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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월) 맑음
전날밤 23:58에 우루무치에서 출발한 시안행 열차는 1,000km를 달려서 돈황에서
제일 가까운 리우위엔(柳園)역에는 오늘 아침 10:38 경에 도착할 예정이다.
일행중 중국열차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 뿐이라, 기차를 타자말자 침대차 복무원이 방을
돌면서 기차표를 회수하고 카드를 내어줄 때,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여자복무원도 썩소를 날리면서 문을 닫는다.
(짜~식! 넌 우리 침대차 운영방식을 안다 이거지~~)
뭐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아침 6시 40분경에 눈을 떴다.
몸이 가뿐하다. 어젯밤에 술을 안먹고 잔 덕분인가?
창밖을 내다보니 끝없는 고비사막의 연속이다.
(4인실 내부. 어부인들이 화장하기 바쁘다)
기차가 다음 정류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화장실 문을 복무원이 미리 잠궈버리기 때문에 문이 열려
있을 때 화장실을 얼른 들렀다가 그 다음에 세면장에서 머리도 감고 양치질이랑 세면을 후다닥 해치운다.
이럴 때에는 유경험자가 한 수 먹고 들어간다.
( 차창밖으로 보이는 황무지같은 고비사막)
일행들과 함께 컵라면에다 뜨거운 물을 붓고 우리나라 열차의 홍익회같은 열차내 판매원이 파는
백반을 사다가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랑 마늘짱아찌로 식사를 한다.
맛이 그저그만이다.
거기다가 어제 사서 먹다 남은 란(위구르 빵)도 약간 딱딱하지만 씹을만 하다.
과일도 챙겨먹고 마지막으로 인스탄트 커피꺼정~~~
자~ 이제 배도 부르것당 옆동네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당연히 궁금해 지네.
뒷칸을 가보니 식당차 인데 손님은 중국인 2명뿐이고 열차승무원 10여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앞칸에도 가봐야겠지~~~
아! 여긴 6인실 경와석이로구나.
(6인실에서 만난 꼬마 손님)
지나가는 여자 복무원에게 종착역인 시안(西安)에는 언제 도착하냐고
질문하자 내 수첩에 아래와 같이 적어준다.
"5月20日 早 11:30分"
그러니까 오늘 하루밤 더 지나고 내일 정오 가까운 시간에 도착한다는 말이다.
정말로 땅덩어리 하나는 크다는게 실감난다.
10시 40분경 유원역에 도착하였다. 연착없이 지대로 도착한 모양이다.
역도 조그마하다.
(유원역)
여기는 출발한 우루무치와 달리 간쑤성(甘肅省)이다.
유원은 돈황시의 동(洞)에 해당하는 현(縣)단위로, 인구는 1만 정도이고 물이 전혀 나지않아
돈황에서 물을 받아 먹는다고 한다.
여기서 돈황시까지는 126km. 버스로 대충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한다.
유원에서 돈황까지의 대중교통은 미니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하는데 우리는 담당 가이드가
우루무치의 여행사 가이드 친구에게 부탁하여 어제 저녁에 함께탄 기차로 내린 한국관광객들을 태우고
갈 버스에 동승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있는 관계로 돈황에서 온 버스를 함께 탔다.
유원역을 조금 후 벗어나자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곧은 직선으로 고비사막을 횡단한다.
포장한지 15년 정도 되었다 하는데, 워낙이나 날씨가 무덥고 또 그 위에 가끔씩 대형트럭들이
지나가면 도로가 우룩불룩해 지면서 굳어져 마치 빨래판 위를 지나가는 기분이다.
1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아직도 직선이다.
운전기사가 졸까봐 걱정이 될 정도이다.
(유원에서 돈황가는 쭈욱 뻗은 빨래판 도로)
(흙벽돌로 만든 만리장성이 비로, 또 바람으로 허물어져 간다)
( 이 지역에서만 보인다는 신기루 현상을 직접 목격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이라고는 전혀 없다.
옛날 낙타로 이동하던 대상들이 여기에 속아 가까이 가다가 목이 말라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다. 실제로 접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돈황에 다 가기 직전 칠리현(七里縣)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칭하이(靑海)석유라는 정유공장이 있다 한다.
七里縣이란 이름도 지은 사유가 단순 독특하다.
돈황 중심부에서 딱 七里가 된다 해서 그렇다나~~ㅎㅎㅎ
그 소리를 듣고 생각해 보니 KBS에서 토요일 오전인가... 방영하는 "걸어서 세상속으로"라는
프로인지, 다큐맨트리 "黃河"라는 프로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칭하이 석유공장이 나온 칠리현을 본 기억이 난다.
정유공장에 근무하는 처녀들이 많고, 월급도 많아 한 인물하는 총각들은 밤에 패션에 신경쓰고
나서면 거꾸로 여자들로 부터 유혹이 들어 온다나 어쩐더나...
(감가상각이 끝난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돈황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인구 18만명의 작은 도시는 아닌데 오후 1시경 부터 4시까지는 너무 더운 날씨라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가게나 집 또는 그늘에서 쉬고 햇살이 약해져야 움직인다
하드니 정말로 도로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동서와 남북으로 자전거를 빌려 다녀보면 10여분 정도면 끝을 볼 수 있겠다.
(저녁에 자전거를 빌려서 한바퀴 돌아봐?)
돈황은 7세기 부터 8세기 중엽까지 가장 왕래가 빈번한 동서교역의 중계지점이었고
중요한 역사적 유물들이 많아, 이번 여행의 핵심 포인트인 곳이다.
지진피해자를 애도한다고 오늘 14시 28분에 중국 전역에서 일제히 경적을 울리고 3분간
묵념을 하며 오성홍기도 반기를 달고 추모기간을 3일이나 시행한다고 한다.
물론 TV나 라디오는 가무프로를 방영하지 못하니 별로 듣고 볼 것이 없겠다.
(하기사 반 귀머거리에게 보고 들어본들~~~ㅋ)
막고굴은 돈황 시내에서 25km정도 떨어져 있어 가까웠다.
명사산 동쪽마루의 절벽에 길이가 2km에 달하는 5층으로 된 무수한 동굴이 있었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벽한 불교예술의 보물이라 한다.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였다.
중국에 3대 석굴이 있는데 그 첫째로 삼국지의 주무대인 뤄양(洛陽)의 룽먼(龍門)석굴,
둘째가 여기 막고굴, 마지막으로 샨시(山西)성 다퉁(大東)의 운강석굴이다.
(막고굴 입장 매표소앞의 흙탑)
(막고굴 들어 가는 길)
운좋게도 막고굴연구소에 근무하는 손소강(孫小剛)씨를 만났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서 손소강씨 이야기가 있었는데 막고굴 가이드중 유일한
한국어 구사자라 하였다.
실제로 만나보니 조선족도 아닌 한족이었는데 북경에서 대학다닐때 익힌 한국어 실력으로
설명을 듣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으며 성심성의껏 동굴내를
안내 해주어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마침 두번째 동굴로 이동하는 순간 14:28 가 되어 지진사상자 애도 싸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가이드 손소강씨와 함께 3분동안 묵념을 하였다.
어째튼 인간의 생명은 국적 불문하고 고귀한 것이 아닌가!
(막고굴 북대상 35.5m)
(우측으로 80여m정도에 우리 혜초스님이 썼다는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굴이 있다)
가만히 보니 이 동굴들은 높고 낮음과 배열이 엇갈리는것 같지만 묘하게 질서가 있어 아주 장관을 이룬다.
그때에도 이런 기하학적인 구도를 생각한 토목 기술자들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 동굴들은 역사도 오래되어 처음 파기 시작한 것은 BC366년경 부터라
알려졌고 여러 대에 걸쳐 건설되다가 7C 당나라 초에 이르러 불사동굴이
1,000여개에 달해 당시 千佛洞으로 불렸다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굴은 모두 492개라 한다.
17호굴은 16호굴의 부속굴로서 藏經洞으로 각종 문서와 지도 책자가
쏫아졌다 하는데 프랑스, 일본,러시아 등등의 고고학자들이 몰래 꺼집어
내어 본국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니쁜 넘들!!!)
손소강 가이드가 열쇠꾸러미를 들고 각각의 굴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는데
각종 불상들과 벽화들이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 터라
다른 자료에서 몇가지 사진들을 차용하였다.
(148호굴 남쪽 벽의 彌勒下生經燮)
(막고굴 앞에 멋진 S자 모양의 미인 보살동상)
<출처 : 중국여행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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