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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의 감성(sota-pasāda)
[청정도론 XIV]: "38. 귀(sota)의 특징은 소리가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다. 혹은 [대상을] 듣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 그 특징이다. 귀의 역할은 소리들에서 [알음알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귀는 귀의 알음알이의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것의 가까운 원인은 듣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이다."
"49. 귀의 [감성]은 [여러 물질적인 현상이] 혼합된 전체 귀의 구명 속에 부드럽고 갈색인 털에 둘러싸여 있는 반지 모양을 한 곳에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기능을 가진 근본물질의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온도와 마음과 음식에 의해 지탱되고 생명기능에 의해 유지되고 형색 등과 함께한다. 귀의 알음알이 등이 일어나는 토대와 문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한다."
(3) 코의 감성(ghāna-pasāda)
[청정도론 XIV]: "39. 코(ghāna)의 특징은 냄새가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다. 혹은 [대상을] 냄새맡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 그 특징이다. 코의 역할은 냄새들에서 알음알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코는 코의 알음알이의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것의 가까운 원인은 냄새를 맡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이다."
"50. 코의 [감성]은 전체 코의 구멍에서 염소의 발굽 모양을 한 곳에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도움을 받고 지탱되며 유지되고 함께한다. 코의 알음알이 등이 일어나는 토대와 문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한다."
(4) 혀의 감성(jivhā-pasāda)
[청정도론 XIV]: "40. 혀(jivhā)의 특징은 맛이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다. 혹은 [대상을] 맛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 그 특징이다. 혀의 역할은 맛들에서 알음알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혀는 혀의 알음알이의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것의 가까운 원인은 맛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이다."
"51. 혀의 [감성]은 전체 혀의 중간에 연꽃잎의 끝 모양을 한 곳에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도움을 받고 지탱되며 유지되고 함께한다. 혀의 알음알이 등이 일어나는 토대와 문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한다."
(5) 몸의 감성(kāya-pasāda)
[청정도론 XIV]: "41. 몸(kāya)의 특징은 감촉이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다. 혹은 [대상을] 맞닿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로 된 감성이 그 특징이다. 몸의 역할은 감촉들에서 알음알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몸은 몸의 알음알이의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것의 가까운 원인은 맞닿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근본물질이다."
"52. 몸의 [감성]은 업에서 생긴¹⁴⁾ 물질이 있는 이 몸의 모든 곳에 두루 퍼져있다. 마치 면 조각에 배어든 기름처럼.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도움을 받고 지탱되며 유지되고 함께한다. 몸의 알음알이 등이 일어나는 토대와 문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한다."
¹⁴⁾ '업에서 생긴'으로 의역한 'upādiṇṇa'는 upa+ā+√da(to give)의 과거수동분사로서 '움켜쥔, 취착된' 등의 뜻이다. 1본서에서는 '취착된'으로 옮겼는데 청정도론에서는 주로 업에서 생긴으로 의역을 하였다. 본서 제6장 §7-2에서 "업에서 생긴 것(kammaja)이 '취착된 물질'이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취착된 것'으로 옮기는 upādinna/upādiṇṇa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는 『담마상가니』 제2편 §652의 첫 번째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우리 몸에서 머리카락의 끝과 손·발톱의 끝과 말라버린 피부 등은 업에서 생긴 물질(upādiṇṇa-rūpa)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몸의 감성이 없다.
..."45... 지탱을 해주는 근본물질에 많고 작은 차이가 있다는 억측은 버려야 한다. 비록 하나의 깔라빠에도 근본물질의 차이는 없지만 색깔과 맛 등은 서로서로 다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도 차이는 없지만 눈의 감성 등은 서로서로 다르다고 알아야 한다.
그러면 각각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업(kamma) 때문에 그들이 다르다. 이렇게 업이 다르므로 그들이 다른 것이지 근본물질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근본물질이 차이가 있다면 감성은 생기지 않는다. '감성은 근본물질이 동등한 것에만 있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옛 스승들이 말씀하셨다."
"46. 이렇게 업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를 지닌 이 [감성들] 가운데 눈과 귀는 각자 대상이 자기에게 직접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 대상을 취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처(nissaya)인 [근본물질에] 직접 도달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코, 혀, 몸은 각각의 대상이 자기에게 직접 도달했을 때 그 대상을 취한다. 왜냐하면 [코와 혀의 대상인 냄새와 맛은 근본물질에] 의지함으로써 [알음알이가 일어나고], 몸의 대상인 감촉은 제 스스로 자신의 의지처인 [근본물질에] 직접 닿아야만 그 대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pp.38~41, 초기불전연구원(2020)
눈과 마찬가지로 귀·코·혀 역시 7가지 종류의 63가지 물질로 구성된다. 눈·귀·코·혀에는 몸의 10원소 깔라빠가 있지만, 반대로 몸에는 눈·귀·코·혀의 10원소 반투명 빠사다 물질이 없기 때문에 몸은 이를 뺀 6가지 종류의 53가지 물질로 구성된다.
참고로 몸의 감성의 대상인 감촉phoṭṭhabba은 지대pathavī·화대tejo·풍대vāyo의 3가지 그 자체로 이루어졌을 뿐, 별도의 개별적인 단위dhamma의 대상의 물질gocara-rūpa이 아니다. 이 말은 곧 수대āpo는 몸의 알음알이kāya-viññāṇa의 직접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대는 마음이 추론하여 아는 것이다. 이유는 각 사대가 드러나는 양상에 있다. 지대는 단단함·부드러움·거침·매끄러움·무거움·가벼움으로, 화대는 따뜻함·차가움으로, 풍대는 지지함·밀어냄(움직임·압력)으로 몸에 직접 부딪힘을 통해 감지된다. 이 셋은 모두 신체적 접촉(촉각)으로 직접 알아질 수 있는 결을 가진다. 그러나 수대의 고유 양상은 응집성인데, 이것들은 신체의 부딪힘으로 직접 잡히지 않는다. 응집성 자체 — 여러 요소를 한 깔라빠로 묶고 흩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그 결속력 — 는 다른 세 요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될 뿐, 몸의 센서에 물리적으로 부딪히는(충돌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물을 만질 때 직접 경험되는 것도 보통 다음과 같다.
따라서 수대는 mano-viññāṇa(의식)가 추론적으로 파악하는 대상dhamma-ārammaṇa이며, kāya-viññāṇa의 직접 소관이 아니다. "몸의 대상인 감촉은 제 스스로 자신의 의지처인 [근본물질에] 직접 닿아야만 그 대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난다"고 할 때의 그 감촉도 정확히는 지·화·풍 삼대로 구성된 대상을 가리킨다.
청정도론에서는 "눈·귀·코·혀·몸의 감성이 각각 색깔·소리·냄새·맛·감촉 등 서로 다른 대상에 반응하니, 그것들을 지탱하는 사대mahābhūta도 종류나 비율이 서로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에 대한 주장을 아래와 같이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눈의 빠사다와 귀의 빠사다가 다른 이유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낸 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대는 어디서나 사대이다. 그런데 업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대를 바탕으로 생겨나는 감성의 기능적 특수성이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같은 전기와 회로 재료가 있어도, 설계도에 따라 카메라 센서가 되기도 하고 마이크 센서가 되기도 한다. 재료의 물리적 기반이 완전히 달라서가 아니라, 설계 방식이 달라서 기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비담마식으로 말하면 그 “설계 방식”에 해당하는 것이 업kamma이다. 따라서 눈·귀·코·혀·몸의 빠사다는 모두 사대를 의지하지만, 빠사다의 차이는 사대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업의 차이 때문이다. 만약 사대 자체가 불균형하거나 부적절하게 다르면, 오히려 감성물질이 성립하지 못한다. 감성은 동등하게 갖추어진 사대를 의지할 때 생긴다.
upādāya-rūpa, 파생색의 차별은 그 의지처인 사대의 차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깔라빠 단위로 함께 일어나는 다른 조건들(여기서는 산출 업)에서 온다.
궁극적 물질 보는 방법
몸 반투명을 한 덩어리로 봄
사대요소에 집중력을 계속 닦아가고 근접삼매에 도달함에 따라서 여러분은 종류가 다른 빛들을 볼 것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회색 연기 빛이 납니다. 그 회색빛에 사대요소를 계속 집중하면 그것은 목화솜같이 더 희게 될 것이고 그다음 밝은 흰 구름같이 되고 몸은 흰 형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흰 형상에 계속해서 사대요소를 식별함에 따라 그것은 마침내 얼음이나 유리 덩어리처럼 반투명이 될 것입니다.
이 반투명 물질은 다섯 반투명(pasāda)²²⁹⁾, 즉 몸 · 눈 · 귀 · 코 · 혀 반투명입니다. 몸 반투명은 온몸에서, 여섯 모든 감각토대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온몸이 반투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투명을 하나의 반투명 형태 또는 덩어리로 봅니다. 그것은 아직 세 가지 견고함(ghana), 즉 연속 · 집단 · 기능의 견고함을 꿰뚫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²³⁰⁾
²²⁹⁾ 어떤 사람은 빠사다(pasāda)를 추상명사인 '감성'으로 번역합니다.
²³⁰⁾ 물질과 정신의 견고함에 관해서는 질문과 대답 1.3, p.68 참조.
루빠 깔라빠(rūpa kalāpa, 물질 미립자) 보는 방법
반투명 형태(또는 덩어리) 안에서 사대요소를 계속해서 식별하면 그것은 반짝이고 빛이 날 것입니다. 이 형태(또는 덩어리)에 사대요소를 최소한 30분을 계속하여 식별하면 근접삼매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 빛으로 반투명 덩어리 안에서 작은 공간을 봄으로써 그것의 공간 요소를 식별합니다. 이제 그 반투명 덩어리가 작은 입자로 쪼개어진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들을 루빠 깔라빠라고 부릅니다.
심청정인 이 단계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루빠 깔라빠를 분석해서 견청정 연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위빳사나 명상의 시작입니다...
반투명과 불투명 루빠 깔라빠
루빠 깔라빠는 반투명과 불투명 두 집단으로 나누어집니다. 다섯 반투명(눈, 귀, 코, 혀, 몸) 중의 하나를 포함하는 루빠 깔라빠들은 반투명 루빠 깔라빠들입니다. 그 이외 다른 모든 루빠 깔라빠는 불투명입니다.
루빠 깔라빠 분석 방법
사대요소 보는 방법
먼저 각 반투명과 불투명 루빠 깔라빠의 사대요소, 땅 · 물 · 불 · 바람을 식별해야 합니다. 그 루빠 깔라빠들이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져서 그들을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들을 여전히 작은 크기의 입자로써 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 종류의 견고함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개념(paññatti)의 영역에 있고 궁극적 실재(param · attha sacca)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 그 무리와 형태의 개념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입자들, 작은 덩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더 나아가지 않고 단지 루빠 깔라빠인 작은 덩어리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위빳사나를 하려 한다면, 개념에다 대고 위빳사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궁극적 실재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의 깔라빠에서 요소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루빠 깔라빠를 더 분석해야 합니다.
그들이 매우 대단히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단 하나의 루빠 깔라빠에서 사대요소를 식별할 수 없다면, 만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못 본채 하거나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일어나고 사라짐을 무시하십시오. 같은 식으로 루빠 깔라빠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주목하지 마시고 각개의 깔라빠에서 오직 사대요소에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선정의 힘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만일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면 교대로 한 번은 온 몸에서 땅 요소에 집중하고, 한 번은 하나의 루빠 깔라빠에서 땅 요소에 교대로 집중합니다. 물, 불, 바람 요소도 같은 식으로 합니다. 하나의 반투명 루빠 깔라빠와 하나의 불투명 루빠 깔라빠에서 사대요소를 식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파욱에서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즉 요소를 하나씩 식별합니다. 원전에서는 모든 요소들을 한 번에 식별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경험이 풍부한 수행자에 의해 지어졌고 역시 숙달된 수행자를 위한 것입니다. 물질 요소들을 식별한다는 것은 아주 심오하기 때문에 초심자의 위빳사나 힘은 대체로 모든 요소들을 한 번에 볼 만큼 세고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소들을 하나씩, 토대별로 가장 쉬운 것에서 조금씩 어려운 것으로 식별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다음 수행자들이 수행에 아주 숙달되면 하나의 루빠 깔라빠에서 모든 사대요소(여덟 특성)를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²³⁵⁾
²³⁵⁾ 수행자가 12가지 특성을 식별했더라도 하나의 정해진 루빠 깔라빠에서 여덟 가지 특성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1) 단단함, 2) 거침, 3) 무거움 또는 1) 부드러움, 2) 매끄러움, 3) 가벼움, 4) 유동성, 5) 응집성, 6) 열(또는 차가움), 7) 지탱함, 8) 밈. 하나의 루빠 깔라빠 내에서 서로 반대되는 특성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반투명 루빠 깔라빠와 하나의 불투명 루빠 깔라빠에서 사대요소를 봤을 때가 사마타 명상의 마지막이고 심청정의 끝이며, 위빳사나의 시작이고 견청정의 시작입니다. 즉 여러분은 궁극적 정신-물질의 식별(nāma rūpa pariggaha)을 시작했고, 궁극적 정신-물질의 분석(Nāma rūpa pariccheda)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대요소 명상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공했을 때 여섯 감각토대, 즉 눈 · 귀 · 코 · 혀 · 몸 · 심장토대에서 차례로 많은 반투명과 불투명 루빠 깔라빠에 있는 사대요소를 식별합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반투명과 불투명 루빠 깔라빠 모두 기본 여덟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앞선 네 개를 식별했고 나머지 네 개인 색깔, 냄새, 맛, 영양소를 식별해야 합니다...
각 감각기관 분석 방법
반투명 분석 방법
각 기관은 몇 종류의 루빠 깔라빠가 섞여 있습니다. 눈 · 귀 · 코 · 혀에는 이를테면 밀가루나 쌀이 섞여 있는 것처럼 두 유형의 반투명 물질이 있습니다. 즉 각 기관의 반투명 루빠 깔라빠와 몸 반투명 루빠 깔라빠가 있습니다.
눈에 있는 두 종류 반투명 루빠 깔라빠를 예를 들면,
1) 눈 십원소 깔라빠: 이것의 열 번째 유형의 물질은 눈 반투명입니다.
2) 몸 십원소 깔라빠: 이것의 열 번째 유형의 물질은 몸 반투명입니다.
몸 십원소 깔라빠는 각 유형의 십원소 깔라빠와 섞여서(눈, 귀, 코, 혀, 몸, 심장) 여섯 감각기관에서 발견됩니다. 즉 눈에는 눈 십원소 깔라빠와 섞여서, 귀에는 귀 십원소 깔라빠와 섞이고 나머지도 이렇게 발견됩니다. 이것을 보려면 다섯 감각기관에 있는 반투명 루빠 깔라빠를 분석해야 하고, 거기에 있는 각 기관의 반투명(눈, 귀, 코, 혀 반투명) 뿐만 아니라 몸 반투명도 확인해야 합니다. 눈부터 시작합니다.
1) 눈 반투명(cakkhu pasāda): 이것은 색깔에 민감한 반면 몸 반투명은 감촉(접촉 대상)에 민감합니다. 이 차이가 여러분에게 어느 것이 눈 반투명이고 어느 것이 몸 반투명인지 알게 해 줍니다. 먼저 반투명 루빠 깔라빠를 식별하기 위해서 눈에서 사대요소를 식별하고 그 루빠 깔라빠의 반투명을 식별합니다. 다음 눈에서 조금 떨어진 루빠 깔라빠 무리의 색깔을 봅니다. 그 색이 그 반투명에 부딪히면 그것은 (눈 십원소 깔라빠의) 눈 반투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몸 십원소 깔라빠의) 몸 반투명입니다.
2) 몸 반투명(kāya pasāda): 이것은 감촉하는 것, 감촉 대상에 민감합니다. 감촉 대상은 땅, 불, 바람 요소입니다. 다시 눈에서 반투명을 식별합니다. 다음 가까이 있는 루빠 깔라빠 무리의 땅, 불, 바람 요소를 봅니다. 요소가 그 반투명에 부딪치면 그것은 (몸 십원소 깔라빠의) 몸 반투명입니다.
이제 눈에서 눈 반투명과 눈에서 몸 반투명을 식별하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기관에서도 같은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귀부터 시작합니다.
1) 귀 반투명(sota pasāda): 이것은 소리에 민감합니다. 귀에서 반투명을 식별합니다. 다음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가 그 반투명에 부딪치면 그 반투명은 (귀 십원소 깔라빠의) 귀 반투명입니다. 다음 몸 반투명을 눈에서 식별했던 것과 같이 식별합니다.
2) 코 반투명(ghāna pasāda): 이것은 냄새에 민감합니다. 코에서 반투명을 식별합니다. 다음 근처에 있는 루빠 깔라빠 무리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 냄새가 그 반투명에 부딪치면 그 반투명은 (코 십원소 깔라빠의) 코 반투명입니다. 몸 십원소 깔라빠는 눈과 귀에서 식별한 것과 같이 식별합니다.
3) 혀 반투명(jivhā pasāda): 이것은 맛에 민감합니다. 혀에서 반투명을 식별합니다. 다음 근처에 있는 루빠 깔라빠 무리의 맛을 봅니다. 그 맛이 그 반투명에 부딪치면 그 반투명은 (혀 십원소 깔라빠의) 혀 반투명입니다. 몸 십원소 깔라빠는 눈, 귀, 코에서 식별한 것과 같이 식별합니다.
일단 각 네 감각기관에서 두 종류의 반투명과 몸에서 한 가지 반투명을 식별했으면 또한 심장에서 발견되는 (몸 십원소 깔라빠에서) 몸 반투명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식별하고 나면 모든 다섯 종류의 반투명 물질을 식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질 식별을 요약해 보도록 합시다.
· 루빠 깔라빠를 보기 위해서 사대요소, 즉 땅 · 물 · 불 · 바람에 집중하여 근접삼매까지 집중력을 연마해야 합니다.
· 루빠 깔라빠를 볼 수 있을 때 하나의 깔라빠 안에서 모든 다른 종류의 물질을 식별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하나의 눈 십원소 깔라빠에서 땅, 물, 불, 바람, 색깔, 냄새, 맛, 영양소, 생명기능, 눈 반투명을 봐야 합니다.
· 간략한 방법으로 여러분은 하나의 감각기관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물질을 식별해야 하고, 나머지 다섯 감각기관에서도 같은 식으로 식별합니다.
· 상세한 방법으로 몸의 42부분 모두에서 모든 종류의 물질을 식별해야 합니다.
물질 식별을 완료했을 때 모든 여섯 감각기관의 모든 요소들과 몸의 42부분 역시 한 번에 볼 만큼 충분히 숙련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목적한 바인데, 명상이 진보함에 따라 요소에서 요소로, 감각기관에서 감각기관으로, 쉬운 것에서 더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계단의 난간을 지지하는 열 개의 기둥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기둥을 하나, 둘, 셋, 넷 등 열까지 개별로 볼 수 있고, 열 개를 한꺼번에 일견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요소를 일견할 수 있을 때 그것들은 위빳사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요소들을 무상, 고, 무아로 봅니다. 하지만 물질 식별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그것들을 한꺼번에 일견할 수 없으면, 하나씩 취해서 반복해서 보다가 다시 한꺼번에 일견해서 보도록 해 봅니다.
- 파욱 또야 사야도 법문, 담마다야다 빅쿠 옮김, 『냐나닷사나 - 앎과 봄』 pp.165~184, 세나니승원(2021)
사대명상의 전체적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온몸에서 사대요소를 반복 식별한다 → 집중이 근접삼매 수준으로 강해진다 → 몸이 빛/흰 형상/반투명 덩어리처럼 나타난다 → 그 반투명 덩어리 안의 공간요소를 식별한다 → 덩어리가 루빠 깔라빠로 쪼개져 보인다 → 다시 깔라빠 안의 개별 물질을 분석한다 → 이때부터 위빳사나가 시작된다.
사대명상의 1단계는 집중과 빛의 발현으로 정리되는 사마타가 완성되는 과정이다. 몸의 형태(개념)를 지우고, 강력한 집중력(근접삼매)과 지혜의 빛을 얻어 위빳사나를 위한 현미경을 준비한다.
2단계는 심청정의 완성과 깔라빠의 발견이다. 덩어리로 보이는 착각(견고함)을 깨고 깔라빠를 발견한다.
3단계는 궁극적 실재를 분석하는 것이다. 16가지 위빳사나 지혜라는 넒은 의미에서의 위빳사나가 본격화된다. 단 하나의 깔라빠 안으로 들어가, 궁극적 실재paramattha인 개별 물질들을 확인한다.
4단계는 이렇게 분해하고 분석하는 것을 6감각토대와 42부분으로 온몸의 모든 기관으로 확장하여 완전히 숙달하는 것이다.
최종 단계는 무상·고·무아의 통찰이다.
이렇듯 사대명상은 비유하자면 몸통 → 투명한 덩어리 → 빛나는 모래알(깔라빠) → 모래알 속의 원자(사대요소) → 온몸의 물질 요소 식별 완성 → 찰나 생멸의 통찰로 이어지는 수행 로드맵이다. 현미경의 배율을 계속 높여가며 나라는 존재의 '견고한 착각'을 완벽히 부숴버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이 궁극적 정신-물질을 안팎으로 식별할 때에만 영혼의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은 영혼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신과 물질의 견고함(ghana)을 부수고 궁극적 정신과 물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요소 속으로 분해되어서 견고함이 부서졌을 때,
그것의 진정한 본성인 무아의 특성(an·atta·lakkhaṇa)이 드러날 것이다.
지각이 견고해서 영혼에 대한 지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경우 세 종류의 견고함(ghana)이 있습니다.
1) 연속의 견고함(santati ghana): 물질이 하나의 견고한 연속체, 연속하는 전체로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사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똑같은 자아가 다른 형태를 취하면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잘못된 생각을 극복하려면 외관상으로 몸이 견고하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몸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루빠 깔라빠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깔라빠가 연속성이 없다는 것을 봅니다. 깔라빠는 일어나자마자 소멸합니다. 깔라빠가 어디 다른 데로 갈 시간이 없습니다.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갈 시간도, 순간에서 순간으로 갈 시간조차도 없습니다.
2) 통합의 견고함(samūha ghana): 물질이 통합적 전체로 보이므로 깔라빠가 궁극적 물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자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잘못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깔라빠의 외관상으로 보이는 견고함을 해결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개별적 형태의 깔라빠를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분석하면 우리는 깔라빠가 땅 요소, 물 요소, 불 요소, 바람 요소, 색깔, 냄새, 맛, 영양소, 생명기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봅니다. 어디에도 통합적 전체는 없습니다.
3) 기능의 견고함(kicca ghana): 궁극적 물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서 씨앗과 식물이 땅에 의존하는 것처럼 요소들이 자아에 의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잘못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요소들이 그들 자신의 특징(lakkhaṇa), 기능(rasa), 나타남(paccupaṭṭhāna), 가까운 원인(padaṭṭhāna)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즉 그것은 자아와 같은 어떤 외부적 사물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물질의 견고함을 부술까요? 먼저 반드시 루빠 깔라빠를 식별해야 합니다. 다음 반드시 각기 다른 루빠 깔라빠를 분석하고 그것들이 서로 다른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각 루빠 깔라빠에는 최소 여덟 가지 물질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각 유형의 물질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영혼의 지각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식으로 정신의 견고함을 부수지 않으면, 영혼의 지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마음이 떠돌아다닐 때 떠도는 마음이 영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과정(인식과정)에는 네 종류의 견고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빳사나 지혜로 부수어야 합니다.
1) 연속의 견고함(santati ghana): 정신이 하나의 견고한 연속체, 연속하는 전체로 보이기 때문에 똑같은 '마음'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자아, 똑같은 '마음', 똑같은 '순수의식' 등이 다른 몸으로 들어가서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생에서 자신의 마음이 신체 밖으로 돌아다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 잘못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겉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견고함을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인식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정신과정을 통하여 생기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마음의 연속성이 없다는 것을 봅니다. 마음은 일어나자마자 소멸합니다. 의식이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순간적으로도 어디 다른 데로 갈 시간이 없습니다.
2) 통합의 견고함(samūha ghana): 정신이 통합적인 전체로 보이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순수의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자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외관상으로 보이는 의식의 개별적인 유형의 견고함을 해결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각 유형의 정신과정에서 개별적인 의식의 종류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의 마음(한 심찰나)에는 마음과 느낌, 지각, 의도, 기울인 생각, 유지하는 생각, 또는 성냄, 무지, 사견, 자만, 의심, 또는 탐욕없음, 성냄없음, 지혜, 행복, 알아차림, 신심, 바른 견해와 같은 일정한 수의 마음부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봅니다. 어디에도 통합적인 전체는 없습니다.
3) 기능의 견고함(kicca ghana): 궁극적인 정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서 씨앗과 식물이 땅에 의존하는 것처럼 그것이 자아에 의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미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 마음과 마음부수에는 그것들 고유의 특징, 기능, 나타남, 가까운 원인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아와 같은 어떠한 외부 사물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4) 주체의 견고함(ārammaṇa ghana): 앞의 세 가지 견고함을 꿰뚫고 나서 이를테면 '나는 궁극적 정신과 물질을 보았다'거나 '아는 자아가 궁극적 정신과 물질을 보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미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 가지 견고함을 꿰뚫은 위빳사나 정신과정에서 뒤따르는 위빳사나 지혜로 세 가지 견고함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빳사나 지혜의 대상인 정신이 또한 위빳사나 지혜의 주체였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즉 정신의 세 가지 견고함을 꿰뚫은 그것 역시 대상과 함께한 주체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정신의 견고함을 부숩니까? 아나빠나 빠띠바가니밋따를 대상으로 취하는 근접삼매의 의문과정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런 정신과정은 하나의 의문전향 마음과 일곱 자와나가 있습니다. 의문전향 마음에는 12가지 정신형성이 있고 각 자와나 순간에는 34가지 정신형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신에 있는 네 종류의 견고함을 이런 식으로 부수면 오직 마음들과 그것들의 연관된 마음부수들이 재빠르게 일어났다가 소멸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무상의 지각으로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이 영혼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상에 대한 지각으로 무아의 지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메기야 경'에서 붓다께서 말씀하셨듯이, '무상에 대한 강력한 통찰지를 지닌 자에게 무아에 대한 통찰지 또한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 파욱 또야 사야도 법문, 담마다야다 빅쿠 옮김, 『냐나닷사나 - 앎과 봄』 pp.68~72, 세나니승원(2021)
Ghana는 'thick, solid, dense, compact'를 의미한다. 수행의 맥락에서는 '우리의 착각을 일으키는 뭉쳐진 상태'를 뜻한다. Ghana의 어근은 √han(치다, 때리다, 죽이다)인데,
으로 의미가 전개(striker → compact, solid → mass)된 것은 아닌가 필자는 추론한다. 아비담마 맥락에서는 이 "다져진 덩어리처럼 보인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는 찰나마다 생멸하는 별개의 dhamma인데, 그것이 마치 하나의 다져진 덩어리처럼 나타나는 외관을 ghana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외관을 깨뜨리는 것ghana-vinibbhoga이 위빳사나의 기능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견고함'이라는 번역어도 좋지만, '덩어리짐'이라는 직역으로 ghana를 이해하는 것도 그 원어의 의미를 받아들이기에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덩어리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착각한다.
궁극적인 실재paramattha dhamma인 물질과 정신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빽빽하게 연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어리석은 범부의 눈에는 그것이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자아, 영혼, 사물)'로 보인다. 마치 영화 필름이 1초에 24장씩 빠르게 지나가면 연속된 움직임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이 착각을 깨기 위해"가나(ghana, 덩어리/견고함)를 부수어야 무아anatta가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생이 무상·고·무아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견고함(ghana, 덩어리짐의 착각) 때문이다. 물질 쪽에서는 처음에 몸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이것이 큰 수준의 ghana이다. 이후 그것이 깔라빠로 쪼개져 보이지만, 그 깔라빠도 아직 작은 집단으로 보이는 것이므로 여전히 미세한 ghana가 남아 있다. 그래서 깔라빠 자체도 다시 분석해야 한다. 물질의 견고함은 우리가 내 몸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착각이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몸 → 깔라빠 → 깔라빠 내부의 궁극적 개별 물질(사대요소, 색깔, 냄새 등)까지 쪼개어 보아야 한다. 깔라빠 역시 아직 여러 물질의 결집이라는 개념적 단위(집단의 견고함, samūha-ghana)이자 미세한 덩어리(개념)이므로 , 그 안의 요소까지 꿰뚫어 보아야 물질의 덩어리짐이 완전히 부서진다. 정신의 덩어리짐은 마음을 연속적인 '나의 생각'으로 보는 착각이다. 이를 깨기 위해 정신 명상에서는 인식과정citta-vīthi을 식별하고, 그 과정 내에서 심찰나마다 일어나는 단일한 마음citta과 그와 함께하는 마음부수들cetasika을 낱낱이 분해해서 보아야 정신의 견고함이 부서진다. 이러한 궁극적 실재paramattha dhamma를 직접 눈으로 보듯 명확하게 식별하는 것이 위빳사나의 필수 전제조건(견청정)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ghana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으로 인용문에서는 "깔라빠는 일어나자마자 소멸합니다. 깔라빠가 어디 다른 데로 갈 시간이 없습니다.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갈 시간도, 순간에서 순간으로 갈 시간조차도 없습니다."라고 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몸 등의 운동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비담마와 위빳사나의 맥락에서, 운동은 '같은 물질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새로운 깔라빠들이 인접한 위치들에서 연속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다. 깔라빠 A가 위치 x₁에서 생멸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깔라빠 B가 위치 x₂에서 생멸하고, 깔라빠 C가 x₃에서 생멸한다. 같은 물질이 x₁→x₂→x₃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깔라빠가 약간씩 다른 위치에서 새로 일어난다. 거시적으로는 이 연속이 너무 빠르고 매끄러워서 '하나의 손이 위로 올라간다'로 지각된다. 영화 필름의 연속된 정지 화면이 움직임으로 보이는 것, LED 전광판의 픽셀 점멸이 흐르는 글씨로 보이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착시다. 이 착시가 바로 santati-ghana(연속의 응집)이다.
의도적 운동의 경우, 다음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발을 들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 다리가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물질이 새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인용문의 파욱 사야도의 "깔라빠가 어디 다른 데로 갈 시간이 없습니다"는 정확한 말이다. 각 깔라빠는 자기 위치에서 생멸할 뿐,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는다. 거시적 운동은 동일한 무언가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깔라빠들의 공간적으로 연결된 잇따른 발생이다. 몸의 움직임은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 움직임은 찰나적 물질들의 조건적 연속을 거시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의 ghana 4가지 중 마지막과 관련하여 ārammaṇa는 아비담마에서 '대상(object)'을 의미하는데, 왜 인용문에서는 '주체'의 견고함이라고 번역되었을까? '주체'는 빠알리어로 ārammaṇika가 아닌가? 번역자가 이를 '주체의 견고함'이라고 의역한 데에는 수행적 맥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행자는 몸과 마음의 견고함을 부수어 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단순한 깔라빠와 마음부수들의 생멸임을 깨닫는다. "아, 내 몸과 마음은 '나'가 아니구나!"라고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무아라는 것을 '관찰하고 있는 나'는 존재하잖아? 이 꿰뚫어 아는 지혜(위빳사나 마음), 이것이 바로 진짜 '나(주체)' 아닐까?"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4번째 견고함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주체(관찰자, 아는 자)'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 착각을 부수기 위해서 위빳사나 지혜의 객체인 정신이 또한 위빳사나 지혜의 주체였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1초 전에 '몸과 마음의 무상함'을 관찰했던 위빳사나 마음은 관찰하는 '주체ārammaṇika'였지만, 지금 새로 일어난 위빳사나 마음으로 1초 전에 관찰했던 그 위빳사나 마음을 돌아보며 관찰하면 방금 전까지 '주체(관찰자)'였던 마음이 이제는 관찰 당하는 '대상ārammaṇa'이 된다. 관찰하는 마음마저도 실체가 있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조건에 의해 생겼다가 즉시 사라지는 하나의 정신현상(대상)일 뿐임을 보는 것이다. ārammaṇa ghana는 이 맥락에서 주체라고 믿었던 것을 대상으로 만들어 관찰함으로써, 주체라는 견고한 착각을 부수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위빳사나를 위빳사나 한다.'
핵심은 재귀적 위빳사나(reflexive vipassanā), 즉 "관찰하는 마음을 다시 관찰하기"이다. 상황을 단계적으로 보면
정신의 ghana 4가지 중 앞의 세 가지 덩어리짐ghana은 주로 보이는 대상 쪽을 분석한다. 마음이 하나의 연속체가 아님을 보고, 한 마음도 마음+마음부수의 집합일 뿐임을 보고, 각 마음과 마음부수도 각각 특징·기능·나타남·가까운 원인으로 조건 지어진 법일 뿐임을 본다. 그런데 그걸 본 뒤에도 수행자는 미세하게 이렇게 착각할 수 있다. “좋다. 대상은 무아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나’, 관찰자, 순수의식은 남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방금 전 ‘알았다’고 여겨진 그 위빳사나 정신과정 자체를 다시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다만 빠알리어 자체로는 ārammaṇa가 '주체'라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주체의 견고함'이라는 번역은 직역이라기보다, 수행상 남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의역으로 볼 수 있다. 직역은 대상의 견고함, 대상의 덩어리짐이다. 우리 수행자들에게 몸과 마음은 분석해야 할 '대상'이며, 이 '대상'을 분해하지 못하고 덩어리로 봄으로써 '주체'라고 견고한 지각, 전도된 지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Ghana는 찰나적 법들이 하나의 연속체·집합체·기능체·관찰자처럼 뭉쳐 보이는 착각이다. 물질 쪽에서는 몸과 깔라빠의 덩어리짐을 깨고, 정신 쪽에서는 마음의 연속성·통합성·기능성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관찰하는 위빳사나 마음 자체까지 대상으로 삼아 ‘아는 자’라는 미세한 주체 착각을 깨야 한다.
명상 중에 보이는 빛이 무엇이겠습니까? 재생연결식을 제외한, 심장토대(hadaya vatthu)를 의존하여 일어나는, 모든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을 만듭니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 생긴 영양 팔원소 깔라빠입니다. 하나의 마음은 많은 마음에서 생긴 루빠 깔라빠를 만듭니다. 심장토대를 의지하는 마음 중에서 사마타 명상 마음(samatha bhāvanā citta)과 위빳사나 명상 마음(vipassanā bhāvanā citta)은 아주 세고 강력합니다. 이 마음은 많은 루빠 깔라빠를 만듭니다. 우리가 그 루빠 깔라빠를 분석하면 여덟 종류 물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땅, 물, 불, 바람, 색깔, 냄새, 맛, 영양소입니다. 그 물질의 색깔은 밝습니다. 사마타와 위빳사나 명상 마음이 강할수록 색깔이 더 밝습니다. 루빠 깔라빠들이 연속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의 루빠 깔라빠와 다른 루빠 깔라빠는 전구처럼 서로 가까이서 일어나기 때문에 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사마타(고요)와 위빳사나(통찰) 명상 마음에서 생긴 각 루빠 깔라빠에는 불 요소가 있는데 그 또한 많은 루빠 깔라빠를 만듭니다. 그것들은 온도에서 생긴 물질이라 부르는데, 불 요소에 의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불 요소는 온도(utu)입니다. 이것은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발생합니다. 우리가 이 루빠 깔라빠를 분석하면 여덟 가지 똑같은 물질, 즉 땅, 물, 불, 바람, 색깔, 냄새, 맛, 영양소를 봅니다. 색깔은 다시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사마타와 위빳사나 명상 마음이 강해서 그 색깔 역시 밝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색깔 밝기와 다른 색깔 밝기가 마치 전구와 같이 가까이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생긴 물질의 빛과 온도에서 생긴 물질의 빛은 동시에 나타납니다. 마음에서 생긴 색깔 물질은 안에서만 일어나지만, 온도에서 생긴 색깔 물질은 안과 밖 모두에서 일어나고, 사마타와 위빳사나 명상 마음의 힘에 의지하여 온 세계 또는 우주(cakkavāḷa) 또는 그 이상 모든 방향으로 퍼집니다. 붓다의 정신-물질 정의 지혜는 일만 세계까지 빛을 만들어 냅니다. 아누룻다 존자의 천안통 마음은 일천 세계까지 빛을 만들어 냅니다. 다른 제자들의 위빳사나 지혜는 모든 방향으로 1요자나(약 11km), 2요자나 등까지 빛을 만들어 내는데 사마타와 위빳사나 명상 마음의 힘에 달렸습니다.
대체로 많은 수행자들은 일어남과 사라짐 지혜에 도달했을 때, 이 빛이 루빠 깔라빠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마타 명상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은 아직 그것이 루빠 깔라빠 무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루빠 깔라빠는 아주 미세하기 때문입니다. 사마타 수행만 할 때는 루빠 깔라빠를 이해하고 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싶으면 일어남과 사라짐 지혜를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명상 중에 경험하는 빛을 이해하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 파욱 또야 사야도 법문, 담마다야다 빅쿠 옮김, 『냐나닷사나 - 앎과 봄』 pp.222~223, 세나니승원(2021)
세간 위빳사나의 마음도 세고 강력한 깨달음의 빛을 생기게 하지만, 출세간의 위빳사나 마음은 더욱 세고 강력한 빛을 생기게 합니다. 이를테면 붓다의 깨달음의 빛은 일만 세계에 두루 퍼집니다. 어떻게 해서 이 빛이 일어날까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길고 짧은 숨을 대상으로 수행함에 따라 빛(니밋따)이 나타납니다. 빛(니밋따)이 무엇이겠습니까? 빛(니밋따)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물질과 정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물질은 빠알리로 루빠 깔라빠(rūpa kalāpa, 물질 미립자) 또는 간단히 깔라빠라고 불리는 아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루빠(rūpa)는 물질이고 깔라빠(kalāpa)는 무리(집단)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궁극적 물질 아원자 무리입니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정신은 물질에 의존하여 일어납니다.
① 눈과 형색을 의지하여 안식이 일어난다.
② 귀와 소리를 의지하여 이식이 일어난다.
③ 코와 냄새를 의지하여 비식이 일어난다.
④ 혀와 맛을 의지하여 설식이 일어난다.
⑤ 몸과 감촉을 의지하여 신식이 일어난다.
⑥ 심장토대라고 하는 심장 안의 어떤 물질을 의지하여 의식이 일어난다. 그리고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일어나는 거의 모든 마음이 일어날 때, 마음에서 생긴 무수한 깔라빠들이 만들어진다.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이 계발되고 집중이 깊어지면, 집중된 마음은 무수한 세대의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를 만듭니다. 그것은 온몸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집중으로 그런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는 모두 빛나고 밝습니다. 그것이 깔라빠의 색깔입니다. 게다가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의 불 요소(tejo dhātu) 또한 무수한 세대의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를 만듭니다.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들은 몸뿐만 아니라 몸 밖으로도 퍼집니다. 그것들 또한 빛나며 밝습니다.
마음에서 생긴 무수한 깔라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 이 둘의 빛남과 밝음이 지혜의 빛과 들숨날숨 표상(ānāpāna nimitta)을 만듭니다. 아나빠나 니밋따는 들숨날숨 선정의 대상이지만 니밋따는 선정을 얻기 전에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니밋따는 선정까지 집중을 얻은 수행자의 피부와 기능을 깨끗하고 밝게 하는 똑같은 빛입니다.
사대요소 수행을 계발하면 니밋따가 단지 마음에서 생기고 온도에서 생긴, 빛나고 밝은 깔라빠의 무리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빛을 이용해서 우리는 궁극적 진실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법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두운 방에 들어갈 때, 사물을 보려면 빛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대부분 목화처럼 깨끗하며 선명하지 않고 불투명한 흰 니밋따가 나타납니다. 이 니밋따를 욱가하니밋따(uggaha nimitta, 익힌 표상)라고 합니다. 니밋따가 샛별처럼 밝고 찬란하고 분명하다면 빠띠바가니밋따(paṭibhāga nimitta, 닮은표상)입니다. 선명하지 않은 루비나 보석 같다면 욱가하니밋따이고 밝고 반짝인다면 빠띠바가니밋따입니다... 하지만 니밋따의 형태나 색깔이 어떠하든지, 들숨과 날숨의 지각이 어떠하든지 니밋따와 놀이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니밋따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니밋따의 형태나 모습을 의도적으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집중력을 더 이상 계발할 수 없게 되고, 진보는 멈춥니다. 니밋따는 아마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니밋따가 처음 나타나면 마음을 숨에서 니밋따로 바로 옮기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니밋따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좌선 때마다 이렇게 하면 집중한 지점 앞 어딘가 또는 위나 아래에 나타난 빛이 콧구멍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 단지 전과 같이 숨에 집중을 이어가면, 빛은 마침내 숨과 합일이 될 것입니다... 합일이 삼십 분 정도 지속되면 알아차림 대상을 숨에서 빛(nimitta)으로 바꿉니다.
- 담마다야다 빅쿠 편역,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pp.85~90, 세나니승원(2021)
무엇을 높은 마음(adhicitta)이라고 합니까?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입니다... 그래서 높은 마음(adhicitta)인 선정을 닦는 마음에 빛이 밝게 빛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위빳사나를 닦는 높은 마음(adhicitta)에도 빛나는 밝음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에는 빛이 있는가?', '정신(nāma dhamma)에 빛이 있다는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것입니다... (위빳사나의 광휘로움이란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상속의 과정 속에 내던져진 온도에서 생긴 물질이 빛나는 것이다.) - 위빳사나 지혜의 빛이란 무엇인가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이 밝은 빛은 위빳사나의 마음에서 생긴 것이고 또한 물질 자체의 상속과정(santati)에서 일어난 온도(utu)라고 하는 불의 요소(tejo dhātu)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물질 명상주제(rūpa kammaṭṭhana)를 닦고 있는 수행자라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1) 정신(nāma)과 물질(rūpa)을 가진 사람이나 유정들의 심장토대(hadaya vatthu)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깔라빠 가운데 하나를 분석해보면, 8가지 물질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색깔은 형색의 요소(vaṇṇa dhātu)라고도 합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은 모두 마음에서 생긴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모든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에는 색깔이라는 형색(rūparammaṇa)이 있습니다. 이 형색이 밝게 빛나는 물질입니다.
2) 좀 더 식별을 하면 모든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에는... 사대요소가 있습니다. 이 사대에는 온도(utu)라는 불의 요소(tejo dhātu)가 있는데, 이 불의 요소가 새로운 세대의 깔라빠를 만들어 냅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의 힘에 따라 이 불의 요소에서 새로운 세대의 깔라빠가 재생되어 안(ajjhata)에서 밖(bahiddhā)으로 퍼져나가게 합니다. 이 불의 요소가 원인이 되어 만들어진 모든 깔라빠에는 8가지 물질이 있습니다... 이 모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utuja rūpa kalāpa)들에는 색깔(vaṇṇa dhātu)이라는 형색(rūparammaṇa)이 있습니다. 이 형색이 밝게 빛나는 물질입니다.
즉 ①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모든 물질 깔라빠에 있는 색깔의 밝음 ② 마음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에 있는 온도라는 불의 요소에서 생긴 모든 깔라빠의 색깔의 밝음, 이 두 가지를 위빳사나의 광휘(vipassana obhāsa) 혹은 지혜의 빛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은 사마타를 닦는 마음에서 생긴 빛에도 적용이 됩니다... 문헌들에 나오는 표현은 은유적입니다. 즉 지혜를 원인으로 만들어진 결과인 물질이 빛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원인인 지혜 자체가 빛이 있다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마음에서 생겨난 물질과 온도에서 생겨난 물질에 존재하는 색(vaṇṇa dhātu), 형색(rūparammaṇa)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이 강력해질수록 빛은 더욱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래서 정신(nāma dhamma)에도 빛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정신)에 빛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와 온도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 두 가지 모두에 존재하는 색깔과 대상물질인 형색의 밝음이 빛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방에 전깃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그 빛은 방에 있는 모든 다른 대상들에 의해 반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과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들에 있는 색깔, 형색이 밝아지면 나머지 다른 깔라빠들, 예를 들어 업에서 생긴 물질(kammaja rūpa)과 음식에서 생긴 물질(āhāraja rūpa)에 있는 색깔도 역시 반사가 되어 함께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복주서는 'sasantati patitaṃ(상속에서 함께 밝게 빛난다) - [이 빛은 물질의] 상속과정에서 일어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에서 생긴 모든 깔라빠'에 있는 색깔 그 형색의 밝음은 오로지 몸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모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의 색깔은 몸 안에서만 번지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모든 방향으로도 퍼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밖으로 퍼져나가는 빛은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에 있는 색 그 형색의 빛을 말합니다. 이 밝음의 정도는 통찰지의 힘의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즉 지혜의 힘이 크다면 빛은 매우 밝습니다. 지혜가 약하면 빛은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밝음의 정도는 지혜의 힘에 비례합니다.
...이 빛은 오로지 수행자의 통찰지로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들은 맨 눈으로 X-레이를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맨눈으로는 X-레이가 안 보이니까 X-레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X-레이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요... 빛이 밖으로 퍼져 나가며 어떤 장소를 지나면서 부딪칠 때 그 곳을 식별하면 다양한 형태의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일까요?... 빛이 지나가는 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빛은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거나 보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마타를 닦는 마음에 빛이 있다면 이 빛도 역시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통(dibba cakkhu abhiññā)처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천안통처럼 강력하지는 않아도 외부의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부의 대상을 볼 때 눈의 알음알이로 봅니까? 아니면 마노의 알음알이로 봅니까?
청정도론 복주서에 결론이 있습니다... 결론은 눈의 알음알이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토대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의문인식과정의 속행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지 눈 투명요소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눈의 알음알이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 파아옥 또야 사야도 법문, 정명 스님 옮김, 『사마타 위빳사나 지혜의 빛』 pp.44~54, 도서출판 푸른향기(2021)
사대명상은 어떻게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포괄하는가? 그리고 왜 "하나의 반투명 루빠 깔라빠와 하나의 불투명 루빠 깔라빠에서 사대요소를 봤을 때가 사마타 명상의 마지막이고 심청정의 끝이며, 위빳사나의 시작이고 견청정의 시작입니다" 라고 말할까? 사마타의 결과로 우리는 물리적 현상으로서 '지혜의 빛'을 얻게 되고, 수행자는 이 빛을 이용하여 드디어 실제 루빠와 나마라는 궁극적 요소paramattha dhamma를 직접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지로 이루어진 몸, 반투명한 밝고 빛나는 덩어리, 깔라빠 모두가 견고한/덩어리진 개념이다. 깔라빠 안의 궁극적 실재를 보게 될 때 견청정과 넓은 의미의 위빳사나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에 이르기 위한 도구는 힘차고 강력한 집중력에서 비롯된 '지혜의 빛'이다. 하나의 깔라빠 내부의 개별 paramattha-rūpa를 분석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작업은 본질적으로 위빳사나의 분별 작업이 되므로 사마타의 끝이자 위빳사나의 시작으로 표지된다.
청정하고 집중된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의 색깔은 밝다. 사마타와 위빳사나 명상 마음이 강할수록 색깔이 더 밝다. 집중된 마음은 무수한 세대의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를 만들고, 그것은 온몸으로 퍼진다. 그리고 집중으로 그런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는 모두 빛나고 밝다. 그것이 깔라빠의 색깔이다. 더하여 명상 마음에서 생긴 각 루빠 깔라빠의 불의 요소tejo dhātu는 무수한 세대의 온도에서 생긴 물질utuja rūpa을 몸 안팎으로 퍼뜨린다. 이 온도에서 생긴 물질 안의 색깔vaṇṇa 물질 역시 마음이 청정할수록 극도로 밝아지고 눈부시게 빛난다. 우리는 마음의 문으로 이 실제 물리적 현상(색깔 물질)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수행자에게 '지혜의 빛'이라 불리는 이 빛은 '지혜의 손전등' 또는 '위빳사나 현미경 렌즈'와 같다. 어두운 방에서는 먼지를 볼 수 없지만, 강력한 손전등을 켜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들이 보인다. 수행자는 마음이 만들어낸 이 강력한 빛(니밋따)을 도구로 삼아서, 내 몸을 비추어 깔라빠를 찾아내고 해체하는 데 사용한다. 마음이 오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맑고 고요해질수록(사마타가 깊어질수록) 빛은 다이아몬드나 아침 태양처럼 맑고 눈부시게 변한다. 즉, 이 빛은 현재 내 집중samādhi과 지혜paññā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마음에서 생긴 무수한 깔라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 이 둘의 빛남과 밝음이 지혜의 빛과 들숨날숨 표상ānāpāna nimitta을 만든다. 물론 이 빛과 니밋따는 선정을 얻기 전에도 나타난다.
사대 자체가 paramattha-dhamma이지만, 처음 사대를 식별할 때는 "이 몸의 단단함, 흐름, 따뜻함, 움직임"이라는 식으로 개념의 옷을 입은 채로 시작한다. 수행자는 온몸에서 사대요소의 특성을 반복해서 식별하며 처음에는 집중을 기르는 수행을 한다.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계속 같은 대상에 머물면서 집중이 깊어진다. 이 단계가 사마타 측면이고, 집중이 깊어져 근접삼매에 이르며, 빛이 일어나고, 몸이 반투명 덩어리로 보이고, 결국 깔라빠로 쪼개진다. 깔라빠를 더 분석하여 개별 paramattha-rūpa가 식별되는 순간, 같은 명상 안에서 대상이 paññatti에서 paramattha로 전환되며 자연스럽게 위빳사나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집중이 충분히 강해지면 그 집중의 힘으로 몸이라는 덩어리를 더 미세하게 분석한다. 반투명 덩어리, 공간요소, 깔라빠, 깔라빠 안의 사대와 파생색을 식별한다. 이때부터는 “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궁극적 물질의 구성요소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위빳사나의 출발점이다.
이것이 사대명상이 paramattha-ārammaṇa-kammaṭṭhāna(궁극적 법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주제)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또한 사대명상이 본삼매에 이르지 못한다는 "한계"가 바로 위빳사나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디딤돌이 되는 셈이다. 마음이 단일 sabhāva로 흡수되어 머무는 대신, 처음부터 서로 다른 네 sabhāva를 식별하는 작업 자체가 paramattha의 다양성을 분별하는 위빳사나의 예비 동작이기 때문이다. 즉, 사대요소 명상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모두 포함한다”는 말은, 사대요소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처음에는 집중의 대상으로 삼고, 나중에는 궁극적 물질을 분석하는 지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번외로 이 지혜의 빛은 때로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때로는 탐착의 대상으로, 때로는 수행의 목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셋 다 성립될 수 없다.
이렇듯 하나의 똑같은 물리적 현상(cittaja rūpa와 utuja rūpa의 vaṇṇa)을 두고, 사마타에서는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마음을 모으는 니밋따(대상)로 쓰고, 위빳사나에서는 그것을 비춰서 대상을 쪼개는 데 쓰는 지혜의 빛(도구)으로 쓴다. 빛을 집중의 단일 대상으로 삼으면 사마타적 사용이고, 그 빛을 통해 물질·정신의 궁극법을 식별하면 위빳사나적 사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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