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마련해주신 화타119를 통해서 만난 사람 이름이 잔디이다.
난 그 잔디선생님이 나하고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나의 강의실 바로 옆 그 옆 교실에서 일하시는 그 분은 선생님의 까페를 오랫동안
접해왔고,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연의 끈이 어어진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 분은 나에게 한 첫마디가 너무 놀라웠다. "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
한편 부끄럽고 한편 너무 감사한 생각에 그 분에게 홀릭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의 금잔디는 내 고향 뒷산에 무덤들이였다. 대 여섯 봉우리가 넓직하게 자리잡은
무덤들 위에는 우리가 앉아서 놀기 좋게 금잔디로 덥혀 있어서 거리낌 없이 앉아 노는 놀이터로
삼았다. 나무가 없는 그 곳에는 앉은뱅이 풀들이 솟아나곤 했는데 늘 배가 고팠던 우리들은 무엇이든
솟아나면 뽑아서 그 뿌리를 먹곤했다. 다행히 독은 없었는지 지금까지 살아있는걸 보면 ㅎ ㅎ.
이곳으로 이사와서 그 풀들을 찾아 보아도 비슷한것은 있어도 먹어볼 만큼 확 띠는 풀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그 어릴적 나는 풀 전체를 뽑아서 잘 펴서 잘 말려서 공책에 붙이고, 이름을 쓰는것을
좋아해서 '식물채집' 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나의 금잔디~~~!!!! 지금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무덤들을 덥고 있었던 정말 멋지고 이쁜 것들을 어디서도
본적이 없다. 이곳에는 서양 잔디를 키워 축구장으로 이용하는 경기장도 있지만 그 금잔디 만큼 아름답지도
가슴 설레게 하지도 않는다. 아주 가끔 비바람이 몰아치며는 서양잔디에서도 그윽한 향기가 나기는 했었다.
또 그 무덤위에는 할미꽃이 많이 피어나곤 했는데 그렇게 할미꽃 다운 할미꽃도 그 때 보고는 못 본것 같다.
잔디 선생님은 아이들의 걱정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고 계신듯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 분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원래 나란 사람이 한가지 밖에 모르는 성질이라 ㅋ ㅋ.
남편은 가끔 멍청이 같다는 표현을 쓴다. 나하고 상관 없는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는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요즘처럼 바쁜적이 별로 없다.
날마다 강의준비를 해야한다. 그렇다고 학생이 많은것은 아니다. 그냥 수강생의 수준에 맞춰서 강의준비를 해야하니
늘 강의준비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런것들을 반복해서 별로 힘들지 않고 해내고 있는 나자신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잔디 선생님도 나의 동영상 수강생이 되셨다.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와서 침을 맞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오려고 애를 쓰시는것이 비단결 보다 더 곱기만 하다.
남편도 데려오고 아이들도 데려오고 또 아는 사람도 데려오고 싶어하는 잔디 선생님을 이제는
금잔디로 부르기로 했다.
그 어릴적 마냥 편안했던 무덤들의 금잔디 덕에 나의 어린 시절은 아름답고 빛이 났다.
적당히 머얼리 나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편안하게 태양의 따스함이 마른 풀밭을 달구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따스했을까?!. 말없는 남동생들의 늘 대표였던 나는 밥하고 반찬 만들어 주던
누나만이 아니라 철딱서니들의 울타리 노릇까지 했던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기도 했을것 같다.
오늘도 금잔디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생각하며 그녀가 남편과 네 아이들과 나의 어릴적 금잔디처럼
행복하기를 .....!!!! 삶이 따스하기를 기도하는 오늘 오랫만에 허스키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신 나의 또다른 금잔디에서 몇 자 적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