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도 설빔처럼
최원혜
내 고향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언골 마을이다. 어린 날 명절이 다가오면 마냥 기쁘고 즐겁다. 특히 나는 추석 명절보다 설 명절을 더욱 기다린다. 그 시절 명절이 오면 성주 읍내 장날에 새 옷가지, 제수품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던 어머니 생각난다. 어머니가 장 보아와 집 안 청소, 가래떡 빼두어 굳어지면 썰어 둔다. 그 일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몫이다. 강정, 두부, 전 부쳐 음식도 준비해 둔다. 마을 어귀에서는 남정네들 이 동네에서 생돼지 잡아 나누어 가지고 온다. 아버지는 삶아 돼지머리 눌러두고, 제수 음식 준비해 둔다. 삶에서 웰다잉도 설빔처럼 준비한다.
동네에 들어오면서 골목 너른 어귀에서는 박상*¹ 튀기는“뻥이야!”하는 뻥튀기 아저씨의 소리도 정겹다. 아이들은 귀 막고 좋아하면서 그 소리를 즐긴다. 튀겨진 박상은 어느새 하얀 쌀 튀밥이 대 봉지에 한가득이다. 콩, 보리쌀, 옥수수, 깨도 볶아 가져오면 강정 만들 준비되었다. 어머니는 엿질금*² 걸러 조청으로 달이어 강정 만들 준비를 하였다. 따뜻하게 군불 넣은 방바닥 닦는 몫은 여동생과 내가 하였다. 어머니는 조청과 쌀 박상(튀밥) 버무려 강정 만드는 와꾸*³(틀)에 부어 방망이로 밀어 잘라준다. 동생과 나는 자른 강정을 부엌 부뚜막으로 연결된 방 사이 문으로 받아서 닦아놓은 방바닥에 늘어 말린다.
설날이 되면 때때옷 입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드린다. 그 시절 우리집은 경주 최씨 문순공파 31대손으로 제사 지낼 때면 대소간 제관들이 집마다 방문하여 함께 제사 모셨다. 그중에서 우리 집에서는 먼저 차례 지내기 때문에 바쁜 어머니를 도와야 하였다. 그때는 대소 간끼리 집마다 방문하여 함께 차례 지내는 가구가 다섯 집이다.
제사 모심으로 바쁘기에 늘 여동생과 나는 제사음식 차릴 때 도와드려야 하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다가오면 성가시다는 가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때는 제사 없는 동네 친구들이 너무도 부럽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 작은집이어서 제사가 없다며 함께 놀러 가자고 꼬드긴다. 제관들은 와있고 어머니가 혼자서 동분서주하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차례 지내고 나면 집안 어른들께 두루두루 다니며 세배하러 다녀야 한다.
성장하여서는 직장 다녔다. 그때는 설이라고 하면 시골집으로 왔다. 동아리 서예반에서 붓글씨 써서 표구하여 두었던 족자를 가지고 왔다. 표구하여 온 족자 내용이 명심보감 출처인“빈객불래문호속(貧客不來門戶俗)”,“시서무교자손우(詩書無敎子孫愚)”등이다. 이는“점잔하고 훌륭하며 그러한 손님이 오지 않으면 집안이 저속 해지며, 시경과 서경(학문)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게 된다.” 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족자의 글씨 내용을 무척 좋아하였다. 딸내미가 써온 붓글씨 이어서 동네사람들 오면 자랑하였다. 늘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이 들끓어야 한다며, 한서의 정숭전(鄭崇傳)에 나오는 말로 문전성시(門前成市)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늘 손님 오면 안주를 준비해 두어 술상 내어 오라고 하였다.
어느덧 혼인하여 다른가문에 며느리 되었다. 나는 시골에서 도회지로 시집왔다. 시골과는 명절 풍습이 다르다. 설날에 시골에서처럼 돼지 잡고, 두부 만들고, 강정 만들지 않아도 된다. 도회지에서는 돼지고기 사서 수육은 삶아두고, 두부는 시장에 가서 사 오고, 만들어놓은 강정 사 온다. 그 시절에는 방앗간에서 빼 온 가래떡은 굳혀 썰어두는 일은 새색시인 나의 몫이다. 아직은 왕초보 새댁이어서 시어머니 꽁무니 따라다니며 설빔 준비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옷장 깊숙한 곳에 있던 한복이 먼저 생각난다. 이른 아침 새색시는 한복 차려입어 먼저 시부모에게 세배드리고, 아이들에게 때때옷 입혀 할머니·할아버지께 세배하도록 하였다. 세배를 드리기 위하여 무릎을 꿇을 때는 긴장도 된다.“올해도 건강하고, 마음먹은 일 잘해 나가렴!”이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덕담 한마디에 마음이 포근하여진다.
시어머니와 나는 차례 지낼 준비로 동분서주하였다. 햇빛처럼 밝은색의 설빔 차려입고 흩어져 있던 가족 형제들을 만나면 옷보다 따뜻한 정이 오간다.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춰서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 함께 음식을 나누던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는다. 설빔으로 입은 옷은 그저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가족들과의 사랑, 명절의 설렘, 소중한 기억을 함께 입는 일이기 때문이다.
1924년 만든 윤극영의 동요곡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언제 들어도 정겨운 노래인것이다. 요즘도 성당 설 미사 참례하면 부르고 있다.
우리 인생살이 역시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대학 다닐 때이다. 학문에서 “웰다잉”이란 강의를 접하였다. 내 나이 예순 훌쩍 넘어 어느새 올해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수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하였던 고향 친구가 카카오 메신저 온 내용이다. “원혜야! 글 쓰며 인생을 정리하는 너의 멋진 삶 응원한다.”라고 보내왔다. 곰곰이 생각하였다. 글만 쓰는 게 인생을 정리하는 삶일까? “웰다잉”이 생각났다.“웰다잉(Well-dying)”이란“삶의 품격을 지키는 마지막 준비”로 영어 그대로 “잘 죽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생의 끝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뜻한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웰다잉” 준비로 “① 자신의 가치관과 희망을 정리하기. ②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 ③ 의료대리인 지정. ④ 생애 회고록, 감사 편지 남기기. ⑤ 심리상담. ⑥ 유언장 작성”등이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삶의 마지막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물론 가족의 정서적 지지와 삶의 회고가 필요하다.
사전 준비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남기면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도 예방하며 무엇보다 평화로운 마무리는 남은 가족에게 “좋은 이별”이라는 위로를 선물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설빔을 챙기듯 죽음도 즐겁게 맞이하도록 준비한다. 그리하여 열심히 잘살아온 내 인생을 나는“수필 쓰기”와“웰다잉”을 준비한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설빔이다.
(20260110.)(20260114.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