하다는 판단으로 두 번 다 결시했다. 그 결시에서 얻은 것은 포기만큼 맘이 편한 게 없다는 것이다.
첫 직장은 이 첨단 미디어 도시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전자회사에 근무했다. 정식으로 채용된 것이면 시대를 탓하는 불평이 나올 수가 없겠지만 그 회사가 아니라 청소 용역업체의 청소부 아줌마를 태워다 주는 봉고차 기사로 취직을 한 것이다. 시간에 맞추어 그 회사에 청소하는 아줌마들을 태워다 주고 또 교대시간이 된 아줌마를 태워 나오는 용역업체 봉고차. 그 회사뿐이 아니라 첨단 디지털 공단의 서너 회사의 청소를 맡고 있는 업체라 쉴 짬이 없고 정확히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주야간이 있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두 시에 교대하는 근무조가 있다. 쉬워 보이지만 늘 시간에 얽매여 사는 직업이다. 그 승합차를 칠 개월 운전했었다.
인력 알선업소를 통해 이삿짐센터나 아파트 페인트 보조로 일당을 받고 나간 것과 대리운전 일주일 한 것을 제외하면 그게 나의 첫 직장이었다. 소똥대학을 다닐 적에 운전면허시험이라는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군에서 육군 수송병으로 근무한 이력으로 그 용역업체에 친구의 소개로 들어갔지만 칠 개월 만에 잘렸다. 잘림과 동시에 그곳에서 이력을 쌓아 용력업체를 차리겠다는 내 포부도 함께 뭉텅 날아갔다. 이유는 투철한 사명감 부족으로 인한 근무태만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이상하게도 일을 하면 남보다 앞서가지 못하고 늘 꾸중을 듣는 편이다. 이삿짐센터에서도 요령 없이 일을 해서 땀은 남보다 두 배를 흘리지만 손이 굼뜨다고 늘 핀잔을 받았고 페인트 보조로 나가도 늘 퉁을 먹었으며 심지어 대리운전을 나가서도 손님이 기다리는 술집을 빨리 찾지 못해서 술 취한 손님으로부터 청송심씨의 삼대독자 귀한 몸이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다. 말썽 없이 다닌 곳은 그 곳 뿐이었다.
내가 잘리던 날. 생각하니 그날은 정말이지 재수 옴 붙었다.
예비군 훈련이라 아침 교대만 해주고 훈련을 간다고 용역업체 사장에게 훈련통지서를 내밀며 보고를 했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치감치 예비군복을 차려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침교대를 시켜주고 바로 훈련장으로 가서 여덟 시간 훈련이라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교육을 받았다. 오후에 있는 작은 회사의 인부 교대는 사장이 승용차로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저녁 여덟 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교대 팀은 내가 훈련을 마치고 시켜주기로 하고 승합차를 끌고 가서 오랜만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착실히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훈련을 확인서에 도장을 받는 것까지는 좋았다.
훈련을 마치고 하루 종일 붙어 다니던 훈련소 동기이고 개똥고등학교 동기생인 철민이라는 자식을 태우고 집 앞에 왔다. 아파트 단지 안에 매일 차를 세우던 자리에 주차하고 맹숭맹숭하게 헤어지기 뭣해서 아파트 단지 앞 상가의 돼지 국밥집에 가서 간단하게 소주 세 병을 비우고 나니 교대 시간이 네 시간이나 남았었다.
그 때 시간이 오후 네 시였다. 술도 깨울 겸 모자라는 잠을 한 숨 자야겠다고 휴대폰 알람을 일곱 시 반에 맞춰놓고 곯아 떨어졌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알람이 울려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십삼 평 주공아파트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바람에 깨어난 것이다. 문을 두드린 이는 다름 아니라 용역업체의 사장이었다.
-관 둬!
문을 열자 사장이 내 얼굴에 대고 뱉은 한마디였다. 손에 들린 승합차 키를 뺏어들고 사 층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여덟 시가 아니라 다음날 아침 여덟 시였다. 어떻게 오후 네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덟 시 까지 죽은 듯이 잘 수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뭐에 홀린 놈처럼 휴대폰을 확인하니 휴대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져 있었다. 홧김에 휴대폰을 집어던졌는데 설상가상 액정이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게 액정이 나가 화면은 먹통이지만 통화에는 지장이 없다는 점이다. 저녁 여덟 시 교대와 새벽 두 시, 그리고 아침 일곱 시. 세 번의 교대를 혼란시켜 엉망으로 만들어 사장의 애간장을 녹여놓은 것이었다. 통화는 되질 않고 내 이력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집에까지 찾아올 정도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날 오후에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얘기하고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사장의 대답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휴대폰이고 나발이고 투철한 직업정신의 부족으로 인한 근무태만이고 벌써 기사를 구했다’며 반쪽 월급은 통장으로 넣어주겠다고 하고는 철거덕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전화 끊는 소리는 지금도 귀에 생생히 살아있다. 아득한 단절감이.
엄마가 집에 계셨다면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을 터인데 공교롭게도 전자 하청회사에 다니시던 엄마는 이틀간 휴가를 내고 외숙모의 칠순 잔치에 참석차 수원에 있는 외가로 가 집을 비우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곳에서 잘리던 날부터 나는 거울을 일주일간 들여다보았다. 영정사진이 들어갈 만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는 거울을 사서 책상 앞에 세워놓고 그 거울을 일주일간 들여다보았다. 거울을 사던 날 불교용품점에 가서 영정사진에 붙이는 근조라는 한문이 새져진 검은 리본도 샀다. 검은 리본을 거울 테두리에 붙여놓고 거울을 이윽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나의 영전사진이 되었다. 나는 죽었다. 그 생각으로 거울을 보고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어보았다. 그 거울을 들여다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영정사진이다. 이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이 모습을 친구들이 보면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내가 아는 사람들 하나하나 짚어가며 객관성을 지닌 기분을 역동적으로 상상하며 짬이 나면 나가서 처방전을 끊지 않아도 주는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일주일간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단호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어머니에게 걸렸다.
어느 날 저녁, 일찌감치 퇴근한 어머니께서 ‘학수야 저녁을 뭐로 먹을까?’ 하시며 대수롭잖게 내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울 속에 열반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후다닥 거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내 얼굴이 그 검정색 리본이 달린 거울에 들어가 있을 때 어머니께서 뒤에서 그 모습을 보신 것이다. 기겁한 어머니께서 책상 앞에 세워진 거울을 들고 방바닥에 패대기쳐서 거울이 박살나고서야 나는 어머니께서 들어오신 사실을 알았다.
거울을 박살낸 어머니께서 서럽게 우시면서 홀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고 소리 지르며 어머니의 손이 내 따귀로 철썩 올라왔다.
-엄마! 이런 모습을 보아야 삶에 의욕이 생기고 삶에 애착이 가는 것이에요.
나는 엉뚱한 말로 엄마를 달랬다.
-그런 소리마라 너무 흉측하다. 엄마 가슴이 녹아서 죽는 것 볼래?
-엄마!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관을 집에 사다두고 관 속에 들어가서 자는 놈이 있어요. 다음날 깨면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겠죠?
-뜨신 밥 처먹고 쉬어터진 소리 그만해라
어머니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날부터 열반 연습을 그만두었다. 대신 다음날부터 액정이 나가도 통화가 되는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인터넷과 교차로의 구인광고를 뒤적이는 비디오 평론가가 되어 집에서 뒹굴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내 생에는 좌표가 없다. 아버지의 부재로 좌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점점 더 크게 가슴에 부각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는 꼬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소방공무원인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사 학년 때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네 명의 목숨을 구하고 순직했다. 지금은 아버지의 얼굴마저도 어렴풋하다. 아버지의 순직으로 나는 귀하디귀한 삼대독자로 용암처럼 졸지에 굳어버렸다. 그 때까지 내 동생을 낳기 위해 불공을 드리러 다니던 엄마가 절에 발길을 끊었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아파트는 스물여덟 평짜리였지만 내가 소똥대학을 다니면서 열세 평 주공아파트로 내려앉아야만 했다. 무슨 공식처럼 형편이 그렇게 되었다. 기억에 가물가물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어느 날 교차로를 펼치니 눈에 번쩍 뜨이는 광고가 있었다. ‘젊은이여! 야망을 펼쳐라!’는 그럴싸한 광고를 보고 전화번호만 들고 면접을 보러 온 곳이 바로 이 호박나이트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젊은 야망을 이곳에서 어떻게 펼쳐야 할 지 모르겠다.
월급 육십만 원에 아줌마들을 부킹시켜주면 몇 푼 받는 팁이 고작이다. 내가 숙맥인지 순진한 건지 도무지 돈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다른 웨이터들은 돈이 된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돈이 되는지 그 어떤 녀석도 가르쳐주질 않는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수입이 너무 박하다. 밤새 손님 술시중을 들고 새벽 네 시쯤 퇴근을 한다. 오전에 자고 오후 두 시쯤 출근해서 외근을 나간다.
호박나이트에는 봉고차 지붕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크고 누런 호박덩이가 실린 차가 네 대다. 차 네 대가 줄지어 시내 구석구석을 돌며 선전을 한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우리 차량행렬을 심상한 눈으로 주목한다. 지나면서 젊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보이면 마이크에 대고 바로 말한다. ‘언니! 젊은 오빠! 우리 호박 나이트에 놀러오세요. 물이 좋아요.’ 차량 지붕위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그런 말이 나가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이도 더러 있다.
호박나이트는 바로 옆의 카사노바 나이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사노바보다 더 물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니 물이 좋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것이 우리의 오후 시간에 주어진 임무다.
지배인 조영필, 개똥고등학교 이 년 선배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이 년 후배인 그 놈의 명령에 의해서 시내를 구석구석 걸어다날 때도 있다. 그 때만큼은 태지나라고 새겨진 명찰이 달린 웨이터 복장을 하지 않고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다닌다. 전봇대와 담벼락에 불법으로 붙여놓은 카사노바의 포스터를 떼기 위해서다. 카사노바는 툭하면 한물 간 가수들을 초청해서 공연을 한다. 그럴 때면 이 호박 나이트에 손님이 확 주는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카사노바에서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포스터가 전봇대나 담벼락에 붙인다. 적당히 붙이면 좋으련만 온 시내를 도배한다. 호박나이트 웨이터는 거의 스무 명 쯤 된다. 오후 두 시에 나와서 한 조는 청소를 하고 한 조는 봉고차를 끌고 선전을 나가고 또 다른 조는 카사노바의 그 포스터를 떼러 다니는, 말하자면 좁은 바닥에서 죽음을 각오한 치열한 경쟁이다. 조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매일 지배인 조영필, 그 놈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포스터를 떼다가 카사노바의 깍두기 머리들에게 걸리는 날이면 몸싸움이 크게 벌어지고 각목이 날아가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지난 달에 포스터를 떼다가 걸린 우리 호박나이트의 웨이터 강오동이 카사노바의 깍두기 머리에게 각목으로 대갈통을 맞아 열두 바늘 꿰매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경찰서에 가지 않고 윗선에서 해결했다. 윗선이란 바로 그 놈 조영필과 카사노바의 지배인이다. 어떻게 합의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강오동은 이틀을 쉬다가 다시 출근을 했다. 경쟁업소지만 이상하게도 이 도시에 나란히 붙어 공존해야 하는 업소인 모양이다. 고객주차장도 같이 쓰며 주차 안내원도 하루는 카사노바 하루는 우리 호박나이트에서 나간다.
우리 호박나이트는 지갑이 얄팍한 이십 대는 출입금지다. 그들은 들어와 보았자 돈은 안 되고 물만 흐린다는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웨이터는 제외지만 삼사십 대가 주요고객이다. 문 앞을 지키는 덩지 좋은 깍두기 머리의 두 명 웨이터가 만취고객이나 이십 대는 좋은 말로 돌려보낸다. 여성고객은 입장 시 오만 원을 준다고 선전할 때도 있고 매일 추첨을 해서 금반지 두 돈을 준다고 선전을 하며 실제로 새벽 두 시에 추첨을 해서 여성 고객에게 금반지 두 돈을 주는 날도 있다.
운이 좋게도 추점이 되어 금반지를 받은 여자는 기분이라며 바로 양주를 시키고 웨이터들에게 팁을 뿌린다. 나도 한 번은 오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 당첨되어 금반지를 받은 여자에게 축하한다고 했더니 내 명찰을 보고 ‘오우! 태지나! 맛있게 생겼는데?’ 라며 핸드백에서 지폐를 한 장 빼서 내밀었다. 지폐를 보니 신사임당께서 이 태지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금반지 두 돈을 받은 이는 그날 기분이라며 금 두 돈값이상을 뿌리고 간다. 호박나이트 입장에서 보면 결코 손해 보는 짓이 아니라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다. 선전 효과는 기본이고 추첨 때까지 손님을 붙들어놓고 매상을 잔뜩 올리자는 수작이다.
호박나이트 구조를 설명하자면, 일 층과 이 층으로 나뉜다. 천정이 높은 일 층 가장자리로 이 층이 룸이 디귿자로 둘러져 있다. 이 층에는 크고 작은 룸이 스물여덟 개고 끝 방이 지배인실이다. 일 층에서 부킹이 된 손님들은 이 층의 밀실로 올라간다. 일 층 스테이지에서 근육질의 젊은 댄서들이 광란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부킹이 된 아줌마들은 관심을 끊고 이 층으로 올라가 밀실에서 무언가를 즐긴다. 그런 여자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컷냄새가 그리워서, 부킹을 노리고 오는 팀이다. 이 층 밀실에는 가요주점처럼 노래방 기기가 방마다 설치되어 있다. 호박나이트 입장에서 보면 이만 구천 원짜리 기본만 마시고 춤을 추는 일 층 손님은 돈이 되지 않는다.
이 층으로 부킹되어 올라가면 대개가 맥주를 박스로 들여놓거나 양주를 시킨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십만 원이 넘는 양주는 진품이 아니다. 부킹이 된 방에 양주와 안주를 들고 올라가서 테이블에 놓고 손님들을 향해 즐거운 시간이 되시라고 인사를 구십 도로 하면 어떤 손님이든 팁을 준다. 보통 오만 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입을 싹 닦는 손님도 있다는 말이다. 주면 받고 안주면 그냥 나와 버린다.
부킹된 손님이 룸에 들어가서 팁을 안주는 경우에는 노래방기기의 볼륨을 조절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빈 술병을 치우고, 뭐 필요한 거 없냐며 자주 들락거리면 분명 팁이 나온다고 남지니녀석이 가르쳐주었지만 나는 낯이 간지러워 그게 잘 되질 않는다.
빈손으로 나와 이 층 복도에 서서 일 층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야릇하다. 춤을 추는 일 층의 난삽한 무리를 향해 오줌을 갈기고 싶은 충동이 종종 인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날은 분명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모르겠다. 춤추는 무리에게 이 층에서 오줌을 흩뿌리면 호박나이트가 또 한 번 이 작은 도시의 세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유명해지겠지.
이 호박나이트가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일명 ‘방울토마토 사건’이다. 물론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보지 못하고 그 전설 같은 이야기 들었을 뿐이다. 내 귀에까지 전해오는 과정에서 와전도 많이 되고 실감이 나게 좀 부풀려져서 들은 이야기라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건 전말을 설명하자면 너무 질펀해서 서술하기 어렵다. 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대충 짚어보자.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듣기로는 이삼 년이 되었단다. 이곳에 단골로 오는 속칭 꽃뱀이 있었다. 삼십 대의 주부라는데 두 명이서 단짝이 되어 하룻밤도 빼놓지 않고 왔다는 것이다. 남편이 뭐하는 작자인지, 어떻게 그렇게 밤마다 집을 비울 수가가 있는지 그 사건 전말을 듣는 나도 의아했었다. 아무튼, 날마다 나타나는 꽃뱀이라 불리는 두 주부는 매일 밤 남자들과 부킹을 한다고 들었다. 물론 좁은 바닥이니 더블 부킹이 이루어지겠지.
부킹이 되면 이 층의 룸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부킹한 남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고 지갑만 뜯어먹은 모양이다. 그것은 이야기를 들을 적의 내 짐작이었다. 화대만 뜯긴 남자들은 끈질기게 욕구를 충복시키려고 노력했음이 분명한데 다음에 점심을 한 끼 하자고 해도 전화번호도 엉뚱한 것을 가르쳐주고 술값을 뒤집어씌우고 가지고 놀았음이 분명하다. 그 두 꽃뱀에게 몇 번 당한 남자 둘이서 벼르고 어느 날 밤 호박나이트를 찾았다. 그렇게 벼르고 있는 줄 모르는 꽃뱀, 둘은 부킹이 되도록 요염하게 놀았으리라. 몇 번 당한 남자 둘은 그 꽃뱀에게 웨이터를 시켜 부킹을 시도 했단다. 소정의 목적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 한 남자 둘이 이를 갈며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꽃뱀으로 불리는 주부 둘은 단골로 오는 남자들이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물은 것이다. 처음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합석 합의가 되어 은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위해 이 층 룸으로 안내되고 술을 시켰다. 그 때까지도 영악하다는 꽃뱀은 눈치를 전혀 채지 못했고 남자 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술이 어지간히 되자 남자들은 준비해 간 약을 여자들에게 먹였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무슨 약을 어떻게 먹였는지 다들 명확하게 아는 이는 없었다. 한눈파는 사이에 술에 타서 먹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하여튼 먹으면 흐물흐물 축 쳐지지는 희한한 약인 모양이다. 어떤 약을 어떤 방법으로 먹였는지 모르지만 꽃뱀들은 약을 먹고 완전히 퍼진 모양이고 남자들은 이를 갈고 있던 일을 시도 했다. 사전에 무슨 상의가 있었는지 척척 손발이 맞게 그 동안 꽃뱀에게 물려 상처받은 마음을 보상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명 ‘방울토마토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약을 먹은 여자들이 소파에 쓰러지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안주로 올라온 테이블 접시의 방을 토마토를 어디론가 쑤셔 넣었는데 그 ‘어디론가’ 라는 장소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 ‘어디론가’는 바로 쓰러진 여자들의 팬티 속, 팬티 속에서도 더 나아가서 음부의 생식기 속에 방울토마토를 쑤셔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위를 파악할 수 없지만 그곳에 순간접착제까지 짜서 넣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앙갚음을 했다고 손을 털고 술값을 내고 사라졌으면 사태를 수습한 두 여자가 절대로 발설할 일이 아니니 세간에 소문이 돌지 않았겠지만 용맹무쌍한 사나이들은 거기서 그만 두질 않았다. 어지간히 약이 올랐던 모양이다. 방울토마토가 가득한 그곳에 또 오이 조각을 꽂아놓고 치마를 걷어올린 팬티를 무릎까지 내리고 음부와 얼굴이 같이 나오게 사진을 찍은 것이다. 여러 각도에서 앵글을 맞추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물론 제 사진기로 찍어서 제 파일에 보관했다면 소문이 나질 않았겠지만 제 카메라도 휴대폰도 아니요, 퍼진 두 꽃뱀의 핸드백을 뒤져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 그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단축번호의 1번이나 2번에 들어있을 ‘서방님’ 혹은 ‘남편’ 이라고 표시된 번호로 갖가지 사진을 전송시켜 버린 것이다. 마누라 관리 잘하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그 괴이한 사진을 받는 이는 그야말로 환장할 사태를 만들어놓고 술값을 내고 사라졌다. 그게 사건의 전말이다.
그 뒤에 사태를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들은 바가 없다. 중요한 건 ‘방울토마토’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 호박나이트가 상당히 질펀한 곳으로 작은 도시에 소문은 자꾸 부풀려져 유명한 곳이 되어버렸다. 뭇사람들은 호박나이트하면 방울토마토부터 떠올리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큰 호박이 실린 차를 네 대나 끌고 마이크를 달고 나가면 ‘방울토마토’라고 장난삼아 외치는 이도 있을 정도다. 하여튼 내가 이곳을 그만 두는 날 또 한 번 유명해질 것이다. 이 층 복도에서 일 층을 춤추는 무리를 향해 오줌을 갈긴다면 그것도 소문이 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층 복도에서 일 층의 춤추는 무리를 보고 있다. 저 아래로 오줌을 갈기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자제할 수가 없다. 혹 오줌을 흩뿌리면 일 층의 춤추는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라고 물방울을 뿌려주는 이벤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조명이 휘황찬란하고 자꾸 바뀌니 오줌인지 물인지 모를 수도 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고 있다.
이번 노래만 끝나면 악단들과 댄싱그룹은 다시 카사노바로 간다. 수영복차림의 남성그룹인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면 아줌마 손님들은 뿅 간다. 댄싱그룹 중에서 싱어, 마이크를 잡은 놈이 흘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닦아 무대 아래로 흩뿌리는 그 땀방울을 받으려고 아우성치며 광란을 넘어서 발광한다.
위에서 보니 참 못 말리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이다. 이번이 마지막 곡이다. 댄싱그룹을 우리 호박나이트에서만 하는 전용 그룹이 아니라 카사노바와 교대로 다니는 팀이다. 이번 곡만 끝나면 무대복인 수영복에 바바리를 걸치고 뒷문으로 나가서 바로 옆의 카사노바로 가는 것이다. 카사노바는 항상 우리보다 한 템포 느리다.
저 녀석들이 땀을 뿌리듯이 오줌을 갈겨도 그걸 받으려고 아우성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지니 녀석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야! 태지나. 지배인님이 찾으셔!
나는 하마터면 ‘그 놈이 나를?’이라고 대꾸할 뻔 했다.
나는 그 말을 꿀꺽 삼키고 가까스로 되물었다.
-지. 지배인님 어디 계시는데?
-지배인님 방에 계셔. 후딱 가 봐!
그 말만 흘리고 빈 접시를 들고 있던 남지니 녀석이 일 층으로 사라졌다. 그 놈이 나를 왜 찾지? 나는 이 층 복도를 따라 맨 끝에 달린 지배인실을 노크도 없이 들어섰다. 하긴 노크를 하더라도 음악소리 때문에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그 눔은 하얀 양복 차림이다. 조명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하양 양복에 빨강색 넥타이 차림이다. 책상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참이다. 나는 녀석의 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빌어먹을.
-찾으셨습니까?
잔뜩 꼬인 속을 달래며 용건부터 물었다.
-아그야! 내가 안 찾았으면 네가 왜 왔겄냐? 너는 먹고 살만하냐? 융통성을 전혀 부리지 않는다며?
-무슨 말씀인지?
-짜샤! 너는 이 차를 나가지 않는다며?
이 차? 이 차가 뭐지? 좀 의아했다. 이 차가 뭔지 그 대답은 그 놈이 바로 해주었다.
-짜사! 흘러있는 것들 안고 나가 이 차를 뛰어야 돈이 되지? 월급하고 팁으로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냐? 너 당장, 저 아래 구석에 퍼진 년 있지?
-어디 말씀입니까?
-일 층 왼쪽구석 14번 테이블에 퍼져서 자는 년이 있어. 아랫도리가 궁한 년이야. 요즘은 조개들이 더 난리라는 거 알지?
허걱! 놀랍다. 이 놈, 아니 지배인은 지배인 실에서도 아래의 상황을 낱낱이 훑고 있었다.
-저는 못 봤는데요?
-하여튼 있어. ‘날 잡아 잡숴!’ 하는 년인데, 아그야 네가 부축해서 요 앞에 모텔에 데리고 가서 방 잡아서 같이 자고 바로 퇴근해. 그래야 생기는 게 있지. 그게 바로 융통성이야. 짜싸! 너는 두 달이 넘었는데 융통성 부리는 거 한 번도 못 봤다. 멍청하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실감보다는 웨이터 업무 중에서 그런 일도 포함되어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업무가 구인광고에 선전하던 ‘젊은이의 야망을 펼쳐라’는 것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희한한 야망이군!
-뭘 꾸물거려! 명령이다. 실시!
명령? 나는 그 놈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지배인의 방을 나와 일 층으로 내려왔다.
그 놈 말마따나 일 층 14번 테이블에는 어느 놈팡이의 마누라인지 삼십 대의 왜소한 여자가 술에 취했는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그 놈의 말마따나 ‘날 잡아 잡숴!’ 하고 퍼져있다. 여자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집에 가서 주무셔야죠.
반응이 없다. 나는 좀 세게 어깨를 흔들었다. 그제서야 부스스 눈을 뜨고 하는 말이 걸작이다.
-여기가 어디야? 응. 호박, 호박이지. 총각! 나........ 방 하나 좀 잡아 줄래?
꼬리를 잘라먹은 반말이다. 요! 자가 분명히 빠져 있었다.
일단 여자를 일으켜 부축했다. 부축해서 통로로 나오자 남지니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앞으로 밀어보이며 묵언의 파이팅을 외쳤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다. 거리는 예상외로 한산했다. 호박나이트에서 길 건너 24시 편의점 옆에 있는 그랜드 모텔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부축해서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으로 데려가는데 걸음을 몇 번 휘청거렸다. 어지간히 마신 모양이다.
-정신이 좀 듭니까?
흘러내리는 겨드랑이를 다시 부축하며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안 듣네.
여전히 꼬리를 잘라먹은 반말이다. 순간적으로 ‘이걸 확!’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자. 울컥 올라오는 뜨거운 무엇을 울대로 간신히 넘기고 낙지처럼 흐물흐물 내려앉는 여자를 다시 추켜 부축했다.
-참 좋다. 잘 생긴 총각이 이렇게 모셔주니.......
술 취한 여자치고는 발음이 또렷했고 잘 생긴 총각이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날씬한 사모님을 모시니 저도 기분이 좋은 걸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응대했다. 모텔의 현관 계단을 오르며 여자는 다시 한 번 휘청했다. 그러나 카운터 앞에 서서 백에 든 지갑을 꺼내 계산은 정확히 했다. 이 여자가 정말 술이 취한 것일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방은 203호다. 나는 여자와 팔짱을 끼고 이 층으로 올라 203호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의 불을 밝혔다. 더블침대와 화장대가 정갈한 방이었다. 여자를 침대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이 내려놓았다. 여자가 침대에 걸터앉아 요염한 눈길로 올려다보며 담배부터 찾았다.
-잘 생긴 총각 담배 있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주자 한 개비를 물고는 불을 찾았다. 나는 친절하게도 불까지 붙여주고 화장대의 재떨이까지 대령했다. 여자는 몇 모금 빨더니 입 안이 쓴지 금세 담배를 재떨이에 껐다. 그리고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나를 보고 말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
여자는 옆자리 침대를 쓰다듬으며 앉기를 권했다. 뭘 해야 할지 어색하기만 했던 나는 내키지 않지만 여자의 옆 침대 끝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태지나! 너 맛있게 생겼다.
여자는 별안간 가슴에 달린 내 명찰을 만지며 요염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헉! 이게 무슨 소리야? 요즘은 조개들이 더 난리라는 조영필 놈의 말이 귓전을 스쳐갔다. 여자는 손을 뻗어 어색하게 앉아있는 내 가슴을 더듬기 시작했다. 당하고 보니 과연 이 여자가 술이 취해 몸을 못 가누던 조금 전의 그 여자가 맞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모텔로 끌어들이기 위해 취한 척 한 게 틀림없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남자라는 물건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 분명하다. 가슴을 쓰다듬는 여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생각했다. 이렇게 야망을 펼치는 것인가? 어색하기 거지 없는데........
-우리 같이 샤워할까?
여자는 더욱 대범해져 뜨거운 입김 같은 말을 내 귓볼에 불어넣었다. 달콤하기는커녕 거부반응이 불쑥 솟아,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여자의 양쪽어깨를 잡고 눌러 앉혔다. 거친 내 행동에 반신반의 하는 눈치였다. 따귀라도 갈기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여자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고 모텔 방문을 나섰다.
뒤에서 여자가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태지나.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거칠게 방문을 닫고 모텔을 나서며 가슴팍에 달린 태지나라는 커다란 명찰을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박살을 냈다.
조영필! 그 놈의 명령을 항명한 것이다. 이렇게 야망을 펼치는 것이라면 차라리 야망을 접어야겠다고, 오늘로서 이 짓거리도 그만 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웨이터 복인 연미복 윗도리를 벗어 모텔 담벼락에 걸어두고 집으로 향했다.
집을 향해 걷는데 무엇에 화가 났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젊은이여! 야망을 펼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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