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28회 홍명희문학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홍명희 문학제는 저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데요...
괴산이라는 곳을 알기도 전, 당연히도 이곳에 와 정착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오래된 옛날....2006년 11월에 제 11회 홍명희 문학제에 참가하기 위해 괴산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당시엔 서울에서 대형버스를 대절해 1박2일로 행사를 치렀는데요,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과 함께 세 식구가 이 여행에 참여해서 지금의 몽도래언덕(과거에 모텔이었음)에서 하룻밤 자고 화양구곡을 돌아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초청 연사였던 김훈 작가가 괴산문화예술회관 강당에서 작가 강연을 했었지요.
괴산도 처음이지만, 벽초 홍명희 작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도 그날이었고, <임꺽정>을 읽어야겠다 결심한 것도 그날이었습니다. 분단의 비극과, 빨갱이라는 이유로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냉전 이데올로기, 그리하여 통일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던 잊지못할 자리였습니다.
30년 넘게 벽초 홍명희 연구에 전심전력을 다하신 강영주 교수님을 그때 처음 뵈었는데 나직한 목소리로 옛집과 홍범식 고택과 제월대를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의 20년 만에 이번에 다시 뵈었는데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해낼 수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30대에 벽초 연구를 시작해 지금은 정년퇴임까지 하셨다니...교수님 덕분에 우리는 임꺽정과 홍명희 작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월북인사들의 해금과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1995년 사계절 출판사는 월북 작가 홍명희의 임꺽정 전집을 발행했습니다. 전집 발간과 함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때부터 작가의 생가가 있는 괴산을 찾아 홍명희 문학제를 열기 시작했죠. 1998년에는 작가의 생가와 어머니가 거주하던 옛집 인근, 작가가 낚시를 즐겼다는 괴강 제월대에 문학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글씨는 신영복 선생님이 쓰셨고요.
괴산에서의 현실은 여전히 아쉽기만 하죠.
부동산업자에게 팔릴 뻔한 홍범식 고택을 간신히 사들여 보전은 해두었으나 문학관 건립은 어르신들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되고 여전히 괴산에서 홍명희의 이름은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문화해설사가 계셔서 고택의 이곳저곳을 상세히 설명해주시니 반갑기도 했고, 괴산 향토사연구회를 비롯해 김순영 시인 등 괴산주민들이 문학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계셔서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2006년, 홍명희 문학제로 처음 괴산에 발을 디딘 이후 생각지도 않게 2011년 괴산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무슨 인연인지....책방을 열고서는 늘 마음 한 켠에 괴산 주민으로서 홍명희 문학제를 내가 주최자의 한 축이 되어 괴산에서 잘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사는 일에 급급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8년만에 다시 홍명희문학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그시절 저와 함께했던 젊은 편집자는 이제 기획총괄팀장이 되어 행사를 지휘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괴산에서 이제 임꺽정 읽기 모임이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겁니다.
북클럽 회원이자 독서활동가인 안기홍 님이 괴산 주민들을 모아 내년에 임꺽정 완독 모임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저도 읽다가 중단한 임꺽정을 내년에는 함께 완독해야겠습니다. 괴산 주민들이 모여 임꺽정을 함께 읽고, 내년 문학제에는 같이 참여하고, 내후년 문학제 30년이 되었을 때는 괴산에서 온전한 홍명희문학제가 열릴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참 뜻깊은 날....제월대 문학비 아래 노둣돌에 새겨두었다는 한 청년의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임꺽정의 진정한 완성은 이땅의 통일이다.
이땅의 통일을 간절히 소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날이 기적처럼 우리 앞에 와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