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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과의 짙은 이야기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은 멋진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의 몇 년째 쉼 없는 스케줄 때문에 늦은 저녁에 인터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워낙 전세계적으로 칭송 받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대화할 때 혹시나 까탈스럽지 않을까, 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그녀는 친언니 같은 밝은 미소와 깊은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나윤선은 활기찬 얼굴과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칼림바나 뮤직박스 같은 손악기들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연주해 주기도 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편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어느 한여름 밤의 이야기 보따리를 벅스 가족 여러분들께 천천히 풀어내본다.
A. 안녕하세요! 벅스 가족 여러분. 1년 반 만에 인사드리네요.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저께 한국에 왔어요. 팬 분들을 만나뵙게 되서 너무나 기뻐요.
A. 저… 사실 디지털 싱글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웃음) <ACT>라는 독일 레이블과 함께 일하면서 아시아, 한국 쪽 팬 분들을 위해서 조금 일찍 선보이게 된 곡이예요. 평소 공연에서 하던 곡이기도 해요. 그런데 디지털 싱글이라는 거, 음원으로 나오는 거지요? 정말 신기해요. 아, 특별한 의미는 없고, 유명한 곡이니까 팬 분들께서 더 즐거워하실 것 같았어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40th Anniversary Edition]의 OST로 많이 알려진 곡이잖아요. 또 칼림바를 연주하면서 혼자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제 온전한 느낌을 팬 분들께 많이 전달해드리고 싶었어요. EMI에서도 이걸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다들 많이 아실 만한 곡이라서요. 또 제가 제 새로운 느낌으로 조금 바꿔보았고요.
A. 일단 이 노래를 하면서 연주하게 된 칼림바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드릴게요. 저는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 이하 ‘울프’) 와 같이 연주하면서 조그만 현악기라든가, 손악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파리에 작은 퍼커션 파는 가게가 있어요. 거기는 제가 자주 볼 수 없는 악기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 가게를 좋아하게 되었고, 칼림바라는 악기는 거기서 구했어요. 원래는 아프리카 악기지만 깔끔하게 개량되어 있는데, 조그맣고 갖고 다니기도 쉬워요. (나윤선씨는 필자에게 악기를 직접 연주해주고 만져보게 해주었는데, 실제로 칼림바의 소리는 청아하면서도 몽롱하고, 음울한 느낌의 아기자기한 멜로디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칼림바는 제가 가지고 다니면서 노래도 부르고, 연주도 하면서 노는 장난감 같은 악기예요.
저의 'My Favorite Things'는 어머니에게서 영향 받은 노래라고도 할 수 있어요. 어머니께서 뮤지컬 1세대이시거든요. 어머니께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번안한 뮤지컬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원장 수녀님 역할을 맡으셨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Raindrops on roses and whiskers on kittens~’ 보다 ‘장미 위 빗방울 고양이 수염-‘ 하는 청초한 이미지가 더 선명해요. 그런데 이 곡은 John Coltrane(존 콜트레인)이 부르면서 많이 유명해졌거든요. 제가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장난스럽게 이 곡을 들려주었는데, 친구들이 John Coltrane(존 콜트레인)하고는 다른 느낌이 난다고 좋아했어요. 공연 때도 해보라고 하고요. 이 곡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기 때문에 말레이지아나 한국이나 에스토니아, 그 어느 곳에서 노래해도 관객분들이 많이 좋아하세요. 이번 음반 작업할 때도 본격적으로 넣어보게 되었어요.
A. 제가 6집 앨범 전까지는 주로 프랑스, 덴마크 뮤지션들하고 많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저번 6집 앨범인 [Voyage]부터 북유럽 뮤지션들과 하게 되었거든요.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지만, 막상 가면 남유럽, 북유럽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고, 다른 지역의 뮤지션들과 음악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이번 음반은 그 분들과 같이 연주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이 분들과 다시 한 번 녹음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죠.
울프와는 거의 100번 넘게 공연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끈끈해졌어요. 울프와 같이 음반을 내고 싶었고, 음악적으로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죠. 저번 앨범보다 성숙해진… 당연히 2년 전보다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에 성숙했겠지만(웃음), 좀 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앨범에는 여백을 좀 더 넣었어요. 제가 훨씬 더 드러나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가 더 채워 넣을 수 있게,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A. 이번에 제가 칼림바를 연주하다가 노래하는 곡도 있고, 포크 송의 분위기를 살려본 노래도 있어요. 또 'Breakfast In Baghdad'라는, 아라빅 플라멩코의 분위기를 내는 곡도 넣어봤고요. 이번 앨범에도 자작곡이 있고, 여러분 다 아시는 Metallica(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색다르게 바꿔 불러 보기도 했어요. 이렇게 이번 앨범 [Same Girl]에는 색깔이 다양한 곡들을 담아내어 보았어요. 그렇지만 Metallica(메탈리카)를 부르나, 샹송을 부르나, 나는 똑같은 나윤선이다, 라는 메시지를 내고 싶었어요. 'Same Girl'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거기서 따온 타이틀이기도 하구요.
A. 음.. 그거 사실 가발이구요.(웃음) 이번 앨범 자켓 촬영할 때 사진작가 분이 가발을 씌우시고 막 자르시더라구요. 머리까지 짧아지니까 여러 중의적인 뜻이 섞여있네요. 여러 나윤선의 이미지가 있지만 'Same Girl'이라는 의미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웃음).
A. 글쎄요. 이번에는 제가 만든 곡보다는 제가 평소에 많이 좋아하던 곡들을 커버해서 많이 넣었어요. 많이 알려진 곡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있어요. 이번 앨범같은 경우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기 보다는 알려진 곡을 다르게 해석해보는 경험과도 같아요. 원곡의 색깔을 다르게, 혹은 비트 있게, 파워있게, 혹은 좀 더 부드럽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굳이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런데 'Enter Sandman'같은 경우에는 많이 알려진 곡이기도 하네요.
A. 아니예요. 이 곡은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하려고 했던 게 아니고요. 울프의 권유로 하게 되었어요. 어떤 나라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공연 후에 울프가 쉬는 시간에 기타로 ‘Enter Sandman’을 치시는 거예요. 어머나, 웬 Metallica(메탈리카)곡이냐고 여쭤봤죠. 그런데 울프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말씀해 주셨어요. 자기가 어느 유명한 스웨덴 영화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이런 장면이었죠. 주인공 젊은이들이 기타 가게에 들어서면, 어떤 중견 기타리스트 아저씨가 ‘Enter Sandman’을 ‘미친 듯이’ 연주하는 씬 이라는 거예요.(그 ‘미친 듯이’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네! 그 역이 울프였죠. 저에게 그러시는 거예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때 Musician 아니고 Actor 라고 싸인했다고 자랑하세요. 그래도 표정연기가 힘들어서 7시간 촬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 어렸을 때 한국에서는 워낙 메탈이 유행했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 곡을 알고 있었고, 울프 앞에서 불러보았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녹음해 보자고 하셨어요. ‘아유 아니예요. 저는 재미삼아 한 건데, Metallica(메탈리카)팬들에게 혼쭐날 일이예요.’ 라고 반대했는데 결국 녹음을 했구요. 생각보다 잘 나와서 넣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노래를 주변 친구들에게 들려 주었더니, 프랑스 뮤지션 친구들이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었니? 이러는 거예요. John Coltrane(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도 꽤 유명한데.. 제 곡인 줄 알고요. 정말 이 세계에는 많은 뮤지션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이기도 했어요. 요즘의 전 세계적인 추세이긴 한데 사람들이 고전을 많이 듣지는 않아요. 프랑스 친구들은 많이 찾아 듣는 편인데도, Beatles(비틀즈)나 Doors(도어즈), Metallica(메탈리카), Jimi Hendrix(지미 헨드릭스)같은 예전 뮤지션들을 최근에는 많이 듣지 않더라고요. Metallica(메탈리카)를 모르는 친구들의 그런 반응도 의외였어요.
A. 벅스 가족 분들을 위해서 곡을 하나하나 간단히 설명을 다 드릴게요. 첫 번째 트랙 'My Favorite Things'은 설명을 아까 잠깐 드렸고요, 두 번째 트랙 'My Name Is Carnival'. Jackson C. Frank 의 곡이예요. 이 분은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비극적으로 살다 돌아가셨어요. 당신의 평생에 앨범 딱 하나만 내셨는데, Paul Simon(폴 사이먼)에 의해 연주가 되기도 하구요. 고등학교 때 한국에서 라디오에서 ‘Milk and Honey’ 라는 곡을 자주 들었었어요. 그런데 프랑스 친구가 집에서 그 노랠 틀어주는 거예요, 그때 Jackson C. Frank 의 곡임을 알게 되었죠. 그 후 언젠가 벼룩시장에 우연히 갔는데 이 사람 앨범이 있었어요. 샀죠. 가사와 음악들이 너무나 멋있었어요. 저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가사가 굉장해요. 예를 들면 우리가 이렇게 만났잖아요. ‘우리의 10년 후 재미있었지’가 예를 들면 이 토마토처럼, 토마토를 매개로 우리가 만났던 날이 떠오르잖아요. 혹은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어떤 슬픈 날이 생각이 난다던가, 인생의 시각적인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이 곡의 모노톤적인 느낌보다는, 저의 크레센도(crescendo)의 느낌으로 부르고 싶었죠.
A. 아뇨, 그게 저는 좋아요. 한국 노래를 들을 때 제가 좋아요. 제가 좋으면, 보시는 분들도 좋아하세요. 예를 들어 'My Favorite Things'는 어딜 가나 관객 분들이 좋아하시죠. 한국 노래도 그래요. 울프가 처음에 저에게 '강원도 아리랑'을 하자고 그러셨어요. ‘강원도 아리랑을 어떻게 아세요?’ 물었더니 한국에서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음반 배포를 하는 곳이 있는데요, 울프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트리오로 편곡을 하신 거예요. 그 분은 다섯 박자로 콘트라베이스와 기타, 드럼 이렇게 만드셨는데, 이 곡을 노래로 하는 것을 너무 들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울프가 제 노래를 듣고 너무 좋다고 하셨고, 가사가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슬프다. 꼭 넣어보자고 해서 넣게 되었어요.
'Same Girl'은 저의 뮤직박스로 가장 처음으로 만든 곡 이예요. 구멍을 뚫어서 소리를 내는 오르골 비슷한 악기예요. 피아노와 기타를 칠 때와는 다르게 혼자서 이렇게 간단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면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더라고요. 호흡이라든가, 훨씬 더 편안하면서 훨씬 더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서요.
'Moondog'은요, ‘Moondog’이라는 작곡가가 있어요. Louis Thomas Hardin이라는 작곡가의 닉네임이거든요. 현대음악, 재즈 작곡가인데 앞이 안 보이시는 분이고 뉴욕에서 바이킹 복장을 하고 서 있으신 분이예요. 길거리에서 자고 먹고 하시는 분이거든요. 어느 순간 길거리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셨대요. 악기도 만들고 연주도 하는 대단한 작곡가였는데, 문득 이 분의 삶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이 분의 곡 중에 하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분을 위해서 곡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Terry Cox'의 퍼커션 연주곡으로 이미 나와있는 곡이었는데요, 저는 약간 세 박자로 서커스 느낌이 나게 불러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번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Pancake'. 이렇게 음식이 있잖아요. 제가 이 초코하임을 먹을 것인가 토마토를 먹을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요. 그러다가 오븐이 있다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곡이고요. 'La Chanson D'helene'는 영화 사운드 트랙인데요, 제가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해요. 로미 슈나이더와 미셸 피콜리가 나오는 영화죠. 제가 샹송을 많이 좋아하기도 해요.
A. 지금 아코디언 소리를 듣는다고 상상해보세요. 발랄하기도 하지만 주욱 늘어지는 파이프 소리는, 구슬프잖아요.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유럽 사람들도 모두 공유하는 슬픔의 소리가 있는 것 같아요. Beatles(비틀즈) 노래는 아시아인도 좋아하는 것처럼요. 아리랑은요, 외국사람들이 들으면 슬프다고 해요. 우리가 가사를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되는 깊은 슬픔을 공통적으로 느끼는 거예요. 포르투갈은 이런 슬픔의 코드를 ‘사우다즈’라고 해요.
공연을 다니다보면 아리랑은 간단하니까 사람들에게 많이 따라 부르게 하거든요. 다같이 하나되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스, 싱가폴, 말레이시아 모두 아리랑을 따라 부르고 같은 감정을 이야기해요. 하지만 그게 아리랑이라는 한국음악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크게 보면 아리랑은 월드뮤직 안에 속해 있잖아요. 한국의 정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깊은 슬픔이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아리랑은 굉장히 단순해요. 심플해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음악이 간단하면, 내가 마음대로 음악을 바꿀 수 있어요. 아리랑은 느리게 부를 수도 있고, 박자를 바꿔서 흥겹게 부를 수도 있어요. 이 모든 건 단순하기 때문이거든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도 이런 민요들이 있어요. 제가 이런 음악을 한국에 알렸으면 해서 그들에게 소개받은 곡들의 정서도 비슷해요. 공통점이 있다면 단순하고, 부르기 쉬우며, 아름답고, 머리에 오래 남는 멜로디라는 거죠.
A.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많아요. ‘쾌지나 칭칭나네’ 처럼 기쁜 노래도 있지만, 분명 아리랑 같이 깊은 슬픔을 노래하는 곡들도 분명 많아요. 다른 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노래들이 많다는 거죠. 어느 유럽 공연이었는데, 어느 캐나다 관객분이 아리랑을 들으시더니 고향을 생각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 희로애락의 느낌이 공유되는 것이죠. 프랑스 사람들이 아코디언을 ‘소름상자’라고 해요. 전세계적으로 똑같이 아코디언을 ‘소름상자’라고 하면 ‘아-, 정말 그런 느낌 같아‘ 라고 느끼죠. 아리랑도 들으면 누구나 ‘아-‘라고 느끼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음악이란 참 재미있죠.
A. 저는 사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한 게 아니에요. 부모님이 음악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저에게 취미일 뿐이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당신들이 직업으로 선택하셨음에도 말이죠. 저는 회사원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어요. 하릴없이 놀면서 심심풀이로 친구들과 노래부르고 지냈죠. 그러다 우연히 친구가 ‘지하철 1호선’이라는 뮤지컬이 있는데 여기 오디션을 넣어보라고 했어요. 저는 너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서 무시했는데, 그 친구는 결국 제 데모 테이프를 넣은 거죠. 주연을 맡았지만, 사실 그 뮤지컬에서 주연이 제일 대사가 없어요(웃음). 저는 노래만 부르면 된다고 해서 갔고, 정말 가만히 무대에 나가서 노래만 했어요. 아무것도 몰랐죠. 사람들이 저 보고 연변에서 데리고 왔냐고 했대요. 너무너무 촌스럽고 시선 처리도 안되었던 왕초보 배우였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번데기’라는 작품이 들어 왔는데 어머니와 같이 작품을 하는 거라 꼭 하고 싶었죠. 그 작품에서는 제가 지체부자유자로 나오기 때문에 춤도 안춰도 되고.(웃음) 노래만 하면 되었거든요. 그렇게 그 작품을 끝냈고, 환경음악극 ‘오션월드’ 에서는 ‘어미 고래’역을 맡았어요. 어미 고래 큰 가면을 써서 움직일 수도 없어요. 가만히 노래만 하면 되었었죠.(웃음) 그러면서 아, 내가 잘할 수 있는게 노래구나, 싶었어요. 여기서 조금 더 잘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유학을 간 게 아니었고, 또 나는 정말 훌륭한 재즈 보컬이 될거야 라는 목표도 전혀 없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었죠. 저는 재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클래식하려면 너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으니까 재즈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나 듣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저는 그냥 샹송을 너무나도 좋아하던 소녀였어요. 운명일 수도 있죠. 정말 하다 보니까 좋아지게 된 케이스에요. 1~2년 하다 보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고, 브라질이나 인도아이들의 타불라 연주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지고, 그런 일련의 경험들에서 조금씩 확신을 가졌다고 할까요. 오히려 꿈이 그때부터 생기더라고요. 노래를 정말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요.
A. 그거는 몸이 말해요. 목소리도 몸이라고 한다면, 이건 굉장히 피지컬한 부분임이 분명해요. 본인이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노래가 너무 좋은데,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노래는 분명 할 수 있지만, 춤을 춘다거나 연기를 할 수는 없다는 건 분명히 제가 알 수 있었어요.
A. 영감이라,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하기 때문이거든요. 저번 앨범 [Voyage]의 의미처럼, 전세계를 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그 지역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저에게 영감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같이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그 분들의 음악을 통해서도 그렇고요.
A. 재즈는 일단 어렵다는 생각이 있고, 그건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재즈를 어렵다고 생각해요. 재즈는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골라먹을 수 있는 소스가 많은 음악이에요. 누가 재즈라고 하거든, 재즈가 들리거든 레코드 샵에 가셔서, 아니면 포털 사이트에 물어보셔서, 재즈 음반 중에 듣기 쉬운 것이 뭐가 있냐고 해서 들어보세요. Norah Jones(노라 존스), Diana Krall(다이애나 크롤) 많이 듣잖아요. 들으면서 ‘아, 이런게 재즈라고 하는구나.’ 라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재즈는 한 곡을 몇 십, 몇 백개의 버전으로 커버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My Favorite Things'를 나윤선이 불렀고, John Coltrane(존 콜트레인)이 했다면, 그럼 다른 사람의 곡을 들어볼까?’ 이렇게 시작하는 거죠. 한 곡을 가지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맛있게 연주했느냐를 찾아보고 경험하기 시작하면 흥미가 생겨요. 커피를 마실 때, 어쩔 때는 우유를 넣어보고, 진하게 넣어보고, 크림도 넣어보면서 마시듯이, 재즈란 다양한 맛이 나는 음악이 구나를 알게 되면 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A. 하하하. 제 음악을 들어 주시는 것도 물론 좋고 감사한 일이지만, 각자 듣는 사람마다 시작하는 점이 다르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재즈를 처음 듣는다면,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오는 인기있는 재즈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거기에서 흥미를 느낀다면 그 곳이 아마 각자의 재즈 시작점이 되겠지요. 물론 제 음악으로 시작하신다면 정말 기쁘고 고마운 일일 거예요.
나윤선과 이러저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공연과 음악 스케줄은 꽤나 빡빡하고 힘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윤선은 8월과 9월에 울프 바케니우스와 듀오로 광주와 대구에서 국내 공연을 마친 후 10월, 11월에 유럽 투어를 떠난다. 올해 말에는 다시 국내에서 각종 공연으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그런데 몇 년째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얻는 것이 피로와 여독인 줄 알았더니, 그녀에게는 온갖 음악적인 영감과 에너지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매 앨범이 전작 이상의 성과를 보이고 있고, 이번 앨범 역시 나윤선의 최고 명반이라는 찬사를 얻고 있다. 오히려 그녀의 음악 스펙트럼은 다양한 빛깔을 띠고, 또한 깊어지고 있어서 같은 나윤선이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나윤선은 우리를 안심시키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까지고 팬들 옆에서 노래하는 나윤선, 'Same Girl'이라고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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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윤선님~ 한글도 얼굴만큼 이쁘게 쓰십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