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제5차 아시아주교회의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렸다.
아시아 지역은 다른 대륙과 달리 지리적·민족적·문화적·종교적으로 다양한 50여 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
필리핀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소수를 차지한다.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필리핀에만 6천만 명에 가까운 가톨릭 신자들이 집중돼 있고
그 외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한국 지역에 신자들이 분포돼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 미만의 소수 집단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아시아교회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갈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실과 기대만큼 소공동체의 시동과 전개 양상도
특별하고 그 귀추 역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주교회의(FABC) 차원에서 소공동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1990년 제5차 인도네시아 반둥아시아주교회의였다. 이때 총회는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을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로 규정했다.
이 기간 동안 FABC는 ‘공동체들의 친교’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로
룸코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델과 프로그램들을 소개했고 아시아 주교들은
이 방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자리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아시아 주교들에 의해 표명된 ‘공동체들의 친교’와 ‘참여하는 교회’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룸코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델을 원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2000년 타이 샴프란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 주교회의에서는 ‘아시아교회의 쇄신과
사랑과 봉사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아시아교회 쇄신의 전망과 의미를 제시하고 사랑과
봉사의 사명 수행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도전들에 대해 다루면서 소공동체 육성을 언급했다.
이때 아시아 주교회의는 “사랑과 봉사의 사명을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나타내야 하며 그러한 사명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교회 기초공동체에 바탕을 둔 소공동체 그리고 교회 단체들”이라고 밝히면서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거듭 천명했다.
아시아 소공동체 정착의 구심점이 된 아시파(AsIPA,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 아시아의 통합적인 사목 방법)는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천명된 교회의 새로운 비전 실현 방안 모색을 위한 자구책의 부산물이다.
1990년 반둥회의 이후 199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말레이시아에서
평신도사무국과 인간발전사무국 주최로 자문협의회가 개최됐는데 이 회의에는
평신도사무국 의장과 두 사무국의 총무 그리고 각 나라의 주교·성직자·수도자·평신도들도
참가했다. 회의 동안 참가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수행할 수 있는 아시아교회에
적합한 방안들을 모색했다.
아시아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목적인 과정,
즉 아시파(AsIPA)는 이 자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탄생된
아시파는 아시아교회 안에서 소공동체가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아시아의 통합적인 사목방법을 연구 보급하고 있는 아시파는
아시아 소공동체 담당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 아시아지역 소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아시파 총회에서 보고된 각국 소공동체 현황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국가에서 ‘공동체들의 친교’ 및 공동 책임의 ‘참여하는
교회’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모임이 있기 전부터 한국에서는 구역.반조직이 되어있었다.
이런 조직은 소공동체가 의미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본당에서의 사목방향이
지역까지 전달할수있는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본당사목이 그 관할지역의 교우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서
신자들이 소극적으로 방관자의 위치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었지만
본당의 사제나 교구사제들이 보는 관점은 본당사제 혼자서 사목을 운영하기 어렵기에
평신도들의 지원체계가 필요로 한것이라 여겼던 것인데
이는 다분히 평신도의 입장이 아니라 사제들의 사목방향에 촛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초기에 구역.반모임을 위한 봉사자 교육이 교구에서 이루어지고
교구내 전체모임에서 각 구역모임의 사례를 발표하면서
종전과 달리 느끼는 신자들의 관심이 많았다.
특히 소모임에 열성적이었던 레지오단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레지오가 세월이 흘려감에 따라서 원래취지인 병원과 가정방문보다는
본당내 사목협조에 신경을 더 많이 씀으로서 본래 소공동체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었다.
소공동체는 아프리카선교 프로그램을 준용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그림은 남미에서의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원했던 것인데
이는 교구에서 정하는 방향대로 봉사자를 훈련시켜서 지역에 파견하면
원래의 목적이 잘 이루어질것으로 여겼던 것이고
이는 조급한 교구에 의해서 단기간에 이룰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성서형제회의 모습과 유사하게 흘러나가게 됩니다/
아시아주교회의에 참여한 서울교구 강우일보좌주교에 의해서
서울교구에 소개되어서 첫해부터 교구장 사목방침에 포함되었고
교구청에서는 룸코연구소의 교재를 이용하여서 봉사자양성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를적용한 아프리카에 비해서 교육열이 강하고
신앙에 몰두하는 열성을 지녔다는 것인데. 아프리카 모델을 인용한 것입니다.
소공동체는 작은 공동체라는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공동체는 같은 마을에 사는 작은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통상 한조직의 관리자가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적합한 인원은
8~12명정도의 수준이었다. 같은 팀내에서 수시로 교류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데서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겼던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공동체모습처럼
이집저집에서 빵을 때어나누는 공동식사를 통한 친교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서로의 집에 있는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아는 처지라는 말이 있다.
시골의 농촌마을에는 담은 있으되 대문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서로의 가정을 서로 손쉽게 방문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경영조직에서 상의하달이니 하의상달이라는 의사소통방식이 있다.
윗사람의 경영철학을 아래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든지
아니면 둘뿌리민심을 상위관리자들이 잘 반영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주교들은 오랫동안 교구사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본당사제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고 했고
그러기에 본당에서의 제단체이니 제분과가 수용할수 있는 인력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울교구는 오래전에 이런 제반문제를 본당신부 홀로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여겨서
여러개의 지구별로 나누어서 지구장을 두는 제도로 변했지만 실제적으로
본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구내 본당들이 합심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일은 아무리 교구내에서 사제들이 전문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전문훈련을 교구관할 평신도를 효과적으로 지도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는 대다수의 교구사제는 본당에 발령이 납니다
본당에서는 여전히 본당신부중심으로 운영하면서 그 사제가 전문교육을 받게하기는
어려울것이고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볼떄에 교구나 본당에서 사제중심이 아니라
전문성을 띠는 편신도를 동협자로 여기는 발상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일은 단시일내에 이루기가 어려운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본당사제와 수도자는 본당에서 일어나는 신앙에 관련된
부문만 지도하고 그 나머지분야에 대해서는 평신도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본당에서 사목협의회나 평협이 있습니다
그 산하단체도 신앙과 관련된 분야가 있고 교회운영에 관련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당신부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것을 다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은 본당내에 까페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오래된 시설을 보수하는 일을
하게되는데요 이런것들에 대한 결정권을 다 본당신부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일은 평신도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하면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것을 관여하다보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정작 교우들의 신심을 위한 지도에는
소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제나 수도자들이 갑짜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본당에 속한 교우들의 집안에서 사는 자녀들중에서 탄생한다고 봅니다.
저는 여기서 구역.반모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는 코이노니아팀모임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구역.반모임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구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지금 시노드는 경청을 통한 소통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교구나 지구내에 있는 코이노니아팀간에 분명한 교류가 있어야 할것압니다.
그런점에서 볼때에 우리는 전국모임이나 전국행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국적인 운영보다는 팀이나 지역모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연구묵상하는데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역.반모임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서로를 잘 아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코이노이아서부터 친교를 잘 유지해야 할것입니다
우선 매주하는 코이노니아팀모임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팀내에서 조편성해서 조별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전체활동을 통해서
공동작업을 수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이야기를 하든지 간단한 간식꺼리로 한잔의 커피와 한조각의 크랙카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이되었든 본당이나 지구모임이 되었던 간에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것이
신앙을 증진할수가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피정을 통해서 아주 훌륭한 사제나 수도자의 놀라운 고백이나 묵상을
듣게되는데요 이는 듣는이들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지 않는다면
영화를 보거나 남들이 먹는 장면을 구경함으로 모든것을 다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는 실생활에 필요한것들을 나누어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