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빨리 오지않는다고 하기전에도 배가 고팠다 모두 '절라도 떡갈비' 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으로 모여갔다 회장님도 서둘러 도착하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뒤 이어 김일곤선생님도 결혼식에 참여하였다가 달려오셔서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데
광주 박응식선생님이 손님 접대한다고 그 유명한 홍어회를 20인분이나 담아오셔서
먹을 줄 모르는 선생님들은 조금 먹어보았지만 식성 좋은 해빈이는 아주 맛나게 먹었지요
전라도 결혼식에 갔다가 먹어보게 되었는데 입안이 쏘는 듯하고 냄새도 나고...
그런데 그것을 먹을 줄 알게되어 정말 맛나고 많이 먹게 되었답니다 회장님은 미식가인가 보더라구요
대구분이 아주 잘 드시고 최대식선생님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소화가 잘 되어서 좋더라고.
박응식선생님 너무 많이 준비해 오셔서 뒤로 싸가시는 분이 있었지요
식당 음식을 대통밥으로 부회장님이 소개하셨는데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의 일면이었다
영양밥과 음식의 여러 미각이 기분을 아주 즐겁게 띄워주는데 한몫 했다
우리는 소쇄원이 옆에 있어 먼저 들러서 가사문학관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오후 2시 30분부터 출발
(아래 설명은 자료 펌)
종 목 사적 제304호
면 적 108,531㎡
지 정 일 1983.07.20
소 재 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시 대 조선시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 별서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 있다.
전원은 대봉대와 상하지,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은 오곡문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에는 석가산이 있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과 오곡문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 옆의 오암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 광풍각 , 애양단, 대봉대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제월당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광풍각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펌)
소쇄원 주차장 입구 입니다.
소쇄원에서
박응식,곽노미 전라도 대표부회장, 최상해
도가적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 도오, 대봉대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가 쓴「소쇄원사십팔영시」(1548)가 있으며, 1755년(영조 31) 목판에 새긴「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하서 김인후 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의 『소쇄원제초정』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가 경영하던 평천장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이 쓴 『유서석록』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가사문학관 오후 3시 40분 출발
가사문학관 앞에서 좌로부터. 안종준 박응식 곽노미 한경애 최대식 최상해 성군경 김일곤
가사문학관 입구에서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번지
http://www.damyang.go.kr/new/gasa/index.htm
TEL _ 061- 383-3253 FAX _ 061-380-3239
대나무와 함께 가사문학으로 유명한 담양에서 대나무 박물관과 함께 대표적인 박물관중 하나. 가사 문학의 유물.유품을 전시해놓고 있으며 자료실, 시청각실, 토산품점과 전통 찻집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 →고서사거리 →광주댐방면 → 가사 문학관 . 식영정 바로 옆에 위치
- 하절기(3월 1일 ∼ 10월 31일) 10:00 ∼ 18:30 - 동절기(11월 1일 ∼ 2월 28일) 10:00 ∼ 17:30
어른/청소년/어린이 각 1,000원/700원/500원. 주차료 승용차 1,000원(3시간 기준)
학교 다닐 때 정철의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등을 통해서 수험용으로 익숙한 문학의 한 쟝르다.
조선시대 모든 문학이 어려운 한문으로 이루어지던 시대, 주류에서 밀려난 선비나 아녀자들에 의해 국문으로 씌어진 산문형 시가 바로 가사문학이다.
그 가사문학의 고장이 바로 담양이다. 담양을 일컬어 대나무와 가사문학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을 봐도 이 가사문학이 담양을 소개하는데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 하는지 알 수있다.
전시관 탐방
그러나 문학적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존중받는다고 해도 국문학을 전공했거나 그쪽에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여행객에게는 그냥 그런가보다 라는 정도로 넘기게된다. 1995년 부터 건립을 시작해 2000년 10월에 완공한 가사문학관 역시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으로 잘 갖추어져 있고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고 하지만 흥미로움을 끌기에는 딱딱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가사문학관 정원에 있는 피리부는 목동 조형물
담양 가사문학관 전경
담양 가사문학관 연못엔 금붕어가 가을햇살에 유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여의치 않았으나 500미터 가까운 곳에 식영정이 있어서 들렀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 하기로 했다
광주에 계시는 김일곤선생님의 안내로 식영정을 올랐다
시간은 5시를 임박하고 있어 서두르기로 했는데
주변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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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햇살이 광주댐 주변의 늪과 지나는 길목으로
화려한 날개를 펴듯이 눈부셨다 내려다 보는 그 풍경은 가슴속으로 그대로 와 스며들듯 이쁘게 펼쳐져 있었다
오르는 길목부터 청정한 숲의 내음이 나는듯 상쾌했다
햇살이 오늘은 강렬해서 등언저리에 내려앉아 내내 따가웠는데 숲으로 가는 길이 향기롭기도 햇다
여기에서 송강 정철의 4대 가사 중 성상별곡이 탄생 하였는데 교과서에서 그리 외워야 했던
가사....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유는 그 오랜 전의 선인이 남겨놓은 것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것 이런 풍광 좋은 곳에서 풍류를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 또 놀라운 것은 다른 소나무랑 모양이 무언가 달라보였고
침엽수로의 뾰족한 느낌보다 차라리 부드럽게 너무 이뻤다 그리고 거목은 잘 자라서
푸른 하늘 향해 솟아있는데 목을 젖혀서 한참 바라보는 동안 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용이 올라가는 모양으로 높은 끝쪽이 뒤틀리며서 형태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왜 뒤틀렸을까 자리 지켜가는 세월이 많이 힘들었었던 것일까
시간이 5시를 넘어서 서둘러 광주 5. 18 국립묘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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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 화려한 휴가' 영화를 보고 난 후라 이미 가슴은 아파오고 눈물이 날 것 만 같아
많이 참아야 했다 목울대가 아릿해져오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룬 너무 참혹한 결과는 내 형제들이 이렇게 손바닥만한 땅뙈기를 차지하고 푸른 초장에 누워 있어야
하는 슬픔. 무엇으로부터 이렇게 슬픔만 남겨놓고 말없이 세월속에 흘러가야만 했을까
아주 어린 아이부터 노장의 부모님까지 모두 80년도의 죽음부터 85년죽음까지 모두 차례로 옛봉분에서 새로 만든
국립묘역으로 옮겨진 곳이었다
마주 하고 보이는 무등산이 멀리 하늘 아래 펼쳐져 묵묵하게 지켜가고 있었다
영정실에 안치된 영정
부러지고 찢어지고 터져가며 죽어갔던 우리 형제와 부모님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들이 더 아파서는 안되겠지요
설움같은 것이 북받쳐 올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 수많은 생명들이 한 순간에 처참하게 죽어가야 했다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니.
우리는 영상관에 앉아 그때의 현 실황을 처절한 마음으로 관람을 했다
영문도 모르고 신혼부부가 여관에 쳐들어온 군인들에게서 맞은 남편의 머리가 터져
피를 철철 흐르며 붙잡혀 가는 사진... 그 옆에 새신부는 피를 닦아주면서 거리를 걸어나오는 모습은
그자리에 앉아 울고 싶어 다리에 힘도 없었다
이제는 세월속에 그저 묻혀만 가는 그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 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않을까
비통한 마음을 다스려가며 우리는 광장에 나와 마지막을 정리했다
박응식선생님 곽노미부회장님의 수고로 일정이 가을속에서 아주 편안하고 가벼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곽노미부회장님이 순천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야 한다고 당부하셔서
광주에 계신 박응식선생님, 한경애선생님, 김일곤선생님과 헤어지는 악수를 하며
아쉬움의 발길을 돌렸다
6시 반에 국립묘지를 떠나 순천을 향했다 톨게이트에서 합류했던 곳에가서 회장님 차량 한대로
첫댓글 조선시대 선비님들의 체취를 느낄수있는 시간이였습니다.자료정리 감사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기행에 참석 하지 못해 아쉬움만 남습니다,이렇게 사진으로 나마 선생님들의 웃음을 뵈오니 기분이 좋습니다,수고 하셨습니다,좋은글 적어 주신 샘 감사드립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 예상대로 거장들만 오셨군요. 인원이 너무 적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공짜구경만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오신분들의 노고에 비하여 대접은 변변 찮았지만 ,귀한 곳을 둘러보시며 감탄하시고 즐거워 하셔서 저 역씨 즐겁고 행복한시간이 였습니다 광주에 계신 샘님들 ...그리고 박응식 시인님 너무 감사했구요 ...보시는 문우님들 영상을 통하여서라도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계승 되어오는 소쇄원 이라든가 민초들의 애환을 노래했던 규방가사의 언문을 자료로 모아둔 곳이오니 살펴 보아주십시요 ...그리고 기회가 되시면 언제 든지 오십시요 ..해빈님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
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끝까지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고픈 마음을 굴뚝 같았는데 명절을 앞둔터라 괜시리 마음만 바빠서 ~잘다녀 오셨군요.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고운날 되세요.수고 많았습니다^^*
좋은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구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먼길 다녀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맛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