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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꽃들이 만발하였습니다.
외돌개는 제주도 서귀포시 천지동에 위치해 있으며,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 제7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높이 20m로 넓은 바다 한복판에 홀로 외롭게 서있다고 하여 '외돌개'라고 불렸으며, 제주 여행하며 한 번 쯤 꼭 둘러볼만한 곳이랍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풍경으로 관광객뿐만아니라 도민에게도 사랑받는 이곳은 제주올레 7 코스 시작점으로 올레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4km 제주도 걷기좋은 길로 손꼽히는 코스입니다.
현대인들의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된 음식문화(飮食文化)에 대한 정보를 궁중요리(宮中料理)를 중심으로 그시대 배경은 조선시대 중종대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하였으나, 장금이 중종의 총애를 받은 의녀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기록이 전무한지라, 모티브만 따왔을 뿐 드라마 내용의 대부분은 픽션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에 궁녀가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 사실 그 당시 수라상은 '대령숙수'라 불리우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궁녀는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궁중요리 붐을 일으켰으니 아이러니.
이병훈 PD의 경력이 묻어나는 연출력과 스토리텔링, 악역마저도 공감이 가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메인 스토리인 장금이의 인생역전과 사랑이 서스펜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평단의 평가 모두, 국내외적으로 성공한 드문 케이스의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특히 시청률은 궤도에 오른 후부터 마지막 회까지 40~50%대 괴물 시청률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기존 사극에서 고작해야 왕을 유혹해 권세를 탐하는 발칙한 요부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던 궁궐 여성의 이미지를 깨버리고, 넘치는 도전 정신과 집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역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해가는 장금의 캐릭터는 여성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MBC의 전매특허인 트렌디 사극이 더욱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각본을 맡은 김영현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사극 전문 작가로 전향합니다. 종류와 조리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아울러 보양식(補陽食)을 포함한 우리고유의 전통음식에 관한 모든 것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제나라 사람 서불(徐市) 등이 글을 올려 "바다에 봉래(蓬山), 방장(方丈), 영주(瀛洲)라는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 청컨대 목욕재계하시고, 어린 남녀 아이를 데리고 신선을 찾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서불을 보내 어린 남녀 아이 수천 명을 선발하여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게 했다. - 진시황본기, 진시황 28년
서복(徐福)을 바다로 나아가게 하여 신기하고 기이한 물건들을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돌아온 서복이 말했습니다.
『신이 바다 한 가운데서 대신(大神)을 보았는데 말하기를 '너는 서쪽 땅 황제의 사자가 아니더냐?'라고 물어서 신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신이 '무엇을 구하려고 왔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복용하면 수명을 더하여 연장할 수 있는 신약을 찾기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신이 말했습니다. '너희 진왕은 예의가 박하여, 그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얻어서 복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 즉시 그 대신을 따라 동남쪽의 봉래산에 이르러 영지(靈芝)로 이루진 궁궐을 보았는데 구리빛을 띤 용의 형상을 한 사자가 나타나 하늘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신이 재배하고 '마땅히 무엇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해신이 대답하기를 '양가집 사내 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공(百工)을 바치면 얻을 수 있으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진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동남 동녀 3천 명과 오곡의 각종 씨앗과 백공들이 만든 물건들을 가져가게 했습니다. 서복은 비옥하고 넓은 평원을 얻자 그곳의 왕이 되어 그곳에 머물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회남형산열전
해안가 절벽에 있어, 제주시에서 재난대피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고 철거대상이나, 근대 건축사의 역사적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가, 안전상 철거를 해야하는 가에 대해 현재도 논란이 있습니다. 만약에 철거가 되거나 옮겨야 한다면, 그 이전에 한번 방문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4.3사건 당시 학살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1948년 음력 10월 24일과 11월 22일, 12월 14일, 12월 24일, 12월 28일 등 여섯 차례의 학살이 정방폭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1949년 1월 22일 인근 안덕면 동광리, 상창리 주민 등 80여 명이 토벌대에 의해 정방폭포 위의 담배공장에서 학살당했고, 살해된 주민들의 시체는 이곳 정방폭포 아래로 흘려 보냈다고 합니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은 이때 동광리 주민 학살사건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1956년 5월에는 4.3 초토화 작전을 주도한 이승만 대통령이
4.3 학살터였던 정방폭포를 찾아 기념촬영을 한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8년에 태풍 솔릭이 제주도를 훑고 지나갈 때 물줄기의 역주행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물줄기가 미처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날리는데 이게 마치 폭포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첫댓글 이박사의 한국기행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한마디의 댓글이 내마음을 훈훈하게 만듭니다.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