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두 옛날에 이런글을 올렸는데...
좀 검색좀 해보시지는...
마에다 게이지는 신장 시리즈에서 우에스기 겐신과 더불어 무력 짱입니다...여포같은넘 (생긴것도 열풍전에선 은근히 여포 닮았다... 다만 여포보단 의리있다...)
이하는 '윤'님께서 남겨주신 글임다... 옛날에...
------------------------ 윤님의 옛 답변 --------------------------
마에다 게이지 (前田慶次) (1542 ~ 1612 > 태어난 해와 죽은 해가 미상이라고도 하죠.)
당시에 보기드문, 190m가 넘는 큰 키를 자랑합니다.
이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주간점프에 연재된 만화의 덕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합니다.
기행으로 유명한 자유남(?)이며..
욕심만 있었다면, 큰 영지를 가진 대명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도, 연가, 다탕, 무용, 고전 등에 정통했던.. 당시, 한 교양했던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물론, 무예도 정통한 만큼.. 이 사람도 꽤 영리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걸물이죠...
일반적으로, 게이지로우(慶次郎),또는 소베이(宗兵衛)라고 불리웠다고 하며..
시호는 도시오키(利大), 요스하루(利治)라고 했습니다.
출생설이 분분한데..
1. 다키가와(瀧川)씨의 아이라는 설..
2. 다키가와 이치마스(瀧川一益)의 조카라는 설..
3. 이치마스의 아들이라는 설..
이 있는 만큼이나.. 그의 생애 대부분이 기행과 수수께끼로 얼룩져(?)있기로 유명합니다.
아무튼..
게이지는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의 형인, 도시히사(利久)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는데..
도시히사는 마에다의 당주였으므로, 순조롭게 가독이 이어진다면.. 게이지가 가독승계 1순위..
하지만, 병약하고 선이 가는 도시히사를.. 노부나가는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노부나가로썬,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 기반이 필요한 탓에..
자신이 부리기에 편한(?) 도시이에가, 마에다가의 가독을 승계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신장 시리즈를 플레이하면, 1569년 7월쯤 게이지의 출분 이벤트가 나오죠..
원래는, 도시이에가 당주가 된 후.. 노부나가의 입김 때문에.. 도시히사와 함께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 후, 10여 년간의 방랑이 이어지고..
노부나가가 죽은 후인, 덴쇼 11년(1583)에..
잠깐, 마에다가로 돌아와.. 사람좋은 도시이에의 융숭한 대우를 받으며..
6000석의 녹봉을 받고 엣츄의 아오시로성의 성주가 되기도 하지만.. (5000석이라고도 하더군요.)
덴쇼 19년(1591), 도시히사가 세상을 떠나자.. 녹봉과 가족, 신분 등을 모두 버리는데..
이유는,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도시이에와는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시이에를 골탕먹인 유명한 목욕탕 사건을 뒤로 한 채.. 그대로 출분하여 교토로 상경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양한 교양을 연마했다고 전해지며..
교토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교양인으로.. 그리고, 기행아로..--
이 때, 우에스기 가게카츠(上杉景勝)의 명참모인 나오에 가네쓰구(直江兼續)와 알게 되었고..
그와의 친교를 깊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게이지가 가게카츠에게 사관한 이유론, 가네쓰구와의 우정과 가게카츠의 인품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군요.
가게카츠를 알현했을 때.. 삭발한 게이지는 기괴한 옷차림을 하고, 가게카츠에게 줄 지참물은.. 무 3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칭한 이름은, 穀藏院?之齊라고 합니다. (한자 하나가 안 먹히네요.)
가게카츠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던지.. 게이지를 5000석으로 고용했습니다.
이유론, 가게카츠도 게이지의 인품에 끌렸다는군요.
우에스기가에 사관했었도.. 그의 기행은 여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가네쓰구와의 우정은 계속되고..
이 우정은, 세키가하라의 합전에서 게이지가 우에스기 가게카츠군에 속하는 행운(?)을..
당시에 게이지는, 도쿠가와편인 모가미 요시미츠(最上義光)군과 싸우죠.
모가미, 다테가의 연합군과의 전투는.. 초반엔 우에스기군의 세가 유리했지만..
이시다군의 패배 소식이 전장에 알려지면서 형세는 역전..
전군을 통솔하던 나오에 가네쓰구는.. 어쩔 수 없이 수하의 병사들을 철퇴시켜야만 하는 결정을 내리나..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양진영은 28회의 교전을 치루는 난전을 펼쳤고..
가네쓰구는 자결을 각오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설득하는 게이지..
게이지는 철포대를 거느리고, 모가미군을 막고있는 미즈하라 지카노리(水原親憲)군 쪽으로 출진..
아군을 맹렬히 추격하는 모가미군에게 과감하게 돌진했다고 합니다.
이 때, 그를 따라 돌진한 장수론..
미즈노 후지베에(水野藤兵衛)
니라츠카 류우몬(菲塚理右衛門)
우사미 야고에몬(宇佐美?五右衛門)
후지타 모리에몬(藤田森右衛門) 이 4명이라 합니다.
그들의 돌진에 맞춰, 도카미(富上)산 중턱에 배치된 미즈하라군의 철포대 200명이 일제히 원호사격을 개시..
그들의 활약으로, 퇴각전은 무사히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때, 적총대장인 요시미츠가 머리에 총탄을 맞았지만, 목숨은 건졌다고 합니다.
이 퇴각전에 대해선, 모가미가의 문서에도 적혀있다는군요.
게이지의 활약으로.. 가네쓰구는 위기에서 벗어나, 패군을 모아 조용하게 철퇴하였다란 식으로요..
세키가하라 합전 이후, 우에스기가는 120만 석에서 30만 석으로 감봉되고..
그에 따라, 여러 가신들의 녹봉도 많이 삭제됩니다.
게이지는 무공에 어울리지 않게, 2000석이란 녹봉을 받는데 그쳤고.. (500석이란 설도 있지요.)
이 희소식(?)을 들은.. 여러 곳의 대명들이 사콘의 예처럼 추파를 던졌다고 합니다.
그들 중엔, 게이지에게 7∼8000석의 녹봉을 제시한 자들도 있다는군요..
하지만, 게이지는..
이시다군의 패배 후, 인질까지 주면서 항복한 대명들과 전장에서 배신했던 대명들을 쪽주는 말을 하는데..
그런 이들과 함께할 마음은 없다라고 하죠.. 계속해서..
<주군인 가게카츠는, 이시다군이 패배했지만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이듬해 4월까지 전투를 계속했다. 주군으로써 이 이상의 인물은 없다고 여긴다.>
라며 모든 권유를 끊은 에피소드는 유명합니다.
아마도, 가게카쓰는.. 그 말을 전해 듣고.. 남몰래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지..
게이지는 가게카츠를 따라, 우에스기가의 새로운 본거인 요네자와로 이주합니다.
만년의 게이지는 요네자와 교외의 도우모리(堂森)에서 은둔생활을 했는데..
문학에 열중하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기행은 이때도 계속되었다고 하구요..
자신은, 마에다가로 돌아가지 않지만..
게이지의 적자인 야스다유 쇼코는(安太夫正虎)는, 후에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를 섬기게 됩니다.
음..
우에스기가에 사관했을 때의 이름은 모르셔도 무방할 듯 합니다..
모가미가, 다테가 연합군과 전투에서.. 퇴각전 때..
돌진하면서, <나는, 마에다 케이지다!> 라고 했다니깐요..
덤이라면..
1601년 10월 24일에서 11월 19일의 사이에,
교토에서 가게카스의 본거인 이즈하의 요네자와를 향하는 도중에 쓴
[마에다 게이지 여행길 일기]는, 당시의 풍속 등을 알려주는 유용한 사료로써 그 몫을 다하고 있답니다.
열풍전 할 때.. 기억이 나는군요..
다케다 신겐군과 교전을 벌일 때.. 신겐에게 돌격시켰더니.. 신겐 전사..^^
첫댓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