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세 종교와 <수연산방><심우장> 그리고 문인촌
1394년 한양성을 쌓을 때 성곽 바깥쪽 10리 이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자연녹지로 규제를 하였다.
그러다 병사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주둔하는 <둔전>주민들이 모여와 살게
된다. 그들은 베와 모시를 표백하는 마전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그린벨트는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되었다.
예전의 성북동은 세부류의 주택지로 나뉘어 있다.
삼청터널 쪽으로 대저택의 부촌이 있고, 달동네인 복정마을과 더불어
거미줄처럼 이어져 오르내리는 산동네마을과 그리고 성북천변을 중심으로
많은 별서와 문인촌이 형성되었다.
사찰의 트레이드 마크는 부처의 자비로운 미소이다.
그러나 <길상사>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무소유>와 <사랑>이다.
사찰의 이곳 저곳에는 석산(石蒜)이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푸근함을
안겨준다. 조상들이 석산(石蒜) 또는 돌마늘이라고 한 이 꽃을 사람들은
상사화 또는 꽃무릇으로 부르고 있다.
삼선교에서 탄 마을 버스(02번) 승객들의 대부분이 길상사에서 내린다,
더러더러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길상사의 숨겨진 이야기에 이끌린 이들일까, 아무튼 찾아온 이들의 전체적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하다.
숲속- 석산(石蒜)이 피어있는 한쪽엔 준비해온 다과를 펼친이들도 보인다.
사당에는 자야(김영한)의 영정이 있다. 그녀는 성북동 배밭골 7천여평의
땅에 1970년대 한옥을 짓고 대원각이라는 요릿집(요정)을 운영하였다.
<자야>는 서울에서 태어나 가난으로 진향(眞香)이라는 기생이 되었다.
그리고 시인 백석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북으로 떠난 <백석>을 그리워한 자야는 무소유의 <법정스님>에게 전재산을
맡기고 백석의 詩처럼 눈(雪)이 푹푹 내리는 날 <길상사> 그 곳에 뿌려졌다.
<길상사>의 <관음보살상>은 단순하고 날렵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누나 같기도하고, 엄마 같기도 한 그 단아함은 혜화동성당의 성모상과 쌍둥이
처럼 닮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조각가<최종태>의 작품이다.
길상사를 나와 북악슈퍼를 지나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미로가 시작된다.
오르락 내리락 거미줄 처럼 엉킨 골목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날만큼 좁고 숨이
가쁘기도 하다. 골목길을 벗어나면 한국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회인
<한국 순교복자 성직수도회>의 옛 본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 곳에서 복자교를 건너 조금 아랫쪽에 옛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다.
기역자 집으로 돌계단 위로는 팔작지붕의 본채가 있고, 왼쪽에는 마당과
별채로 되어 있다. 북으로 간 이태준은 소식이 없고, 지금은 이태준 누님의
외증손녀에 의해 전통찻집이 운영되고 있다.
별채앞 마당에서 쌍화차(15,000원)를 마시며 한 시간여를 멍때리며 앉아
있었다. <이태준>은 북으로 넘어 갔지만 숙청 당했고, 남한에서는 친북인사로
오랜동안 배척 당했다. 8세에 고아가 되어(5살 아버지,8살 엄마) 힘든 시절을
이겨낸 그는 휘문고 시절 친구의 도움으로 잠시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를 했다.
북에서도 눈 밖에 난 그는 탄광,인쇄공으로 힘겹게 살다가 행방불명이 된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의 모파상에 견줄만한 아까운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시선은 인물을 심판하지 않으며, 세상을 단정하지 않았다.
행동보다는 생각에 머물며 선택 앞에 머뭇거리는 연민의 시선에 닿아 있다.
<수연산방>의 지척 거리에 성북구립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있다. 아쉽게도
두곳 모두 임시 휴관 중이다.
선잠단지와 성북초등학교 사이길을 따라 오르면 <성북동성당>이 모습이
보인다. <성북동성당>은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성당의 작은 마당을 지나 성당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그 곳에 지하 성전이 있다. 움츠러든 초기 교회가 연상되는 분위기
이다. 작고 아담하며 차분하고 그리고 경건하다.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좌우벽면은 사선으로 되어 있고 벽면에는 좌우 4개씩
모두 8개의 스테인드그라스가 빛을 발하고 있다. 스테인드그라스에서 풍기는
민화풍의 색상은 마치 절에서 많이 보는 탱화를 닮았다.
성모상도 마치 조선의 어미를 닮은 듯하다.
내부가 지하에 있기에 어두운 성전 안에서 빛을 발하는 스테인드그라스는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이 유리성화에는 슬픈 사연이 뭍어있다. 먼저 낙엽이 되어 바람 속으로 사라진
아들을 기리는 어미(오덕주데레사)의 애끓는 사연과 봉헌이 있었고,
유리화가인 양단철(하상바오로)은 전통적 문양과 색동등을 이용해서 그에
화답하는 정성어린 작품을 탄생시켰다.
토요일 오후4시 어린이 미사시간이다. 어린이(복사포함12명) 어른 30여명이
모인 아주 작은 깨알 같은 미사시간이다.
미국에서 제일 큰 동창회는"교회졸업동창회"라는 우스게 말이 있다.
한국 교회도 젊은피보다는 나이 많은 신자들로 점점 메워지는 것 같다.
성북동은 이야기거리가 많은 동네이다.
항아리를 소재로하여 많은 그림을 그린 <김환기>와 그의 아내 <김향안>이
살았던 <수향산방>. 순백의 모습과 완벽하지 않은 모습에서 파격의 미를
맛보게 한 백자 달항아리--그로 인하여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美의 아이콘이
되었다.
중국의 도자기는 듬직한 형태미에 있고 일본의 도자기는 아기자기한 색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청자든 백자든 한국의 도자기는 그 갸냘픈 선(線)에 있다고 그 다름과
특징을 말하기도 한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으로 시인 <이상>과 살았다.
결혼 4개월후 <이상>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녀는 딸셋을 둔 이혼남 김환기와 재혼을 하고 이름도 김향안으로
개명하였다. 그녀는 경기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으로 최고의 시인과
최고의 화가 부인으로 이들의 예술에 지극 정성을 다한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성북동 나들이. <길상사>와 짝을 지어 <성북동성당>을 찾는 의미는 크다.
<덕수교회>의 손인웅 원로목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성북동 세 종교 화합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포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따뜻함을 품고 있다.
매년 9/10월에 바자회와 음악회를 함께 열어 축제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성북동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다.
<덕수교회>안쪽에는 조선 말기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 별장
이 단아하다. 그는 교육사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사랑,자비, 소망>을 상징하는 세 공동체의 문화적 공간과 포용의 정신이
성북동을 넘어 빛처럼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원한다.
세상이 정한 직업으로 말 할 수 없는 이---만해 한용운.
그가 말년에 살던 <심우장>은 마을 버스 (03번) 복정마을 종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복정마을 종점에서 절벽처럼 가파르고 좁고 허름한 골목길을
더듬더듬 내려간 곳에 북쪽을 보고 돌아 앉은 4칸 한옥이 <심우장>이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가 "도장만 찍으면 성북동의 땅 20만평을 그냥 주겠다"고 회유 했을
때, 그의 답변은 어떤 침묵보다도 아름다운 말이었다.
"도장이 없다"
그러했던 그가 동아일보 송진우사장,조선일보 방응모사장, 대동인쇄사 홍순필
사장의 도움과 백양사 벽산스님 내준 땅52평은 기꺼이 받았다.
<심우장>은 담담한 모습이나 작은 느낌이 들었고, 김광섭의 비둘기는 축대 아래로
밀려나 있어 어수선하다.
성북동 공간과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 예술인들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걷고,
걸으며 생각했다>.
여주인이 내려주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북앤카페 "이대기書架"는
소파 세개가 전부인 작은 카페인데, 벽면은 책으로 가득차 있다.
한쪽 소파에는 수녀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을뿐인 조용한 북앤카페.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음악과 함께 코끝을 스치는 커피향은 피곤한 몸에
나른하면서도 묘한 활력을 주고 있다.
통창을 통하여 <조지훈>의 생가터(방우산장)가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이 근처 어디쯤
이웃하여 살던 <윤이상>의 집이 있었을 것이다.
고려대학교 교가는 조지훈 작사,윤이상 작곡으로 되어 있다.
한때, 문인촌을 이루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풍성한 거리.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숨결은 <이대기서가>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서가에서 <백석>의 시집 "사슴"과 <이태준>의 "문장강화" 두권을 손에 넣었다.
젊은 시절 백합나무(튤립나무) 의 아름다움에 내가슴을 뛰게 했던 성북동의 늦은
오후, 하늘에는 은빛 같은 낮달이 환하게 걸려 있다.
< 엄마 마중/이태준>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거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차장은 땡땡하면서 지나 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을 올려다 봅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차장은 또 땡땡하면서 지나 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그러나 아가는 물어보지 못하고 쳐다만 보았습니다. ----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있습니다.
(찻집에서 주인이 건네준 그림 동화이야기 입니다.)
(고영길)
첫댓글 성북동이 좋아요.
문득문득 거닐며 그들의 향취와 향기를 떠올리는 곳.
성북동은 사색과 추억의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