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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펜후드 원문보기 글쓴이: 一波
파이의 그림 하나 하나를 클릭하면 파커 만년필의 시대별 제품을 볼 수 있다.
노랑 미제 연필 하나 꼭 갖고 싶다.
누런 재생지에 글씨를 꼭꼭 쓸 때 뚝뚝 부러지는 가슴 콩다콩 그런 연필 말고.
몽당연필까지 쓸 수 있는.
노랑 연필 참 곱고 좋아서 손마디만큼 남을 때까지 아버지 붓 뚜껑에 껴서 쓴다.
전쟁의 폭풍이 쓸고 간 1953년 학교에는 교실에는 마루도 책상도 없다.
교실에서는 가마니 깐 체 공부하고, 앉은뱅이책상을 학교에서 집으로 가지고 다닌다. 정말 무거워서 책상 없는 애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롭기도 하다.
그 참에 어떤 애가 파란 물감 나오는 연필을 가지고 뽐내서 알랑똥땅 빌려 쓴다.
꼭꼭 박아 쓰지 않아도 글씨가 잘 써진다.
물감 연필 주인이 줘 줘하고, 나는 좀 더 좀 더 하는 소리가 커져 선생님께서 돌아보신다.
" 뭐냐? 이게 뭐야? 만년필이네. 파카군. "
하시고는
" 글씨는 연필로 써야 는다. 아버지께 도로 갖다 드려라. "
그건 만년필이구나. 만년필은 파카구나.
만년필을 보면 가슴이 떨린다.
담임선생님은 만년필로 글을 쓰신다.
낡았지만 깨끗한 양복 안주머니에서 살며시 나오는 귀한 물건이다.
한 번만 단 한번만 그 만년필로 나도 남보란 듯이 글씨를 쓰고 싶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만년필을 무심코 교탁에 놓으시고 교실 밖에 나가셨을 때 가슴이 콩콩 울린다.
몰래 써본다.
"순아 예쁘다"
짝꿍 순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다.
잉크가 번진다.
순아의 미소 같기도 하고 내가 고무줄을 끊었을 때 그 아이의 눈물같기도 하다.
소년 시절에 파카에게 품던 사랑을 찾아 파카만년필의 뿌리를 찾아 떠나보자.
고종 3년 정월 팔도에 영을 내려 천주교도를 싹쓸어 새남터로 보냈다.
이때 죽은 이들 가운데 불란서 사람도 있었다. 용케 피한 한 사람이 청나라로 도망쳐 불란서 제독 로제가 군함을 거느리고 강화도를 치고 한양을 엿보았다. 조선 군사가 잘 싸워 한 달 만에 프랑스 군을 물리치니 이것이 병인양효이며, 이때가 1866년이다.
이 무렵 1863년 미국 위스코신의 슐스버그에서 태어난 꼬마가 조지 파커이다. 그가 바로 파커 만년필의 원조이다.
동학란 나고 시끄럽던 우리 조선은 사통팔달로 지필묵으로 글을 써서 파발을 돌릴 때, 미국 친구들은 잉크 듬뿍 넣고 다니는 신무기를 만들 인물들이 줄줄이 태어 날 때 였다.
붓과 만년필은 기동성과 성능으로는 화살과 m16같은 차이다.
우리가 붓글씨를 쓸 때 미국에서는 만년필을 쓰니 미국의 만년필 역사가 140년이 넘는다.
만년필의 기본은 바뀌지 않았으니 세상일이란 서둘러 바꿀 일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느긋한 물건도 있다.
파커가 태어난 위스코시는 훗날 파커 만년필 제국이 세워질 제인빌에서 110키로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파커는 1636년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던 윌리엄과 메리의 소생으로 춥고 배고프게 태어났다.
근처 시골학교에 다니면서 농장에서 파커는 코 빠지게 일했다. 뒷날 아이오아 대학을 졸업했을 때 가정교사로 애써 벌어 모은 돈 55달러로 제인빌의 발렌타인 전신학교에 들어갔다. 재주 좋고 머리 좋은 덕에 1년 뒤에는 그는 학생에서 선생이 되었다.
1880년경 그는 홀란드 만년필 회사의 중개인 노릇도 겸했다. 당시에 존홀랜드라는 만년필 회사의 제품을 파커의 학생들 대부분이 사용했다. 이 시대에 다른 많은 만년필과 마찬가지로 잉크가 글을 쓰는 동안 멋대로 흘러서 아주 애를 먹고 있었다. 만년필은 잉크가 펑펑 나오거나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일도 흔할 일이라 쓰는 사람들 마다 분통이 터졌다. 차라리 붓을 쓰는 게 낫지. 아마도 그들이 붓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만년필을 못 쓰겠다고 학생들이 와글와글 항의가 대단한 참에 파커가 손목을 걷고 나섰는데. 세상에는 손목 걷는 일만이 있는 게 아니다.
파커가 처음 시작한 일은 만년필 안에서 잉크를 제대로 공급할 공기압을 안정적으로 올리는 일이었다. 맨땅에 머리 박기를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는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공구를 사 모았다.
아주 단순한 공구였는데. 한 개의 작은 톱, 선반 한 개, 칼 한 자루 등이었는데. 지금 형편으로 보아도 만년필을 만들려는 것인지 목공 노릇을 하려는지. 지금은 집집마다 이런 공구가 없는 집이 어디 있담. 파커는 이런 조잡한 공구들로 별궁리를 다하며 존 홀랜드 펜들을 닦고 조였다. 하다 보니 제법 궁리가 생기고 물건이 되자 파커는 익힌 솜씨에 자신감이 생겨 자기 자신의 펜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남의 것을 벤치 마킹하는 버릇은 미국인들에게 흔한 노릇인가보다. 이때까지도 만년필 만들기는 요즘 애아범들이 플라스틱 조립품 만들기를 하듯 워밍업이며 재미삼아 하는 일이었다. 하다 보니 일이 되어간다. 1889년12월에 파커는 자신이 닦고 조인 자신의 발명품을 특허를 냈다.
그러나 밥 벌어먹기는 일렀다. 하다 보니 공구보따리가 봇짐 하나로 늘었다. 대개의 성공한 자들이 극적인 분위기를 파커도 따라 가는데, 워터맨은 담뱃가게 주방에서 만년필을 만들었는데 파커는 호텔방 구석에서 만년필을 조립해갔다. 이때가 바로 파커제국의 탄생이었다. 파커는 홀몸으로 그를 도와주는 판매책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끈기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뿐이었다.
물건을 팔아놓았지만 팔 곳은 없지. 궁리 끝에 파커는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호텔 숙박객인 장사치들을 상대로 만년필을 팔기 시작했다. 제법 팔려나갔다.
그 때, 파머라는 친구가 동업자로 나섰다. 그 때 돈 천불을 투자해서는 이익이 생기면 반반씩 나누잔다. 파커야 얼씨구나. 그 천불수표로 파커 펜회사가 창업을 했다 파커와 팔머가 찰떡궁합으로 어깨동무 무릇 30년 동안 일했다. 파카는 신바람 나게 만년필 개발품을 쏟아냈다.
나비부인의 푸치니,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이 즐겨 쓰던 파커의 역사는 이렇게 힘을 얻어갔다.
펜촉에 잉크가 팡팡 흐를 때, 막는 효과는 모세관현상으로 튜브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펜촉을 적당하게 잉크가 잠기게 만든 제품이 럭키커브였다. 이 제품이후 파커는 신바람 나게 커갔다. 파커 아들 커세스가 처음으로 금촉을 껴서 만든 제품에 듀오폴드였다. 이때가 1921년이고 1백주년 기념으로 듀오폴드 100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나왔다.
시간과 필기감의 영원성을 새겼던 파커의 금빛 화살을 기억하리라. 이것이 1981년부터 클립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파커제품 하면 화살클립이 떠오른다.
파커의 펜촉은 67%의 황금을 포함한 18K합금으로 촉의 모양을 잘라내 압축한 후 수작업을 통해 0.01mm의 폭으로 한복판을 가른다. 이 촉을 호두 껍데기 조각으로 가득한 회전통 속에 넣어 56시간동안 연마하면서 광을 낸다.
촉끝에는 강철보다 4배나 단단한 금속 알맹이인 루테늄 덩어리를 갖다 붙인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시장에 파는 파커의 펜촉과 클립은 2만 5천 번에 걸친 밀착 시험에 통과 하며 합격된 것들이다. 펜촉의 종류는 XF,F, M,B,XXB,BO,XXBO, MI 등 8가지이며, 이중 XF(0.6mm),F(0.7mm)는 우리 글쓰기 습관에 맞다. BO와 XXBO펜촉은 좌측으로 기울여 쓰는 사람에게 알맞고, MI는 세로로 두껍고 가로는 가느다란 서체를 쓰는데 편하다.
모든 전쟁기간을 통하여 파커만큼 성공하고 신화를 만든 만년필 제조업체는 없었다. 파커 51을 포함해서 아직 옛날 파커 제품은 현역근무중이다. 파커 51인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섰지만( 아니 다시 기념으로 디자인을 바꾼 제품이 또 나온다는 보도가 있다. ) 한 예를 들어보자. 1969년 에 2천만 불을 광고비로 쏟고 4억불 어치를 판 효자 동이였다. 이것은 이 제품의 복제를 부추겼다. 한 때 70년대 초는 파카 복제 시대였었다. 51은 다른 만년필 업계에 자극을 주었는데 파커가 'Parker'를 뚜껑에 새긴 뒤에 이름깨나 있다는 만년필 제조업자들은 자기 제품에 파커와 똑 갈이 해서 파커 같은 느낌이 들도록 베껴야할 정도였다. 51의 적수는 51 이외는 없었던 것이다.
1960년 신랑 신부 예물 교환할 때 신부는 신랑의 양복 가슴에 파카를 꽂아주었다.
형편이 좋으면 51이고, 아니면 21이었다.
그 당시 관광서나 동네 어귀마다 있던 대서방을 호구지책으로 차리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며, 총각 때 연애편지 쓰듯 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는 신부의 소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 학생들은 파카는 한 번 품고 싶은 꿈이었다.
한 번 가지면 평생을 가지고 있다가 다시 대를 물릴 수 있는 만년필들이 지금은 어느 서랍구석에 잠자고 있는가.
집안 어른의 낡은 짐을 정리할 때 구박다리 파카 하나라도 나오면 추억을 하나 만드는거다. 요즘 시대 아날로그가 힘 받는 판에 만년필 얻고 어르신들의 향수(鄕愁)까지 함께 하리니.
내 글에 실린 파카의 사진을 보자. 행여 파카를 얻었다면 모델 이름과 태어난 시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