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함께 유럽을 여행했던 대학생 이 모(20) 양은 여행 기간 내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 여행 기간 중 방문했던 박물관에서 틈만 나면 감동의 눈물을 흘렸기 때문.
특히 처음 방문했던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이유를 물었다. 이 양은 “정말 보고 싶었던 유명 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눈믈이 나왔다”라고 해명했다.
이 양이 평소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명 작품을 봤다고 눈물까지 흘리자 친구들은 그런 모습에 재미있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심리 상태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졌다.

예술 작품을 접했을 때 눈물을 흘리거나 흥분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 ilovedurban
프랑스 대문호인 스탕달의 경험에서 유래
모나리자 같은 명화나 생각하는 사람 같은 조각상을 봤을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거나 심할 경우 잠시동안 혼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스탕달 증후군이란 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참지 못하거나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져 현기증 및 호흡곤란 같은 이상 증세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이 같은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추억이 깃든 작품을 봤을 때 간혹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같은 증상에 스탕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알다시피 스탕달은 19세기 초 격변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던 젊은이의 야심과 몰락을 그린 소설인 ‘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스탕달 ⓒ wikipedia
이런 유명 작가의 이름을 증후군 명칭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그라지엘라 마게리니(Graziella Magherini)’ 박사다. 그는 정신적 문제를 상담하러 온 고객들 중에 여행을 하면서 별다른 이유없이 눈물을 흘렸던 경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게리니 박사는 그들의 경험담을 듣다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여행 중에 유명 예술작품이나 공연 등을 접했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100여 건이 넘는 유사한 경험들을 정리하면서 오래 전에 스탕달이 이탈리아 화가인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을 보며 겪었던 경험담을 떠올렸다.
과거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하여 레니의 작품인 ‘베아트리체 첸치’를 감상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함을 체험했다는 경험담이었다.
이 같은 스탕달의 과거 경험을 떠올린 마게리니 박사는 이후 자신이 상담했던 환자들의 증상을 정리하여 발표하며 이들을 ‘스탕달 증후군에 걸린 환자들’이라고 명명했다.
파괴적 충동이 일어나는 다비드 증후군도 있어
예술 작품을 접하며 감격하거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흥분하는 ‘스탕달 증후군’은 마약을 복용했을 때 느끼는 환각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느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황홀경(ecstasy)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스탕달 증후군을 갖고 있더라도 혼절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한다. 더군다나 이 증후군은 다른 증후군들과는 달리 마음이 안정될수록 평상시의 감정을 금방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할만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에 대해 정신과학회의 관계자는 “예술 작품을 보고 감격하거나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해당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오히려 스탕달 증후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인 만큼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을 봤을 때 감동을 느끼거나 황홀경에 빠지는 정도로만 끝나야 하는데,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이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의미는 예술 작품만 보면 참을 수 없는 파괴 욕구가 일어나는 심리적 증상을 가리킨다. 이 역시 마게리니 박사가 발견한 현상으로서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비드 증후군’이라 부른다.

스탕달 증후군이 극단적으로 변질되면 ‘다비드 증후군’으로 바뀔 수 있다 ⓒ wikipedia
마게리니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인 ‘다비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을 관찰한 결과, 10명 중 2명 정도는 때때로 조각상을 파괴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는 점을 파악했다.
완벽한 남성상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다비드 조각상 앞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황홀감을 느끼다가도 점차 공격성을 보이며 이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
마게리니 박사는 이를 두고 ‘다비드 증후군’이라고 칭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개중 몇몇은 폭언을 퍼붓는 등 맹렬한 공격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991년에는 다비드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가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망치로 다비드상의 발을 내려친 사건이 발생하여 박물관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람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이에 대해 마게리니 박사는 “과거 미켈란젤로 역시 자신의 작품 일부를 파괴하곤 했다”라고 전하며 “예술 작품에 대한 파괴 욕구는 창조와 파괴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 의식이 실제로 표출된 것일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