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WTA 500 코리아 오픈 결승에서 만난 사람들
2024 WTA 500 코리아오픈 결승이 열리는 9월 22일, 올림픽 공원 테니스코트는 초입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티켓 구매하느라 줄 서고 밴드로 바꾸느라 줄을 섰다. 지난 7월,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의 윔블던을 관전하기 위해 여러시간 줄을 서서 표를 구하던 큐잉 문화를 한국에서도 체험하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줄을 서고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길게 줄을 섰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식 장소에는 대형브라운관이 있어 그곳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겔러리들을 보면서 윔블던 풍경 그대로 연상이 되어 익숙하게 다가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다림은 달콤하다고 했다. 각종 홍보관의 체험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어도 들뜬 목소리의 재잘거리는 수다가 이어지고 피부 깊숙하게 파고드는 햇살조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2024 WTA 500 코리아오픈은 거대한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테니스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온 다양한 동호인들을 만나보았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고흥에서 온 이윤호 원장을 만났다. 사진과 클래식을 즐기는 이 원장은 고흥 윤호21병원을 운영하며 고흥의 테니스 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제 막 라켓을 들기 시작한 아내에게 사기 진작 차원에서 테니스의 신세계를 보여 주고 싶어 하루 전날 서울에 도착했다”며 “세계적인 선수를 한국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과 아내에게도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보람된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또 “평소 TV로만 경기를 보다가 티켓을 사서 센터코트에서 직관을 하다 보니 효과 음향과 광고판등 평소 생각하지 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흥분되고 멋진 추억 여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티켓을 밴드로 교환하기 위해 긴 줄을 선 부부를 만났다. 춘천에서 온 부부는 두 살, 세 살 어린아이를 하나씩 안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유모차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 볼 수 없고 싱글벙글이었다. 하랑이와 테랑이 아빠는 “제가 요즘 테니스에 심취해서 긴 시간 운전하여 도착했는데 온 가족이 함께 관전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다”며 “육아 때문에 잠시 라켓을 놓은 아내에게도 위로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훤칠한 미모의 29세 모델 아가씨도 한 컷. 4년 전부터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며 1년 전부터는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러시아의 레나는 “테니스를 통해 건강은 물론이고 다양한 한국인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이 가장 큰 재미다”며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대화가 가능하고 오늘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카사트키나의 경기력에 박수를 보낼 계획이다”고 했다.
2024 윔블던 결승까지 관전했던 유길초는 올해 처음으로 이 대회에 봉사자로 활동했다. 도핑검사와 관전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9일간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걸렸는데도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평소 외국인들과의 대화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춘 유길초는 “선수들의 도핑검사를 하는데 워낙 날이 더워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소변 100ml 이상 받는데 어떤 선수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어 감독하면서 도핑검사의 엄중함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다”며 “시비온텍이나 페굴라 리바키나 등 상위랭커들이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표를 취소하겠다는 소리가 들려 WTA 500으로 업그에이드 되자마자 성원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거의 만석이 된 결승 경기장을 지켜보면서 너무나 흡족하고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기자는 맨 앞줄 지정석에서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섬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세트스코어 1대 1 상황에서 압도적인 파워로 리드해 가는 하다드 마이어 선수의 자신감과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녀의 할머니와 어머니까지 테니스 선수였다는 가족의 DNA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력한 포핸드를 품어내고 있었다.
센터코트 리뉴얼 공사를 한 주)천기산업개발 최문현 사장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 센터코트는 아직도 손 볼 것이 많다”며 “의자가 좁고 불편해서 올해 일부만 교체했는데 센터 코트에 돔을 씌워 전천후 코트로 만든다면 금상첨화다”라고 했다.
결승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흥겨운 박수로 응원하던 가족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마포에서 운동하는 이 가족은 8세인 딸 테리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관전하고 있었다. 이제 막 라켓을 들기 시작한 딸아이에게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보여 주며 테니스의 묘미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아빠는 금배부, 엄마는 은배부라는 이 가족은 3세트까지 가는 결승 경기가 흥미진진해 투자한 돈과 시간의 몇 배만큼의 재미를 얻어 간다고 했다.
꽉 채운 야구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의 한 샷 한 샷에 뜨겁게 호응해 주던 결승 현장. 경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는 관전자들의 메너와 열렬한 박수로 좋은 샷에 답례하는 풍경은 어느 그랜드 슬램 못지않은 성숙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아현동 근처에서 모여 운동하는 테니베어라는 클럽의 테린이들이었다. 3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 클럽은 모두 20~30대의 직장인으로 월,수,토요일에 반포종합운동장이나 귀뚜라미, 그리고 아현동 코트에서 모여 운동하고 있단다. 회장 김성운은 “단체로 테니스 실력 증진을 위해 명품 경기를 관전하러 왔다”며 ‘결승 경기를 보면서 사기가 충전되어 내일은 한 단계 업 그레이드 된 포핸드 실력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한국의 가을을 그대로 보여 주었던 2024 WTA 500 코리아오픈 결승 현장은 날씨까지 완벽해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테니스를 즐기는 온 가족들의 소풍이자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모든 행사가 끝났으나 집으로 향하지 않은 대부분의 겔러리들은 시원한 맥주를 파는 대형브라운관 앞에 모여 있었다. 흥미진진했던 베아트리츠 하다드 마이아가 다리아 카사트키나를 역전승으로 우승한 결승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엿듣고 있었다. 글 사진 송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