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2004] ⑦'행정수도 후보지' 장기면 농민 윤종환씨
무책임 정치 ‘너죽고 나죽자’ 하고 싶지만…
대출받아 산 땅값 폭락 하루아침에 빚더미로 은행이자·교육비 걱정 소젖 짜며 악몽 달래
장상진기자 jhin@chosun.com
입력 : 2004.12.22 18:08 41' / 수정 : 2004.12.22 18:55 53'
행정수도가 공주시 장기면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초. 젖소를 키우는 윤종환(49)씨는 축사를 확장하고 현대식 설비를 마련하려는 계획을 잠시 중단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소문은 ‘현실’이 됐고, 장기면은 그때부터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주민을 상대로 행정수도 설명회가 열렸고, 이장단을 통한 현지조사가 벌어졌다. 머리 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측량용 헬기가 분주히 날아다녔다. 인근 축산농가들이 앞다퉈 대토(代土) 마련에 나서면서 주변 땅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꾸물거리다간 큰 손해를 볼 것 같았다. 수용예정지가 아닌 곳에 새 축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지난 2월 장기면의 논 2000여평을 2억원에 팔았다.
대토를 구하러 다니는 사이에도 인근지역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평당 5만원짜리 논이 15만원을 호가했다. 하는 수 없이 윤씨는 지난 5월 자신의 축사와 집터 8000평을 담보로 농협에서 5억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도합 7억5000만원. 여기에 저축해뒀던 1억여원까지 모두 털어 이웃 의당면의 땅 7000평을 사들였다. 말 그대로 ‘올인’이었다. ‘그나마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20여년간 젖소를 키워 온 윤종환씨가 지난 16일 새벽 충남 공주시 장기면 자신의 축사에서 이른 잠에서 깬 젖소들에게 사료를 먹이고 있다. 전재홍기자 jhjun@chosun.com
가난한 담배농가의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윤씨가 젖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79년. 군 복무 중이던 윤씨는 부대 근처의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젖소떼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목축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해 군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윤씨는 “나중에 물려줄 재산으로 젖소 1마리만 사 달라”며 아버지를 졸라 당시 가격 75만원에 젖소1마리를 장만했다. 신이 난 윤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농사를 짓고 소젖을 짰다. 일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저녁식사는 매일 밤 10시에 했다. 84년에는 영농후계자로 지정됐고, 돈이 조금만 모이면 젖소를 사고 또 사들여 마침내 2001년에는 젖소 80마리를 거느린 부농이 됐다. 연간 수입도 8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반평생에 걸친 피땀으로 이루어낸 이런 결실은 지난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평당 15만원에 사들인 땅값은 다시 5만원대로 돌아갔다.
가만히 앉아서 7억원의 손해를 떠안은 것이다. 갚아야 할 은행 이자만 1년에 5000만원. 최신설비의 축사를 짓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원금만 상환하려 해도 지난 25년간 공들여 이룩한 집·축사와 젖소까지 모두 팔아야 할 지경이다.
윤씨는 며칠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부인과 상의해 내린 결정이지만 서로에게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부부가 한동안 말도 않고 지냈다.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한국농업전문학교에 들어간 기특한 아들이 빚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잠자는 아들 방에 들어가 눈물도 여러 번 흘렸다고 했다.
“당리당략으로 농민들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땐 언제고 위헌판결이 나자 박수까지 치는 정치인을 보니 정말 속이 뒤집히더라구요. 여당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죠.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여의도로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너 죽고 나 죽자’고 하고 싶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마을은 아직도 술렁대고 있지만 윤씨는 지난 몇 달간의 악몽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묻어두기로 했다. 군대 가 있는 큰아들을 포함해서 아직도 대학공부를 마치지 않은 두 아들이 있고, 자식 같은 젖소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어김없이 오전 6시면 일어나 아들과 함께 축사로 달려간다. 따뜻한 물로 데운 착유기를 젖소 젖꼭지에 대고, 그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젖이 나오는 것을 보면 복잡하게 꼬인 세상사도 잠시 동안 잊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