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감성마을의
이외수와 이효재
강원도 최전방의 깊은 산골 ' 새가 바라보는 쪽으로 17KM' '물고기가 헤엄치는 쪽으로 6KM' 라는 감성 마을의 이정표를 따라 비포장 길을 한참이나 더 다리고, 추적추적한 흙길을 두어 번 오르내렸다. 작가 이외수를 만나러 가는 길.
좋은 글귀만 보면 수첩을 펼쳐 빼곡하게 기록하는 이효재씨에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작품’인 이외수 선생은 특별한 존재다. 그의 기발하고 독특한 문체에 매료돼 이외수의 팬을 자처하던 그녀가 한 지인의 소개로 이외수 부부를 만난 건 10년도 더 된 일. 예쁜 것만 보면 행복해지는 취향과 살림쟁이 성향까지 꼭 닮아 이외수씨의 아내와 이효재씨는 금세 마음을 여는 사이가 됐다. 속내를 보이며 모든 대소사를 허물없이 나누는, 친정언니와 동생 같은 사이로 지낸 지 이미 여러 해.
이외수씨 집안의 큰 행사에는 이효재씨가 늘 함께하고 이외수 선생의 두 아들은 그녀를 이모라 부르며 살뜰하게 따른다. 챙겨주기 좋아하는 이외수씨의 아내는 작년에 바쁜 이효재씨를 위해 김장 김치 100포기를 담아 보내왔다. 올겨울 역시 이효재씨의 겨울나기 채비에는 강원도에서 보내온 김치가 빠지지 않는다. 때만 되면 이것저것 챙겨주는 그 마음이 감사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시라고, 이효재씨는 직접 만든 도톰한 조끼를 챙겨 강원도 화천으로 향했다.
[첫번째]이외수씨의 아내 역시 소소하게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 김장하고 남은 미나리 뿌리는 화분에 심어 식재료로 활용한다.
[두번째]멸치는 보통 국물을 우려내고 찌꺼기는 버리는데, 이외수씨의 아내는 국물을 내고 남은 찌꺼기를 절구에 찧어 한 번 더 활용한다. 찌꺼기를 잘 모아두었다가 고추장 등으로 양념장을 만들 때 넣으면 맛있다고.
[세번째,네번째]이외수씨의 내복 예찬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사계절 내내 내복을 입고 한겨울에는 집 안에서 털신을 신고 다닌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자연을 지키자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벗이 벗을 사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상태 그대로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면, 꼭 뭐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지켜줘야 하는 거죠”
생태 마을 화천에서, 유유자적의 삶
강원도 화천은 지난 50년간 군사 보호 구역이었던 까닭에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 지역이다. 1급수의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가 살고, 계절마다 야생화들이 무리지어 피어난다. 2004년, 이외수 부부는 30년의 역사를 쓴 춘천 땅을 떠나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작가가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화천군에서 모셔온 것. 자신의 고장이 낳은 문학가를 사후에 기리는 일은 종종 있어도, 아직 활동 중인 작가를 위해 주거 겸 집필 공간을 마련하고 초빙한 사례는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곳으로 오고 난 뒤 자연 덕을 많이 봤습니다. 여기 건물들은 대체 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을 하므로 연료비가 거의 안 나오죠. 벌써 4년째 살고 있는데 공기가 너무 좋아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게 느껴져요.”
산짐승과 들짐승이 자유롭게 뛰노는 생태 마을에 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되고, 글이 술술 써진다. 세계적인 건축가 조병수씨가 지은 이 집은 흙냄새가 나고 천장과 통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자연 안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미로 같은 집을 통과해 냉기가 조금 느껴지는 작가의 집필실에 들어서니 이불이 깔려 있다. 이불을 깔아두면 아무 때나 잠깐 누울 수 있어 여러모로 편하다고 얘기하지만, 그의 깊은 속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춥다고 방 뜨겁게 데우고 들어앉아 있지 않고 내복 따뜻하게 겹쳐 입은 뒤 하루 한 번씩 창문 열어 자연을 보는 것, 작은 화분 하나 사다가 씨앗을 심고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는 것, 그게 자연 사랑이고 친환경이지 거창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어요.”
‘풍월주인’ 이외수, 작품에 환경 메시지를 담다
이외수씨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 왔다.『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는 우리나라 생태 관련 세밀화의 대가인 정태련 화백이 3년에 걸쳐 작업한 토종 야생화들을 모두 삽화로 넣었고,『하악하악』에는 한국의 민물고기 65종의 삽화를 넣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구적으로 살아 숨 쉬게 했다. 작품을 통해 사라져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자연 본래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 “예전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이 매우 많았어요. 그러나 최근엔 그런 시들이 거의 없어요. 그만큼 우리의 자연이 오염되고, 또 우리가 자연과 멀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거죠. 슬픈 일이에요.”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여전히 자연을 묘사하는 문구,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문구가 많다. 그에게 있어 자연이란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자연을 지키자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벗이 벗을 사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상태 그대로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면, 꼭 뭐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지켜줘야 하는 거죠.”
따뜻하게 겨울 나라고, 조끼 선물
“이 집 쌀쌀한 건 저도 잘 알잖아요.” 조끼를 꺼내며 이효재씨가 말한다. 겹쳐 입는 것으로 치자면 그녀가 한참 선배다. 이효재씨는 집에서 난방을 켜는 일이 없다. 풍성한 치마 속에 늘 하얀 속치마를 2개씩 겹쳐 입고 문은 오히려 살짝 열어둬 바깥 기온과의 차이를 좁힌다. 그래서 혹한기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다. 그녀가 겨울을 나는 옷은 조끼다. 따뜻하게 지어서 하나 걸치면 한겨울에도 추운 줄 모른다. 저장 음식도 그녀가 겨울을 든든하게 나는 데 꼭 필요한 재료. 저장 음식이 있으면 바깥 음식을 덜 사 먹게 돼서 좋다. 가을에 묵, 버섯 등을 말려놓았다가 겨울이 되면 볶아 먹고 부쳐 먹고 비벼도 먹는다. 가을에 과메기를 한 입 크기로 썰어 냉동해 놓으면 그해 겨울 든든한 식재료가 된다. 숙성된 저장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지 않아 좋다.
[왼쪽]이효재씨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앞치마
[가운데/오른쪽]이외수씨는 이효재씨가 화천 집에 놀러올 때마다 마음을 담은 글귀를 적어주곤 한다.
“그러니 사모님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제 가슴이 얼마나 뭉클하겠어요. 20대에는 젊음, 30・40대에는 성숙미가 여자의 무기라면, 5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거, 그게 무기인 것 같아요. 사모님이 주신 김치를 먹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그 느낌을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겠어요.”
이효재씨의 마음이 켜켜이 접힌 양면 조끼를 받고 좋아하는 아내 곁으로 다가오며 이외수씨도 한마디 거든다. “이 둘은 서로 참 많이 챙겨요. 효재씨가 옷을 만들 때 이렇게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여자들끼리 나눠 입더라고. 겨울을 난다는 거, 이렇게 사람 온도로, 36.5도로 주변 사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며 지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깐 내 말은 친환경도 곧 사랑이고, 행복도 곧 사랑이란 거지.”
[출처]제이콘텐트리 레몬트리 | 기획 강민경 기자 | 사진 문덕관(studio la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