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총계(總計)
임병식 rbs1144@daum.net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오는 동안 쌓아놓은 이야기의 총계(總計)는 얼마나 될까. 현생인류가 활동한 시기를 대략 5만년전후로 볼 때, 지금까지 남겨놓은 이야기들은 실로 하늘로 치면 별만큼이나 되고 발 딛고 사는 땅으로 치면 모래알만큼이나 많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 중에 내가 20세기에 들어서서 80년을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도 적잖아 많지만 이야기 자체가 기발하여 잊지 못한 것은 겨우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한다. 견문이 좁아서라기보다는 ‘팡’터지는 이야기가 적다는 말이다. 그것을 몇 가지만 간추려보고자 한다.
1.공리공담의 백미
고양이에게 대책없이 당하기만 하던 쥐(서생원) 부족이 마침내 공론의 장을 펼쳤다. 생사여탈권을 쥔 고양이에게서 해방 되는 문제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여서 노령의 쥐부터 새내기 쥐까지 총 동원 되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요. 무슨 좋은 대책이 없겠소?”
그러나 선뜻 나서서 말하는 생원이 없었다. 한참 침묵이 흐르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머리털이 다 빠진 고령의 쥐가 나섰다.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기는 한데, 그러나 앞장서 나설 사람이...”
말꼬리를 흐리자 득달같이 성화가 일어났다.
“어서 말을 해보시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좌중을 돌아보던 늙은 쥐가 말했다.
“방법은 간단해요.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다는 겁니다. 방울을 달아놓으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날 테니 그때 피하면 되지요. 우리가 몰라서 당하하고 있지 않아요?”
이구동성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솝이라는 사람이 한 우화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가 기원전 620-564년까지 산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감안하면 이 이야기는 적어도 2,500년이 넘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인조시대로 알려진다. 홍만종(1643-1725)이란 이가 순오지(旬五誌)란 책에다 발표한 것이다. 공리공담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신기하게 여겼던 것일까. 동서고금의 이야기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진해지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2.
풍수세계의 전설적 이야기
풍수(風水)의 세계에는 부풀려진 이야기도 많지만 흥미를 끄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진다. 명당터가 좁아 사람을 세워서 묻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집간 딸이 자기 선친이 묻힐 묘터를 욕심내어 밤새 물을 퍼부은 다음 자기 남편은 묻었다는 야기기까지 온갖 이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중기 숙종임금이 미복차림으로 민정시찰에 나섰다. 임금은 강가에서 어린 소년이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묻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강가에다 어머니를 모시느냐?”
“예, 이곳이 명당이라고 어느 도인이 알려줘서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설명을 하는데, 그는 이곳에 무덤을 쓰면 쌀 100섬이 생길 자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임금은 소년을 가상하게 여겨 고을 원님으로 하여금 쌀 백 섬을 내리도록 했다. 그래놓고 생각하니 그 도인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소년에게 물어서 그를 찾아갔다.
그는 산골짜기 궁벽한 곳에 살고 있었다. 임금이 찾아가니 그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장 계시오. 나 좀 봅시다.”
촌로는 빼꼼이 봉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노인장께서 저 아래 소년 어머니의 모터를 잡아주었소?”
“그렇소이다만. 왜 물으시오?”
“아무리 터가 좋기로서니 물가에다 장지를 잡아준단 말이요”
“모르는 소리 마시오. 그곳은 재물이 들어오는 자리요. 모르긴 하지만 지금쯤 재물이 들어왔을 것이요”
임금은 기절초풍을 하였다. 맞는 말이 아닌가. 조치를 취하여 식량 100석을 넣어주었지 않았는가. 임금은 궁금하여 다시 물었다.
“왜 이런 궁벽한 곳에 사시오.”
“모르는 소리 마시오. 이래뵈도 이곳은 임금이 찾아올 자리요”
임금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본인이 지금 거동을 하지 않았는가.
3.
토끼그림 이야기
먼길을 떠나게 된 남정네가 예쁜 마누라를 믿지 못해 방책을 해두었다. 은밀한 곳에 토끼그림을 그려놓고 떠난 것이었다. 볼 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우려한 대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기가 떠날 때는 누워있는 토끼를 그려놓고 갔는데 토끼가 서있는 것이었다.
결국 사단이 났구나 생각한 남편이 득달같이 닥달을 하였다.
“어느 누구와 잠자리를 했소?”
“잠자리라니요. 아무 일 없었소.”
“증거가 있는데 거짓말을 할거요?”
“무슨 증거요. 말해보시오?”
“내가 그려놓은 토끼는 누워었었는데 이것은 서 있지 않소?”
“말한번 잘했소. 살아있는 짐승이 누울때도 있고 서 있을 때도 있지, 어찌 한모양으로 있단 말이요?”
“허허, 말은 변호사네”
이것은 전에 로마시대 병사가 출정에 나서면 부인에게 정조대를 채워놓은 습속이 있었는데, 일종의 그런 버전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한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는 생명력을 지니고 전승되어오고 있으니 세상이 좁다는 생각도 들고 이야기의 총계는 어머어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야한 이야기는 한사코 자제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세상은 두루춘풍이요, 처처에 깔려있는 것이 이야기 성채가 아닌가 한다. (2525)
첫댓글 서생원들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기원전 620년대 이솝에서 비롯되고, 서기 1600년 대 홍만종 <순오지>에서도 기록이 되었음은 동서고금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명당은 물과 거리가 멀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물가에서 명당을 구하여 횡재를 얻고 임금을 알현함은 천하의 아이러니입니다.
여자의 은밀한 곳에 토끼 그림을 그렸음은 기막힌 해학입니다.
요즘 여성들이 몸에 문신을 하여 아름다움을 보여줌은 이야기 총계의 精髓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좀 재미있는 글도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저속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몇가지만 간추려보았습니다.
웃을 일이 없는 이새대에 좀 웃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이야기 수가 얼마나 될까요? 아주 궁금하지만 아직 그런 통계는 나와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7만 종에 7천만 권 정도의 책이 출판되고 있으며 출판사는 약 8만 개소입니다.
풍수 이야기는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언제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제목이 특이하여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유사 이래 세상에 나온 이야기가 과연 몇 가지나 되는지,
어쩌면 영영 풀지 못할 숙제일 듯합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엄밀히 따져보면 그런이야기도 원류는 한정이 되어 있지 않는가 한다.
한없이 우스운 이야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져 버릴지 몰라 채록삼아 기술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