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시인들" 시집 발간회

[영란]

"백마강시인들" 시집 발간회 

얼란 김일현 아오스딩

부여 백마강 시사랑 연구회(회장 임용식, 회원 50여명)에서는 매월 3째목요일

오후 2~5시까지 부여읍사무소 2층 사무실에서 홍문표 시인(철학박사, 문학박사,

한국문협 전 부이사장, 전 오산대 총장)을 모시고 6년간 시문학 강의를 개최해왔다.

"백마강 시인들 "은 부여군과 부여읍의 도움을 받아

21명의 시인이 "백마강 시인들 " 2017 제3호를 발간하였다.

하여 올 3회째 12월 "백마강시인들" 시집 발간회가

2~4시까지 홍교수 시강의와 자작시 발표를 1시간 당겨 끝내고

4시부터 발간회가 열렸다. 

먼저 홍교수님과 이를 지원해준 부여군과 부여읍 관계자들에게

꽃다발 증정식과 격려사, 임회장이 발간 경유를 피력하였다.

가수 박현이 공연을 해주었고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홍교수는 백제문화의 재정립을 위해 사비신문에 그 재조명

(백제사 새롭게 보는 시와 이야기

<백제 죽이려는 괴담 백마강과 조룡대>)을 실어왔고

고향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전공인 시학을 펼칠수 있어 행복하다며

존재탐구와 시학의 길을 말씀하셨다.

격려사에서 이제 좀더 적극적인 부여문학을 드러내기 위해 부여시사랑

연구회 동아리를 결성하고 부여정신, 부여정서, 부여의 꿈을

시적으로 승화시킬 동인지 "백마강 시인들"을 3회째 발간이 된 것이

대견한 것이라며 본회 임용식 회장과 시인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고.

사비신문 조종석 취재본부장의 열띈 취재 모습도 보였다.

깜짝 놀랄 "백제사 새롭게 보는 시와 이야기" 후면에 실었습니다.

계벡장군 동상

부여읍

백제 금동대향로 모조품

홍문표 교수 시강

가수 박현이 공연

사회 첫시집 "사랑의 계절"을 낸 김춘희 시인

친구야 달 따러 가자

동녘에

둥실둥실

노랗게 웃고 있는 얼굴

놀랜 가슴에

심장 박동이 빨라져

벅찬 마음

너의 눈동자 속으로

빠져들어

꿀꺽 삼키고

핑크 빛 하늘

팔만 쭉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너의 얼굴

친구야

무등 좀 태워 줘

두 손에다

달 뚝 따서 줄게 

부여 시사랑 연구회 회장 임용식

군의회의장 이경영

군청 자치과장 원종천

평생교육원 교육관 권미옥

평생교육원 주무관 김영미

화 백 이종철

사비문학 회장 이기동

사비문학 전회장 이흥우

시인 부여고등학교 최규학 교장

질경이

거칠고 메마른
   길가에 뿌려져도 하늘을
탓하지 않으리
한평생을
밟히며 밟히며
살아가도
서러워
울지 않으리
모진 시련 닦쳐도
사랑을 품고
비바람 속에서
위안 얻으며
질기게 질기게
살아 남아
꽃피우리

시인/총무 유경희

시인/ 총무 유경희

조종석 사비신문 취재본부장

부여 읍장 정동찬

홍문표 교수 격려사

임용식 회장 인사

시인 박수만 산딸기 농장 사장

시인 서맹현

시인 박종성

 시인 백명자

시인 임병천

시인 권 영 림

 시인 김춘희

시인 유찬희 

필자 얼란 김일현 아오스딩/전 교수/공학박사/시인/부여 내산 마전리

 누나의 마지막 미소

누나야

예뻐졌네

고향에 돌아가려

맑은 미소로

오솔길 따라 비바람 입고

밭이랑에 고은 미소 뿌리며

희망 심더니

흑진주 여섯이나 캐었네

베틀에서 북소리에

미소를 담아

별빛 햇빛을 먹여

빛나는 흑진주 되었네

이마에 입술을 맞추어도

입가엔 여전히 고은 미소

누나야 말 좀 해봐라

쏟아낸 옥루 달빛에 담아

하늘 오르는 길

맑은 미소 피어나게

하얗게 하얗게 닦으렵니다

꽃가마 타고 시집간 누나

예쁜 미소로

꽃가마 타고

별빛 찬란한 고향 가네

2017. 08. 15

시인 이영지교수/문학박사/ 철학박사

사랑 눈 마주해요 <백마강 시인들 >

당신의

눈 안에서 사랑을 찾아내며

아침을 읽어가는

눈으로 마주해요

우리 둘 마주하느라 사랑불이 일어요

아가가 엄마의 눈 읽으며 방긋방긋

웃듯이 나도 아가 눈으로 당신에게

사랑을 일으키느라 봉긋봉긋 웃어요

눈으로 말해줘요

눈으로 알아요

엄마의 사랑 눈을 보느라 아주 예쁜

하늘이 내게로 와요 아담하고 예쁘게

정말로 아름다운 정말로 살맛나는

꽃술이 피어나는

꽃잎이 살아나는

사랑의 이름표만이

꽃잎으로 덮여요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네요

콕콕콕 비밀번호 눌러야 보이네요

당신을 행복함으로 들여놓아 뵙네요

회장 임용식과 부인

회장 大河/ 임용식

사랑은 불꽃을 피우다

산다는 것은 괴로움보다 기쁨이요

그대와 사랑은 불꽃을 피우다

비바람에 가시 꽃 피어도

오가는 세월은 사랑의 꽃봉오리요

그대와 향기는 영광의 꽃이라오

그대와 사랑을 찾아

아름다운 실현의 웃음소리 따라

사랑을 불태우던 시어들이

세월을 지르밟던 인연이란

글자로

덜컹대던 스산한 바람이 밤새 재잘대다

들고양이처럼 앙탈 부리다

들개처럼 울어대다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약이라고

요술쟁이 같은 계절이 동짓달 칼바람에

뜨거운 가슴은 그대와 걸어서

곤두박질치다

애정의 날들이

하늘하늘 피고 피는 하얀 목화꽃 송이송이

소곤소곤

밤새 긴 고드름 되어 눈물 흘리다

알록달록한 꿈도 사랑도 오작교

너머로

시인 동천 임갑빈/부여 장암면 출생

시집 "세원리 남긴 것들", "아직도 못다한말", "오랜 세월의 침묵", "나목의 노래"

나목의 노래

삭풍은 하얀 바람 안고

별들에게 연주를 한다

가지마다 흐르는 선율
테너와 쏘프라노의 이중창

달빛 세레나데 하모니에
시인은 리듬에 가사를 붙인다

* 나목의 꿈은 깊어가고 있었네
봄이 오면 색동옷 입고
산새들 웨딩마치 부르리* 라고

□ 평론

백제사 새롭게 보는 시와 이야기

- 백제 죽이려는 괴담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

홍 문 표

1. 백마강 용과 백제 정신

한국 지도를 놓고 보면 대양에서 방금 나온 토끼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대륙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려는 형상이라서 지도만 보아도 대륙으로 무한히 도전하려는 한 민족의 기상을 느끼게 한다. 그 뿐인가 지도의 등줄기에는 높은 산들이 울창한 산림을 이루고 해안지대로는 넓은 평야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산에는 산림자원과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들에는 곡물이 풍부한 정말 백성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호조건인 천혜의 땅이다. 그런데 이러한 천혜의 땅을 풍요롭게 가꾸고 있는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넉넉하게 산과 들을 적셔주고 있는 풍부한 강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강들을 보면 마치 우리들 온몸의 구석구석을 돌고 있는 혈관들처럼 골고루 흐르고 있어 정말 살아있는 토끼의 그 토실한 맥박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이 땅의 강들은 튼실한 나라의 동맥이 되어 지역마다 골고루 흘러넘치고 있는 것인지, 세계 지도를 놓고 보아도 비록 광대한 땅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산과 강과 들이 오밀조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금수강산 반도삼천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대륙을 가로 막아 천혜의 방어선이 되고,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이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비옥한 들녘을 적시며 우리들의 넉넉한 젖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강이란 무엇인가, 강은 단지 개울물이 합쳐진 큰개울이 아니다. 인간의 몸이 혈관의 순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인류문명의 목숨도 바로 강이라는 혈관의 순환으로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이기에 강은 문명의 원천이고 역사의 동맥이고 그 지역을 살고 있는 동식물은 물론 인간들의 목숨 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시간에 세계 4대문명 발생지를 말할 때면 늘 강물과 함께 언급하게 된다.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 중국의 황하강 문명, 인도의 인더스, 갠지스강 문명, 바빌로니아의 티그리스, 유프라데스강 문명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문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의 도시문명도 강이라는 젖줄이 없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강은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옛날 조상들은 강을 신성시하고 신격화하여 풍요와 안녕을 기대하는 강신제(江神祭)를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강을 신격화 하는 과정에서 저들은 힘차게 굽이치며 범람하며 자욱한 안개를 뿜어대며 하늘로 올라가 비바람 몰아치는 저 변화무쌍한 장관을 보면서 강도 살아있는 존재, 의지와 감정을 가진 신비로운 존재를 상상하면서 마침내 용(龍)이라는 영물(靈物)을 창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동양에만 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있고 기독교에도 있고 불교에도 있고 유교나 도교에도 있다. 그만큼 인간은 강과 물에 대한 공통된 외경심을 용이라는 신비로운 신앙을 공통으로 가져야만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용을 표현하는 데도 최고의 신령한 동물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동양에서의 용은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를 닮은 신묘한 형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아홉 종류의 동물을 곱으로 한 81개의 비늘이 있고 소리는 구리쟁반이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으며 턱밑에는 명주(明珠)가 있고, 목 아래는 거꾸로 박힌 비늘, 역린(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공작꼬리 같은 보물 박산(博山)이 있다. 이처럼 동물의 최고 장점만을 살린 것이 용이기에 그 조화 능력이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용을 신으로 숭배하게 되는데 이러한 용의 신격화는 결국 굽이치는 강물의 생명력과 천지조화의 신통력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용은 물의 신이고, 강의 신격화다. 일찍이 관자는 수지편(水地篇)에서 “용은 물에서 낳으며, 그 색깔은 오색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이 있는 신이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덮을 만큼 커질 수도 있다. 용은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로 치솟을 수 있고, 아래로 들어가고자 하면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도 있는 변화무상(變化無常)하고 상하무시(上下無時)한 신이라”고 하였다. 그 뿐인가 용은 신출귀몰하는 것만 아니라, 풍운조화를 통해 농사를 지배하고 나아가 백성들의 길흉화복은 물론 국가의 안위를 다스리는 막강한 신으로 격상하게 된다. 영조 때 홍봉한의 「문헌비고」를 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29회의 용이 출현하고 있는데 용의 출현 뒤에는 국가적으로도 태평성대, 성인의 탄생, 군주의 승하, 큰 인물의 죽음, 농사의 풍흉, 군사의 변동, 민심의 흉흉 등 거국적인 대사가 있었다고 했으니, 과거 용에 대한 신앙은 단지 민간신앙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인정된 신앙이고 사상이고 예언이고 비전이었다.

최세진은 「훈몽자회」에서 용(龍)자를 ‘미르 용’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미르란 물(水)이라는 말과 미리(豫) 라는 옛말에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용은 물의 신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적 능력이 있음을 말해준다. 불교에서 미래불을 미륵불이라 하는데 여기서 ‘미륵’도 미르와 상통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용은 처음에는 강이나 물을 상징하는 신비한 영물이었으나 차츰 신격화 하여 강신과 물신이 되어 용왕제나 용신제의 주체가 되었으나 더욱 그 신통력이 확대되어 육지에서는 토룡신이 되고 산에서는 산세에 따라 선룡도 있고, 흉룡도 있다. 또한 하늘에 올라가서는 천룡(天龍)이 된다.

또한 고대인들의 강물에 대한 신앙은 다양한 용 이야기로 확대되었고, 수많은 설화문학을 만들었다. 용이 늪이 되었다는 용소설화, 연못이 되었다는 용연설화, 우물이 되었다는 용정설화, 굴이 되었다는 용혈암 설화, 입신출세를 예시한 용꿈설화가 모두 그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용 신앙이나 용 사상을 현대적 사고로 본다면 매우 비과학적인 것이고 허무맹랑한 픽션(fiction)일 수 있다. 그래서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 삶의 위안을 받으려는 과거인들의 욕망이나 꿈을 상상적으로 만들어낸 판타지나 우매한 미신으로 돌릴 수도 있다. 애당초 용의 출현부터가 비현실적이었고 여러 동물의 장점을 모아 만든 가상의 동물이고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상의 동물을 신으로 만들어 그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국가나 사회나 개인이 의지하고 제사하고 복을 빌었다는 것은 분명 허망한 우상이고 미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용 신앙이나 용 사상의 근원은 바로 모든 생명들의 원천이 되는 물의 소중함, 물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의 상징적 표현이고 그 절실함에 대한 정성의 행위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용신앙의 그 간절한 정성과 기대에 대한 의미는 결코 과학적으로만 해석될 일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했는데 용이야말로 물이나 강에 대한 인간의 소망을 드러낸 실상이고 시적으로 말하면 강물의 메타포 즉 은유적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물에 대한 소중함, 강물이 주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만일 지상에 물이 없다면, 아니 백제 땅에 한강이 없고 금강이 없었다면 위례성, 웅진성, 사비성에 도읍을 정할 수가 있었겠는가. 만일 부여에 백마강이 없었다면 찬란한 백제의 역사, 백제문화 그리고 오늘의 부여가 있었겠는가. 아니 앞으로 부여가 그리고 백제의 후손들이 계속 기운 생동하는 생명력으로 생존할 수는 있겠는가. 백제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구비치는 백마강, 그 생명의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기 때문이다. 아니 백마강을 상징하는 백마강 용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백마강이 넘실대고 백마강 용이 살아서 꼬리치며 비상하며 힘차게 용트림 질을 할 때 백제는 풍요롭게 되고 백제 인들의 사기도 충천하게 되어 백제 역사도 백제의 후손들도 흥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백마강은 계속 흘러 넘쳐야 한다. 아니 백마강 용도 함께 살아서 용트림 질을 해야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계속 흘러넘쳐야 하고 계속 용트림 질을 하면서 백제의 들녘을 적시고 삶의 안위를 지키며 풍요와 번영을 기약해야 한다. 백마강 용이 살아서 소용돌이치고 하늘로 비상하며 활개를 친다는 것은 바로 백제인, 백제 정신, 부여인의 기운 생동하는 힘찬 생명력, 자부심,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함께 넘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은 백제 죽이기 괴담이다

백제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구비치는 백마강, 그 생명의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니 백마강을 상징하는 백마강 용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마강이 넘실대고 백마강 용이 살아서 꼬리치며 비상하며 힘차게 용트림 질을 할 때 백제는 풍요롭게 되고 백제 인들의 사기도 충천하게 되어 백제 역사도 백제의 후손들도 흥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지금도 부여의 백마강은 억년 변함없이 구비쳐 흐르고 있는데, 그래서 백마강 용도 살아서 날마다 소용돌이치고 있는데 유독 부여 지방에 떠돌고 있는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을 보면 백마강의 용은 백제 멸망과 더불어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낚시 바늘에 꿰어 처참하게 죽었다. 신출귀몰하는 천하 영물인 용은 쉽게 죽지 않는다. 아니 죽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백마강 용은 백마고기 한 점에 무력하고 허무하게 죽었다는 악랄한 전설이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이다.

전설대로라면 백제의 안위를 지키고 백제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영원히 살아서 신통력을 발휘해야할 백마강 용이 죽었으니 백제도 죽었고 백제왕도 죽었고 그리되면 기맥이 끊긴 백제 땅은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신화적으로 보면 강이나 용이나 왕은 바로 국가와 동일시되는 것이고 민족정신과 동일시되는 것이고 생성 번영과 동일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설은 용이나 왕만 죽은 것이 아니라 백제인의 혼, 백제인의 기상, 백제인의 꿈과 비전마저 죽어버린 것이다. 풍요와 번영과 국력과 정신을 상징하는 강이 죽고, 용이 죽고, 왕이 죽은 이 불모지 땅에서 무슨 큰 인물이 나고, 번영이 있고 미래가 있겠는가.

이처럼 무서운 저주의 주문을 독소처럼 풍기고 있는 것이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이다. 그런데도 한심하고 답답한 것은 백제 왕국이 가버린 지 천오백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이러한 악의적 저주의 괴담을 아무런 비판이나 반성이나 검증도 없이 그냥 받아드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슨 백제의 자랑스런 문화재인 양 어리석게 떠벌리고 사는 백성들이 있으니 도대체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어느 나라 자손이고 어떤 역사의식, 어떤 민족정신으로 살아왔으며, 살고 있으며, 살아갈 생각인지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우리가 한 평생 만물의 영장인 인간임을 자부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고 자부심이고 자존감이다. 그런데 그 자존감의 원천은 바로 자랑할 만한 과거의 역사가 있고 전통이 있고 기대하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선조가 있고 영웅적인 이야기가 있고 빛나는 문화가 있을 때 그 자존감으로 후손들은 더욱 우람한 거목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가문과 족보를 중히 여겼고 나라는 빛나는 자긍심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우렸다.

요즘 중국에서는 동북공정론을 제기하고 있다.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생각는 정치가도 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이 현재 중국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특히 고구려를 고대중국의 지방정권 정도로 주장하면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백두산과 단군으로 시작되는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황하강에서 시작되는 역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뿐만 아니라. 고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를 중국이 지배한 것이라면 일본은 한반도 남부인 임나를 2백년간이나 지배했다는 임나본부설이란 허구의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렇게 주변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자국 역사의 자존감을 세우려는 것이 주변 강대국의 역사에 대한 야심이다.

그러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역사마저 도둑맞고 짓밟힐 수 있는 것이 냉엄한 국제간의 역사 전쟁이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역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논리가 있어야하고 이들 역사 왜곡 전쟁의 도전에 맞서 우리의 자존감 있는 역사를 세워 강력히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 간에는 무력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쟁도 있고 역사 전쟁도 있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 국가의 자부심이고 자존감이고 국력이고 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중하고 냉혹한 역사 왜곡의 살벌한 시대인데도 아직 우리는 천오백년 전 이 땅을 유린하고 자존감자저 말살하려고 저들이 뿌려 놓은 전혀 사실 무근한 악의적인 괴담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사실인양 우리의 대단한 문화재인양 무심하게 떠벌리고 산다면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부끄러운 역사의식인가.

물론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 황당한 괴담들을 한낱 허구라고 웃어넘기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심한 상처가 아닐 수가 없다. 왕도의 후예라고 자부하고 싶었는데 우리의 기상이고, 자부심이고, 꿈과 비전이 되는 강도 죽고, 용도 죽고, 우리의 왕도 무참히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린 마음속에는 심한 상처가 되고 열패감이 되어 어려서부터 패배감이라는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를 갖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백제 후손들의 잠재적 콤플렉스가 된다.

최근까지 부여지역을 떠돌고 있는 최악의 악성바이러스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의 줄거리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백마강 이무기를 죽였다는 전설이다.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풍전등화에 놓이고 말았다. 뱃길을 이용한 당나라의 침공은 파죽지세로 금강하구를 지나 순식간에 사비성에 당도하였다. 그때 백제를 구하고자 백제의 수호신인 이무기가 사력을 다해 회오리바람으로 강물을 뒤집고 뱃길을 막았다. 이때 소정방이 고란사 위 돌출된 바위에서 이무기가 백마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백마고기를 낚싯밥으로 하여 이무기를 잡았더니 강이 조용해지고 이무기가 죽게 되자 의자왕은 항복했으며 백제는 망했다. 그래서 이 강을 백마강이라 하고 그 바위를 조룡대라 했다는 줄거리다.

두 번째는 백마강 용을 죽였다는 전설이다.

이는 백마강 이무기 전설에서 이무기를 용으로 바꾸어 꾸민 전설이다. 이 강의 용이 당군을 막기에 소정방이 바위에서 백마고기로 이 용을 잡았기에 백마강과 조룡대란 명칭이 생겼다는 전설이다. 일반적으로 이무기라면 강에서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용의 새끼다. 즉 용꿈을 꾸고 있는 미완의 용이다. 그렇다면 이 전설은 강물의 수호신인 이무기에서 용의 이야기로 격상시켜 백제의 기를 죽이고 맥을 끊으려는 악의적인 전설로 강화된 것이다.

세 번째는 의자왕이 둔갑한 백마강 용을 죽였다는 전설이다.

이는 백마강 용을 의자왕, 즉 왕권과 동일시하여 의자왕이 낮에는 궁에서 왕 노릇 하지만 밤에는 강의 용이 된다는 호국용의 역할을 하는 신성한 존재로 만들어 놓고는 당나라 수군이 강으로 오르자 의자왕 용이 회오리바람으로 강물을 뒤집고 안개로 뱃길을 막았다. 이때 소정방이 의자왕 용이 백마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고란사 위 쪽 돌출된 바위에서 백마를 낚싯밥으로 던져 의자왕 용을 잡고 백제를 함락 시켰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이 강을 백마강이라 하고 그 바위를 조룡대라 했다는 줄거리다. 이는 백마강 용에 패주 의자왕까지 끌어들여 왕을 신성시하는 백성들의 꿈과 자존심을 좌절시켜버리려는 더욱 악의적인 전설이며 패전국 왕의 이미지를 철저히 제거하려는 괴담이다.

네 번째는 무왕의 화신인 백마강 용을 죽였다는 전설이다.

이는 백마강 용을 의자왕에서 그의 부왕인 무왕으로 바꾼 전설로 더욱 교묘하게 내용을 확장하여 백제정신 백제의 전통까지 짓밟은 이야기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백제 사직이 무너지고, 망국의 치욕에 떨던 의자왕도 포로의 몸이 되어 멀리 불귀의 땅 당경에 끌려가자 돌연 고요하던 백마강에는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나라 군선들이 부소산 근처에 접근하기만 하면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시키며 돌풍을 몰아오고 호수와 같던 강물은 마치 바다의 노도와 같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것이었다.

사비성을 공략하고 공주의 옹진성에 머물고 있던 소정방은 이 소식을 듣자, 일관을 불러 그 원인을 알아보게 하였다. 일관은 소정방에게 아무래도 백마강의 용신이 된 무왕의 혼이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알리었다.

“그렇다면 무슨 묘책이 없겠는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용은 백마고가를 가장 즐긴다 하오니, 그를 미끼로 하면 틀림없이 용이 걸릴 것입니다.”

소정방은 일관이 일러준 대로 부소산 북쪽 강물에 솟아난 바위에 올라 철사 낚싯줄에 백마의 고기를 끼워 강물 속에 던졌다. 이 때 용은 평소 좋아하는 백마의 고기를 보고 덥석 물었다. 바위 위에서 낚싯줄을 잡고 있던 소정방은 “옳지 걸렸구나!”하고 낚싯줄을 당겼다. 용은 아픔과 괴로움에 몸부림 쳤다. 소정방과 필사의 싸움이 계속 되었다. 바위에는 소정방의 발자국과 낚싯줄이 마찰되어 흠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끝내 황금 비늘을 공중에 번쩍 빛내며 백마강 동쪽 마을에 떨어져 폭양에 썩기 시작하더니 그 지독한 썩은 내는 멀리 80리 떨어진 공주의 한 마을까지 진동하였으니 이때부터 그 마을 이름은 「구린내」가 되었고 소정방이 올라탔던 수중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 이름 지어졌으며, 또한 용이 낚인 부근의 강 이름도 이때부터 백마강(白馬江)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더욱 그럴듯하게 꿰맞춘 가증스런 설화의 줄거리다.

이들 전설의 표현이나 구성을 보면 백마강 전설은 백마강 이무기 전설에서 백마강 용의 전설로, 백마강 용과 의자왕 전설에서 백마강 용과 무왕의 전설로 발전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할 핵심 독소는 소정방 이라는 자가 백제의 상징인 백마강에서 호국용을 죽였다는 것이고 그것도 모자라 백제왕까지 끌어들여 이들의 화신인 용을 낚시로 꿰어 잔인하게 죽였다는데 있다. 전쟁터에서는 대장이 죽으면 그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군기만 빼앗겨도 전쟁은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 전설은 백제인들이 신성시하는 호국용이나 백성들이 어버이처럼 섬기는 왕마저 잔인하게 죽임으로 백제인의 기를 꺾고 백제 정신, 백제의 혼, 백제의 전통과 역사마저 무참히 짓밟고 말살하여 다시는 백제 땅에서 백제의 싹이 돋아날 수 없도록 만들어 놓겠다는 정말 악의적인 악마의 저주가 바로 백마강 전설이고 조룡대 전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3. 누가 백마강 조룡대 괴담의 씨를 뿌렸나

-고려시대 김춘추의 후손 김일연이다.

백마강은 부여의 생명 줄이고 금강은 백제와 오늘의 충청도 생명 줄이다. 그러기에 금강이 살아서 넘실대면 부여가 풍요롭게 되고 충청도가 번영하게 된다. 특히 농업중심의 고대사회에서 강물은 그들의 생사를 쥐고 있는 신성한 존재였다. 강이 적절하게 물을 공급해 주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중한 것이 강이었기에 강의 소중함을 용이라는 신적 존재로 상징화했고, 이러한 신앙은 백성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왕과 동일시되어 강과 용과 왕은 백성의 목숨은 물론 국력과 국운의 상징이 되어 신으로 모시는 민족의 종교가 되고 백성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성시하는 강물의 용이나 왕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이는 악랄한 괴담은 언제부터 누가 왜 날조 유포한 것일까? 백제 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백제 죽이기 전설을 날조했을까, 이는 분명 백제에 심한 피해의식을 가졌거나 원한을 품었거나 아니면 백제가 다시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세력들이 꾸민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현재 떠돌고 있는 백마강 전설을 분석해 보면 첫째유형은 백마강의 이무기와 용을 죽이는 내용이다. 이무기와 용은 그 지역의 생육과 번성을 도와주는 영물이고 나라를 지켜주는 호국신이기 때문에 이들을 죽임으로 생육과 번영의 기운을 누르고 호국신을 죽여 국가의 기운을 거세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유형은 이를 더욱 확대하여 백마강 용을 의자왕과 동일시하여 의자왕 용을 죽임으로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왕인 의자왕을 죽이고, 심리적으로는 백제인들이 믿는 호국신을 함께 죽여 백제사 백제정신까지 모두 압살하려는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은 백제에서 죽은 게 아니라 당나라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자왕 대신 부왕인 무왕까지 용을 만들어 죽이는 정말 집요하고 야비한 악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이다.

왜 하필이면 무왕일까. 무왕은 백제의 어느 왕보다 돋보이는 영웅적 신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궁남지 연못의 용과 교통하여 태어난 용의 아들이다. 그런가하면 어린 시절 신라에 들어가 서동요 한 가락으로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꾀어온 인물이다. 거기다가 전쟁에도 지략이 뛰어나 신라인들을 낙동강 동쪽으로 몰아냈다. 미륵사를 지어 미륵불국토의 이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니 백제의 기를 꺾고 재기를 막는 데는 무왕의 영웅적인 신화를 거세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강 용을 죽였다는 이 괴담의 진원지는 백제에 대한 원한과 두려움에서 당을 끌어들여 백제를 친 신라를 첫째로 지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문헌으로는 백제가 패한 후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에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마강에서 용을 낚았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백제가 망한 660년에서 통일신라가 망한 935년의 역사라면 945년에 편찬한 「구당서」가 대표적인데 그 「구당서」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한 기록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황제가 명하여 웅진도대총관을 제수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토벌하게 했다. 소정방이 성산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웅진강 입구에 이르렀는데, 적들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강에 웅거하고 있었다. 소정방이 강의 동안(東岸)에 올라, 산의 지세를 이용해 진을 치고, 적과 크게 싸웠는데, 수군의 올린 돛이 바다를 뒤덮고 계속 이어져 왔다. 적의 군대가 패배하였는데, 죽은 자가 수천 명이요, 나머지는 스스로 달아나 흩어졌다. 소정방은 강안 위에서 진영을 끼고 있으니, 수륙으로 아울러 진군하는데, 노를 빨리 저으며 북을 쳐 고조시키고, 곧바로 도읍으로 향했다”

이는 당황제가 소정방을 백제에 보내어 토벌하게 하고 그 전투기록을 당의 역사서인 「구당서」에 기록한 것이니 이보다 더 정확할 수가 없다. 과장을 좋아하는 저들이기에 만일 소정방이 백마강에서 용을 낚았거나 왕의 화신인 용을 낚았다면 이를 기록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전승국인 당나라의 소정방전에도 그런 사특한 괴담은 단 한마디도 없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부터 백마강 용이나 소정방이 낚시질로 잡았다는 악의적인 괴담을 날조한 것일까. 그 장본인은 고려시대 바로 백제를 쳤던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후손인 김일연이다. 그는 1280년경「삼국유사」라는 야사를 썼다. 그는 이 야사를 쓰면서 권제2에 백제에 대한 기록을 쓰는데, 이보다 3백년 앞서 기록된 「구당서」에도 없고, 이보다 1백년 앞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없는 이런 내용을 추가하였다.

“또 사비하(泗沘河) 강변에 바위 하나가 있는데, 소정방이 일찍이 이 바위 위에 앉아서 물고기와 용을 낚았기 때문에 바위 위에는 용이 꿇어앉은 자국이 있다. 그래서 이름을 용암(龍巖)이라고 하였다.(又泗沘河邊有一巖 蘇定方嘗坐此上 釣魚龍而出 故巖上有龍跪之跡 因名龍巖)”

참으로 야비한 괴담이다. 「구당서」에도 없고, 「삼국사기」에도 없는 소정방 일화를 이렇게 날조해서 명색이 역사서라는 곳에 삽입했다. 내용인즉 소정방이 금강변 바위에 앉아 물고기와 용을 낚는데 용이 낚시 바늘에 꿰여 발버둥치다 그 바위에 꿇어앉았기에 그 바위를 용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정방이 할 일 없어 부소산 너머 후미진 강의 조그만 바위에서 낚시질 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과거에 어룡(魚龍)이라면 그냥 물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용이란 말로 단정하고 있다. 그 뿐인가. 그 용이 바위에 꿇어앉았다 했는데, 여기에 김일연의 무서운 저의가 숨어있다.

만에 하나 정말 소정방이 여기서 낚시질을 했다면 물고기 몇 마리 잡았다는 말로 충분하다. 그런데 신라 김춘추의 후손 김일연은 백제가 패한지 6백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사서에도 소정방이 여기서 용을 잡았다는 기록이 없는데도 이런 괴담을 삽입한 것이다. 그야 김일연도 당시 소문을 적은 것이라고 변론할 수도 있다. 그게 괴담을 퍼뜨리는 자들의 ‘카더라’ 수법이다. 그러나 김일연의 이 용암전설은 ‘카더라’ 수준이 아니라, 대단히 야비하고 추악한 사대주의적 친 신라적 저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용을 낚았다는 주인공 소정방의 문제다. 어째서 신라 김춘추의 후손인 김일연이 백마강에서 용을 낚은 주인공을 신라의 김춘추나 김유신으로 하지 않고 일개 파병장에 불과한 당의 소정방으로 했는가. 이는 중국을 대국으로 황제국으로 떠받들며 속국으로 자처했던 사대모화사상의 발로다. 이런 사대모화사상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계속된 것이었다. 지금도 중국 아니면 못살 듯이 아첨하는 얼빠진 정치인들이 있는데, 조공을 받치며 살아야했던 과거에는 중국에서 하는 일은 모두 천자의 뜻이고, 주변국에서 하는 일은 모두 오랑캐 짓이었다. 백제사가 왜곡되고, 백제 패망 이후 수많은 전설 속에 소정방이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일연이 얼마나 사대주의였는지는 「삼국유사」에 인용된 경순왕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지극한 정성으로 중국을 섬겨서 조빙(朝聘)하는 사신이 수륙으로 끊이지 않았고, 항상 자제들을 중국에 보내어 조정에 나가 숙위(宿衛)하게 하고 국학(國學)에 들어가 공부하게 했다. 이리하여 성현의 풍화(風化)를 이어받고 오랑캐의 풍속을 고쳐서 예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또 중국 군사의 위엄을 빌려서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그 땅을 위해서 군현으로 삼았으니 가히 장한 일이라 하겠다.”

중국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조빙(朝聘)한다 했다. 중국 성현의 문화를 받아 조선 같은 변방의 오랑캐 나라들이 풍속과 예의 나라를 만든다 했다. 중국의 군사력을 빌려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했으니 이 또한 장한 일이라 했다. 이것이 김일연의 중국관이고 역사관이다. 정말 사대주의 극치를 보이는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떠받드는 중국의 파병장 소정방 대장님을 신처럼 추켜세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로 김일연의 용암 설화의 문제점은 어룡인 물고기를 용으로 규정한 것도 괘씸한 일이지만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바위에 “용이 꿇어앉은 자국”이라는 말이다. 용궤지적(龍跪之跡), 여기서 궤(跪)자는 ‘꿇어앉을 궤’자다. 그렇다면 백마강 용이 소정방의 낚시에 걸려 잡힌 정도가 아니라 소정방에게 잡혀서 신라를 도와준 소정방 대장님 앞에 용이 꿇어앉았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했거니와 용은 백마강의 생명력이고 백제의 호국용이고 왕권의 상징이다. 그런 용이 소정방 앞에 꿇어앉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백제국에 대한, 백제인에 대한 모욕인가. 김일연은 바로 이 점을 노려 백마강 용이 ‘잡혔다’ 하지 않고, ‘꿇어앉았다’는 치욕적인 문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당의 소정방 대장님 앞에서는 백마강의 호국용마저 무릎 꿇을 만큼 대단한 장수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한편으로는 백제의 호국용마저 죽여서 백제의 사기를 꺾어버리겠다는 저의를 함께 드러내고 있는 악랄한 저주의 괴담이다.

물론 필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김일연의 「삼국유사」의 역사적 가치를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들이 신라의 후손으로, 백제를 침공한 김춘추의 후손으로 백제사를 기술하면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편파적으로 백제사를 사특한 괴담까지 끌어들여 폄하하고 백제정신마저 죽이려는 저주의 덫까지 놓았다는 사실만은 문인이고 학자의 한 사람인 필자로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적 역사 왜곡은 앞서 낙화암 전설에서도 그랬음을 지적하였다. 같은 신라 김춘추의 후손인 김부식은 「삼국사기」라는 정사를 쓰면서 백제 침공의 이유를 밤마다 부여 땅에 귀신들이 나타나 백제가 망한다는 괴변이 일고 의자왕이 타락해서 당에 원병을 청했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변을 늘어놓았고 역시 신라 김춘추의 후손인 김일연은「삼국유사」를 쓰면서 백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전설의 근원설화인 타사암 전설을 삽입하였다, 거기다가 백마강 용 잡기 전설인 용암전설까지 삽입하여, 김부식은 백제침략의 원인을 왜곡하였고, 김일연은 백제침공 이후 백제정신마저 말살하려는 용암괴담을 삽입한 것이다.

4. 악성 괴담은 후대로 오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백제가 망한 사실을 가장 신빙성 있게 기술했던 문건은 당시 백제를 침공했던 당이 망한지 30여년이 지난 945년에 기록한 중국 사서인 「구당서」라 했다. 그런데 구당서의 백제에 대한 기록, 그 중에서도 직접 파병장으로 참여한 소정방전 어디에도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강가에서 용을 낚았다는 기록이 없다고 했다. 또한 김일연의 「삼국유사」보다 1백년 앞서 1145년에 편찬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소정방의 백마강 용 잡기 전설은 없었다고 했다. 엉뚱하게도 백제가 망한지 6백여 년이 지나고 고려시대도 후기에 해당하는 1280년에 김일연의 「삼국유사」에 소정방이 백마강에서 용을 잡았다는 ‘용암’의 악성루머를 처음 삽입하면서 이 전설은 후대로 오면서 더욱 악의적인 백제 죽이기 괴담으로 악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김일연의 「삼국유사」까지만 해도 백마강 유래가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기 때문이라느니, 그래서 이 바위를 ‘조룡대’라느니 하는 전설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백마강 명칭은 사자하 또는 백강(白江)이었고 소정방이 어룡을 잡았다는 무명의 바위를 용암으로 명명하는 정도였다. 그런 전설이 고려를 지난 1500년대 조선조 중기 성종시대 편찬한 역사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면 용암(龍巖)이 조룡대(釣龍臺)로, 백강이 백마강(白馬江) 전설로 확대재생산된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충청도 부여군의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호암(虎巖)으로부터 물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부소산 아래에 이르러, 한 괴석이 강가에 걸터앉은 듯이 있는데 돌 위에는 용(龍)이 발톱으로 할퀸 흔적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 강에 임하여 물을 건너려고 하는데 홀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므로 흰 말로 미끼를 만들어 용 한 마리를 낚으니, 잠깐 사이에 날이 개어 드디어 군사가 강을 건너 공격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강을 백마강이라 이르고, 바위는 조룡대라고 일렀다 한다.”

이 내용을 보면 고려 후기 김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소정방이 용을 잡았다는 정도의 내용이 조선조 중기「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다는 내용으로 추가 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강 이름을 백마강이라 했고, 용암이란 바위도 조룡대라고 했다는 황당한 괴담으로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고려 후기 김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용암’이었던 것을 ‘조룡대’로 바꾸는 것은 일견 가능한 것이지만, 부여지역의 금강을 백마강으로 부르고 있는 이유를 소정방이 용을 낚을 때 백마고기를 미끼로 썼기 때문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날조다.

만일 소정방이 백마고기를 미끼로 용을 잡았다면, 천하의 사대주의 친 신라 편파주의 김일연이 「삼국유사」에 소정방의 용잡기 괴담을 쓰면서 백마고기 미끼설을 놓칠 리가 없다. 따라서 조룡대의 소정방 용잡기 괴담에 백마고기 미끼설을 첨가하여 날조한 것은 백제가 패한지 1천년이 지난 신라도 고려도 아닌 이씨조선 중기였다는 사실이 문헌으로 분명해진다.

그런데, 백마강과 조룡대의 괴담은 여기서 또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 나도는 백마강이나 조룡대의 전설을 보면 이보다도 훨씬 악랄한 내용으로 변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근 각종 자료나 인터넷을 통해 떠돌고 있는 백마강 전설은 조선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기록해 놓은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기에 이 강을 백마강이라고 했다”는 기록보다도 훨씬 악랄하고 정말 비열함의 극치를 보이는 내용이다.

그 하나는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그냥 용을 낚은 것이 아니라 “낮에는 왕, 밤에는 용이 되는 의자왕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괴담이고, 다른 하나는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죽어서 호국용이 된 의자왕의 부왕인 무왕의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괴담이다. 그렇다면 의자왕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전설과 무왕의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이 참혹하고 악랄한 전설은 또 언제부터 떠돌게 된 것일까?

낙화암 괴담도 무명의 바위가 고려시대 김일연이 「삼국유사」에서 타사암이란 괴담을 제기하면서 낙화암이란 명칭으로 변질되었고, 그 괴담의 내용도 처음엔 의자왕과 후궁들에서 많은 궁녀들로, 조선조와 일제에는 삼천궁녀들로 수많은 백제여인들로 확대재생산된 것처럼, 백마강 괴담도 처음엔 무명의 바위에서 고려조 김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용암이란 괴담을 제기하면서 조선조에는 조룡대란 명칭으로 변질되었고, 백마강의 유래도 고려조엔 소정방이 용을 잡았다는 내용에서, 조선조엔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로, 최근엔 의자왕이 둔갑한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로, 마지막엔 무왕의 화신인 백마강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을 보면 앞으로는 또 누구를 끌어들여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을 더욱 악의적으로 우려먹을지 모르는 일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전설의 무서운 피해는 그이야기기가 원천적으로 민심을 교란하거나 교훈하기 위해 철저히 꾸며낸 허구, 즉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문학(口傳文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이야기 속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고 당시의 사건이 있고 현재까지 실재한 사물이 엉겨있기 때문에 무지한 백성들일수록 그것을 사실로 믿는 다는 데 있다. 이는 역사 드라마를 보고 그것을 진짜 역사인줄로 아는 것이나 가짜뉴스를 진짜로 아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 전설이나 괴담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문학전문가나 비평가의 예리한 통찰과 고증이 필요한데 그 대표적인 고증방법은 바로 시대별 문헌에 나타난 기록들을 비교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마강이나 조룡대 또는 낙화암의 그 악의적인 괴담들도 시대별 문헌을 비교 연구하게 되면 그 진위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이 언제 어떻게 시작하여 계속 변질 되었는 지를 다시 정리해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문헌으로 백제가 패한 660년부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중기까지, 즉 백제사를 기록한 720년의「일본서기」 945년의 「구당서」 1281년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통해 볼 때, 이 시기까지는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강가에서 용은커녕 낚시질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다. 그러던 것이 고려 후기 1280년대 김일연이 「삼국유사」에 와서야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강의 바위에서 어룡을 잡았기에 그 바위를 ‘용암’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고려시대까지는 조룡대란 말도 없었고, 강의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기에 백마강이라고 한다는 괴담으로 발전하지도 않았다.

조룡대란 말과 백마고기로 강의 용을 낚았기에 백마강이라고 했다는 괴담은 조선 중기 1480년대 성종의 지시로 여러 신하들이 전국의 지리풍속 등의 자료를 수집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은 1530년대 중종에 의해서 다시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증보된 조선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다. 이 책은 「삼국유사」처럼 개인이 주관적으로 편찬한 것이 아니라 왕명에 의해 전국 군별로 관아에서 직접 채집한 것이어서 가장 객관성 있는 기록으로 조선시대의 풍속과 전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백마강 용을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말은 있지만 백마강 용이 의자왕이라든지 그 부친 무왕의 화신이라는 말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강 용을 의자왕이나 무왕으로 둔갑시켜 이를 백마고기로 낚았다는 이 악질적인 괴담은 언제 누가 꾸민 것일까,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연대나 그 신빙성으로 보아 조선조는 결코 아니다. 그 이후로 보아야한다. 조선조 이후라면 언제인가, 바로 일제 강점기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에 의자왕 용이 등장한 것은 1950년에 발표된 홍사준의 「백제의 전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조룡대와 백마강’ 항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소정방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오날은 일기가 이리 사나오냐?」하니 늙은 사람 하나가 말하기를 「다름이 아니오라 백제나라님은 필시 용의 자손(무왕이 용의 아드님)으로 낮에는 사람이 되시어서 우리나라 정치를 하시고 밤이면 용이 되시어 부소산 북쪽에 있는 수궁(水宮)에 계시는데 이 근래에는 밤낮 할 것 없이 수궁에만 계시다가 오날 서울이 함락되게 되니까 수궁에서 나라님이 조화를 이르켜서 이리 날씨가 나쁜 것이오」”

여기서 백제나라님은 당시 의자왕으로 이는 의자왕이 호국용이 되어 강을 지킨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자왕 용을 백마고기로 죽이는 괴담을 만들었으나 실제 의자왕은 백제 멸망 후 당에 가서 죽은 것이 밝혀지자 의자왕 대신 그의 부친 무왕으로 교체한 것이 최근의 백마강 조룡대 전설이다. 홍사준은 1932년부터 부여군청 고적보존 업무를 담당했고 부여박물관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그의「백제의 전설」 내용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수집된 것들로 보아야 하며 실제 필자와 같은 일제에 태어난 세대들은 의자왕 용에 대한 괴담을 어린 시절 모두 들은 것들이다. 따라서 의자왕의 용이나 무왕의 용에 대한 조룡대 괴담은 일제 강점기부터가 분명하다.

도대체 저들은 백제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백제가 망한 그 당시도 아니고 통일신라시대도 아닌 이미 6백년이 지난 고려시대에 이런 악의적 괴담의 씨를 뿌렸고, 백제와 무관한 조선조 시대나 일제 강점기로 내려오면서 더욱 악랄한 괴담으로 악화되었으며 이미 천오백년이 지난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이 지역에선 그 저주의 더러운 괴담을 떠벌리며 살고 있으니 이 어찌 한심하고 참담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백제 땅에 잠복된 소정방이 귀신이 얼마나 독하기에 아직도 이 지역엔 케케묵은 소정방이 귀신이 살아서 독기를 뿜어대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이런 저주의 괴담을 계속 꾸며대고 또 버리지 못하는 백성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백제 인들인가? 단언컨대 이는 결단코 백제의 후손이나 부여 인들이 제 조상을 능욕하고, 백제정신, 백제인의 자존심을 유린하는 이러한 배신의 괴담을 만들거나 입에 담고 퍼뜨릴 리가 없다. 이는 분명 백제에 원한을 가진 자들의 소행이거나 백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소행이거나 적에게 잘 보이고자 아부하는 아첨배 들이거나 아니면 백제의 선진문화 혜택을 입은 자들이 백제로부터 비롯된 역사를 감추기 위해 백제사를 왜곡하고 지워버림으로 열패감을 벗어나려는 백제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진 자들의 비열하고 유치한 소행이라고 보아야 한다.

5. 삼국 중 유독 백제 죽이기에만 집착했다.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

이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에서 한 인간의 일생은 무엇이며 성공과 실패는 무엇인가,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또 무엇인가,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의 역사란 늘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 동물들과 다름없는 피의 역사다. 그러니 이 땅에 경쟁과 전쟁은 끊어질 날이 없다.

우리 한 민족의 역사를 말할 때면 대강 수십 만 년 전 석기문화를 거쳐 BC 2333년대부터는 단군조선시대를 말하고, 삼국시대에는 BC 57년 신라가 건국되고, BC 37년 고구려가 건국되고, BC 18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가 백제는 660년에 망하고, 고구려는 668년에 망했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치고 3국 통일했다지만 북쪽은 698년에 발해국에 내어주고, 그들도 935년에 고려에게 망하고, 고려는 조선에게 망했다. 따라서 이 땅의 나라들도 끊임없이 분열과 통합과 흥망이 교차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어째서 개인도 아닌 수많은 백성을 가진 거대한 국가집단들이 모두 천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망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양육강식이 말하듯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힘이 약해지면 망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국력이 약해지면 어느 나라이건 망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백제도 망했고, 고구려도 망했고, 외세를 끌어드려 백제를 쳤던 신라도 망했다. 따라서 어느 나라나 망한 이유는 국정문란 외세침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는 삼국시대, 백제나 고구려나 신라가 모두 그런 이유에서 망한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그리고 김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 중 유독 백제 멸망에 대한 기록에만 갖가지 괴담을 늘어놓아 백제멸망의 이유가 의자왕의 타락뿐만 아니라 천지조화 귀신마저 난동을 피웠고, 백마강 용마저 소정방에게 잡혔다는 잡소리를 써 놓았다. 고구려도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했으니 거기에도 대동강에서 용을 잡았다거나 귀신이 득실거렸다는 등의 괴담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저들 사서 어디에도 고구려 패망에 대한 기록에는 그런 사특한 기록이 없다.

신라가 망할 때도 서라벌 어디에서 잡귀가 난동을 부렸다거나 낙동강의 용에 대한 괴담은 없었다. 유독 백제사에만 그런 해괴한 괴담을 구구하게 늘어놓았다. 고구려 멸망에 대한 징조를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고구려의 「비기」에는 9백년이 되기 전에 80대장이 있어 고구려를 멸망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고씨가 한나라 때 나라를 세워 지금 9백 년이 되었고, 이 적의 나이가 80입니다. 적들은 거듭 흉년이 들고, 백성들은 항상 수탈을 당하고 팔려갔으며,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이리와 여우가 성에 들어오고, 두더지가 문에 구멍을 뚫으며, 인심이 흉흉하니, 이번 원정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여름 4월, 혜성이 나타났다. 당나라 허 경종이 혜성이 동북방에 보이는 것은 고구려가 장차 멸망할 징조라고 말하였다.”

내용인즉 고구려 「비기」에서 9백년의 국운을 예언했다는 것이고 80대장이 고구려를 멸한다 했는데 당의 파병대장 이적이 나이 80인데다 흉년, 수탈, 지진, 인심 흉흉, 혜성이 나타났다는 정도의 고구려 멸망에 대한 징조를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혜성이이란 흔히 볼 수 있는 별똥별이니 대단한 징조도 아니다.

한편 김부식의「삼국사기」와 김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신라의 패망에 대한 경순왕조의 기록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또 당나라 군사의 위엄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였으며, 그 땅을 취하여 군현을 삼았으니 성세라 이를 만 했다. 그러나 불법을 숭상하여 그 폐단을 깨닫지 못하고 마을마다 탑과 절이 즐비해져, 백성들은 치갈(승려)이 되니 군대와 농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나날이 나라가 쇠퇴하여 가니 어찌 어지럽지 않겠으며 망하지 않겠는가? 이런 때에 더욱이 경애왕은 함부로 음란한 짓을 하고 놀기에 급급하여 궁녀며 좌우 근신들과 더불어 포석정에 나가 술자리를 베풀고 즐기다가 견훤이 오는 것도 알 지 못했으니, 저 문 밖의 한금호나 누각위의 장려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경순왕이 태조께 귀순한 것은 비록 마지못하여 한 일이기는 하나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만약 힘껏 싸우다 죽기로 지켜서 고려 군사에 반항하였다면 힘은 꺾이고 기세도 다하여 필시 그 가족을 멸망시키고 무죄한 백성들에게까지 화가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고명을 기다리지 않고 부고를 봉하고, 군현의 이름을 기록하여 귀순하였으므로 조정에 대하여는 공로가 있고, 백성에 대해서는 덕이 있음이 매우 컸던 것이다.”

천년 신라가 망하는 내용이니 백제보다 더 요란한 괴담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인용에서 보듯이 의외로 담담한 이성적 설명이다. 신라가 망한 것은 불교가 성하여 국력이 쇠약해졌고, 경애왕이 타락한 틈에 견훤에게 당했으며,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고려왕에게 바친 것은 공로가 있고 덕이 있는 것이라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걸핏하면 삼한통일이니 화랑도정신이니 하는 저들이 이처럼 무력한 변명으로 패망의 꼬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백제의 패망에 대해서만은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너절한 괴담을 나열하였다.

“20년 봄 2월, 서울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서해에 조그만 물고기들이 나와 죽었는데 백성들이 모두 먹을 수 없이 많았다. 사비하의 물이 핏빛처럼 붉었다. 여름 4월,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꼭대기에 모였다. 서울 시민들이 까닭도 없이 놀래 달아나니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쓰러져 죽은 자가 1백여 명이나 되고 재물을 잃어버린 자는 셀 수도 있었다. 5월,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왕사와 도양사의 탑에 벼락이 쳤으며, 또한 백석사 강당에도 벼락이 쳤다. 검은 구름이 용처럼 공중에서 동서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듯하였다. 6월, 양흥사의 여러 종들이 모두 배의 돛대와 같은 것이 큰물을 따라 절 문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들 사슴 같은 개 한 마리가 서쪽으로부터 사비하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하여 짖더니 잠시 후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서울의 모든 개가 노상에 모여서 짖거나 울어대다가, 얼마 후에 흩어졌다. 귀신이 하나 대궐 안에 들어 와서 백제가 망한다고 크게 외치다가 곧 땅 속으로 들어갔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하였다. 석자 가량 파내려 가니 거북이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그 등에 “백제는 등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라는 글이 있었다.”

정말 누가 봐도 읽기에 낮 부끄러운 유치하고 치졸한 괴담들이다. 신라 김춘추의 후손 김부식은 고려시대에 소위 「삼국사기」라는 삼국의 역사를 쓰면서 고구려나 자신의 선대 국인 신라에 대해서는 전혀 사특한 괴담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유독 백제에 대해서만 이처럼 야사도 아닌 잡문을 장황하게 나열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백년 뒤 같은 신라 김춘추의 후손 김일연도 「삼국유사」를 쓰면서 고구려나 신라에 대해서는 김부식과 같은 내용을 그대로 적어놓고는 백제의 패망에 대해서는 김부식의 괴담에 더하여 부소산 북쪽 바위 언덕에서 수많은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타사암의 괴담을 추가하였고,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강가 바위에서 어룡을 낚았다는 용암의 괴담을 추가하였다.

도대체 이들은 백제에 대하여 무슨 원한이 맺혔기에 백제가 망한지 600년이 지났고, 신라도 망한지 2백년이 지난 고려시대 역사를 쓰면서 이렇게 백제에 대한 적의를 떨치지 못하고 백제사를 왜곡하여 백제 죽이기에 집착한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패망과 관련된 사실은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계속 신라를 공격하자 위기를 느낀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쳤고 고구려까지 쳐서 삼한을 통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위야 어쨌든 신라는 승전국으로 패한 백제에 대하여 승자의 아량을 보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신라는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리고 그 후대왕조들은 계속 백제 죽이기에 집착하였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병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을 친 반민족적 배신행위에 대한 자책감, 또는 그들 의식의 내면에 잠재된 심리는 승자라는 공격자의식보다 패자라는 피해자의식과 언제 또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백제를 계속 주술적 괴담으로라도 제어하고 방어하려는 잠재적 복합심리, 즉 백제 콤플렉스에 대한 방어기제의 단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백제사에서 저들이 승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패자로서의 열등감이나 불안에 대한 치졸한 괴담의 이면사를 똑똑히 살펴보아야 한다.

6. 신라인들의 백제 콤플렉스

-신라는 백제에게 망했다

백제가 패한지 15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백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백제가 패망한 원인을 마지막 의자왕이 성충 흥수 같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고,「삼국사기」나「삼국유사」의 사서에 있는 것처럼 “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으므로 (王與宮人淫荒耽惡飮酒不止),” 또는 귀신이 대궐에 나타나 백제가 망한다고 했다는 등의 변괴가 있어 백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의자왕의 타락을 극대화하는 삼천궁녀설이나 소정방의 백마강 용 낚기 괴담까지 더하여 백제는 그래서 망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백제사 인식이다.

그런데 정말 의자왕은 그렇게 형편없는 군주일까? 그리고 백제 땅에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말도 안 되는 그런 괴담 때문에 당나라에서 13만만이나 되는 대군과 신라의 5만 대군이 쳐들어 왔다는 말인가? 정말 소가 웃을 저들의 괴변을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무식하거나 무지하거나 한심한 역사인식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60년 백마강 주변에서 일어난 전쟁은 단지 백제와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거기엔 고구려와 일본까지 관련된 7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다. 국제전이란 저마다 자국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역학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엄연한 정치적 충돌이지 무슨 일개 왕이 타락하여, 또는 해괴한 귀신들의 잡소리로 야기되는 만담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660년대의 의자왕과 신라와 당과 고구려와 일본이라는 국제질서를 이성적으로 정치적으로 똑바로 보고 백제사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

백제가 패할 당시 삼국시대의 정세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이래로 열세인 백제와 신라가 한때는 제라(濟羅)동맹을 맺고 연합했다. 그런데 신라는 진흥왕대에 이르러 한강유역을 공격하게 된다. 이에 고구려와 백제는 북진하는 신라를 견제하고자 제려(濟麗)동맹을 맺고 백제는 빼앗긴 땅을 찾으며 계속 신라를 공격하게 되었다.

의자왕이 누구인가, 그는 641년에 왕위에 올랐다. 「구당서」나 「삼국사기」에서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서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렸다.”고 하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면서 정말 용감하게 신라의 목을 조였다.

「삼국사기」의자왕조를 보면 의자왕은 직접 신라를 공격해서 사십여성을 빼앗았다. 일만 군대가 신라의 대야성을 쳤다. 당항성을 공격했다. 일곱성을 빼앗았다. 등 의자왕 재위 20년 동안 신라를 공격한 것이 무려 10차례나 된다. 그 중에 대야성은 낙동강 서쪽지역으로 신라 경주의 턱밑에 있는 최고 요충지였다. 이로써 의자왕은 낙동강 서쪽의 영남지역을 모두 확보하게된 것이다. 더구나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의 사위 딸 가족이 모두 몰살당했다. 이는 신라로서 최대 위기일 뿐만 아니라. 김춘추는 의자왕이나 백제에 대한 원한이 사무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당항성의 공격은 신라의 목을 조이는 일이었다. 당항성은 신라가 당나라와 왕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의자왕은 북으로는 고구려와 동맹했고 동으로는 일본과 동맹했기에 당항성만 막으면 신라는 독안에 든 쥐의 처지가 된다.

이에 신라의 진덕여왕은 김춘추를 당으로 보낸다. 당의 도움 없이는 신라가 백제에게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가들은 김춘추를 외교술이 능한 인물로 말한다. 신라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제인들은 김춘추가 얼마나 당에게 굴욕적으로 원병을 구걸했나를 그리고 백제에 대하여 얼마나 떨고 있었나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삼국사기」신라본기 진덕왕조에는 김춘추가 이렇게 당태종에게 애걸한 내용을 기록했다.

“춘추가 무릎을 꿇고 ‘신의 나라가 멀리 바다 한 구석에 있어, 대국을 섬긴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제가 강성하고 교활하여 침략을 일삼아 왔습니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대군을 거느리고 대대적으로 침입하여 수십 개의 성을 점령하여, 대국에 입조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군사를 보내 그 흉악한 무리들을 없애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될 것이며, 육로와 수로를 거쳐 술직하는 일도 다시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태종이 크게 동감하고 군사의 파견을 승락하였다. 춘추는 또한 관리들의 휘장과 복식을 바꾸어 중국의 제도를 따르겠다고 청했다.”

그뿐인가 신라는 즉시 당의 연호를 썼다 그리고 진덕여왕은 당 황제를 찬양하는 5언시 ‘태평송’을 써서 바쳤다. “위대한 당나라 왕업(王業)을 여니, 높고도 높은 황제의 길 창창히 빛나네. (大唐開洪業 巍巍皇猷昌)” 정말 눈물겹고 처절한 굴욕 외교요 사대주의다. 김유신이 진덕여왕에게 대야성을 치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자. " 작은 나라인 우리가 큰 나라인 백제를 건드렸다가 위험을 당하면 장차 어떻게 하겠소." 라고 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당시 신라가 얼마나 절박했는가. 당시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에게 얼마나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였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신라가 그처럼 굴욕적인 외교로 겨우 당 군을 모셔다 백제를 친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패한 것은 졸지에 당군13만 신라군 5만이라는 대군의 공격에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당한 것이지 의자왕이 타락해서, 귀신들이 변고를 일으켜서 패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그런데 신라는 당을 끌어들여 승리한 것으로 알았으나 당은 조선을 모두 속국으로 삼고자 평양에는 안동도호부, 공주에는 웅진도독부, 경주에는 계림도독부를 두어 문무왕을 계림 도독으로 삼았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셈이다. 이에 신라는 7년간이나 나당전쟁을 벌였다. 그리고는 결과적으로 저 광대한 대륙의 고구려 땅을 모두 잃어버리는 민족사의 최대 오점을 남기게 된다.

한편 백제는 비록 수도가 함락되었지만 백제군은 지방에서 저항운동을 계속했다. 저항의 중심인물은 흑치상지를 비롯해 복신·도침·부여풍 등이 있었다. 사비성이 함락된 직후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10일 만에 3만의 병력을 모아 소정방이 보낸 당 군을 격퇴하였다. 한편 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을 거점으로 저항했다. 비록 내분으로 실패하였지만 백제인들의 강한 독립정신과 저항정신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뿐인가 신라가 백제부흥운동을 막고 당을 몰아내 잠시 통일신라시대를 이루지만 거우 200년을 버티지 못하고 후백제에게 망하게 된다. 900년에 상주 출신의 견훤은 신라의 중앙군으로 출발했다가 백제의 부활을 내세우며 옛 백제의 중심부인 전주로 도읍을 옮겨 백제의 후손들과 함께 후백제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후백제 지역은 원래 백제 땅이라 인구가 많고 농업과 해상무역이 성했던 지역이었다. 견훤은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하여 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강화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충청도 북부 지역과 경상도 일대의 영토를 확보하고는 마침내 927년에 경주를 공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옹립하였다. 이때부터 신라조정은 후백제의 괴뢰정부나 다름없게 되었다. 물론 후백제의 견훤이 왕자들의 반란으로 936년에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신라는 결국 후백제의 침공으로 부득이 고려에게 왕권을 넘겨주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장면이 바로 후백제 군이 신라 경주를 치고 신라가 망하는 기록이다. 김일연은「삼국유사」 경순왕조에서 통일신라의 멸망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제56대 김부대왕의 시호는 경순이다. 천성 2년 정해(927) 9월에 후백제 견훤이 침범해서 고을부에 이르자, 경애왕은 우리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했다. 태조는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원했는데, 구원병이 미처 이르기도 전에 견훤이 그해 겨울인 11월에 신라의 서울을 쳐들어오는 것도 모르다가 창졸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왕과 비는 달아나 후궁으로 들어가고 종척 및 공경대부와 시녀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다가 적에게 붙잡혔으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땅에 엎드려 노비가 되기를 애원했다. 견훤은 군사를 놓아 공사간의 재물을 약탈하고 왕궁에 들어가 거처했다. 그리고 좌우 사람을 시켜 왕을 찾도록 했는데, 왕은 비첩 몇 사람과 후궁에 숨어 있었다. 이를 군중으로 끌어다가 왕은 강제로 자결토록 하고 왕비를 욕보였으며, 부하들을 놓아 왕의 빈첩들을 욕보였다. 이에 왕의 족제인 부를 세워 왕으로 삼으니 왕은 견훤이 세운 것이 되었다. 이가 경순왕으로서 그는 왕위에 오르자 전왕의 시체를 사당에 안치하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통곡하였다.”

사가들은 애써 견훤을 신라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백제지역 백제인들과 후백제를 세웠고 그들과 함께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끌어다 왕은 자결케 하고 왕비와 빈첩들을 욕보이고 왕의 족제를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으로 세웠다 했으니 신라는 백제에게 망한 것이 분명하다. 이 얼마나 치욕적인 사건인가.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패했으나 최후까지 싸웠고 왕과 신하들은 중국에 가서 녹봉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백제를 쳤던 신라는 오히려 백제인들에게 노비가 되겠다고 까지 애걸하면서 참혹한 치욕을 당했다.

따라서 왜곡 날조된 괴담들 때문에 사람들은 의자왕의 타락으로 백제가 망하고 치욕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백제는 신라인들에게는 늘 두려운 대상이었고, 백제는 끝내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끈질긴 부흥운동과 후백제의 건국을 통해 신라왕을 욕보이고 천년 신라를 망하게 만들어 마침내 사비성함락의 치욕을 씻은 위대한 역사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 신라인들로서는 오히려 백제가 늘 두려운 대상이고 절치부심(切齒腐心) 이를 갈며 원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신라시대 백제를 쳤던 김춘추의 후손인 김부식과 김일연은 비록 고려시대이지만 삼국사를 쓰면서 그 치욕적인 과거의 백제에 대한 콤플렉스를 합리화하기 위해 철저히 백제사 죽이기 백제 정신 말살하기, 다시는 백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저주의 조잡한 괴담을 날조한 것이 바로 낙화암, 백마강 조룡대 전설의 뿌리가 된다.

7. 조선조의 사대주의와 백제사 왜곡

-정치문인들의 언어희롱

필자는 지금까지 떠돌고 있는 백마강 조룡대 낙화암 괴담들은 역사적 진실이아니라 백제에 대한 그들의 콤플렉스를 엄폐하기 위해, 또는 백제사 백제정신을 말살하려는 저주의 수단으로 날조한 괴담이라는 것을 누누이 말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들 백제의 괴담들이 말장 허위라는 것은 결코 필자의 감정적 주장이 아니라 바로 저들이 기록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진덕왕과 태종무열왕과 남부여 즉 백제에 대한 기록만 대조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삼국사기」 진덕왕조를 보면 김춘추가 당에 가서 당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아뢰기를(春秋跪奏曰), 내용인즉 강성하고 교활한 백제가 신라를 계속 침공하여 폐하께서 군대를 보내 저들을 물리쳐 주지 않으시면 우리 신라 백성들은 모두 백제의 포로가 될 처지이니(若陛下不借天兵, 翦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굴욕적인 탄원이지 정상적인 외교적 담판이 아니다. 그리고 김춘추가 왕이 된지 6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1년 전인 659년 태종무열왕의 기록을 보면, “6년 여름 4월, 백제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요청하였다.(六年, 夏四月, 百濟頻犯境, 王將伐之, 遣使入唐乞師.)” 고 적어놓았다.

이처럼 백제와 나당연합군의 전쟁은 신라가 백제의 침공으로 패망의 위기에 몰리자 당나라 태종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당의 도움을 얻어 벌인 전쟁이라는 것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김일연은 백여 년 뒤 「삼국유사」를 쓰면서 태종춘추공조에서 의자왕은 “정관 15년 신축에 왕위에 올랐는데 얼마 되지 않아 주색에 정사가 어지럽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貞觀十五年辛丑卽位 耽酒色 政荒國危.)” 또한 성충의 간언을 듣지 아니하였다. 사비성에 갖가지 괴변이 일어났다. 그래서 “태종은 백제국에 많은 괴변이 있다는 말을 듣고 5년(660년)에 인문을 사자로 하여 당나라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太宗聞百濟國中多怪變 五年庚申 遣使仁問請兵唐.)”고 기록 하였다.

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옹 하는 허위 기록인가. 정사로 알려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침공 1년 전인 659년 “백제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요청하였다”고 기록 했는데 야사인 김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660년 백제국 의자왕이 타락하고 많은 괴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태종이 김인문을 당에 보내어 군사를 요청했다는 내용으로 완전히 사실을 왜곡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백제사는 김일연에 의해서 새빨간 거짓말로 조작된 것임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김일연의 백제사 날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타락한 의자왕이 적군에게 쫓기어 궁녀들과 부소산 북쪽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백제고기를 인용하여 낙화암 괴담의 뿌리가 되는 타사암(墮死岩) 괴담을 교묘히 「삼국유사」에 삽입했고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바위에서 용을 잡았다는 용암(龍岩)의 괴담을 삽입하였다.

이렇게 김일연이 고려시대 「삼국유사」에 뿌려 놓은 타사암과 용암의 괴담들이 조선조에 와서는 타사암에서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은 낙화암으로 과장 왜곡되었고,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용암의 괴담은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기에 용암을 조룡대라 하고, 강 이름은 백마강으로 불렀다는 괴담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김부식이나 김일연이야 그 직계 선조인 김춘추의 백제 침공사를 가능하면 유리하게, 그리고 백제에게 망할 처지가 되자 당에 굴욕적 외교로 외세를 끌어들인 부끄러운 역사를 변명하고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귀신들의 변고를 추가했고, 일연은 의자왕의 타락과 귀신들의 변고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쳤다는 거짓된 야사를 썼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조선조야 백제와 아무런 정치적 역사적 이해관계가 없는데 어째서 고려시대 김일연의 「삼국유사」의 괴담보다 더 악의적인 내용으로 발전된 것일까.

도대체 조선조는 어째서, 누가, 백제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말도 안 되는 낙화암 백마강 조룡대 괴담에 뛰어들어 오히려 고려시대보다 더 고약한 백제사 왜곡, 백제사 폄하에 한술 더 뜨는 짓들을 한 것일까. 자료들을 보니 이런 일에 뛰어들어 허황되게 나팔 분 부류들은 바로 당대 관료이자 지배계급이었던 사대부 문인, 오늘날로 말하면 정치문인, 또는 어용문인들의 시문(詩文), 더 정확히 말하면 전문화 되지 못한 얼치기 시인묵객들의 무책임한 언어희롱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일제 때 식민지 정책에 편승하여 멋도 모르고 3천궁녀를 불러댄 유행가들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조선조 문인이란 오늘날처럼 전문인이 아니라 소위 양반이나 관료계층이라면 누구나 시서예악(詩書禮樂)의 기본을 알기에 그들은 때때로 승지를 유람하며 시문을 남발하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풍류가 있었다. 특히 유서 깊은 부여 땅에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들어 무책임하게 갈겨 쓴 수백편의 시문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백제사 왜곡, 백제괴담의 확대 재생산은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컨대 무명의 바위가 타사암에서 낙화암으로 개명된 것은 고려 시대 이곡의 주행기(舟行記)에서 “궁녀들이 의리상 당나라 군사들에게 몸을 더럽힐 수 없다하며 떼를 지어 이 바위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죽으니 낙화암이라 했다”고 적었고 이존오는 그의 시에서 ”낙화암 밑의 물결은 호탕한데(落花巖下波浩蕩)”라 하여 역시 이 바위를 낙화암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조선조 시대 김흔은 「낙화암」 이란 시에 “삼천궁녀들이 모래에 몸을 맡겨(三千歌舞沙塵)”라 하였고 민제인은 「백마강부」에서 역시 3천궁녀를 언급했다. 결국 낙화암이니 3천궁녀니 하는 괴담은 모두 이들 관료문인들에 의해서 희롱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강 조룡대는 어떻게 확대 재생산 되었나.

백마강과 조룡대에 관한 조선조의 시들도 수십 편에 이른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부분 회고조인데다 망국의 원인을 모두 의자왕의 타락에 두고 있으며 날조된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을 앵무새처럼 재생하고 있다. 이들 시문은 한 마디로 망국에 대한 조롱과 질타와 원망의 전시장이다. 그 중에 몇 수만 살펴본다.

흥진비래(興盡悲來)ᄒᆞ니 이 마음 둘 되 업다

의자왕 풍류를 어듸 가 조문할고

고란사 표묘(縹緲)ᄒᆞ니 낙화암 보기 슬타

백마강 낫긴 용아 뭇노라 고국흥망(故國興亡)

어와 아희들아 ᄇᆡ 모다 져허셔라

조선중기 황일호의 「백마강가(白馬江歌)」가사의 일절이다. “백마강 낚인 용아”망국의 주인공 의자왕의 풍류를 원망하고 있으며 백마강과 조룡대 괴담을 그대로 답습하여 백제와 의자왕을 조롱하고 있다.

흥망은 스스로 저지른 지난 시절의 일인데

감개는 후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애석하다 산하천지의 견고함이여

왕도가 한 천장(天將)의 낚시 줄에 돌아갔으니

(興亡自是前時事 感慨徒傷後代人 可惜山河千里固 都輪天將一漁綸)

조선 숙종 때 문신 민정중의 7언 율시의 후반부 한시다. 흥망은 지나간 역사이지만 두고두고 후대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천리의 견고한 나라가 하늘이 내린 중국 장수 소정방의 낚시 줄에 걸려 죽은 용으로 망하게 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시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천장(天將)이다. 중국의 장수 소정방을 천장, 하늘이 내린 장수라 했다. 당시 중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조선조 사대주의 관료들의 추한 단면이다.

독주가 사람을 혼미케 하여 자신의 가문을 망쳤으니

연못용의 운우조화를 마침내 자랑하기 어려워라

조룡대에는 지금도 뱀(용)이 꿈틀거린 자취가 있어

천고의 바람과 파도도 다 마멸시키지 못했구나

(鴆毒迷人自毁家 淵龍雲雨竟難誇 釣龍猶着蜿蜒跡 千古風濤不盡磨)

중종시대 문신 황준량의「조룡대」라는 7언절구의 한시다. 1·2구는 바로 의자왕과 백제 왕조를 조롱하는 시다. 짐새의 독으로 만든 술, 즉 주색은 사람을 혼미케 하여 패가망신하게 된다고 의자왕을 꼬집고는 연못용이라 했으니 이는 궁남지 용을 만나 태어난 무왕의 운우지정도 소용없게 되었다는 말인데 이는 무왕과 의자왕을 함께 조롱하는 야비한 내용이다. 거기다가 3·4구는 조룡대에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용들이 낚시에 꿰어 꿈틀거리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모욕적인 말장난인가.

이들은 모두 당대 사대부인 지도층 인사들이건만 이들의 백제사 인식은 철저히 정사가 아닌 야사의 괴담을 따르고 있고, 이들의 시문 내용들은 하나같이 의자왕의 타락을 조롱하고 원망하며 여전히 중국에 아부하는 사대주의가 드러나고 있다. 어째서 그랬을까. 이는 조선의 통치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조의 통치이념은 첫째가 사대교린주의(事大交隣主義)였다.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고 여타의 나라들과는 적절한 우호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배불숭유(排佛崇儒)다. 불교를 배척하고 공맹의 도덕인 유교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통치이념에 투철한 정치문인들의 백제 패망에 대한 역사인식도 중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김부식이나 일연의 사대주의보다 더 적극적인 사대의식을 반영하여 소정방을 천장(天將)이라고 까지 하는 사대의 극치를 보였고, 의자왕에 대해서는 신라를 침공한 용맹성보다 오히려 도덕적 타락, 즉 터무니없이 날조된 스캔들에 동조하여 3천 궁녀설로 악화시켰는데 이는 조선조의 사대주의에다 도덕을 앞세운 유교사상까지 가세한 저들의 유치한 언어희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8. 일제 강점기의 백제 죽이기

- 식민지사관과 백마강·조룡대 괴담

조선조를 지나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이르러서 백제사는 또 다시 저들 침략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유린되는 비운을 맞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려시대 김일연은 조룡대에 대해서 단지 소정방이 부소산 북쪽 강가에서 어룡을 낚았기에 그 바위를 용암이라 한다는 내용이었고, 조선조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듯이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기에 강을 백마강이라 했고 바위를 조룡대라 했다는 것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와서는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에서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낮에는 왕이고 밤에는 용으로 둔갑한 의자왕 용을 잡았다는 내용으로 더욱 왜곡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일제시대 태어난 우리 세대들은 익히 들어온 괴담이다.

뿐만아니라 의자왕 용 대신 그의 부왕인 무왕이 죽어서 호국용이 된 것을 소정방이 백마고기를 미끼로 잡아서 죽였다는 것으로 더욱 확대하기도 했다. 결국 백마강용을 백제의 국권을 상징하는 의자왕이나 무왕의 화신으로 만들어 이를 백마고기로 죽였다는 이 잔인무도한 괴담은 바로 일제 강점기에 날조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이런 괴담들이 일제가 물러간 지 반세기가 넘는데도 각종 기록물에 명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저들이 이 땅을 식민화하기 위해 뿌려 놓은 독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꼴이 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침략국인 신라도 사대모화국인 조선도 아닌 일본이 무엇 때문에 또 백제사를 왜곡하고, 백제 죽이기를 획책한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백제 시대 일본과는 매우 밀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미개한 일본을 국가체제로 만들고 대륙의 선진문화를 받아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백제가 주도적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2001년 한일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은 기자 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했고 덧붙여 백제의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고 당시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되었으며 무령왕의 아들 명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천황의 이런 발언은 정치적 해석을 떠나 분명 일본이 백제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백제와 일본 간의 긴밀성에 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본의 고대국가 문명의 탄생과 전개과정에서 백제를 비롯한 삼국이 끼친 영향은 단순히 외교적인 문화교류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반도로부터 끊임없는 이주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들이 가져간 문화의 내용들이 일본 고대국가 힘이 되었고 특히 아스카문화의 원류를 백제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왕인(王仁)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었고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아직기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백제는 각종 기술을 전래하였으며 무령왕이 오경박사를 파견하고 성왕은 552년에 불경과 금동석가여래상을 전래하여 아스카 문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홍윤기는「일본문화사」에서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일본 역사학자 미즈노 유우가 ‘일본 고대 국가 형성’에서 밝힌 것이다.

그는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음을 지적했다. 6세기 백제 무령왕의 동생이 26대 게이타이 천황이 된 이후 백제 왕족의 후손들이 7세기 말까지 천황 자리에 올랐다. 33대 스이코(6세기말~7세기초) 천황은 백제 왕족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일본 최초의 정식 여왕이다. 그의 남편 30대 비다쓰(6세기)천황도 백제인 왕족이다. 이는 815년에 일본 왕실에서 편찬한 왕실 족보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일본 고대 왕조사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엔 ‘스이코여왕의 남편이었던 비다쓰 천황이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을 지었다’는 기록을 들고, ‘일본서기’엔 ‘그의 친손자인 34대 죠메이 천황이 백제궁을 짓고, 백제궁에서 살다가 백제궁에서 붕어했다’는 기록도 제시한다. 천황 발언으로 화제가 된 50대 칸무 천황의 생모는 8세기 화씨(和氏)부인으로 이는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근거에서 백제와 일본은 외교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주종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바로 백제의 근초고왕의 세자가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다. 일본 나라현에 전해지고 있는 칠지도의 앞뒤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졌다.

“泰▢四年 五月 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鋼七支刀 豈避百兵 宜供供侯王 ▢▢▢▢作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줄 만하다. ▢▢▢▢가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이 문장에서 주목할 곳은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줄 만하다(宜供供侯王)”와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라(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라는 말이다. 여기서 후왕(侯王)이란 상국 왕이 아래 제후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는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는 상국이 하국에 말하는 어조가 분명하다.

일본 교토에 있는 히라노신사(平野神社)는 백제인 칸무 천황 때부터 백제 조상신들의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이마기노카미(성왕신), 구도노카미(성왕의 조상신), 후루아키노카미(비류왕과 근초고왕신), 히메노카미(칸무 천황의 어머니인 백제인 화씨부인신) 등의 신위가 봉안돼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백제가 일본의 상국이었음이 분명하며, 그러기에 저들은 백제의 왕들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백제가 연합군과 싸울 때 그리고 부흥전쟁 시 즉각 원병을 파견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제를 상국으로 섬기고 백제로부터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배워 고대 일본을 형성했던 저들이 1900년에 이르러서는 명치유신이라는 우리보다 몇 십 년 앞선 근대화를 통해 국력이 강해지자 쇄국정책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된 조선을 침탈하는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조선강점행위를 하고 민족말살을 위한 식민지 교육과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날조 과장된 일본역사를 강제로 학습시켜 일본숭배사상을 주입시키고, 한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여 한국민족은 고대부터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아온 타율적이고 정체적인 민족이며, 오늘날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역사적·필연적 귀결이라는 의식을 주입시켰다. 또한 총독부 안에 ‘고적조사반’을 만들어서 서울·개성·평양·부여·공주·경주 등지의 수많은 고분과 산성, 고적을 파괴하고 많은 출토품들을 약탈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

이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사다. 백제사나 고대일본사에서는 엄연히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고, 왕통엔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고, 문화는 백제가 그 뿌리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사를 부정하고 말살해야 일본의 조선합병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제사를 죽여야 하고 전설들을 악용하여 일본식민화에 역이용하여야만 했다.

그 희생물이 바로 백마강과 조룡대 전설이다. 일제는 백마강 용을 의자왕 용과 무왕 용으로 만들어 이들을 죽임으로 왕도 죽이고, 용도 죽이고, 백제도 죽여 백제를 무력화하는 악랄한 만행을 획책한 것이다. 이는 백제를 형편없는 나라, 형편없는 왕조로 만들어야 과거 백제와 가야를 자기들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설득할 수 있고, 조선족은 오히려 일본의 후손으로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이 정당하다는 궤변을 합리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의 백제말살정책 중 더욱 악랄한 행위는 바로 부여에 신궁(神宮)을 짓고, 백제 왕도에 일본의 신들을 모시는 신도(神都)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신사(神社)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말한다. 일제는 합방 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고는 부여에도 대대적인 신궁건설을 추진했다. 왜 하필 부여인가. 조선총독부는 부여에 대규모 신궁을 짓고 여기에 그들의 응신, 재명, 천지의 3천황과 신공황후의 4위를 모시겠다고 하면서 부여를 택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실로 골육간보다도 더한 것이 있었으니 그간 6대왕 120여 년 간의 왕도인 부여의 땅은 실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내선일체가 구현되고 결실된 일대 유연(由緣)의 땅이다.”

이 무슨 해괴한 망언인가. 내용인즉 부여는 삼국시대 일본이 와서 다스리던 가장 관계가 깊었던 곳이기에 이들 4위의 신을 부여에 모셔 조선과 일본이 동족임을 보여주는 내선일체 식민지정책의 성지로 삼겠다는 어거지다. 이들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라정복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등 역사를 왜곡하여 조선은 원래 일본에서 갈라진 같은 민족인데 그동안 대륙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이제 일본과 합쳐야한다는 천인공노할 동조동근론을 만들어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였고 부여를 그 논거의 희생양으로 삼고자한 것이다.

다행히 일제가 패망하면서 부여의 신궁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바로 저들의 악랄한 식민지정책으로 백제사가 철저히 왜곡되었고 시대마다 멋대로 유린되었던 백마강 조롱대 낙화암 이야기는 더욱 야비하고 추악한 괴담으로 짓밟히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다. 우리는 전쟁이라면 무력전쟁만을 생각한다. 최근에는 무역전쟁을 실감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문화전쟁, 역사전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9. 조룡대를 없애버려야

-백제가 살고 부여가 산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갖가지 꾸며낸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전설이라는 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전설이 바로 용의 이야기다. 요즘이야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가상공간에 괴기한 사건을 다양하게 연출하지만 과거엔 신출귀몰하는 용 이야기만으로도 최고의 관심과 흥행이 되는 문화였다. 그래서 동서양 어떤 민족이나 역사에는 반드시 용이 등장하여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특히 동양에서는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격상되어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삶에 기대와 용기를 주는 상징적 영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용 사상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투철하여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용 사상에서 첫째로 드러나는 것은 천룡(天龍) 사상이다. 보잘 것 없는 이무기가 마침내 물을 박차고 하늘에 올라 천룡의 자리에 오르는데 이는 인간이 발전하고, 성공하여 절대적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상징적 이야기가 된다. 궁궐이나 사찰의 천장에 용이 부조되고 왕조나 왕의 복식에 용을 새기는 것도 모두 최고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용꿈을 꾸고 용이 되기를 소망한다.

둘째로는 물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하는 수신(水神)으로서의 용 신앙이다. 세상은 온통 물로 둘러 싸여 있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 되어 모든 생명체의 생성과 번영을 관장한다. 농업을 주업으로 했던 과거에는 더욱 절실한 것이 용의 혜택이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용왕이 되고 강에서는 강신이 되고, 비가 안 올 때는 우신(雨神)이 되어 인간에게 작용한다.

셋째로 용은 귀신을 쫒는 벽사신(辟邪神)이 되고, 적을 막아주는 시복신(揌福神)인데다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내는 서수(瑞獸)이기도 하여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숭배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좌청룡, 우백호를 찾았고, 죽어서도 무덤에는 용의 형상이 있어야 했다.

서양문화 특히 기독교 문화에서는 용을 악의 상징으로 이를 퇴치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우주 질서를 주관하는 최고의 권위가 되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축복의 원천이며 개인과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책임질 수 있는 힘과 능력의 상징이 되기 때문에 용에 대한 신앙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권위와 번영의 상징이 되어 나라마다 호국용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믿으며 기대와 자부심을 갖게 된다.

삼국시대에 대표적인 호국용 이야기는 바로 신라 문무왕의 대왕암(大王岩) 전설이다. 문무왕은 백제를 침공했던 김춘추의 아들 김법민이다. 김춘추가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함락시킨 지 1년 후인 661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이 되어 백제, 고구려, 당을 모두 평정하여 3국 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런데 후손인 김일연이「삼국유사」를 쓰면서 그는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었다는 호국용 전설을 추가하여 신라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문무대왕 용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으로 더욱 당당하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역사를 만들게 된다. 「삼국유사」 문무왕조에서는 그가 재위 21년인 681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려 하오” 이런 유언에 따라 그를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를 지냈는데 그것이 대왕암이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바닷가에 감은사를 세웠다. 그 뒤 어느 날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을 만나 신통한 대나무를 받아 피리로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맑아지고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하였다.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김일연은 이렇게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신라를 돕는다는 호국용의 전설을 만들어 신라 후대인들에게 계속 신라정신을 간직하며 당당한 꿈과 비전을 갖도록 한 것이다.

조선조의 성군 세종대왕은 태조 이성계가 쿠데타, 즉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건국했다는 오해를 불식하고 건국의 정당함을 천명하고자 대서사시 용비어천가를 지어 널리 홍보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란 글자대로하면 용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리는 노래라는 말이다. 얼마나 웅장하고 대단한 말인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첫 장의 노래에서 드러나고 있다.

“海東 六龍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해동 즉 조선 땅에 여섯용이 하늘에 오르시어 나라가 하는 일마다 하늘에서 내리시는 천복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의 건국과 조선의 경영에는 한 마리 용이 아니라 여섯 마리 용, 즉 세종의 직계 선조인 목조(이성계의 고조부), 익조(이성계의 증조부), 탁조(이성계의 조부), 환조(이성계의 아버지), 태조(이성계), 태종(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생전엔 나라를 경영하고 죽어서는 모두 하늘에 올라가 천룡(天龍)이 되어 나라를 지켜주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내려 주고 있으니 조선 만대가 얼마나 복된 나라인가를 천하에 과시하는 정말 호국용의 전설을 최고로 미화한 호국정신의 장엄한 노래다.

그런데 지금 백제국의 호국용은 어찌되었는가. 백제 왕조를 상징하는 백마강용은 어찌되었는가. 김일연은 자기 조상 자기 왕조에 대해서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켜주는 호국용이 되었다는 용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는 같은 책에서 백제에 대해서만은 의자왕이 주색에 빠진 천하에 타락한 왕으로 매도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귀신들의 변괴를 나열하고는 엉뚱하게 당의 소정방이 백제 왕도를 지키는 백마강의 호국용을 낚시로 잡았다는 잔인하고 악랄한 저주의 괴담을 첨가했다. 이러한 악의 씨가 조선조에서는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그 용이 의자왕이나 무왕의 화신이라는 괴담으로 날조되었다. 전설이란 실제 역사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끌어 들여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민 허구(fiction)다. 용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이 계속 반복되면서 후대인들은 전설을 오히려 사실로 착각하게 된다.

더구나 용 이야기의 당위성은 인간은 무한히 높아지고 싶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싶고,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안정과 번영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욕망과 기대와 꿈을 용이라는 영물을 통해 최고로 실현하고자 다양한 용 신앙, 용 문화를 만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용 신앙이나 용 문화를 갖는 다는 것은 그만큼 최고의 것을 추구하는 가치의식이고 자부심이고 기를 살려주는 힘이다.

이러한 비밀을 알았기에 김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신라에 대해서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해룡으로 미화하여 신라만대의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용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백제에 대해서는 백제 번영의 상징이고, 백제 왕권과 백제의 미래를 수호할 백마강 용을 죽이는 이야기를 만들어 백제의 번영과 왕권과 미래의 모든 꿈을 거세해 버리려고 한 것이다. 호국용이나 강용이 죽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저주의 주술(呪術)이 되어 백성들의 사기와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독소가 되기 때문이다.

백제도 망했고, 신라도 망했다. 그러나 신라의 후손들은 지금도 경주 앞바다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계속 신라를 지켜주는 호국용으로 건재함을 상징하는 대왕암 전설을 주고받으며 활기차게 살고 있다. 그런데 백제의 후손들은 해동증자로, 대야성과 낙동강까지 점령한 용감한 의자왕은 간데없고 3천 궁녀나 거느리고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친 의자왕 용의 죽은 이야기나, 신라의 공주까지 데려온 무왕의 용이 하찮은 백마고기를 물려다 낚시 바늘에 꿰어 처참하고 무력하게 죽었다는 조룡대 전설을 무슨 자랑스런 역사인양 어리석게 중얼거리며 살고 있으니 이 어찌 분하고 창피한 일이 아닌가.

이처럼 백제사, 그 정신적 정서적 열패감의 근원적 독소는 바로 백마강의 용이 죽었다는데 있다. 아니 백제 정신, 백제의 기백, 그 비전을 말살하려고 악의적으로 꾸민 조룡대, 백마강, 낙화암의 괴담이 아직도 낮도깨비처럼 활보하고 있다는데 있다. 호국용이 죽고 강용이 죽었는데 이 땅에 무슨 기백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이 악랄한 저주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추악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조룡대(釣龍臺)란 저 저주의 문자를 지워버리고 그 추악한 괴담을 없애버려야 한다. 백마강 용이 살아서 날마다 나래치고 용틀임 질을 해야 이 땅에 번영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룡대를 없애버려야 한다. 정녕코 조룡대를 그 저주의 괴담을 없애버려야 백제가 살고 부여가 산다.

천리를 달려온 강물이

부소산 허리를 감돌며

잠시 숨을 몰아쉬는 곳에

수줍게 돋아난 바위 하나 있다

바위는 언제나 강물에 몸을 씻고

하늘만 보다가

무수한 별들을 세다가

바람과 놀다가

산사의 인경소리나 들으며

소란한 세속의 저만큼에서

그렇게 억겁을 침묵으로 산다

그런데 누가 감히

저 무념의 순수로 사는

태고의 돌부리에

조룡대 라는 더럽고 추악한

인욕의 문자를 새겼는가

이는 칠백년 대백제를 시샘하고

혼과 기백을 꺾으려는

한낱 정복자들의 날조된 거짓인 것을

아직도 조룡대란

저 피 묻은 저주의 괴담을

중얼대며 사는 자는 또 누구인가

역사를 왜곡하고 회칠하는 것도

죄악이지만

거짓을 진실로 믿으려는 무지는

더욱 슬픈 죄악이다

강물이 웃는다

돌이 웃는다

하늘이 웃는다

조룡대를 없애버려라

조룡대가 없어져야

백제가 살고

부여가 산다

- 홍문표「조룡대를 없애버려라」

10. 백마강은 불사의 용이다

-백마는 사비정신이고 부여의 기상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김춘수의 시 「꽃」이라는 작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가치나 실체에 걸 맞는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나라 내 고장의 산과 들과 강의 이름을 지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금강(錦江) 대동강(大同江) 백두산(白頭山) 설악산(雪嶽山) 인수봉(仁壽峰) 천왕봉(天王峰) 얼마나 모두 멋있고 의미 있는 이름들인가. 이렇게 지역 이름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나는 물론 나와 관련된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소중하기 때문이고, 더불어 보다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사물의 실체에 맞는 작명을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더욱 돋보이는 이야기(story)를 첨부하여 특별한 의미와 인상을 갖고자 한다. 지명에 유래나 전설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지명 하나에도 우리 조상들의 사고와 꿈이 있고, 삶의 지혜가 있고, 철학있 있고 인문학이 있고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부여 지역을 흐르고 있는 금강을 이 지역에서는 백마강(白馬江)이라고 하는데 이 백마강의 유래와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지명은 한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순수 우리말인 뫼(山) 가람(江) 돌(石) 같은 말이 각 지역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사용되다가 삼국시대 한자가 들어오면서 한자 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따서 이두나 향찰식 문자를 썼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757)에는 모두 한자어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다.

신라에서는 볕이 잘 드는 곳을 ‘볕벌’이라 하였던 것을 이두식으로 ‘비사벌’(比射伐)이라 했다가 한자어로 통일될 때는 화왕군(火王郡)이 되었다. 백제의 경우 지세가 곧고 긴 곳을 ‘곧벌’이라 했는데 뒤에 이두식으로 고사부리(古射夫里)라 했다가 한자로 통일될 때는 고부군(古阜郡)이 되었다. 고도 부여를 소부리(所夫里)라 하였는데 여기서 ‘부리’는 신라의 ‘벌’과 같은 것으로 신라가 왕도 경주를 서벌(徐伐)이라 한 것이나 백제가 왕도를 소부리(所夫里)라고 한 것은 모두 새 도시 서울이라는 의미의 이두식 표현이다. 그런데 통일신라 때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로 정착시키면서 서벌은 동경(東京) 즉, 신라의 서울로 확정하였지만 ‘소부리’는 백제의 서울(京)로 인정하지 않아 소부리의 명맥은 그 뒤 끊기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 고유의 지명이 고유어에서 이두어로 마침내 한자어로 정착된 것을 보면 백마강(白馬江)이란 명칭도 이전엔 순 우리말 또는 이두어로 사용되다가 경덕왕 시에 백마강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부여를 지나는 금강의 명칭이 백마강(白馬江)이란 한자어 이전에는 또 어떤 발음이었을까. 강(江)의 순우리말이 ‘가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백마의 순우리말은 무엇이었을까.「삼국사기」「삼국유사」등 문헌에 나타난 백제시대 금강에 대한 명칭으로는 백강(白江) 백촌강(白村江) 사비하(泗沘河), 웅진강(熊津江) 등이 있다. 여기서 백강에 대한 기록은 백제 말기보다 1백 60년 앞선 무령왕 시대 좌평백가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이를 쳐 항복을 받고 목을 베어 백강에 던졌다(苩加出降 王斬之 投於白江)는 기록이 있고, 663년 유인궤와 융이 웅진강에서 백강으로 가서 육군과 합세 백강 입구에서 왜군을 네 번 물리쳤다.(自熊津江往白江 以會陸軍 同趍周流城 遇倭人白江口 四戰皆克)고 하였는데 일본서기에서는 이 백강전투를 백촌강 전투로 기록하였다. 이를 보면 공주에는 웅진강, 그 이남은 주로 백강으로 통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비하’는 ‘소부리’, ‘새벌’, ‘사비성’ 등과 연결되는 명칭으로 왕도 부여의 강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강 명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백강과 동의어 또는 합성어로 보아야 한다. 원래 백강(白江)의 백(白)자는 크다는 뜻의 백(伯)자와 통용된 것이어서 백강이란 큰 가람 또는 긴 가람이란 뜻이다. 이는 서울에서 큰 강인 한 가람이 한강(漢江)으로 쓰여진 이치와 같다. 그런데 사실은 마(馬)자도 말이란 뜻만이 아니라 크다는 뜻이다. 마치(馬峙)=큰 고개, 마총(馬塚)= 큰 무덤, 마산(馬山)=큰 산, 마한(馬韓)=3한 중 제일 큰 나라, 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백제의 큰 가람에 대한 한자 표기는 백강(白江), 마강(馬江), 그리고 이들 합성어인 백마강(白馬江)이란 말로 혼용했음이 분명하다. 다만 「삼국사기」나「삼국유사」에는 이 중에 백강이란 명칭을 주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백마강(白馬江)이란 명칭은 백강(白江)이란 명칭을 사용하던 백제 중기에 이미 함께 사용되었을 것이며 늦어도 모든 지명을 한자로 확정시킨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백제가 망하고 통일신라를 지나고 고려시대를 지난 조선조 중기에 각도 지리 풍속 인문서인 「동국여지승람」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일연의 소정방이 강에서 용을 낚았다는 용암을 조룡대로 바꾸고, 그 용을 잡는데 백마고기를 사용하였다는 해괴한 괴담을 추가하여 백마강의 명칭유래를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기에 백마강이라고 했다는 전혀 사실무근의 괴담을 날조 하여 적어 놓았다.

만일 백제 패망 시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당의 파병장으로 참가한 당시 소정방전을 기록한 「당서」에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만일 그런 내용이 유언비어나 괴담으로 라도 백제 패망 이후, 통일 신라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었다면 백제비하에 앞장 선 천하의 김일연이 「삼국유사」에 소정방이 어룡을 낚았다는 괴담을 쓰면서 어찌 백마고기로 강용을 낚았다는 말을 쓰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이는 철저히 조선조에 와서 날조된 괴담이 분명하다.

조선조가 어떤 나라인가. 사대주의로 시작하여 사대주의로 망한 나라다. 그러니 당나라가 신라와 합세하여 백제를 친 것조차 사대모화주의 조선조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성전(聖戰)이 되고 일개 파병대장 소정방은 하늘이 내린 명장으로 칭송해야 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조전조는 고려시대 사대주의, 친 신라 사학자 김일연이 만들어 놓은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타사암을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은 낙화암으로 침소봉대하였고, 소정방이 백제를 치는 과정에 백마고기로 백제수호신인 강용까지 잡았기에 그 강을 백마강이라 하였으며, 그 장소를 조룡대라는 억지 괴담을 만들었다.

이는 제 조상의 역사인 백제사를 짓밟고 제 나라 조상을 무참히 죽인 소정방을 오히려 신격화하려 했던 얼빠진 조선조 사대모화주의 꼴통들의 반민족적 역사 왜곡의 추악한 단면이다. 거기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백제의 속국이었던 것을 은폐하고 오히려 저들이 삼국을 지배했었다는 역사를 만들어 침략을 합리화하려고 백마강 용에다 의자왕과 무왕까지 덧씌워 죽이는 괴담까지 날조하여 백제 죽이기 만행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떠돌고 있는 낙화암, 조룡대, 백마강에 관한 허위 날조된 괴담들은 모두 백제 말에 일어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고려시대로 내려와 김춘추의 후손 김부식과 김일연이 「삼국사기」「삼국유사」를 쓰면서 외세를 끌어들여 제 민족을 유린한 사실을 변명하고자 백제사에 대해서만은 철저히 정사가 아닌 야사, 건전한 전설이 아닌 귀신잡설을 동원하여 의자왕을 매도하고 백제정신, 백제의 혼을 말살하고자 악의적으로 날조한 것들이며. 이러한 괴담에 조선조의 사대주의와 일제의 식민주의가 가세하여 더욱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의자왕은 그렇게 타락한 군주가 아니라 해동증자요 신라를 10여 차례나 공격하여 목을 조인 용맹한 군주였다. 이에 신라가 당에 원병을 구걸하여 18만 대군으로 쳐들어 왔기 때문에 중과부적으로 패한 것뿐이다. 더구나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용을 낚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 역사적 사실도 없거니와 천하 영물인 용이 하찮은 일개 졸장에게 죽을 대상이 아니다. 만일 강용이 죽었다면 지금도 굽이굽이 삼도를 흐르며 번영과 생성의 수호신이 되어 장강대하로 소용돌이치는 저 금강의 살아있는 용트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백마강은 불사의 용이다. 어찌 불순한 일부 인간들의 망동에 의해서 만세로 흘러가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와 역사의 순리가 거역될 수 있으며 악의로 날조된 괴변들이 불사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가소로울 뿐이다.

이처럼 백마강이란 명칭은 조선조의 몰지각한 사대주의자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백제시대 이미 큰 가람, 사비가람이란 고유어에서 백강(白江) 마강(馬江) 백마강(白馬江)이란 한자어로 불리어 졌으며 신라 경덕왕 때 확정된 것으로 백제에서 제일 크고 긴 강이란 뜻이다.

그런데 백마(白馬)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는 흰말을 연상하게 되어 있어 백마 고기 괴담 같은 것으로 또 악용될 수 있기에 필자는 차제에 공주 사람들이 금강을 웅진강, 곰나루 강이라고 하여 곰을 공주인들의 정신적 상징물로 하고 있듯이 부여인 들은 금강을 백마강, 즉 백마가 부여인 들의 정신을 상징화한 토테미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정이 된다면 백마강은 부여에서 제일 큰 강 일 뿐만 아니라 힘 있고, 빠르고, 영리한 백마의 기상도 있고, 지금도 살아서 소용돌이치며 이 지역을 수호하는 백마강용과 함께 부여의 안위와 번영을 지키며 진취적인 비전과 사기를 진작시키는 당당한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고 깃발이 될 것이다.

남의 역사를 왜곡하고 악의적인 괴담으로 짓밟는 것도 죄악이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계속 당하고만 사는 백성은 더욱 슬픈 죄악이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당당하게 새 역사와 전설을 써 가야한다.

맨 처음 하늘은

별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하늘의 물 보따리 풀어

강을 만들었다

강은 산을 만들고

들을 만들고

사람들은 강가에서

역사를 만들고

꿈을 만들었다

금강도 그랬다

천리장강 구비치는 강물은

삼도 땅을 돌고 돌며

비단 폭 산을 만들고

넉넉한 들을 만들고

고을 마다 역사를 만들고

꿈을 만들었다

공주는 곰의 꿈을

부여는 백마의 꿈을

그래서 공주는 예부터 금강을 웅진강이라 했고

부여는 금강을 백마강이라 했다

백(白)과 마(馬)는 원래 크다는 뜻이니

백마강은 크고 큰 가람이라는 말이며

백마(白馬)는 빠르고 힘세고 영리한 영물이니

백마강은 크고 빠르고 힘세고 영리한 가람이다

그런데 이 신성하고 영험한

억년 역사의 큰 가람에

어찌 하찮은 중생들이

가증한 먹물을 뿌리고자 했는가

소정방이 백마고기로 강용을 낚았기에

백마강이라 했다니

이 무슨 해괴한 개소리인가

백마강은 소정방이 훨씬 예전부터

백강 마강 백마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렇게 넘실대며 출렁거리며

으르렁거리는 백마강의 세찬 함성을 들어라

백마강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사비의 힘이고 번영이고 수호신이다

무력의 패배는 한 순간이지만

역사의 오염은 오래도록 독물이 되는 것

아직도 적들이 깔아놓은

저주의 굿판에서 어리석게 놀아나는

웃음거리가 있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제발 이제는 소정방이 괴담에서

벗어나거라 지워버려라 태워버려라

갈기갈기 찢어서 강물에 던져버려라

엣세엣세 물러가라 소정방이 잡귀야

백마강은 창세부터 영원까지

크고 빠르고 힘차고 영리하게

부여인의 가슴에서

세계인의 가슴으로 세차게 요동치는

정신이고 맥박이고 믿음이다

나래치고 용트림 질 하며

날마다 하늘로 바다로 비상하는

불사의 황룡이다 청룡이

- 홍문표「백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