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55) 동탁의 멸망 <상편>
여포가 돌아가자, 왕윤은 평소에 동탁의 악정에 분개하는 사예교위 황완(司隸校尉 黃琓)과 복사사 손서(僕射士 孫瑞)를 집으로 불러 여포의 계획을 말해주고 두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여포의 손으로 동탁을 제거하는데는 어떤 방법이 좋겠소?"
손서가 말한다.
"미오성에 가 있는 동탁에게 천자의 가짜 칙사(勅使)를 보내어, 천자의 지위를 물려줄 테니 황궁으로 돌아와 제위에 오르라는 조서를 보내면 동탁이 기쁜 마음으로 달려올 것이니, 그때 황궁문 안에 여포를 대기시켰다가 동탁이 문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놈을 쳐 없애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미오성으로 보내는 가짜 칙사는 누가 좋겠소?"
"기도위 이숙(騎都尉 李肅)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이숙은 동탁의 심복이 아니오?"
"이숙이 전에는 동탁의 심복이었지만, 지금은 동탁이 벼슬도 높여주지 않고 천대시하여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숙은 여포와는 친구지간이므로 여포가 부탁하면 쉽게 들어줄 것입니다."
"그러면 여포를 불러서 물어 봅시다."
그리하여 여포를 불러서 물어보니, 여포는 이렇게 말한다.
"전일 나더러 형주자사 정원(荊州刺史 丁原)을 죽이게 부추긴 사람이 이숙이었소. 그러니 이숙에게 부탁하여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를 죽여 없애고야 말겠소."
왕윤은 사람을 보내 이숙을 청하였다.
여포가 이숙에게 말한다.
"전일에 자네가 나로 하여금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오게 하였네. 그런데 동탁은 이제는 천자의 자리를 노리고 국정은 악정(惡政)을 저지르는 데다가, 무고한 백성들을 해치고 있으니, 나는 왕 대감과 협력하여 동탁을 죽이려 하네. 그러니 자네도 이 일에 힘을 더해주기 바라네."
이숙은 그 소리를 듣자 이렇게 대꾸한다.
"실은 나도 진작부터 동탁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그러나 그를 실행에 옮길 방법이 묘연하여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자네가 나선다면야 응당 내가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나? 걱정마시게 가짜 칙사의 임무를 차질없도록 수행하겠네."
이리하여 동탁을 제거할 계획은 계획대로 추진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이숙은 천자의 칙사를 가장하고 미오성으로 동탁을 찾아갔다.
"천자가 무슨 일로 그대를 나에게 보냈는가?"
"천자께서 어린 나이에 국정의 부담을 느끼시고, 국가 경영의 능력이 이미 검증되신 태사께 천자의 지위를 물려드리려고 결심을 하시고 저를 보내셨사옵니다."
동탁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음 .... 천자의 지위를 나에게 물려주신다구? ...그러면 사도 왕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던고?"
"왕윤 대감은 이미 황궁에 드셔서 태사께서 입궐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음... 내가 간밤에 용(龍)이 몸에 감기는 꿈을 꾸었더니 이런 기쁜 소식을 듣게 되네그려... 여봐라! 내가 내일 아침 일찍 장안으로 행차를 하겠으니 모든 장수들은 행군 준비를 하여라!"
동탁은 부하 장수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려 놓고, 초선을 불렀다.
"내가 이제 장안으로 들어가 천자가 되거든 너를 귀비(貴妃)로 삼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초선은 모든 계획이 차질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 동탁은 마침내 축하 악대를 앞세우고 요란스러운 풍악을 울리며, 장안을 향하여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미오성에서 장안성은 백여 리에 달하므로, 아침에 떠나면 저녁이면 도착할 수 있다.
십여 리를 갔을 때, 동탁이 타고 가던 수레가 별안간 <우지직!> 소리를 내며 옆으로 기울었다.
"무슨 일이냐?"
동탁이 놀라 물었다.
그러자 수레를 몰던 호위병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황공하옵니다. 수레 바퀴 하나가 부러졌사옵니다."
"뭐? 수레 바퀴가 부러졌다고? .... 마부는 말을 어떻게 몰았기에 수레 바퀴가 부러진단 말이냐? 마부란 놈을 당장 목베어라!"
동탁은 크게 노하여 마부의 목을 베게 한 뒤에 이번에는 수레를 버리고 말을 타고 떠났다.
이숙이 그의 뒤를 따랐다.
다시 오륙십 리쯤 갔을 때, 이번에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동탁이 타고 있던 말이 별안간 노여운 듯이 앞 발을 번쩍 들며 <히히힝~!> 거리더니 고삐를 자기 입으로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숙! 수레의 바퀴가 부러지고, 말이 고삐를 끊고 하는 것은 무슨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동탁은 불안한 마음에 이숙에게 물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태사께서 제위(帝位)에 오르시려니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낡은 것이 새 것으로 바뀌는 길조(吉兆)가 아니겠습니까?"
"딴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그래."
동탁은 이숙의 말을 듣고 적이 안심하였다.
이렇게 동탁 일행이 장안성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에는 그동안 청명했던 하늘이 별안간 캄캄해지며 바람이 사납게 불어왔다.
"이숙! 이건 또 무슨 징조인가?"
"태사께서 제위에 오르시려함에, 홍광(紅光)과 자무(紫霧)가 어우러져 하늘이 위엄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탁은 이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탁 일행이 날이 저물어 장안성에 이르니, 문무 백관들이 성문 밖에 도열하여 융숭히 영접을 한다.
왕윤과 여포도 그중에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원로에 행차하시느라고 고단하시겠습니다. 이번 경사를 축하해 마지않사옵니다."
"음.... 이렇게들 반겨 맞아 주어 고맙소 ... 여봐라, 황궁에는 내일 들어가기로 하고, 오늘은 승상부에서 쉴 테니 그리 알아라!"
행차는 분부대로 승상부로 향했다.
여포가 방으로 들어와 동탁 앞에 큰절을 올린다.
"음... 봉선이냐? (여포의 字) 내가 이번에 제위에 오르고 나면 네게는 천하의 병마(兵馬)를 총독하는 권한을 주리라."
"황공 무비하옵니다."
여포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하였다.
이날 밤 승상부에서는 축하연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하여 흥취가 한창 높아갈 무렵에 어디선가 애절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무슨 소린고?"
동탁이 잔을 들다말고, 이숙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떼를 지어 다니며 동요를 부르는가 봅니다."
동탁은 귀를 기울여 노래를 엿들었다.
千里草 (천리초) 천리초
何淸靑 (하청청) 생생하나
十日上 (십일상) 열흘이면
不得生 (불득생) 죽어 버리는 것을.
노래는 분명히 그런 노래였다.
"이숙! 저 노래는 무슨 뜻인고?"
이숙은 노랫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천리초>란 동탁의 동(董)자를 풀어서 노래한 것이고, <십일상>이란 동탁의 탁(卓)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노래는 동탁이 머지않아 죽으리라는 뜻이었지만, 이숙은,
"저 노래는 한실의 유씨(劉氏)가 망하고, 동씨(董氏)가 새로 일어선다는 뜻이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음 ....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군. 그러면 저 노래를 마음껏 부르게 내버려두라...."
동탁은 기뻐하며 술잔을 다시 기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