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사도 16,14)
교회는 오늘 17세기 이탈리아 성인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를 기념합니다. 1696년 나폴리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성소의 길을 선택한 성인은 사제가 되어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를 창립하고 신자들 가운데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설교와 저술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주제에 온 힘을 기울인 성인은 윤리 신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학문적 열성과 그가 남긴 저술들은 교회의 큰 신앙적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같은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말씀으로 이루어진 마태오 복음 13장의 하늘나라에 관한 마지막 비유 말씀입니다. 마지막 비유는 그물의 비유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다에 던진 그물에 비유하시는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다소 엄한 모습으로 최후의 날에 있을 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마태 14,47-50)
불과 얼마 전 복음 말씀 안에서 역시 마태오 복음 13장의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말씀 안에서 밀 이삭 사이에 난 가라지들을 발견 즉시 뽑아버리는 무정한 농부가 아닌 가라지를 뽑다 혹여나 밀이 뽑힐 것을 염려하여 수확 때까지 기다려 가라지를 뽑아 불에 태워버리는 착한 농부의 모습으로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 이젠 최후의 날, 곧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는 마지막 날, 그 날은 마치 바다에 그물을 던져 모아들인 온갖 물고기 가운데 나쁜 것들은 가차 없이 밖으로 던져 버리는 어찌 보면 조금은 무자비한 심판의 날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다소 격한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 모습 속에 담긴 그 분 말씀의 참 뜻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은 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드는 이 같은 무자비한 심판의 날을 예고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듣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않으며, 그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듣는 이들이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 곧 지금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 다시 말해 회개로 그들을 초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순간, 마지막 심판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귀로 듣는 데에서만 그쳐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는 바로 그 이 순간, 마음을 열어 나의 삶의 변화, 곧 회개를 실천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이 잘 드러내 줍니다.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사도 16,14)
이 복음환호송의 말씀은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의 실천, 변화의 시작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회개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실천해야만 하는가? 어디에서부터, 그리고 무엇을 하는 것이 회개의 실천일까?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 말씀의 예언자로 선택받은 예레미야는 말씀의 예언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두 귀로 듣게 됩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옹기장이의 집으로 가 그곳에서 예레미야가 보고 전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예언자가 전해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란 다름 아닌 옹기그릇과 옹기장이의 말씀입니다. 옹기장이가 진흙을 손으로 빚어 자신이 원하는 그릇이 나올 때까지 빚고 또 빚는 과정을 계속 되풀이하듯, 하느님 역시 우리라고 하는 진흙을 당신의 손으로 빚어 만들며,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각자를 창조하신다는 내용의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절대적 주권을 갖고 계심을 분명히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예레 18,6)
옹기장이의 손에 든 진흙이 자신을 빚어 만드는 옹기장이에게 난 이렇게 빚어 달라 나는 무슨 용도로 쓰이는 그릇으로 만들어 달라 청할 수 없습니다. 진흙은 그저 주인의 손에 든 질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인이 빚어 만드는 대로, 어떤 것은 아무렇게나 막 쓰는 질그릇으로, 또 어떤 것은 아주 소중한 그 무엇을 담는 값비싼 그릇으로 // 각자의 용도에 따라 주인의 지향대로 만들어질 뿐입니다. 그러기에 진흙과 같은 우리들은 우리를 빚어 만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느님이 뜻하신 우리의 삶의 목적이 바로 우리 삶의 가장 완전함이자 우리의 삶의 결정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오늘 독서는 바로 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하는 오늘 독서의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최후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준비해야 할 회개의 삶의 방향성을 잡아줍니다. 곧, 내게 주어진 나의 삶의 꼴과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의 최상의 조건이자 가장 완벽한 모든 것이라는 것, 비록 내 삶이 내가 느끼고 체험하기에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것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크신 계획안에서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자 하느님의 은총이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사실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진정한 회개가 가능해진다는 사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귀 기울이며 들은 그 말씀에 따라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때, 만군의 주님이신 그 분은 우리 몸과 마음에 당신 사랑을 가득 채워 주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 마음 안에서 놀라운 환호송을 울려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하느님 안에서 언제나 행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시편 84(83),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