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가리와 돌무덤
어느 한 동네에 가난뱅이와 부자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습니다. 가을에 가난뱅이가 담 너머로 바라보면 부자네 마당에는 벼를 쌓아둔 노적가리가 높다랗게 보였습니다.
달밤에 그 노적가리를 쳐다보면서 가난뱅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벼 노적가리를 쌓아두고 산단 말인가?”
그렇게 한숨의 세월을 보낸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난뱅이는 가난했고 부자는 벼 노적가리를 높다랗게 쌓아두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가난뱅이의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숨만 쉰다고 우리 마당에 벼 노적가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웃집 벼 노적가리만 바라보고 한숨이나 쉬면서 살아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난들 어쩌란 말이냐? 농사지을 땅도 없는데 무엇으로 벼 노적가리를 쌓을 수 있단 말이냐?”
가난뱅이가 한숨 끝에 늘어놓은 신세한탄이었습니다.
“아버지! 우린 노적가리 쌓을 벼가 없으니까 차라리 마당에 돌무덤이라도 쌓는 게 어떻겠어요?”
“돌무덤?”
가난뱅이는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돌은 아무 데서나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요. 남의 땅에 있는 돌을 가져간다고 누구 하나 말할 사람 없고요.”
가난뱅이가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모두 옳았습니다.
“네 말이 맞구나. 우린 힘이 있으니 돌무덤을 쌓을 수 있을 거야. 열심히 노력해서 저 부잣집 벼 노적가리보다 높이 돌무덤을 쌓아보자.”
그날부터 가난뱅이는 아들과 함께 자기네 마당에 돌무덤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주운 돌, 남의 밭에서 캐낸 돌, 산에서 가져온 돌 등 돌이란 돌은 다 가져다 마당에 높다랗게 쌓았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가난뱅이 부자를 보고 미쳤다고 놀려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우린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잖아요.”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습니다.”
가난뱅이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는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돌을 주워 나르다 보니 땀이 났고, 땀을 흘리다 보니 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돌무덤이 커지고 높다랗게 올라가자 신바람이 났습니다. 어서 빨리 돌을 주워 모아 부자네 벼 노적가리보다 높게 쌓겠다는 욕심이 생기자 저절로 힘이 솟기까지 하였습니다.
“허허! 저 사람들 미친 줄로만 알았더니 괜찮은 사람들이로군! 아주 부지런 해!”
어느 날부턴가 마을 사람들이 가난뱅이 부자를 칭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네 밭에 박혀 있는 돌까지 모조리 캐다가 돌무덤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난뱅이네 집 마당의 돌무덤은 부자네 마당에 쌓아올린 벼 노적가리보다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가난뱅이 부자 덕분에 마을의 길은 돌 하나 없는 깨끗한 도로가 되었고, 논밭은 비옥한 옥토로 변하였습니다.
마을과 논밭에 돌이 없자, 이제 가난뱅이 부자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돌을 캤습니다. 검은 돌도 있었고, 누런 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난뱅이 아들이 큼지막한 누런 돌 하나를 캐서 지게에 짊어졌습니다. 그 돌을 가져다 돌무덤 맨 위에 올려놓으니 이제 더 이상 돌을 올려놓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문득 그 누런 돌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돌은 흙이 묻어서 빛이 덜날 뿐이지 황금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뱅이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여보게 우리 마당의 벼 노적가리와 자네의 저 돌무덤을 바꿔치기 하세나.”
부자의 말에 가난뱅이는 얼씨구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지요. 바꿉시다.”
가난뱅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아들아! 네 말을 들었더니, 이렇게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구나!”
아들도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난뱅이가 부자네 마당의 벼 노적가리를 허물려고 하자, 부자가 말했습니다.
“잠깐! 맨 위에 있는 볏섬은 집지키는 볏섬이니 내가 가져가겠네. 우리 가운을 빛내주는 볏섬이거든.”
부자는 맨 위에 있는 볏섬을 내려 자기네 곡간에 들여놓았습니다.
가난뱅이가 벼 노적가리를 다 옮기고 나서, 이번에는 부자가 돌무덤을 자기네 마당을 옮길 차례였습니다.
“잠깐!”
부자가 황금 덩어리에 손을 대려고 할 때, 가난뱅이 아들이 소리쳤습니다.
“아니 왜 그러나?”
“영감님, 저 맨 위에 있는 돌은 우리집 가보입니다. 그러니 저것은 우리가 가지겠습니다.”
가난뱅이 아들은 돌무덤 위에서 황금 덩어리를 얼른 내려 자기네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부자는 먼저 벼 노적가리에서 집지키는 볏섬이라며 맨 위에 있던 것을 곡간에 들여놓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난뱅이 아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황금 덩어리 때문에 벼 노적가리와 돌무덤을 바꾸자고 했던 부자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나는 망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퍼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어서 이 돌들을 가져가십시오.”
가난뱅이가 말했습니다.
“이젠 아무 쓸모가 없네. 자네나 다 가지게.”
부자는 화가 나서 소리치며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난뱅이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공짜로 벼 노적가리가 생긴데다가 황금 덩어리까지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뱅이 부자는 공짜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돈이 되지 않는 돌무덤을 만들기는 했지만, 땀을 흘린 보람이 있어 부자가 되었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다음 해 여름이었습니다. 마을에 큰 홍수가 져서 마을 사람들의 논밭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부자가 된 가난뱅이는 자기네 집 마당에 쌓여 있는 돌무덤을 헐어 튼튼한 둑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의 망가진 논밭을 고쳐주었습니다.
“허허! 쓸모없는 돌멩이만 모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유실된 논밭을 되찾은 마을 사람들은 가난뱅이 부자를 칭찬해 마지않았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뜻하지 않은 복이 굴러들어옵니다. 노력하는 동안 성실성이 몸에 배어 그 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은 큰일도 잘해내는 법입니다.
광파 (novelky)
엄광용은 소설과 동화를 쓰는 작가이며, 역사학을 전공하여 역사학적 글쓰기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