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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년 성령강림주일이다. 성령강림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던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령이 강림하던 그 날의 모습이 성경 사도행전 2장1절로 13절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현장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1절이다.
우리 다같이 한 구절씩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 읽어보겠다.
성령이 강림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1)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이 성취된 날이 바로 성령강림 사건이다(요 16:7-13)
2) 그리고 성령강림 사건은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한 날이기도하다. 성령님이 강림하시므로 이 땅에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 공동체가 설립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의 날은 교회의 생일날이다(행 2:1)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아버지의 성격"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선포하려고 한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성격에 관해 공부하려 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성격"과 "성령"은 어떤 관계일까? 어찌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한다.
기대하시면서 경청해 주시길 바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제는 기도이다.
오늘 본문은 3개의 "이르시되"로 구성되어 있다(2-4/ 5-8/ 9-13) 세 단락으로 나눌수가 있다.
이렇게 본문을 편의상 세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리고 설교의 무게중심추는 마지막 이르시되로 시작하는 9-13절에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다.
첫 번째 단락이다(2-4)
어느날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1)
기도를 마친후에 제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기도를 배웠다고 하는데, 우리도 기도를 배우고 싶습니다"(1)
과거에 우리나라나 세계 여러나라에 <도제제도>가 있었다.
어느 분야의 장인이 되고 싶은 자들이 장인으로부터 훈련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예) 무술, 학문등의 영역에서..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때 율곡 이이학파(경북), 남명 조식학파(경남)가 존재했다.
율곡 이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그리고 남명 조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지들이 각각 "이이학파", "조식학파"를 형성했다.
학파는 일종의 도제제도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예수님 시절에도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과 세례요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기도를 배운다는 소문을 듣고는 매우 부러웠던 모양이다.
이에 어느 제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일명 "주기도문"이 소개된다. <Lord"s prayer>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2-4)
음식으로치자면 기도의 레시피다. "이연복 레시피" "백종원레시피"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기도 레시피이다.
오늘 주제가 주기도문이 아니기에 주기도문을 그냥 한 번 읽기만 하겠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에게 주기도문을 들려주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일종의 기도의 교과서, 기도의 모형, 기도의 교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저희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나 수학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선배들이 하나 같이 영어는 "성문영어"라는 책을, 수학은 "수학정석"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 당시 <성문영어>는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영어 교본이었고, <수학정석>은 수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의 수학교본이었다.
주기도문이 바로 그렇다. 주기도문은 기도에 관한 교본이다. 쉽게 말하자면, 원조 기도문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제자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두 번째 단락이다(5-8)
예수님께서 기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예화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 보다는 기도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만들어낸 이야기로 추정이 된다.
"너희중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다고 치자"(5, 공동번역본)
이 예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 팔레스틴 지역의 가옥구조를 알아야 한다.
요즘 우리가 사는 집의 구조는 대략 거실과 침실 그리고 화장실, 부엌등으로 공간이 구분이 되어 있다.
이런 공간들이 벽으로 구분 지어졌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가옥구조는 오늘날의 원룸 구조와 아주 유사했다.
대문을 열면 바로 거실겸 방 그리고 식사 공간이 노출되었다.
이곳에서 모든 가족들이 같이 식사도 하고 같이 잠을 잔다.
이런 상황에서는 밤중에 가족중 어느 한 사람이 잠을 설치면 다른 가족들 모두가 잠을 설치게 된다.
예수님께서 기도와 관련된 한 가지 예를 말씀하신다.
이런 식의 이야기이다. 어떤 에피소드를 말해 놓고선 친구에게 "이런 경우에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너는 1번이야 2번이야"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친구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친구에게 빵 세개만 꾸어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친구 한 사람이 자기 집을 방문했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서 그런다고 사정을 했다.
이때 잠을 자던 친구가 어떻게 반응을 보일까요?
1) 잠을 자고 있기에 빵을 줄수 없다고 대답한다(7) 2) 귀찮아서 어쩔수 없이 빵을 줄 것이다(8)
그리고 예수님은 2번을 정답으로 선택하신다(8)
"간청함" 때문에 친구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종결짓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이 에피소드를 우리는 기도할때 끈질기게 그리고 응답이 주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메세지로 해석했었다.
지금도 이런 해석은 아주 정당한 해석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시각으로 이 에피소드를 살펴본다.
고대 팔레스틴 지역 주민들의 주식은 빵이다. 대부분의 가정 집에서는 직접 빵을 구어서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동네에 하나쯤 빵을 전문적으로 굽는 집도 있었다.
그 당시의 빵은 오늘날처럼 제빵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먹고 남은 빵은 딱딱해져서 다음날에는 그 빵을 먹을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에서는 그날 그날 식구들이 먹을 만큼의 빵만 구워서 소비를 했다.
고로, 밤중이되면 빵이 남아있는 집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 사람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친구를 대접할 빵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웃 친구의 집을 찾아가서는 문을 두드리면서 빵 세개를 빌려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그리고 그 친구도 자신의 집에는 빵이 없어서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빵이 있긴 있지만, 잠을 자고 있는 중이라 일어나기가 귀찮았던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추정할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밤중에 빵을 빌리기 위해 찾아갔던 그 집은 전문적으로 빵을 굽는 빵 전문점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 친구는 자신의 집에는 빵이 없지만, 그 친구 집에는 자신이 찾던 빵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여기에 바로 메시지가 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바로 이렇다.
기도할 때, 우리가 찾는 빵은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 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는 자신이 찾는 빵이 하나님 아버지집에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믿고 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찾는 빵은 하나님 아버집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가 생길때마다 아버지집을 찾아 가야 한다.
급할땐 한밤중에라도 찾아가라. 기도는 아버지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집에는 우리가 찾는 빵이 있다.
세 번째 단락이다(9-13) 우리가 집중해야 할 단락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를 비교한다(11-13)
"아버지"라는 단어가 두 번 소개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앞에 두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
"너희중에 결혼한 사람 손들어 봐라 아마 이 중에는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어느 아버지가 생선을 요구하는 자식에게 뱀을 주고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11-12,현대인의 성경)
"만약에 너희중에 아주 악한 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것이다"(13a)
모든 육신의 아버지는 자식이 요구하는 것을 충실하게 들어준다.
그렇다면 하늘의 아버지는?(13b)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육신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1. 육신의 아버지가 주는 것과 하늘의 아버지가 주는 것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육신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시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더 좋은 것을 주신다. 퀄리티가 다르다.
민박집 주인이 손님에게 제공하는 봉사의 수준과 특급호텔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봉사의 수준이 같을 수 있겠는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 하늘의 아버지가 주시는 성령은 모든 좋은 것들의 근원이다.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공동번역본)
"근원"?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
낙동강의 근원? 황지 연못이다. 이곳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다. 공식적으로 황지 연못을 낙동강의 근원이라고 게시했다.
근원은 시작되는 곳이다.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 모든 좋은 것이 시작된다.
3. 사람이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성령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성령을 줄수가 없다.
성령은 하늘의 아버지만 줄수 있는 선물이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여인은 물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 오후 12시에 우물을 찾았다.
그녀는 죄많은 여인으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그 시각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님은 물을 길으러 온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작 너에게 필요한 물은 우물이 아니라 생수가 필요하다 우물은 너로 다시 목마르게 하지만 내가 주는 이 생수는 너를 목마르게 하지 않는다"(13-14)
그 여인은 우물을 찾기 원했지만, 예수님은 생수를 주시기 원하신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주로 우물을 찾는다. 생수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우물을 주시지 않고 생수를 주시기 원하신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늘의 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이 사실은 하늘의 아버지의 성격을 말해준다. 성격? 개인이 가지는 고유의 성질이나 풍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이 사실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성격을 말해준다.
육신의 아버지가 줄수 있는 것보다 더 퀄리티가 좋은 것을 주신다. 하늘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가 줄수 없는 것을 주신다.
아버지들이 있다. 자녀들에게 제일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꿈을 깨야 한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넘사벽이 있다. 바로 하늘의 아버지다.
그래서 저는 제일 좋은 아버지 자리는 하늘 아버지께 양보했다.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 하늘의 아버지가 제일 좋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잘못된 훈육을 받았기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 좋치 않는 감정이나 추억을 가지고 있는가? 다 잊어라.
우리에게는 항상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계신다.
성령 강림절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우리가 가장 좋은 선물을 맏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