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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이 사라지자 평등정책과 공정한 분배, 복지도 사라졌다. 평민 이하 계급의 사람들은 다시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는 이전의 처지로 돌아갔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공정한 사회'를 한 번 경험해보거나 혹은 구경이라도 해봤기 때문이다.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모른 채로 살면, 세상이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다른 가치를 한 번 알게 되면, 싸워서 얻어내야 할 무언가가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말해, 테무진은 자신의 등장을 '정치적 이벤트' 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 먹고사니즘보다 강한 게 있을까. 자신과 가족, 부족의 생명과 재산을 걸고 19명의 부하만 거느린 실패한 군주, 자신보다 수천 배 강력한 적에게 이제 곧 궤멸당할 게 분명한 군주와 함께하려고 만사 제치고 달려갈 인간이 존재할까?
뭐, 한두 명 쯤은 있을지도...
1203년 가을. 테무진은 자무카와 옹 칸이 승리를 축하하는 대대적인 잔치를 벌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잔치를 바로 하지 않은 이유는 초원 유목민들이 가축을 도살하는 계절을 엄격히 지키기 때문이다. 먹을 걸 잔뜩 쌓아놔야 잔치를 할 거 아닌가. 또 잔치는 준비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 철 정도는 거르는 게 자연스럽다.
20명의 결사대가 초원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출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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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치려면 적이 무방비상태일 때가 가장 좋다. 초원에선 잔치만큼 무방비일 때가 없다. 큰 잔치는 사나흘에 걸쳐 계속되는데, 초원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한 폭음을 한다. 잔치의 풍경이 어땠을지, 지난 기사 제5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본다.
: 몽골사람들은 한 번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들이붓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훗날 몽골제국의 궁정에 출사하게 된 중국인, 아랍인 학자들을 경악시켰다. 몽골인들은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유라시아대륙의 황금핏줄이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초원의 소박(?)하고 거친 습관이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그대로 이식된다. 술잔이 날아댕기고 한 쪽에선 신나게 오바이트하고 있고... 결국 국무회의, 궁중의식 등 모든 모임은 '전원 기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특히 여자가 술판에 껴 남자들과 함께 고성방가를 지르는 모습에 중국과 아랍 대신들은 아연실색했다.).
이러니 적이 잔치중일 때야말로 선제공격을 할 절호의 찬스였다. 물론 잔치 중인 적은 공격해선 안 된다는 룰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옹 칸이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면 테무진은 옹 칸에게 무슨 속임수를 써도 욕을 먹을 리가 없었다.
마침 카사르의 처자식들이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에서 패하는 과정에서 포로가 되어 커레이트에 억류되어 있었다. 테무진은 이를 이용하기로 한다. 카사르는 테무진의 밀명을 받고 이제 곧 잔치가 시작되려는 커레이트 쿠리엔을 향해 먼저 출발했다.
카사르는 사자를 보내 옹 칸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옹 칸 님, 저 카사르입니다. 테무진의 동생 말입니다. 이렇게 사자를 보내는 이유는... 그저 좀 살려주십사 부탁드리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당연히 테무진 형님 편입니다. 하지만 전투에 지고 달아난 형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초원 어디에도 없어요. 죽었거나 다른 나라로 간 모양입니다. 저는 혼자서 초원을 헤매며 나무 뿌리를 베고 별을 바라보며 잠드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아내와 자식이 옹 칸 님에게 있습니다. 가족이 걱정되고 또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허락해주시면 저는 가족이 있는 커레이트로 가서 칸 아버지를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옹 칸은 '이투르겐' 이라는 사람을 보내 이제 곧 자신의 부하가 될 카사르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잔치하는 것도 즐거운데 명사수에 천하장사인 '야수' 까지 득템하게 되다니 여러모로 즐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카사르와도 재회하지 못했을 정도면 이제 테무진은 완전히 아웃 오브 이 세상이 아닌가. 허허허.
그러는 동안 카사르가 보낸 사자는 잔치판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보고하고 있었다.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커다란 황금 장막(게르와 다르다. 장막은 하늘만 가린 텐트다.)을 쳐 놓고 있습니다. 경계병도 없습니다."
하긴 자무카와 옹 칸의 유일한 적인 테무진이 사라졌으니 경계를 할 필요도 없었다. 나이만만 빼면 초원 전체가 지들 거였으니까.
테무진은 사자들과 함께 온 이투르겐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죽이는 게 맞긴 한데, 사실 이투르겐은 괜찮은 양반으로 평판이 좋았다. 보스의 명령을 따랐을 뿐인 선량한 사람을 해쳐도 되는 걸까? 이투르겐을 붙들어 억류하는 과정에서도 테무진의 부하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테무진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발주나 맹약 이후 적에게까지 도덕적 책임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고민하던 테무진은 이투르겐을 카사르에게 넘기며 알아서 하라고 한다. 테무진과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 카사르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이투르겐을 베어 죽여 버렸다.
테무진은 3~4일간의 전투행군을 시작했다.
잔치가 끝나기 직전을 노려야 한다. 잔치 막바지에 이를수록 적은 더 많은 술을 마시고, 체력과 컨디션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이미 초원에 남아있던 중요한 부하들과 가족들은 테무진에 합류했었을 것이다. 이들은 테무진이 살아서 나타났으며 자무카와 옹 칸을 향해 진격중이라는 사실을 초원에 퍼트린 채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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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칼지드 전투 직후 떨어져나갔던 부하들과 백성들은 물론, 테무진을 지지하던 부족/씨족들이 소식을 듣자마자 일고의 고민도 없이 무기를 챙겨들고 전속력으로 테무진에게 집결했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 온 게 아니라, 친구와 친지들을 설득해 함께 데려왔다. 심지어 새로 합류하는 집단도 많았다.
▲ 우리도 데려가요!
테무진은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산과 계곡을 돌아 우회해 행군했는데, 자무카와 옹 칸의 잔치판을 칠 때까지 한 번도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테무진은 마치 철가루가 뿌려진 종이를 지나가는 자석처럼 초원 사람들을 흡수했다. 급기야 공격 직전에 이르자 테무진은 이전까지 자신이 가졌던 최대 병력보다도 많은 전사들에게 충성을 맹세 받고 있었다.
단 며칠 만에, 추정컨대 약 사흘 만에 그것도 행군 중에 벌어진 일이다. 커레이트족과 친 자무카 세력(메르키트 족도 포함된다.), 나이만을 제외한 초원세계 전부가 테무진 울루스가 되었다. 모이고 나니까 커진 거지, 이동 중인 테무진의 루트를 따라 합류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단 20명의 결사대에 합류하기 위해 1초도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익이나 안전에 대한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철저히 망하는 길밖엔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며칠 전까지 테무진은 19명의 결사대와 부족 하나를 이끄는 대장이었다. 지금 그는 수만 명의 전사와 수십 만 명의 백성, 천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다스리는 칸이 되어 있었다. 이는 속도와 스케일 등 모든 면에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사건이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문장 하나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겠다. 민심이 천심이다.
테무진은 쉬지 않았다. 적이 알기 전에 쳐야 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수만 명의 전사들이 며칠간의 폭음으로 흥청망청한 잔치판을 천둥처럼 덮쳤다.
커레이트와 자무카 울루스의 전사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더 놀라운 건 공격이 개시되는 시점에서, 테무진 군이 이미 잔치판은 물론이고 옹 칸과 자무카 군 병력 전체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며칠 만에 급조된 수만 명의 병사를 가지고, 훈련은 물론이고 역할분담과 조직개편을 할 틈도 없이 해낸 일이다. 테무진은 현장 지휘력과 카리스마에서도 정점에 올라서고 있었다.
전술이랄 것도, 전황이랄 것도 없었다. 포위당한 측이 얼마나 버티느냐의 문제일 뿐. 커레이트와 자무카 울루스의 병사들은 자지도 않고 3일 밤낮을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런데 3일 밤낮이 지나자, 갑자기 모두들 무기를 내려놓고 전면 항복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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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군 대장 역할을 맡았던 사내가 테무진 앞에 걸어나왔다. 그의 이름은 '카닥'. 지난 편, 카라칼지드 전투에서 자무카-옹 칸 연합군의 제1선봉을 맡았다가 쿠일다르에게 털린 그 카닥 용사다. 어쨌든 테무진도 황당했을 것이다.
"질 게 뻔한 상태에서 3일간 그토록 악랄하게 저항한 건 뭐고, 또 그렇게 싸우다가 갑자기 항복하는 건 도대체 뭐냐?"
"그건 옹 칸님과 셍굼 왕자님이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옹 칸과 셍굼은 친위대가 필사적으로 뚫은 퇴로를 통해 간신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 자무카도 가까스로 몸을 빠져나와 나이만으로 도망 중이었다. 자무카 입장에서 천만다행인 건, 커레이트족이 주최한 잔치였다는 사실. 자무카는 잔치의 손님이었던 만큼 그의 세력 대부분은 테무진의 기습포위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옹 칸과 셍굼이 어떤 분들이든, 어쨌든 제게는 주군입니다. 모자란 사람일지라도 제가 충성을 맹세한 저의 칸입니다. 제 칸이 죽는 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도망에 성공할 때까지 저항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부하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으니 투항한 것입니다. 자, 저를 죽이고 싶으시면 죽겠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14회 <에너미 앳 더 게이트>편을 본 독자라면 테무진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금방 짐작할 것이다.
"남자라면 응당 이 사내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훌륭한 사람이다."
테무진은 카닥을 살려주고 자신의 부하로 삼았다. 카닥만 산 게 아니었다. 테무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커레이트족 백성 전부를 그 자리에서 울루스의 구성원으로 흡수했다. 테무진은 커레이트를 물리치지 않았다. 그는 커레이트를 '삼켰다'.
서쪽의 나이만을 제외한 초원 전체가 테무진의 나라가 되었다. 발주나 호수를 떠난 지 약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자무카는 자신을 지지하는 몽골 씨족과 여타 추종세력을 이끌고 나이만으로 떠났다. 메르키트족도 자무카의 움직임을 따라 나이만에 붙었다. 테무진의 남은 적들 전부가 자무카가 있는 나이만으로 모여들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테무진에 대항해야한다는 공통점만으로 한 편이 되기에 충분했다. 옹 칸과 셍굼도 나이만을 향해 도망치는 중이었다.
테무진과 나이만-자무카 연합의 초원통일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테무진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초원을 통일하기까지 단 한 번의 전쟁만 남겨놓고 있었다.
Outro
테무진이 전후 정리를 하는 동안 옹 칸과 셍굼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고. 나이만의 통치자 타양 칸은 몽골 따위는 간단히 쳐부술 수 있다며 공공연하게 전쟁을 암시하는데...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몽골비사>에는 자무카가 커레이트족 내에서 옹 칸을 폐위시키는 쿠데타를 모의한 후, 계획이 탄로나자 별다른 손실 없이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나이만과 연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록이 맞다면 테무진이 커레이트를 정벌할 때 자무카는 현장에 없었다.
그러나 자무카와 옹 칸 사이에 결속력이 떨어졌을 뿐, 테무진의 기습 포위공격을 함께 받았다고 결론짓는 역사학자들도 많다. 나는 이 쪽에 무게를 싣고 이번 편을 쓰는 한편, 논쟁이 되는 부분은 최대한 피했다. 어느 쪽이 진실이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당시 자무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테무진의 커레이트족 흡수를 지켜보는 수밖에. 옹 칸과 함께 있었든 나이만에 있었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자무카는 연합세력인 옹 칸과 커레이트족을 잃었을 뿐 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무카의 군사적 능력을 중심으로 반 테무진 연합이 형성된다.
테무진
vs
자무카(자무카 파 몽골씨족 & 자무카 지지세력) + 나이만 + 메르키트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납시다.
☞ 다음편 <안티 테무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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