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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할 탓
비행기에서 내린 '후쿠오카'에서 '신칸센' 열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갔다.
개구리 자기 주제도 모르고 두꺼비 잡아먹겠다고 과욕을 부리다가 목에 걸려 돼질 뻔한 체험의 현장 '히로시마'. 오는 방망이 가는 홍두깨라고 진주만 기습의 대가로 미국이 툭 던진 원자탄 한방에 까맣게 타버린 앙상한 건물이 교훈으로 남아 있었다. 상기(上記)하고자 남겨 놓았는가. 본데……. 요즘도 발전소 방사능에 전전긍긍하는걸 보면. 거 참.
'히로시마'관광 뒤에 차에 태워져 두 번째 기착지 '마쓰야마'(松山)라는 섬으로 보내졌다. 그곳에 우리가 체류할 공장이 있단다. 뜰 연못에 큰 비단잉어가 노니는 깨끗한 공장이다, 물고기가 하도 크고 색상도 붉어서 저걸 매운탕 끓이면 고춧가루는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비단잉어보고 매운탕 생각을 한다? 어! 그러고 보니 밥 때다.
공장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데 그때 구석에 박쥐처럼 붙은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우리 노래와 아주 흡사하다. 우리는 성인가요고 일본에서 '엔카'라고 부르는 그 '엔카(戀歌)? 우리를 초청한 공장 사장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개은수구" 노래라 하신다.
"개은수구? 자상한 것도 도가 넘었다. 우리가 일본 가수를 어찌 안다고 자랑스레 소개까지 하여 더욱 궁금증만 부추기고 말았으니 '아 그래! 내가 너무 신경과민이로구나. 일본에 '개은수구'라는 가수가 있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편히 밥이나 먹자는데 이번에는 본사 통역이 나서서 모두를 햇가닥 뒤집어 놓았다.
"지금 노래 부르는 가수는 한국인이고 이름은 "계은숙"이라 한답니다." 엥! 우리는 모두 입안에 든 밥알이 다시 밥그릇으로 돌아갈 뻔했다. 아무리 일본말이 우리말에 비해서 션찮은 언어라고 하지만 '계은숙"이라는 발언도 제대로 표현이 안 된다는 거네.
'히라가나' 부족해서 '가타카나' 보태고 그래도 부족해서 중국어까지 빌려 온 일본어. 그러고도 김치: 김치 / 호텔: 호 데로 / 어퍼컷: 아빠 가도/ 몇 가지 적어 봤는데 참 가관이다. 이런 션찮은 언어로 어찌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까? 수상작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 공이 더 큰 것 아닐까? 훌륭한 우리글은 영어가 못 받쳐 주어서 노벨 문학상 하나 못 가져온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시 한 수’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어떤 느낌이 오려는지…….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맞이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
'개 은 수구' 노래 음미하며 도시락을 먹은 후 우리가 묵을 숙소로 보내졌는데. 일본에서도 3대 온천 중 하나라는 유명한 "도고 '온천이 있는 도심지를 지나. 밀감 과수원이 즐비한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서 '송학서' 대신 푸른 벼가 논둑에 핀 코스모스와 이웃하여 사이좋게 좌우로 하늘거리는 아주 깨끗하고 한적한 곳. 그곳 환경과 잘 어울리는 2층 건물 앞에 내려놓는다.
우리의 관급 정도 시설의 2층 목조 건물이며 방은 모조리 '다다미'가 깔렸다. 건축 목재는 질감 좋은 '스키 木'이다. 그리고 보니 이 산, 건넛산에는 아름드리 스기목들이 빽빽이, 산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임에도 햇볕이 바닥에 닿지 못할 정도로 울창이 서 있다. 온천이사 자연이 준 것이라지만 저 나무들은 인력으로 식목한 것이라 하니 참으로 부럽다. 패전으로 폐허가 된 삶을 살았을 텐데도 산하(山河)에 참으로 많은 피땀을 흘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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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누구 돈이건(우리 회사 돈이건 / 초청회사 돈이건) 돈 주고 먹고 자는 것일 터…….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다다 이마'(돌아왔습니다. 밥 주세요)한마디 논평을 날린 후 날아가는 어설픈 현지어 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오기도 전에 방으로 향하니.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문지방 넘어서면 그제야 신발 떨어지는 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그런데 이틀을 지내다 보니 그게 아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신발을 찾으면 저녁에 날려버린 모양새가 아닌 신기 편하도록 신코가 앞으로 가지런히 놓여있고. 목욕탕을 비롯하여 모든 물건이 꼭 있었던 그곳에 처음 모양새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용 후 누군가의 손이 모두 한 번씩 더 간 것이다.
'아하! 이건 절대로 아니다. 모두 모여라.' 로마'에 가면 로마식으로 간다. 오늘부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때는 나갈 때 신기 편하도록 앞으로 돌려놓고. 그러니까 신발을 벗고 들어갈 때 뒤로 돌아서 벗고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욕실을 비롯한 집안 어디서건 사용했던 물건들은 처음 모양 그대로 제자리에 놓는 겁니다. 알겠지요? 우리가 아무렇게나 굴린 것은 아니지만 인제 보니 확실히 2%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하나 더, 남자 사원들은 할아버지 아침저녁 청소를 거들어 주고. 여자 사원들은 교대로 할아버지 주방 일을 도와줄 것. 여자 사원 절반은 반찬 만들고 남은 사람은 설거지한다. 반찬이 어째 들쩍지근해서 우리 입에 별로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 먹자, 오케이? 등산 다닐 때 보니 찌개도 맛있고 반찬들 잘 만들더라. 이번에 한국아가씨 솜씨를 함보여 주는 거야.
이리하여 할아버지(여관 주인)와 아르바이트 아줌마 한 분을 젖혀 놓고. 우리 아가씨들이 그날로 주방을 접수했다. 馬만 한 처녀들 열 명 가까이 나서는데 늙은 일본인 노인 둘이서 어쩔 것이여. 바로 주방이 꽉 차서 가로 걸치는 주인 노인네는 의자 처지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들 밀어낸 거다.
졸지에, 평소에 하시던 일 빼앗기고 멍하게 의자에 앉아 담배만 박박 피우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려 주던 감각 있는 '휘경이, 好로다. 고운 인물에 품성까지다. 참으로 참한 색싯감 아니랄 수 없다. 사람은 자기 할 탓이라는데 틀림없이 좋은 남편 만나서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다.
하던 일거리 빼앗기고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으로 상황을 살피며 기다린 보답을 확실히 챙겨 드렸다는 건. 일본 할아버지가 우리 아가씨들이 만든 음식을 "어! 고래 난데스까? 오이시이"(이것 무엇입니까? 맛있네요)하시면서 잘 드셨고. 이일로 차 후 신나는 파티로까지 이어진 걸로 증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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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노력의 결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주방 접수하고 난 그 다음 날 바로 나타났다.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숙달되지 않은 동작으로 뒤 돌아서서 꼼지락 신발을 벗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차에 타란다.
우리는 서로 살폈다.' 누구 혹시 아니? 저 할아버지가 왜 우리 모두를 차에 담으려고 하시는지? 누가 또 오랜 습관대로 신발을 날린 거야? 또 까불이 경수냐? 이런 눈빛으로……. 함께 일 마치고 한 차로 들어왔기로 서로의 얼굴에는 하루의 피로만이 남아 있을 뿐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조용히 하나 둘 차에 오른다. 너무 얌전한 모습들이 처음으로 절에 간 처자 모양 세다. '아하! 사람들은 모르면 얌전해지는구나. 그래 맞아 조금이라도 뭘 알아야 그것이 진리인 양 침 튀기며 핏대를 올릴 텐데…. ㅉ
당신 명령 하에 우리 모두를 차에 담은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가시는데. 당신만 아시는 목적지 때문인지 콧노래까지 하시다가 그것도 양이 안 차시는지. 나중에는 차가 좌우로 휘는 탄력을 이용하여 두꺼비 같은 몸까지 사용하신다. “오늘은 아예 몸으로 운전하시네” 뒤에 앉아있든 완성 반 까불이 '경수'녀석이다. 이어서...
'배가 가슴보다, 엉덩이보다, 더 큰 할아버지. 저 모습에 ‘훈도지’만 걸쳐놓으면 영락없는 스모선수 딱 맞은 데 그자?'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이거야 크게 웃을 수도 없으니 낄낄대다가 재채기하는 놈도 있는 걸 보니 저러다 오늘 누구 하나 오줌 싸겠다.
이거 우리말 모르신다고 어르신한테 버릇없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경수 까불이 이놈 별명 값한다. 경수 이녀석 짬만 나면 재단 반 ‘병칠’ 이와 야구방망이로 테니 공 날려서 공장 유리창 제일 많이 까먹은 전과가 있다.
총무부장에게 잔소리 듣는 것보다 자재과 박 대리에게 꿀밤 한대를 더 원하는 놈, 입으로 하는 일보다 몸으로 때우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놈이다. 이제 이곳에 박 대리가 없으니 차에서 내리면 내가 꿀밤 하나 안겨서 리듬이 깨지지 않게 해 줘야겠다.
그 시절 일 참 무지하게 했다. 연말이면 섬유 코터 죽는다고. 일주일에 옷 갈아 입으로 한번 집에 가보고 내리 밤을 팼다. 오죽하면 셋이서 막걸리 서 말(20리더 X 3) 마시고 부족해서 한 말 더 달래서 마신 무쇠 같은 내가 다 코피를 쏟는다.
이렇게 밤샘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컨테이너에 물건을 선적하면 숫자 파악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꽉 들어찬 행거(옷걸이)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숫자를 다시 한 번 더 파악하는 일은 경수 녀석이 제일이다. 그래서 까불고 공장 유리창을 깨 먹더라도 모두 용서가 되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숫자를 재확인하러 들어간 경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돌로 컨테이너 벽을 쳐도 무소식? 오래되면 질식해 죽을 수도 있기에 경수 찾아서 빽빽이 걸린 옷들 사이를 비집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40피트 긴 컨테이너 중간쯤 들어가서 불러도 조용하다. 빽빽한 걸린 옷 때문에 안보이기에 바로 옆에 있어도 소리가 없으면 못 찾는다.
한 두 번 해보는 일이 아니라서 중앙쯤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바로 우측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춥고 피곤한데 아늑한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한 줄 두 줄 옷 걸린 옷걸이 숫자까지 세지라고 했으니 바로 못 잔 잠이 쏟아진 것이다. 녀석이 부럽다. 나도 경수 놈 옆에 눕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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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 달려 몇 개의 휘황찬란한 ‘구슬치기’ 가게를 지나서. 큰 마트로 앞에 멈추었다. 스모선수 몸매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내리신 할아버지가 뒷둥뒷둥 오리걸음을 하시며 우리보고 따라 오라신다. 우리는 어미 오리 따라 길 건너는 새끼들처럼 뒤를 따를 수밖에,
바구니 있는 곳으로 가시더니 모두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좋아하는 것 모조리 담아 오란다. '엥! 무슨 일이람? 이 집에 오늘 제사 있나? 아니면 손님이 오시나? 그런다고 왜 우리가 시장을 봐야 하지? 또 제사면, 일본 귀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어찌 알고 고르라고?
이 노인네 주방을 빼앗기시더니 시방 우리한테 몽니를 부리시는 건가? 궁금증은 머리고. 눈은 별시로 휘황찬란한 먹을거리를 훑는다. 자! 봐라. 우리나라에는 아직 큰 마트가 없을 때이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 말이다. 우리 신체 중 자신이 다스릴 수 있는 곳이 3개 있으니, 입(口)과 발(足)과 손(手)이요. 반대. 즉 다스릴 수 없는 것 3개는, 코(鼻)와 귀(耳), 그리고 눈(目)이란다. 고로 /보는 것/ 냄새 맡은 것/ 들리는 것은/ 죄가 아니다 /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손만 조심하면 된다는 심사로 빈 바구니를 들고 죄(?) 없는 것들만 사용하는데. 마트에 널려있는 상품 중에 바나나에 모두의 눈길이 많이 갔나 보다. 뒤따르시던 노인네가 단 박 "바나나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하이고!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손가락만 한 바나나 하나에 천 원쯤 할 때인데 누가 싫어할까요. 그래도 너무 비쌀 것 같아서. '바나나 참으로 좋아한다'는 나의 속마음을 내비칠 마땅한 방법이 안 떠올라. 상하로 움직이려는 고개를 애써 잡으며.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였더니 이내 알아차리시고 바나나를 상자 채 실어 준다.(생강은 늙을수록 맵다더니. ㅎ)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보기에는 엉성한 일본식 겉절이 김치, (포장은 야무지게도 서울 김치) 단무지, 쇠고기, 사탕, 오징어(오징어) 과일 등 많이도 사왔다. 거기에 포도주와 이름 모를 일본 '청주'까지…….한 차 사온 것으로 우리 아가씨들이 한국식 불고기 만들고 오징어 굽어 신 나게 먹고 마시고 후식으로 귀한 바나나를 상자 째 가랑이에 끼고 벗겨 먹으며 둘러보니. 그 많은 걸 거의 다 먹어치웠다. 참 모질게도 먹었구나. 싶다.
우리네 옛말에 "자갈 논 서 마지기 살 생각 말고 입하나 덜라고 했다"더니. 틀린 말 하나도 아냐. 이건 사람이 음식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음식에 사람이 먹힌 것인지 당최……. 둘러보니 모두가 맹꽁이 배다.
건너편에 퍼진 재단 반 병 칠이 놈은 어깨로 숨을 쉰다. 흉악한 놈 그리 먹고도 사타구니 밑으로 바나나 하나를 집어넣고 으깨질세라 엉거주춤. 저 모양 세 좀 보라지. 그리되면 잠벵이 속에 든 제 것 하나 하고. 바나나가 두 개? 게놈이 무슨 홍어가? 가오리도 아닌 놈이…….
습관은 무섭다더니 배가 부르고 나니.(즉 식당이라면 돈 계산 할 때쯤) 그제야 우리가 놓인 곳이 식당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우를 둘러보게 된다. 이걸 식당에서 먹었다면? 어휴! 새삼 식당이 아니란 걸 다행스레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기세 좋게 먹고 마신 자리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주인 노인네 빼고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식당이건 주인이 돈 내는 경우는 없으니 그럼…….
세상에 공짜는 부모님 사랑뿐이라는데…….별로 감정도 좋지 않은 남의 나라에 와서 너무 허겁지겁 먹은 것이 조금은 겸연쩍다. 죽통에 달려드는 돼지 모양새는 아니었나 몰겠다. 당신께서 만들어 준 걸 먹었으면 좀 덜할 텐데. 돈 만 노인네가 계산했지 모조리 우리가 들고 왔고 또 우리 손으로 요리해 그걸 모두 먹어버렸으니 말이다.
이거야 시각장애인 제 닭 잡아먹기도 아니고. 음식 잘 만들어 먹고 왜 이리 안 좋다니. 이런 걸 똥 싸고 매화타령이라 하는 건가. 우리를 숙식을 해주고 얼마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인네 오늘 너무 많이 쓴 것이다. 물가 비싼 일본에서 어림잡아도 오늘 쇼핑한 금액이. 우리에게 5성급 호텔비를 받아도 절대로 남지 않을 경비였기 때문이다. 감사히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그런 뜻을 통역을 통해서 은연중 내비쳤더니. '사람은 돈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하신다. 멋진 할아버지 셔, 소싯적에 유도로 일본 전역을 떠넘기셨다더니 역시 무도인 덥다.
하루는 본사 통역이 2층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아래층 현관 입구에 일본 노인네와 둘이 앉아서 일본 연수 가기 전. 아침에 한 시간씩 학원에서 배운. 그야말로 개미 수박 겉핥기식인 자투리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세 가지 문제 쇼당(해결)을 보는 데 2시간이 걸리더란다.
나야. 밤늦게까지 잔업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 학원가서 작지 않은 글쎄(학원비) 내고 배운 것이기에. 좋은 기회에 그동안 배운 것을 써먹어 보자는 요량으로 떠들었을지 모르나. 되지도 않은 소리를 두 시간이나 듣고 가르쳐주고 또 답변한 인내심 많은 일본 '오나 사마'께 새삼 감사의 맘 전한다. 파티가 끝난 후 일본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자 신다. 무슨 일일까? 노인네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 앉아있으려니 벽장을 여시더니 잘 생긴 닛폰도 칼 한 세트를 꺼내신다. 상자에 잘 모셔진 참 멋있는 길고 짧은 두 자루 칼이다. 큰칼은 '오도 고(男)라 하고 작은 칼은'온나'(女)란 다. 그런데 웬 칼? 잘 먹여놓고 이제 잡자는 거야? 뭐야?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돼지가 된 건가? 꿈속에 나비가 된 장자 꼴,
남자라면. 누구나가 좋아하는. 충동적인 몇 가지가 있다. 손닿은 곳에 총이 있으면 당연히 목표를 찾아 당겨보고 싶고 / 참으로 멋진 칼을 보면 옆구리에 찬 후 근엄하게 뽑아들고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씨름 하던 차에……."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 흉내라도 내 보고 싶은 / 하다못해 짚단이라도 베어야 직성이 풀리는./ '할리 데이비드슨'에 올라 직선 서부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등등의 은밀하고 조용히 한순간에 판가름 나는 뭔가를 즐기고 싶은 미련이 있다.
그것도 나이가 많으신 일본 노인네가 한참 아래인 나에게 무릎을 꿇고서 아주 정중히. 칼을 두 손으로 이마 높이로 들어 올렸다. 자세한 영문은 아직 모르지만. 불고기와 술에 오뉴월 牛 부랄 늘어지듯 축 늘어져 있던 나는 한여름에 우박 맞은 수탉처럼 후다닥 놀라서 얼른 나의 무릎을 노인네 무릎에 맞대었다가 술이 확 깬다.
무릎을 맞대고 고개를 숙이다가 반짝이는 노인네 머리에 코를 박을 뻔해서 뒤로 물러나 방아깨비 절을 해도 문제없을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멋없이 길기만 하다는 나의 키가 처음으로 민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매우 급한 이 상황을 본사 통역이 옆에서 통역을 통해서 듣는다. 우리들의 바뀐 행동……."이것이 박사 아이디어라고 들었다. 박상은 어디 가서라도 성공할 것이다. 이 칼 세트는 작은 나의 선물로 드리는 것이니 가지고 가시라“
"오메! 이거 어찌 된 거예요? 아니 왜 나한테만 칼을 주신 답니까?" 본사 직원의 통역이 이어진다. 그제부터 확 바뀐 우리들의 행동을 보시더니. 일본 노인네가 묻더란다. '이틀 전부터 갑자기 행동이 바뀌었는데. 그것이 누구 아이디어냐고. 본사 통역이 나를 가리키며 저기 "박상" 아이디어라고 했단다.
그래서 오늘 마트 가서 쇼핑해와 파티하고 이제 닛폰도 칼 세트를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란다. 그리고 여기서 본사 통역이 자기의 본분도 잊고 되게 부러운 표정으로 눈까지 흘기며. 전혀 쓸데없는 소리까지 혼자 구시렁거려 일본 노인네를 궁금하게 했다. 통역인 자기에게는 저런 좋은 칼 세트를 권하지도 않는다고……." 이어서 이어지는 통역을 통해서 들은 일본 할아버지 얘기다. "자기는 오랫동안 요식업을 하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 손님을 받았단다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더란다. 하도 여기저기 어질러 놓아서 뒤치다꺼리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틀이 지나니. 또 그렇게 편하게 해 주더란다.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어서 드셔 보시라. 하여. 우리 덕분에 당신께서는 '혼 무노'(진짜)한식을 처음으로 먹어보는 즐거움까지 주셔서 감사한단다. 그래서 오늘 파티를 한 것이며 그 아이디어 낸 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이 칼 한 세트를 선물하노니. 일본 와서 즐겁게 일하시고. 날 만난 기념으로 가지고 가시라." 하신다.
"하이고! 노인네 아니! 선생님! 참으로 감사합니다만. 이 칼 가지고 귀국하려면 김포 세관을 거쳐야 하는데. 한국 경찰이 저를 얼굴에 ‘기스(흠집) 있는 자(일본에서는 '야쿠자'를 칭한 은어)로 찍혀서 빼앗기던가. 잘못하면 감방 가야 합니다. 그런 고로, 선생님의 고마운 선물은 마음속에 소중히 담고 가겠습니다. 요렇게 정중히 감사를 드리고…….
참으로 어렵게 사양을 했다. 이 질긴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구 공장을 할 때 일본 노인네가 원목 뿌리공예와 흑단 목검(木劍)세트를 한 컨테이너 주문해 주셨다. 그중 흑단 목검세트를 많이 주문하셔서 이 많은 걸 누구에게 팔 것이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얼굴에 ‘기스’ 있는 사람들에게 판다고 하신다.
그 후 내가 이곳 사이공에서 식당 '*** 가든'을 개업한다고 했더니. 식당 재료를 손 캐리로 200킬로를 비행기로 가져오신 분이다. 공항에서 들고 나오시는 물건을 보고 참으로 놀랐다. 카터 두 개에 가득 짐을 싣고 나오시는데. 짐만 보이지 키 작은 오나 선생님은 안 보였다.
200킬로 물품 중에는 샤부샤부 고기 자르는 기계가 있는데 이 기계 하나만도 30킬로가 넘는다. 바리바리 봉물짐 같이 포장된 것을 집에 와서 열어보니. 대형 연어가 몇 마리 들어 있고, 다리 하나가 내 팔뚝만 한 북해산 문어, 시사 모라는 알이 잔뜩 든 조그만 생선까지 몇 상자/ 샤부샤부 끓이는 냄비 열 개/ 이건 완전히 한 살림이다. 풀어놓은 짐을 보고 놀라서
"아니 '센 세 이'(先生)참으로 감사드리옵고. 그리고 재주도 참 용하시지요. 이 많은 물건을 어떻게 핸디케리로 가져오셨습니까?
일본 '마쓰야마' 공항에서부터 이렇게 많은 물건은 안 된다고 하더란다. (당연하지. 특히나 기계 하나가 30킬로가 넘는데 공항 화물취급 직원들이 항우장사가 아닌 바에야 이렇게 무거운 기계를 어떻게 들고, 또 내리시나?) "그러면 내 맨몸으로 갈 터이니 당신들이 이 물건들 우리 집에 가져다줘라, 알았지? 운전 중 안전띠도 안 메고 다녀서 순사가 "어르신 제발 좀 메고 다니시라고 사정하고. 하루에 다섯 갑 피우는 담배는 어디를 가시나 물고 다니신다. 꽁초는 제일 큰 재떨이인 길거리, 순사 앞, 아무 데나 버린다. 얼굴에 결
점만 없으시지 "마쓰야마(松山)에서는 순전히 깡패 노인네다.
이 노인네. 몽니가 통한 또 하나의 사례…….
노인네 선물하고 길 하나 사이에 남녀공학 중, 고등학교가 있다. 이 노인네 전문이 꽃집과 문구류 판매 시다. 20개 넘은 가게를 운영한 적도 있으셨단다. 우리 숙소 앞에도 문구류 가게가 있었고 노인네가 바쁘시면 내가 일어 공부도 할 겸 손님으로 온 학생들을 상대했다.
밖에는 음료 자판기 한 대가 있는데 하나는 너무 외롭다고 생각하셨는지. 바로 옆에다가 짝으로. 담배 자판기를 설치하셨다. 바로, 당연하게도 담 너머 이웃인 학교 측에서 불만이 들어 왔다. 학교와 너무 가까이에 담배 자판기는 안 된다고. 헌데 이 노인네 답변에 모두가 뒤집혔단다. 그럼 노인네가 무슨 말을 했기에? 얌전한 여선생님까지 며칠 동안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지나다니셨고. 또 근엄한 교장 선생님께서도 아무 말도 못 했을까나?
"모두 잘 들어라. 여기에 내 집이 먼저 있었지 그자? 그담에 학교가 들어왔다가 그자? 그럼 답은 나왔지? 꼬면 늦게 들어온 학교 너희가 이사를 가거라." 으하하 선점(先占)한 자의 권리. 이거야말로 일본식 '관습헌법'이 아닐까 한다.
이 담배 자판기에 우리 돈 500원짜리 동전을 집어넣고 100엔짜리 담배를 꺼낸 후 400엔을 거슬러 받았다. 우리야 노인네 허락받고 실험을 해 봤지만. 절대로 따라서 하지 마시라. 이건 위법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흑단 목검 세트를 그렇게나 많이 주문하여 얼굴에 ‘기스’ 있는 자들에게 팔 수 있는 이유를) 고등학교 때 유도 최고위급에 해당한 실력의 소유자 이었기로 당신께서 살던 섬에서는 거의 상대가 없었단다.
그것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 나중에 증명되었다. 베트남에 왔을 때 우리 집 현지인 경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걸 봤다. 노인네 耳順이 다 되었을 때다. 이 노인네가 고등학교 시절에 '잇쇼겐메이'(죽을 둥 살 둥)로 유도에 매달리다 보니 발톱이 자주 빠졌기로. 온천에 자주 발을 담갔는데. 어느 날 의사가 몸속에 유황이 많이 침범하여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하더란다. 다리를 자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어찌 사는지 모르신단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 병원에서 깨어났는데. 의사가 이제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란다. 어! 그래! 제정신으로 돌아와 병원 밖에 나오시니. 부하들이 몇 십 명 우두머리를 기다리고 있더란다.
지금도 야쿠자에게 해코지 당할 것 같은 사람은 노인네를 찾아온단다. 원만히 쇼단(해결)을 봐달라고. 그런 위치에 계시니 그렇게 많은 흑단 목검을 주문하신 것이다. 각설하고…….그렇게 많은 물건을‘핸디 케리’로 들여오니. 이곳 베트남 공항에서 세세히 검사하던 세관원이 이 물건들 속에는 "가공하지 않은 생선이 있느냐"고 묻더란다. 오나 선생은 "살아있는 생선은 없다'고 했단다. 세관원이 상자를 열어보니 얼린 연어가 원형 그대로 몇 마리 나왔단다. 세관원이 이것이 가공하지 않은 생선이 아니고 뭐냐고 묻더란다.
이 노인네는 손가락으로 툭툭 연어를 찔러보면서 "봐라. 죽었잖냐 당신은 살아 있는 생선이 있느냐고 물어서 나는 없다고 했다." 결국 세관원이 웃으며 커피 값 좀 내놓으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세관원에게 지갑 채 주었단다. 세관원이 지갑을 열더니 20달러짜리 두 개를 꺼내더란다.
그래서 이 노인네가 얼른 20달러짜리 한 장은 택시 타고 가야 한다고 세관원 손에서 뺏었단다. 물론 지갑에는 20달러 두 장이 전부지만. 이 노인네 허리춤에는 100달러짜리 열 장 넘게 꼬불쳐 놓은 것이 있었더란다. 지갑 속에는 달랑 20달러 두 장만 넣어두고. 허허실실이라더니 누가 이 어수룩해 보이는 노인네를 당하랴.
士爲知己者死(사위 지기자사)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