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4.10.06 주일 낮 예배
말씀: 고전4:1-2/찬송: 부름받아 나선 이 몸(323장)
제목: 부르심을 받은 자의 자세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새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말씀 봉독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 은혜찬양 : 서로 사랑하자 -
- 들어가는 말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은 자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좋든 싫든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다. 라는 시선을 받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고자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의 멍애를 지고 다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바로 부름받은 자입니다. 목사는 세상적으로 사회적 직무입니다만 하나님으로부터는 영적 사명을 받은 자 즉,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직업이 될 수가 없습니다만, 목사라고 하면 곧 직업이 되고 맙니다. 직업은 사전적으로는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이어서 우리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직업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바, 직업의 자유에 의한 보호의 대상이 되는 ‘직업’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속적 소득활동’을 의미하며 그러한 내용의 활동인 한 그 종류나 성질을 묻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은 우리사회에서 당당히 직업의 하나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직업인으로서 아니 본질적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맡은 자로서의 어떤 자세를 가저야 하는가를 심령에 새기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회적으로 당신 직업이 뭐요?라고 물으면, 나 목사요 라고 대답들을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우리 모든 목회자들에게 참으로 힘들고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나오지 않는 이 시간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으 마음은 몹시 무겁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신령한 믿음과 실천이 따르는 영적 지도력을 가진자 라고 생각하는 데, 동의 하시면 아멘이라고 응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 응답이 없는 것이 마땅한 것은 아닙니다.
1.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마땅한 자
사람들은 우리를 알기로 주님의 일군으로 마땅한 자로 알고 있습니다. 마땅하다는 말은 행동이나 대상이 일정한 조건에 어울리게 알맞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조건에 맞다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생각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 되고 그렇게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분, 직업이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일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의 직분을 말합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해결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자유스러운 결정권,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으로부터 - 천부적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이제 우리는 자랑할 수 있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결정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데 왜 웅크러지십니까: 목회자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 힘내시고 할렐루야 힘차게 소리내어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 한가지 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 4:13 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말씀 중에 하입니다.
그런데 말씀 중에 선점되어야 하는 것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입니까? 혹은‘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입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일까요?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때 모든 것이란 그런 식의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얻는 성공이 아닙니다. ‘안된다 안된다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망하고 실패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먹으면 부자가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되며 건강을 회복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 이런 적극적 사고방식을 지지해주기 위해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그분을 통하여 내가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입니다.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그 힘은 바울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힘이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사도는 빌4장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강이 주 안에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게 떄문에 우리는 주 안에서 주어진 것만큼에 감사하고 그에 따르는 주어진 양만큼의 주신 은혜에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어진 질그릇의 비유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육체의 소욕은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2.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 -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자는 당연히 서로 합력하라는 사도바울의 당부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롬8:28절은 우리 교회의 구성원이 주 안에서 행해야 할 기본 마음가짐과 자세를 나타내는 바울사도의 처절한 당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합력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합력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것을 존중해야 합해지는 것입니다.
그릇은 하나인데 내 것만 하나가득 채우면 남은 자기의 분량을 내 세울 수가 없습니다. 내것을 반만 채워야 남의 것도 반을 채워서 하나의 목표를 채울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 것이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네 것은 필요없고 내 것만 채우는 것은 합력이 아닙니다. 합력의 기본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나의 소욕은 양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면 나의 소욕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나약하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나약한 것 같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강인한 믿음과 실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우리 만나인이 되시기를 주 안에서 기원합니다.
3. 아들의 형상을 본받으라- 끝까지 견디는 자
오늘 사랑하는 우리 만나형제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름심을 받은 자는 지금 당장 무슨 부귀영화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리고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이것이 3기 입니다. 기기기자 함께 따라서 합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대하고 또 기대합니다.
갈라디아서 6:6-9 에 보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어떤 좋은 의지와 뜻을 가지고 하나의 씨앗을 심듯... 그렇게 애쓰고 수고할 때에 반드시 그것의 열매를 맺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희망 속에서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일인 것을 그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 당장은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할 단 하나의 삶의 원리는 우리가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의 시련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가복음서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소위 전라도 말로, '니자구 없다'는 소리도 들을 것이요 뻔뻔하다는 소리도 들을 것이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모욕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 데레사 수녀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는 고개가 숙여집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받은 수모에 비견될 수는 없지만, 처녀의 몸으로 인도의 가난한 백성들을 위하여 한 평생을 얻어다 먹이고 재우고 입혀가면서 전 세계에 1200개가 넘는 사랑의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전부 다 남에게 얻어다가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치료하고 장사지냈습니다. 남에게 얻어다 먹이는 모습은 아무나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형상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옷만 뻔지르르하게 입고 머리에 찍꾸기름 바르고 넥꾸타이 뻘겋게 매고 구두짝 광빨나게 딱고 좋은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이 방송 저 방송에 나와서 쩡쩡거리면서 주님의 형상을 팔아먹는 치졸한 먹사 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 데레사 수녀님을 생각하면 내 자신도 부끄러워서 하늘을 아니 주님을 가리고 싶지만, 나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목사이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접어두고 우리 함께 주님의 형상을 닮자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길목에서 참으로 회개하는 심정입니다.
엊그레 우리는 사랑하는 육친의 형제님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지 모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주님이 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상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7:60)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 만나인 모두는 날마다 육적인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기도하변서 눈을 감고 세상을 보지 않고서 세상과 나 그리고 우리 주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의 직분을 향하여 내가 진정 나를 죽이고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노라고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아멘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