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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추억 복원 에세이】
그리운 내 고향, 냇가에 얽힌 추억
― 고향 선배님과 나눈 여름철 냇가 풍경
윤승원 수필가.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옛 지명: 적곡면) 중추리 출신
■ 필자의 말
무더운 날씨에 팔순의 고향 선배님이 정겨운 카톡 문자를 보내주셨다. 내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옛 지명 赤谷面).
누리소통망에서 필자와 자주 소통하는 고향 선배님은 윤병전 선생님(교육자, 전 赤谷國民學校 교사)이다.
“매일 훌륭한 글 보내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어느덧 8월이네요.
폭염도 8부 능선을 넘고 있네요. 청량한 계곡의 물 한 줌 마시고 싶음이네요. 더위에 잘 숙성되어야 맛있는 술독(항아리)이 되겠지요. 고개 숙인 벼 이삭도 볼 수 있겠지요? 8월 초하루가 의미 있는 날 같네요. ♡♡♡ yoon.”
이에 필자가 답글을 보냈다.
“그 옛날 유년시절 팔월의 추억이 떠올라요. 가래울 중추천은 저의 놀이터였어요. 송아지 냇둑에 매어 놓고 미역 감고 물고기 잡고. 지금은 많이 변했더군요. 냇가에서 미역 감는 어린이가 없어요.
저의 졸고를 늘 사랑의 눈길로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기분 좋아지는 풍경 즐기시면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향 선배님이 이어서 이런 답장을 주셨다.
“적곡국민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 체육시간 끝나고 중추천에 나가 미역감고 옷이 젖은 채로 학교로 돌아오곤 했지요.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네요.”
필자의 답글이 이어졌다.
“교육 현장에서 사랑으로 어린이들을 지도하신 선배님. 체육 시간 끝나고 냇가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가신 아름다운 모습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렇게 고향 선배님과 고향 냇가를 주제로 카톡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잊지 못할 생생한 옛 추억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어느 날 대전mbc 라디오에서 방송 출연 요청이 왔다.
“윤 선생님, 대전 MBC 라디오 『특급작전』 <나의 살던 고향은>입니다. 지역 명사들이 고향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생방송입니다. 공직에 계셔서 바쁘시면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이날 필자가 출연한 방송 내용은 고향 신문인 ‘청양신문’에도 보도됐다.
※ 관련 기사 : 청양신문 2000.09.06. 제380호
윤승원 씨, 방송 출연 고향 추억 이야기 나눠 경찰관 작가로 명성을 굳혀가고 있는 윤승원 씨가 지난 1일 저녁 7시 45분 대전 MBC 라디오의 <특급작전> “나의 살던 고향은” 프로에 10여 분간 출연했다. 지역 명사들과 출향인들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추억 등을 들어보는 이 프로에서 윤승원 씨는 경찰관(대전 북부경찰서 근무)으로서 세 번째 출간한 수필집의 내용과 함께 고향인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을 소재로 한 추억담을 털어놓았다. 윤 씨는 이날 방송에서 고향 동네의 망월산과 장수평 들, 장날 풍경, 마을 앞 냇가, 지금은 헐려버린 ‘은행나무 안집’ 옛 생가 등을 떠올리며 고향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그리워했다. 윤 씨는 또 청양신문에 자신의 작품 ‘생가’가 발표된 이후 “서울 등지의 출향 인사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으며 수십 년 만에 고향 친구도 전화로 만났다”면서 자신의 글을 읽고 동병상련의 기분으로 서로 위로하고 생가 복원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청양신문 2000.09.06. 제380호) |
※ 관련기사 / 바로보기 : 윤승원 씨, 방송출연 고향 추억 이야기 나눠 - 청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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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전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전광역시지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대전예술》 8월호 ‘여름 특집’에도 필자의 고향 이야기가 게재됐다.
《대전예술 / 여름 특집 2002.》
내 고향 냇가, 그 가슴 아린 추억
윤승원(수필가. 경찰관. 한국문인협회 회원)
지난해 대전 MBC 라디오 방송의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리운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나눈 적이 있다.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애틋한 옛 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내게는 매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헐려버린 생가에 대한 일화라든지, 장날 신작로 풍경 등 몇 가지 떠오르는 추억을 소개하다 보니 그만 시간이 모자랐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마을 앞 냇가 풍경을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1년여가 지난 오늘 《대전예술》지로부터 뜻밖에도 「어린 시절 여름철 추억」에 대한 글 청탁을 받고 보니,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어진다.
▲【그림설명】 “이렇게 잡았어요?”(삽화=둘째 아들, 당시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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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 산골 물이 모여 내를 이룬 곳
나의 고향은 청양 장평(長坪)이다. 어린 시절에는 적곡(赤谷)이라 했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87년 장평으로 고쳤다.
장평이란 지명은 원래 이 지역의 큰 들인 장수평야(長水平野)에서 유래하는데, 내 고향 마을 앞으로 흐르는 소하천은 칠갑, 망월 등 큰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청정 산골 물이 모여 내를 이룬 가래울[中楸]천이다.
조약돌이 선명히 보일 만큼 깊지는 않았으나 물살은 센 편이었다. 붕어, 피라미,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 어종이 다양했으나, 어린 시절 내가 즐겨 잡던 물고기는 ‘꽃 치러’(붉은빛과 암청색 무늬가 띠처럼 알록달록한 피라미를 일컫는 청양지역 방언)였다.
◆ 수렵시대 원시인
한 사람이 그물을 대면 또 한 사람은 첨벙대면서 날쌔기가 번개 같은 ‘꽃 치러’를 그 속에 몰아넣는다.
그야말로 원시적인 방법이다. 먹고사는 게 당시에는 이렇듯 모두가 원시적이었다. 그물이라는 문명의 도구만 빼면 인간의 행동 그 자체는 수렵시대를 연상시키는 원시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런 원시적인 물고기잡이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마구잡이식’이란 말이 요즘 흔히 쓰이는데, 어린 시절 물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방법을 쓰면 자칫 물살에 넘어지거나 잡았던 고기도 놓치는 등 별 소득 없이 몸만 지치고 무리가 따른다는 사실을 시골아이들은 스스로 터득했다.
그러나 도시 아이들은 그걸 몰랐다. 여름 방학이 되어 시골 할머니 댁에 모처럼 놀러 오면 곧잘 물가로 나오지만, 물고기 잡는 방식은 새카맣게 그을린 촌놈들과는 달랐다.
처음 그물을 대 보는 도시 아이들은 소리나 지르고 첨벙거려 보지만 그물에는 돌멩이만 건져 올릴 뿐, 날쌘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했다.
더러는 흉물스러운 ‘귀신 개구리(모양이 그랬다)’를 건져 올려 기겁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 물고기 잡는 요령
어쨌든 흐르는 냇물에서 뜬 고기(날아다니는 고기)를 잡으려면 고기의 성질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는 시골 악동들의 노련한 경험과 기술을 인정해줘야 한다.
즉, 이 약삭빠른 놈은 그물을 댄 쪽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역방향으로 몰아야 그물 속으로 들어가지, 토끼몰이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몰아서는 잘 잡히질 않는다.
나는 여름철이면 넷째 형과 냇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고기를 잡을 때는 손발이 잘 맞았다.
형이 그물을 대면 나는 주전자(뚜껑 있는 주전자가 고기 그릇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를 들고 고기를 몰았다.
그런 역할분담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형은 원래 동작이 완만하여 고기를 모는 기술보다 그물을 대는 편이 나았고, 행동이 비교적 민첩하다고 하는 나는 고기 모는 기술을 인정(?)받아 이 역할분담은 쉽게 변경되지 않았다.
◆ 고기 잡는 일이야말로 건강에 ‘좋은 운동’
온종일 물가에서 지내다 보면 시장기가 돌기 마련이다. 손목에 시계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허기를 느끼면 자연 귀가 신호로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소하천에서 물살 거스르며 민물고기를 잡는 일만큼 고된 노역(勞役)도 없었던 것 같다.
칠순을 넘기고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을 누리시는 나의 장형께서 요즘 즐겨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나이에 이 정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어린 시절, 20~30리 길을 도보 통학한 덕분이 아닌가 해!
어린 시절, 걷기 운동을 많이 하여 노년에도 이처럼 건강유지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는 말 같아!”
옳은 말씀인 것 같다. 사실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나 역시 건강에 관심 가지는 나이가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남성에게 가장 좋은 운동으로서 걷거나 뛰는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쌍령(雙鈴)’은 시달림을 받을수록 좋다는 것인데, 굳이 의학적인 분석과 설명이 아니더라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쫓아다니며 여름 한 철 물가에서 첨벙거렸던 그 어린 시절의 ‘운동’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운동이었던가.===(下略)==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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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 소감
이 글은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이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추억 복원 에세이입니다.
카카오톡 대화에서 시작된 작은 물결이 과거의 방송 기록과 신문 기사, 문예지에 실린 글까지 이어지면서, 한 개인의 추억이 지역 문화사의 한 조각으로 되살아나는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윤승원 수필가 특유의 문학적 특징이 여러 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1. 추억이 추억을 불러오는 ‘연쇄 기억’의 구성
글은 고향 선배님의 짧은 안부 문자에서 출발합니다.
‘계곡의 물 한 줌 마시고 싶다’는 한마디가 어린 시절 냇가로 이어지고, 다시 MBC 라디오 방송, 청양신문 기사, 《대전예술》 특집 원고까지 차례차례 연결됩니다.
이런 구성은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스스로 기억을 불러오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아, 사람의 기억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구나.”하는 공감을 하게 됩니다.
2. 카카오톡이 문학의 소재가 되다
예전 같으면 친구에게 받은 편지가 작품의 도입부가 되었겠지만, 이 글에서는 카카오톡 대화가 문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렇다고 디지털 기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카카오톡은 단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현대판 편지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 속에는
고향 선배의 정
후배에 대한 격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공감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문학이라는 점이 참 따뜻합니다.
3. 생활사가 곧 문학이 된다
냇가에서
송아지를 매어 놓고
미역을 감고
꽃 치러를 잡고
주전자에 물고기를 담던 이야기
이런 장면들은 거창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평범한 생활이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고 문학이 된다는 사실을 작품은 보여줍니다.
오늘날 어린 세대에게는 이미 민속 자료처럼 느껴질 풍경이지만,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개인 회고록인 동시에 농촌 생활사 기록의 가치도 지닙니다.
4. 지역어를 살린 문학적 향기
‘꽃 치러’라는 청양 방언을 그대로 소개한 부분이 매우 좋습니다.
굳이 표준어로 바꾸지 않고
“붉은빛과 암청색 무늬가 띠처럼 알록달록한 피라미”라고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게 됩니다.
사투리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고향의 냄새를 품은 문화유산임을 느끼게 합니다.
5. 유머가 스며든 문장
윤승원 수필가의 글에서는 늘 미소를 짓게 하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고기 모는 기술을 인정(?)받아…”
여기 괄호 속 물음표 하나가 참 재미있습니다.
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도 아닌데 어린 시절 형제끼리 자연스럽게 역할이 정해졌다는 사실을 익살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또 “도시 아이들은 돌멩이만 건져 올릴 뿐...”이라는 대목도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결코 비웃지 않으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더 나아가 “귀신 개구리를 건져 올려 기겁했다.”는 장면은 독자의 눈앞에 만화처럼 펼쳐집니다.
이처럼 웃음을 만들되 누구도 상처 입지 않게 하는 것이 윤승원 수필 특유의 유머입니다.
6. 웃음 끝에 건강 철학을 심다
후반부는 단순한 추억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형님의
“어릴 적 많이 걸어서 지금 건강하다.”는 말에서
걷기 운동,
냇가에서의 노동,
자연 속 활동,
노년 건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특히
물고기 잡는 일을 ‘좋은 운동’으로 연결하는 발상은 매우 독창적입니다.
요즘 말하는
자연 운동
기능성 운동
맨발 걷기
같은 개념을 이미 어린 시절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과거의 추억이 현재의 건강 철학으로 이어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7. 방송과 신문 기록을 함께 넣은 이유
많은 회고록은
“예전에 방송에 나갔다.”
한 줄로 끝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방송 요청 과정
청양신문 기사
《대전예술》 특집
까지 차례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기억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장치입니다.
독자는 “이 추억은 실제로 오래전부터 기록되고 공유되어 왔구나.”하는 신뢰를 갖게 됩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 시대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도 큽니다.
8. 출향인이 간직한 ‘고향의 원형’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고향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한 냇물이 아닙니다.
그 냇가에서 함께 뛰놀던 형제,
체육 시간 뒤 아이들과 냇물에 들어갔던 스승,
장날 풍경,
은행나무 안집,
헐려버린 생가,
그리고 여름 햇살 아래의 웃음소리까지 모두 포함한 삶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제목의 ‘추억 복원’은 단순히 기억을 떠올린다는 의미를 넘어, 한 시대의 정서와 사람들의 온기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종합 감상
이 글은 냇가를 소재로 한 향수 어린 수필이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기억이 방송과 신문, 문예지를 거쳐 오늘날 다시 카카오톡 대화 속에서 되살아나는 과정을 담은 기억의 연대기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뛰고,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고, 도시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의 서툰 차이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소박한 장면들이 오히려 시대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여기에 특유의 익살과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독자는 미소를 지으며 읽다가도, 마지막에는 “저런 여름을 보낸 세대는 참 행복했겠구나.” 하는 잔잔한 여운을 얻게 됩니다.
결국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냇물도, 물고기도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고향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출향인에게는 마음의 고향을 지켜 주는 힘이 되고, 젊은 세대에게는 사라져 가는 농촌 문화와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귀한 문학적 유산이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운 내 고향, 냇가에 얽힌 추억」은 개인의 회상을 넘어, 한 시대의 생활문화와 인간애를 담아낸 의미 있는 추억 복원 에세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기억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억은 혼자 간직하면 점차 희미해지지만,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다시 살아납니다. 이번 작품은 바로 그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향 선배님의 짧은 카카오톡 한 통이 잊고 지냈던 냇가를 불러내고, 그 냇가는 다시 라디오 방송의 추억을 불러오며, 이어 신문 기사와 문예지 원고까지 되살려 냅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깨우는 모습은 마치 잔잔한 연못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풍경과도 같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윤승원 수필가의 글에는 늘 ‘사람이 먼저’라는 정신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냇물도 아름답고 물고기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입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냇가로 나가 미역을 감게 했던 교육자 선배님의 따뜻한 모습, 형제와 손발을 맞추어 물고기를 잡던 유년의 정경, 출향인의 글을 읽고 수십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고향 친구의 반가움….
이러한 인연들이 작품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습니다. 개인의 기억을 지역 공동체의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키는 기록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평의 가래울, ‘꽃 치러’라는 방언, 중추천의 풍경, 적곡국민학교 시절의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귀중한 생활문화 자료가 됩니다.
훗날 고향의 후배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마을에 이런 삶과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하고 고향의 뿌리를 새롭게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윤승원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표현이 있습니다.
‘기록하는 사람은 시간을 두 번 산다.’
한 번은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았고, 또 한 번은 글을 통해 그 시대를 다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추억 복원 에세이들은 바로 그 두 번째 삶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옛날이 좋았다.”는 막연한 회상이 아니라, 왜 그 시절이 아름다웠는지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증명하는 수필입니다.
독자는 냇가의 물소리를 듣고, 조약돌을 밟으며, 주전자 속에서 파닥거리는 피라미를 바라보고, 해 질 무렵 허기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소년의 발걸음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수필이 가진 힘입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추억 복원 에세이’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것은 개인 문집을 넘어 청양 장평의 생활문화사와 한국 농촌의 정서를 후세에 전하는 귀중한 문학 아카이브가 될 것입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모여 결국 한 시대의 기억을 보존하는 ‘문학의 타임캡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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