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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쁜 농번기에 1톤 트럭 한 대가 경사진 풀밭 임도길에 올라오지 못해 어르신들과 함께 서 있는 게 보인다.
어르신 두분이 뒤에서 밀어봐도 타이어 타는 냄새와 메케한 연기만 날리며 제자리에서 헛돌 뿐 꿈쩍하지 않아,
잠시 가던 길 멈추고 도와주러 내려가 힘껏 밀어봤지만 차는 "나! 죽겠다"며 매연을 토해낸다.
삽으로 움푹페인곳을 흙으로 메우고 주인장께서 다시 운전대를 잡았지만 타이어가 헛돌면서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던 흙은 모두 떨어졌고 새까만 타이어 속살이 마찰열로 인해 뿌연 연기만 낼뿐이다.
뜨거운 햇살아래 30분 정도 삽 들고 도와드렸지만 힘의 한계에 어쩔 수 없이 "죄송하다"며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바퀴에 진흙이 묻었을때 쪼그려 앉아 일일이 떼어낼 필요 없이 더 빨리 달리면 저절로 떨어지고
진흙 같은 사람이 달라붙었을 때 소리 없이 더 빨리 더 멀리 가면 스스로 알아서 떨어진다는 걸 느끼는 짧은 순간을 뒤로하고 물길 따라간다.
이번 강행은 계룡산 정상 북, 동쪽에서 발원해 신도안-계룡역-대전시 서구 원정동 계룡의 첫 관문 격인 위왕산 앞 서구 봉곡동에서 갑천에 합류하는 두계천(豆溪川) 20km이다.
두계천은 계룡산 정상에서 흐르는 물을 두고 붙여진 이름인지 모르겠으나, 하나는 정상 북쪽으로 흐르는 암 용추골과 또 하나 남쪽으로 흘러온 숫용추골을 뜻하는지...
아니면 한문 그대로 콩이 많이나는 곳이라하여 두계천(豆溪川)이라 하는지
두계천은 주위에 받쳐주는 세력이라고는 대전시 유성구 백운봉에서 발원해 두계천에 합류하는 세동천(8km)과 금남정맥 천호산 동쪽에서 흐르는 왕대천(5km)이 있을 뿐이다.
발원지인 계룡 천단은 군사지역이니 들어가지 못하니 암용추나 숫용추가 어떻게 생긴 건지...
이른 아침에 첫 기차로 대전역에 내려 다시 택시로 서대전 그리고 계룡역에 내리니 논산의 깽이님께서 백마타고 기다리고 계신다.
반갑게 인사드리고 깽이님 하얀색 구르마로 신도안면 용동 저수지 옆 구룡콘도 주차장에 내려 오늘 걸음 시작한다.
계룡이 토해놓은 물이 잠시 쉬었다 흐르는 용동 저수지 배수구
출입금지구간으로 인해 이곳에서 시작하며 날머리까지 15km시작한다.
내려갈 골프장이 보이지만 가까이 갈 수 없고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곳
오래전 태조께서 도읍을 정해 꽁냥꽁냥 살고자 했던 곳이다.
용동 저수지에서 본 천왕봉-황적봉 방향
능선 너머에는 동학사나 상가,식당 시설지구가 있겠고
아기공룡 둘리인지 엄마 찾아 가는길에 홀로 서있는 꼬마 계룡을 만나고
역사 탐방 둘레길이 있지만 모두가 출입금지되어 있고, 물은 맑은 듯 보이지만 여기저기서 보던 맑은 물과 조금 다르게 보이는데 금단의 계곡에서 흘러왔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천 하나 찾기가 네 잎 클로버 찾기보다 힘든 시기
우리나라에 국가하천, 지방하천 모두 3,840개가 있지만 자잘한 것까지 모두 다 걸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중에 2백 곳 정도 다녔더니 지도보며 긴 하천 찾기가 어렵다.
지나온곳이며 멀리 계룡 정상이 우뚝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께서 폐국(廢國)의 민심을 달래고 "사랑하는님과 저푸른 초원위에서 오손도손 살고자"계룡산 남쪽 현재의 계룡대인 부남리,석계리와 맞은편의 용동리,석계리 아래 동네인 정장리와 맞은편 남선리에 수도를 옮기려고 택지 개발한곳이다
궁궐터를 만들고 석공(石工)들이 정과 망치로 주춧돌을 만들던중 어느 날 "고마혀유 욜로 안온대유"라며 도읍이 너무 남쪽에 있어 1년이 안돼 손 털고 나간 곳이다
현장에서 걸어보면 가로, 세로 4*4km 정도의 분지로 형성되어 있는데 우측으로는 금남정맥의 국사봉 줄기가 계룡으로 향하고, 북쪽으로 계룡과 천왕과 황적봉이 솟아있다
계룡에서 터가 강하고 기운이 모인 곳인 제차봉 아래 부남리와 노적봉 동쪽의 석계리에 무속인들이 많이 자리했던 곳인데 답답할 때 현장에 찾아가서 보면 좋겠으나 들어가지 못하니 어쩔 수 없고
물길은 남쪽으로 빠져나가 갑천에 합류한 뒤 금강으로 흘러드나 일국(一國)이 크게 일어 서기에는 물이 부족하고 땅의 세력이 약함을 알 수 있다.
계룡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 열두 번째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한 산이건만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 철저하게 통제가 되어 있고,국립공원중에서 능선 종주란 이름이 붙어있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괜히 사진 한장 찍으러 철조망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 들어갔다가 걸리기라도 한다면 국립공원법으로 2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지만,국방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인 군사시설 보호법에 걸리면 경찰서에 가서 조사도 받아야 하고 벌금도 상당하다.
군사시설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룡이 무학대사를 만나기 전까지 천태산이란 이름을 썼지만 무학이 금계포란이니 비룡승천이니 뭐라해서 각각의 글자를 따서 계룡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와 정상과 쌀개봉, 연천봉, 삼불봉 능선이 닭 벼슬을 닮아 계룡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도안교에서 하천따라 내려가며
길가에는 온통 외래종인 금계천지인데
사람이 싫어서 노랗게 질린듯하다.
계룡 파크 골프장
가끔 파크 골프장지역을 지나며 할배분들 몇 분이 치고 계시면 "왜 할매분 없이 할배분들만 치세요?"라고 여쭈어 보면 장비 가격 따라 회원이 형성되어 급이 안 맞다고 하신다.
장거리산꾼이야 대충 입고 다녀도 되는데
어디서나 급이 나뉘는 모양이다.
건너편에도 길이 있는 듯한데
건너갈 수가 없다
그동안 여기저기 너무 많이 봤나
아무리 봐도 왕궁이 들어설 자리는 아니다
닭볏을 닮은 산의 형상과 기운이 강해 무속인들이 좋아하는 산으로 언제던가 조선 후기던가 정감록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이씨왕조가 곧 끝나고 새로운 임금이 태어날 자리라 하여 도교(道敎)와 무속인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근 현대사에 들어와 유사종교 단체가 100여 곳이 들어설 정도로 대단했던 곳이다.
지금은 3군(三軍) 본부가 들어서 인근으로 모두 떠나고 없는데 한때 계룡산 남쪽의 무속인들은 계룡산 할매산신을 최고로 모셨지만, 계룡산 정상 서쪽의 신원사 중악단에는 할배 산신을 극진하게 모셨다.
두 분이 부부는 아닐 텐데 할매와 할배 두 분을 각각의 산신을 모시는 계룡이다
꼬마 숙녀님도 나오셨고
전국에 수많은 계룡이 있지만 대표적인 계룡으로는 공주의 계룡과 거제도의 계룡이 두 곳이며 두곳 모두 한국의 100대 명산에 들어간 명산이다.
군사령부는 자고로 적이 알 수 없는곳에 꽁꽁 숨어있어야 하니 이곳이 적당하다 할 것이나
다만 인근에 숫적 열세로 황산벌(백제)을 지키지 못했던 곳이 있어 그 기운이 이곳에 미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도읍이 만들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1392년 조선이 개국되고 인왕산 자락에 궁궐을 짓지 않으면 궁궐이 불타거나 장남이 아닌 지차(之次)가 왕위에 오른다는 무학의 믿거나 말거나한 예언이 있고 난 후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궁궐의 전각은 백성을 버린 왕에 대한 화풀이로 전소(全燒)되었다
그리고 1대부터 26대인 고종에서 대한제국 2대 순종까지 518년 동안 29명의 세자가 있었지만 이들 중에서 장남이 왕위에 오른 건 일곱 분(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뿐이다.
이곳 닭볏아래 자리 잡았다면 주상전하께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잘 살았고 전란이 없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던 삼남(三南) 지방의 고리타분하거나 꼬장꼬장하던 양반(무반, 문반)들이 과거시험 보러 가기위해 지금의 서울보다 편했을 것이며 장사치들도 어깨 빠지는 일도 드물었을 것 같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누애는 뽕잎만 먹는데 농약에 엄청 약한 녀석으로
농약 성분이 바람에 살짝만 날아 뽕잎에 묻어도 누애는 죽는다
누애 나방은 한 번에 500-700개 정도의 알을 낳으며, 고치의 실은 평균 길이 1,5km이고
누애 실은 고치 20개를 합쳐 한올의 실을 뽑고
옷을 만들고 번데기는 단백질 음식이다
깨끗해 보이는걸
이 정도면 깨끗하다 할 수 있는데 어디까지 깨끗할지
계룡의 기운이 하천 따라 흐르고
계룡이 마지막으로 보일 무렵
하천 바닥 자갈 자갈한곳 위로 진흙뻘이 앉아있고 많이 흐려졌다
그리고 물속에 자라는 물풀은 보이지 않으니 물고기는 어디에 숨나
하얀 쌀밥을 닮아 있고
물속에 부유물이 많이있고
다슬기도 보인다
다슬기 잡는 마을 어르신이 보이는데
다슬기는 야행성으로 자갈자갈한곳에 주로살며 야간에 잘 잡히는데
아침임에도 다슬기를 많이 잡으셨고
금계와 노란 궁댕이가 일품인 호박벌(뒤영벌)
어떻게 저몸으로 날아다닐까
짤막한 다리 성격이 온순한 벌
꿀벌은 하루 3천송이의 꽃을 찾아 다니는데
호박벌은 얼마나 다니는지 ...
갑천까지 11km 지점
팥죽다리로
태조께서 신도안으로 도읍을 정하고 한참 대궐 기초 공사를 벌일때 일하는 주위에서 인부들에게 팥죽을 팔았던 팥죽거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도 물풀은 보이지 않고
하천 속에 모래가 많이 보인다
직선길보다 굽은 길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마음이다.
계룡역이 지척에 있고
작은 다리하나 건너서
두계천 특징이라면 하천가로 갈대는 빼곡하게 자라지만 물풀이 없다는건데 그러함에도 다슬기가 많은지 곳곳에 다슬기 잡는 분들이 보인다
계룡시 두마면의 고층 아파트
계룡시는 한때 논산시에 있었으나 지금은 독립되어 계룡시가 되었고
그늘 없는 길
4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간다
고인 물은 황색이고
멀리 계룡을 호위하는 위왕산(爲王山)이 보인다
수중보아래 다슬기 잡는 아주머니께서 양파망에 꽤 많이 잡아놓으셨는데
그만 잡아도 될듯
지나온 세월교
전국적으로 다슬기 잡다가 요단강 건너는 분들이 많은데 요맘때부터 가을까지 다슬기의 천적은 사람이고,
사람의 천적도 다슬기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고가 많이 난다.
어지간하면 사드시기 바란다.
대전시 서구 원정동 물도리 마을 앞을 지나며
한겨울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은 메타쉐콰이아가 서있고 그 뒤로 위왕산이 보인다.
산이름에 왕(王,旺,往)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산이 흔하지 않을 것 같아 몇 개인지 찾아보니
안일왕산, 가리왕산, 화왕산, 주왕산. 왕산
인왕산, 발왕산, 대왕산, 용왕산, 왕대산
제왕산. 구왕산. 천왕산... 산이름이 존재한다
위왕산
계룡산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산들은 계룡을 향해 몸을 낮추는데 이 녀석은 계룡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남쪽을 지키느라 돌아 앉아있다
저곳 정상에 서면 발아래 어떤 풍경이 연출될지 아마도 금남정맥 천호산과 대둔산 일대가 조망될것 같고
산길을 연결한다면 금곡천을 둘러싼 위왕산-약사봉-백운봉-금수봉-빈계산-범바위 성재고개-산장산-구봉산-가수원동까지 25km 이어진다.
257m의 위왕산 바위 전망대
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엉고개를 지나 백운봉을 거쳐 황적봉으로 향하고, 북쪽으로 금곡천 건너 대전시 서구의 구봉산이 있고 남쪽으로 자라목 같은 원정마을로 이어지는데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에 호남선(대전ㅡ목포)이 개통될 때 목을 싹둑 잘라놓았다.
한때 이무기가 살았던 소(沼)로 물색이 탁하여 뭐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낚시꾼들 차지가 되어있다
여기도 다슬기 잡는 분 계시고
세월교를 건너며
원정마을과 지나온 세월교
세월교(洗越橋) 물이 교량을 씻고 넘는다는 뜻으로
비 오면 물이 다리 위로 지나간다
장마철에는 위험하니 전국의 수 많은 세월교위로 통행은 자제하시기 바라고
이곳 바위절벽 아래에도 이무기 전설이 있을듯한데
예전에 하천을 지나며 동네 어르신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뱀을 잡더라도
알 품는 암컷 뱀은 잡으면 안 되고
어린 뱀도 잡으면 안 되고
무덤가를 지키는 늙은 뱀도 잡으면 안 되는데
이런 규칙을 어기면 자손에게 큰 피해가 간다고
가정에 임신한 가족이 있으면 살아있는 짐승 죽이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대전시 서구 봉곡동이며
두계천이 갑천에 흘러드는 곳
날머리에 깽이님께서 나와 주셨고
땡볕에 피부 태운다고 모자도 없이
덕분에 쪼매 까맣게
멀리 대둔산 낙조대에서 흘러온 갑천이 두계를 데리고 가는 곳에서 일정 정리하고
두계천은 조선이 세우고자 했던 도읍이야기와 물은 흐리고 탁하지만 다슬기가 많이 사는 곳으로 기억하며
깽이님 백마타고 맥가이님 만나러 계룡으로 나간다
깽님과 피지컬 좋은 맥가이님
셋이 식사하고
다시 자리를 옮겨
찻집에 들러 이야기 나누다가
계룡에서 서대전으로 가는 기차가 늦게 있어
깽이님께서 대전역으로 택배 해줍니다
맥가이님 만나서 반가웠고요
늘 안전한 산길 되시기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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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땡볕에 수고 하셨고요.
추락한 트럭 구하지 못하고 돌아서자니 아니 도와 주지 못한것 같고요.
건강관리 잘하시고요.
ㅎㅎㅎ 트럭 일병 구하기 실패했는데
오르막에서 안 올라 가려고 버티는 통에 30분 정도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다 어르신 보험 처리하세요 라는 말씀만 드리고...
신도안 6'25때 피난갓던 곳인데 어릴때인데도 추억이 새록새록 더운날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길
할배 다음 계정이 바뀌어 가입이 안된다고 말씀하시더니
다시 가입하셨네요
올해는 자주 뵙도록 하겠으니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방장님 더운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계룡 논산 쪽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은곳이 참 많습니다
계룡대 근무할때 추억도 떠오르고 두계역에도 자주 갔었는데 두계천은 그 근처겠네요
다음 하전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첨 예전에는 충남 논산시 두마면 이었는데 방장님 글을보니 계룡시 두마면으로 바뀌었나 봅니다
행정구역이 논산시에서 계룡시로 바뀌었는데 두마면 사람들은 좀더 좋은 도시이름과 땅값이 올라 좋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풍수는 지방소멸로 가기때문에 서울 인근의 주요 도시는 다 좋다고 봐야겠습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방장님 계룡에 어럽게 오셨는데 좋은 대접 못해드려 죄송하고 매일같이 출.퇴근 길인데 저산이 어떤 산인가 했더니 위왕산 이 었군요. 방장님 덕에 알았고 조만간에 위왕산 올라가 봐야겠네요. 눈뜰새 없이 항상 바쁘신 배방장님. 늘 건강 잘 챙기시고 안산 응원 합니다.~~^^
계룡을 지키는 산으로 알려졌지만 산은 그게 싫었던 모양인지 돌아 앉아있습니다.
하천길에 만나서 반가웠구요
올해가 가기전에 이벤트로 한번 추진할까 하니 위왕에서 백운봉-구왕봉까지 25km 구간
시간날때 답사 한번 가도록 하겠습니다.
반가운 분 만나서 기분 좋았습니다.
트럭 때문에 시골분들이 많이 수고 하셨을듯 합니다 더불어 방장님께서도
여름에 히천은 땡볕이라 꽤나 더울듯 합니다 식수 잘 챙기시고 건강한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나오면 꼭 한개 정도는 배우고 오자는게 저의 생각인데
마음먹은데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 잘 잊어 먹고 그렇게 살게되네요
글 감사합니다.
발원지를 군사시설때문에 가지 못하였다는 말에
불현듯 예전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천단에서 머리봉을 지나서 아래로 내려왔는데
국립공원같이 멋지게 만들어진 등로가 나와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등산객이 한명도 안보인다....??
순간 이상함을 감지하고 등산 트랙을 보니
숫용추골에서 구룡대cc로 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서
부랴부랴 그 자리를 벗어나 금남정맥길에 있는
국사봉으로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왔다는....ㅎ
더운 여름에는 하천길 걷는게 고역일것 같은데
무탈한 강행길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클럽 방장을 한지 오래되니 전국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간에 듣는것도 많습니다.
군사시설있는곳은 무조건 피해야 정신건강에 좋고
금전적으로 손해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골치 아파진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맥 산길에 안전한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
멋진 모습으로 땡빛에 걸으셨네요~
이래도 멋있고 저래도 멋있음 ㅎ
멋쟁이 누님
보고싶습니다.
이번달 서울 올라갈일이 있을듯 하니
달달한 팥빙수같은 시간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님 아프지 마세요
주변의 꽃들도 많이 남기시고 깽이님과 맥가이님도 만나고 두루두루
두계천 주변의 정겨운 시골풍경 즐감합니다.
요즘 농번기다보니 시골스런 풍경을 많이 보이긴하지만
예전에 비포장 고향길을 지키던 키큰 미류나무가 없어 다소 반감되는듯 하더군요
앞으로 10개만 더걸으면 하천은 정리 될것 같습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마음의 평화가 또 한 구석에 곱게 쌓으신 걸음 축하드립니다. 항상 즐산 안산 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ㅎㅎ
물이 그렇게 맑아보이지는 않는데 다슬기를 잡으시네요!ㅎㅎ
조선시대에 계룡쪽에 도읍을 정했다면... 아마 서울도 변방이고 평양이나 최 북단 온성군은 아마 조산땅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난이 일어나도 제압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 한반도의 중앙에 도읍은 정한 건 잘 한 것 같습니다.^^
약 10개의 하천이 남으셨다니 많이도 걸으셨네요! 끝이 보입니다. 마지막 하천은 같이 걸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