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내비게이션
시편119:105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를 가다가 사막에서 동서남북을 잃어버렸습니다. 동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한시간을 넘게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시절이 왔습니다.
옛날에는 밤길에 등불을 켜고 가거나,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인생의 등불이며 길을 안내해주는 빛이라고 묘사합니다. 요1:4에서 성경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라고 설명해줍니다. 성경은 인생의 가이드북이요, 내비게이션입니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인이 내비게이션 없이는 못살아도, 성경 없이는 잘산다면 어찌된 일일까요?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구글맵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품고 사는 성도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젊은 유학생 가정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유학왔다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정말 구약이 뭔지 신약이 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불교 신자도 있고, 부적을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려서 교회를 나오다, 학업과 직장, 결혼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가 유학 오면서 나오시게 된 분들도 계십니다. 어려서 다녔기에 찬송가는 부를 정도 되지만 신앙이 있는 분들은 아니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오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저 주일에만 교회를 다니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과 목회를 하면, 일차 목표가 일단은 교회를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이 축구를 좋아해서, 함께 축구하다가 갈비뼈도 부러졌었고, 골키퍼보다 상대팀 청년이 찬 볼을 막다가 손목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갔던 일도 있습니다. 9월이면 사과 농장, 10월이며 연어투어, 1월에는 스키장 등등.
그런데 목회자가 진짜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신앙을 안겨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도 안믿는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신 말씀이 히4:12 상반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내가 안보이는 하나님을 강제로 믿게 할 수는 없으니, 그들이 마음에 몇 구절이라도 성경 구절을 남기자. 말씀이 마음에 있으면 살아있는 말씀이 역사하시지 않겠는가? 말씀을 기억하면, 삶의 어느 순간 그 마음에 강하게 역사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상황적으로도 유학생 엄마들이 평일에 일을 안하니, 성경공부를 하도록 권유했고, 당시 저의 좌우에서 강력한 협력자였던 강집사, 최집사가 설득을 하고 꼬셔서 성경공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도 미친 듯이 구약을 공부를 했고, 감사하게도 10여분이 모여서 정말 미친 듯이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한번 모이면 거의 2시간 이상을 성경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일 때마다 나눔의 시간을 갖는데, 말씀을 알고 나면, 적용할 일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었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나 평안해졌고,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했는데,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 하심을 체험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모를 때는 역사도 없더니, 알면 알수록 말씀이 삶에 강하게 역사하는 것을 느끼고, 체험하게 되면서,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응답이라는 기쁨을 체험하더니, 영혼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더군요.
그분들 중에 박현숙 성도는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갑자기 전화 와서 목사님께 세례받고 싶어요 하더니, 정말 일본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있을 때는 뺀질뺀질하더니, 그래도 주일에 와서 듣던 말씀이, 가끔이라도 와서 듣던 성경공부가 어느 순간 그분의 영혼을 확 잡았더라구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1서 5장 13절)
말씀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사모하시고, 마음에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품기만 해도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삶의 어느 순간, 강하게 역사하실 것이며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알게 할 것입니다.
한국초대교회 이야기 하나를 나누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서는 1863년 8천-1만 명의 천주교인이 외국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정부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이 중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영국에서 파송받은 토마스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선교 중에 부인을 잃고 낙망하던 그가 조선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천주교인들을 치푸(선교본부가 있던 산동성의 도시)에서 만나게 되면서 다시 선교에 대한 열정이 살아나 조선선교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1865년 9월 13일에 조선에 도착했던 그는 2개월 반 동안 조선 해안가에 머물면서, 한문 성경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하는 등 적극적인 선교활동하다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1866년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으로 탑승하게 되어 조선에 다시 오게 됩니다. 이때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을 최대한 많이 준비한 이후, 조선을 향했지만 그가 탄 배의 선원들이 조선 병사 3명을 죽게 했습니다. 조선인들은 배를 공격, 불에 태웠으며,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강으로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조선인에 의해 맞아 죽고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토마스도 자신의 성경을 가지고 물에 뛰어들어 뭍으로 향했고, 그는 그가 아는 조선말로 예수, 예수를 부르짖다가, 미쳐 뭍에 도달하기 전, 몽둥이에 맞고 쓰러졌고, 칼에 맞아 시체는 토막 났으며 강변에서 불태워졌습니다. 이것이 한국 근대사에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며,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 최초 순교당한 외국인 선교사였습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를 때려죽인 조선군인은 죽은 외국인이 무기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책 뭉치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좋은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가 있었고, 또 그가 가진 책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한 권 가져갔게 됩니다.
그때 토마스를 죽인 군인이 박춘권이라는 사람인데 후에 말했습니다.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들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고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또한 당시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목격한 최치량이라는 13세 된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흘린 성경 3권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서양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온 것이 무서워 다시 그 책을 평양성 대동문을 지키던 박영식에게 주게 됩니다. 박영식은 종이가 귀한 시절에 성경을 뜯어 벽지로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눈만 뜨면 방 사방에 성경구절이 있으니, 자동적으로 날마다 성경을 읽다가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후 13살이었던 최치량이 성인이 되어, 박영식의 집을 구입한 후 만경대 석호정이라는 주막을 시작합니다. 그도 벽지에 있는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후 27년째에 1893년 마펫 선교사가 평양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최치량의 주막에 머물게 되었는데, 벽에 발라져 있는 성경을 보고 나서 최치량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최치량도 예수님을 믿고 1894년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 일로 과거 박영식의 집이었고 최치량의 주막이 평양 최초의 예배당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됩니다. 널다리골 예배당이 장대현교회의 전신이고, 그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장로는 조선 최초의 장로교 목사 7인 중 한 명으로 바로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중심이 되게 됩니다.
이때에 널다리골 예배당 근처에 살고 있던 노인이 어느날 마펫 선교사를 찾아와 울면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바로 30년 전에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이었습니다. 지난 30년간 박춘권이 서양인을 죽이고 죄의식 가운데 살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널다리골 예배당에서 주일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견딜 수가 없었다며 회개하고 나중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성경책 1권, 토마스 선교사의 성경책을 그의 조카 이영태에게 주게 되는데 이영태 역시 그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믿게 되고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레이놀즈 선교사를 도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 지대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을 들고와서, 전하기도 전에 순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흘린 성경은 살아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한국교회는 그의 순교로 시작하였고, 그가 가져온 성경이 한국 교회를 시작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역사를 보면서, 저도 오늘 기대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저는 그저 전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속에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지... 이같은 역사의 듣는 자가 아니라 주인공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