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특집>-(19)용수보살과 김용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같은 사람이나 대상을 가리킬 때 두 가지 이상의 표기가 흔히 나온다. 이런 복수 표기는 사람이나 고장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에 특히 두드러진다. 앞서 본 '이사부(異斯夫)=태종(苔宗)'이나 '거칠부(居柒夫)=황종(荒宗)'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은 실제 그 사람이나 고장에 두 가지 이상 되는 이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소리나는대로 적은 우리말을 뜻글자인 한자를 빌려 표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측면이 강하다.
사람이건 고장이건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두 가지 이상의 다른 표기에는 서로 일정한 대응법칙이 발견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 대응관계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갈라볼 수 있다.
첫째, '이사부/태종'처럼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과 이를 한자의 새김(훈.訓)으로 옮긴 것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아주 많다.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赫居世)를 「삼국유사」는 '불구내'(弗矩內)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순한문인 '혁거세'를 순우리말 새김으로 옮긴 것으로 '붉은 누리'(밝은 세상)라는 뜻이다.
둘째, 우리말을 소리대로 적기는 했으되 표기가 다른 경우도 꽤 있다. 신라 지증왕의 원래 이름이 '지대로/지도로/지철로'처럼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 현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뜻은 알기 어려우나 같은 소릿값을 가졌음은 명백하다.
셋째가 좀 특이하다. 비슷한 글자끼리 그만 혼동을 일으켜 원래는 한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아예 두 가지 (이상되는) 이름처럼 둔갑한 경우도 드물게 있다.
진흥왕의 둘째 아들이며 즉위한 다음 진지왕이 되는 금륜(金輪)이라는 인물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삼국사기」「삼국유사」 모두 금륜은 일명 '사륜(舍輪)'이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금(金)자와 사(舍)자가 모양이 비슷한 데서 초래된 혼동일 뿐이며 원래 이름은 금륜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표기라고 알았던 김용수(金龍樹)-김용춘(金龍春)의 경우는 어떤가? 이름에 똑같은 '龍'자를 공통분모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 마지막 글자 樹와 春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다른 중복표기를 통해 추출한 위 세 가지 대응관계 중 적어도 어느 하나에는 해당해야 한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어디에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글자 모양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새김이나 소리로도 그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김용수(金龍樹)를 예컨대 '일명 김용목(金龍木)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돼 있다면 우리는 樹와 木이 뜻이 통하는 글자이므로 같은 인물에 대한 다른 표기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김용춘은 일명 김용순(金龍純)이라고도 한다'고 했다면 우리는 春과 純의 발음이 비슷하므로(혹은 삼국시대에는 같았으므로) 한 인물에 대한 다른 표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삼국사기」를 보면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金欽純)을 일명 김흠춘(金欽春)이라 한다고 해서 春이 純과 음이 통했음을 엿보이고 있다.
하지만 김용수(金龍樹)와 김용춘(金龍春)은 이들이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표기라는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는 김용수와 김용춘이 다른 인물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방증자료가 된다.
김용수-김용춘이 「화랑세기」 필사본처럼 다른 사람인가, 아니면 학계가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한 사람인가를 판별하는 또 다른 결정적 증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김용수(金龍樹)라는 이름 그 안에 들어 있다.
앞서 우리는 신라에서는 적어도 법흥왕 이래 불교의 지대한 영향 아래 불교식 이름이 유행처럼 등장했음을 보았다. 그런 보기로 법흥-진흥-진지-진평-선덕-진덕이라는 중고(中古)시대 신라왕의 시호가 불교 용어임을 보았다.
비슷한 추가 사례로는 진흥왕이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이름을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설화에서 따와 각각 동륜(銅輪)과 금륜(金輪)이라고 지은 사실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제28대 진평왕은 원래 이름이 백정(白淨)이며 첫째 부인은 마야(摩倻)라 하고 둘째 부인은 승만(僧滿)이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백정이니 마야니, 승만이니 하는 이름이 불교경전에서 나오는 인물에서 따온 것임은 불문가지다.
같은 사람이건 형제간이건 상관없이 김용수-김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진평왕과 동시대 인물이다. 진평은 아버지가 진지왕의 형인 동륜이니 용수-용춘과는 사촌형제인 것이다.
진평왕 시대 왕 자신은 물론, 부인과 그 딸인 덕만(德滿. 뒷날 선덕왕)을 비롯해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만큼은 불교식 이름으로 도배질을 하다시피했다.
이런 점에서 진평왕의 사촌동생이면서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龍樹) 또한 불교식 이름이다. 용수는 말할 것도 없이 석가모니 부처 사후 불교 중흥을 이룩한 용수(龍樹:Nagarjuna) 보살이라는 실존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다.
용수보살에 따온 이름의 경우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용수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뜻 글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씨 성을 지닌 어떤 사람이 공자(孔子)를 너무나 존경해 그 아들 이름을 김공자(金孔子)로 지었다고 하자. 이 경우 공자라는 이름 자체는 김공자라는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면서도 '공자와 같이 되어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경우 김공자에게 '김맹자'와 같은 별명은 있을 수 있어도 '孔'이나 '子'자 중 어느 한 글자를 바꾼 다른 이름이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자'라는 이름 자체가 고유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수 또한 마찬가지다. 용수보살에서 따와서 지은 이름인데 같은 용(龍)자를 살린 '용춘'(龍春)과 같은 이칭(異稱)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용수와 용춘은 다른 인물일 수 밖에 없다.
이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춘추는 틀림없이 중국 고전 '춘추'(春秋)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이며 김유신은 글로 이름높은 중국 실존인물인 유신(庾信)에서 빌려왔다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이런 경우, 즉, 이름 자체에 무슨 곡절이 있는 이름에는 김춘추를 예컨대 김춘하(金春夏)라고 한다거나 김유신을 김유천(金庾天)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이런 이름이 등장한다면 그는 김춘추, 김유신과는 관계가 없는 별개 인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