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산농부님과 아비가일님을 모시고
영월 하동면의 아무렴님댁을 방문하여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미술관과, 김삿갓 문학관 그리고 옥동광업소 자리를 방문했습니다.
아무렴님 댁과 미술관, 문학관은 태기산농부님과 아이가일님이 자세히 소개하셨던 터라 생략하며 옥동광업소 자리에 갔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날씨가 몹시 매서웠다.
김삿갓 문학관 기행을 마치고 집에 가면 되는가 보다 했는데 아무렴님이 맞은편 밭을 보여주신다기에 따라 나섰다. 밭으로 가던 도중 옥동광업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옥동광업소로 향했다. 마을에 진입로가 있는데 이 좁은 길을 따라가면 무슨 광업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조그만 광업소겠지...
이곳을 오지라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진입로가 좁았듯이 길이 좁게 느껴진다. 광업소를 왕래하던 차들이 어떻게 비껴갈 수 있었을까 신기한 생각이 마냥 들었다. 게다가 가파른 산길에 길을 내다보니 또아리를 틀어 놓은 것처럼 꼬불꼬불하다. 마치 평창의 운두령길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다행히 깨끗하게 포장하지 않은 길이라면 웬만한 차량은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렴님의 차가 좋은 차라서 망정이지 농사용 트럭을 몰고 갔다면 1단기어로 밸밸거렸을 테지.
광업소는 모운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옥동광업소는 70년에 시작하여 89년말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민영탄광으로는 최대규모였다고 하니 대한민국을 근대화하기 위한 원동력 구실을 했을 것이다. 당시 모운동에 거주하던 인구가 만이천명으로 얼마나 경기가 좋았던지 돌아디니는 떵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마을에 도착해 보니 불과 20여년전에 휘황찬란한 불빛의 중심지였던 마을은 세월 앞에서 작은 마을로 쇠퇴해 있었다. 옛 영광은 찾아볼 수 없고 20여가구가 모여있는 마을이 되었다. 이 비탈의 작은 동네에 극장 2개, 교회, 병원, 학교, 술집, 양복점에 요릿집까지 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백금자님이 저 맞은 편 산으로 삭도가 놓여져 탄을 실어날랐다고 이야기 해 주시네요.
태기산농부님, 40여년전에 오셨었다고 하니 감회가 남다르시겠네요.
이 작은 마을에 버스가 다니는 가 봅니다.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네요.
차는 모운동을 지나 예밀리로 넘어가는 산길을 넘어갔다.
퇴마사들이 이 곳을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6.25 전란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옥동광업소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이 계곡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귀기가 많이 서려 있는 듯 했다. 크리스쳔이기 망정이지 그전 같으면 원혼이 무서워 당장 내려가자고 했을 터이다. 탄광 폐업 후 20년이 지나서인지 수풀이 제법 울창하다.
“산은 활용가치가 많아요. 산을 제대로 알면 굶어죽을 사람이 없어요.”
태기산농부님의 말씀이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농부님은 산에 와서도 혜안이 떠오르시는가 보다.
좋은 곳을 보여주신 아무렴님과 그렇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