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회개와 신앙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오 11,2-11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고 있다. 자선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신 성체성사의 나눔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는 신앙 행위이다. 오늘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특별 헌금을 통하여 자선을 실천한다. 교회는 자선이라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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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질문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요한은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요한은 왜 이런 의문을 품은 것입니까?
요한은 광야에서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정의만을 외치다 보니, 하느님을 벌을 내리고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시며 어느 누구와도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죄인들과도 어울리다 보니 이런 비난마저 받으셨지요.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이처럼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무서워하거나, 죄를 지은 나머지 스스로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을 되돌려 주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 말씀대로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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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저승에 간 흥부와 놀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인데요. 이 글을 보시고 한 번 실컷 웃어보시길 바랍니다.
저승에 간 흥부와 놀부가 하느님 앞에 섰다.
“흥부 놀부는 들어라. 너희 앞에 똥통과 꿀통이 보이느냐?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가겠는고?”
놀부가 잽싸게 먼저 말했다.
“저는 꿀통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럼 놀부는 꿀통에 들어가고, 흥부는 똥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사람은 하느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의 몸을 핥아라.”
그 말에 놀부는 죽을상이 되었다. 잠시 후 흥부아내와 놀부아내가 하느님 앞에 섰다.
“흥부아내와 놀부아내는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갔다 나오겠느냐?”
놀부아내가 놀부를 슬쩍 쳐다보니 놀부가 똥통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놀부아내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말했다.
“대왕님 저는 똥통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냐? 그럼 놀부아내는 똥통에 들어가고, 흥부아내는 꿀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여인은 하느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다.
“자, 지금부터 흥부와 놀부는 각자 자기 아내와 마주 서서 아내의 몸을 깨끗이 핥아라.”
놀부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하느님 앞에서 편법이 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의 논리를 앞세워서 각종 편법으로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할까요?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큰 코 다치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서 내가 인정한 유일한 독재자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 뿐이다(마하트마 간디) >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마태 11,2-11)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
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マタイ11・2-11)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ould we look for another?"
(Matthew 11:2-11)
待降節第3主日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オシギロ デオ イッヌン ブニ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バロ ソンセンニミシムニカ?
(마태 11,2-11)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
키타루베키 카타와 아나타데쇼오카
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소레토모 호카노 호오오 마타나케레바 나리마세카
(マタイ11・2-11)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ould we look for another?"
(Matthew 11:2-11)
Third Sunday of Advent
Matthew 11:2-11
When John the Baptist heard in prison of the works of the Christ,
he sent his disciples to Jesus with this question,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ould we look for another?"
Jesus said to them in reply,
"Go and tell John what you hear and see:
the blind regain their sight,
the lame walk,
lepers are cleanse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and the poor have the good news proclaimed to them.
And blessed is the one who takes no offense at me."
As they were going off,
Jesus began to speak to the crowds about John,
"What did you go out to the desert to see?
A reed swayed by the wind?
Then what did you go out to see?
Someone dressed in fine clothing?
Those who wear fine clothing are in royal palaces.
Then why did you go out? To see a prophet?
Yes, I tell you, and more than a prophet.
This is the one about whom it is written:
Behold, I am sending my messenger ahead of you;
he will prepare your way before you.
Amen, I say to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been n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yet the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
2025-12-14「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待降節第3主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無原罪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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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そのとき、11・2ヨハネは牢の中で、キリストのなさったことを聞いた。そこで、自分の弟子たちを送って、3尋ねさせた。「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4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行って、見聞きしていることをヨハネに伝えなさい。5目の見えない人は見え、足の不自由な人は歩き、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は清くなり、耳の聞こえない人は聞こえ、死者は生き返り、貧しい人は福音を告げ知らされている。6わたしにつまずかない人は幸いである。」7ヨハネの弟子たちが帰ると、イエスは群衆にヨハネについて話し始められた。「あなたがたは、何を見に荒れ野へ行ったのか。風にそよぐ葦か。8では、何を見に行ったのか。しなやかな服を着た人か。しなやかな服を着た人なら王宮にいる。9では、何を見に行ったのか。預言者か。そうだ。言っておく。預言者以上の者である。10『見よ、わたしはあなたより先に使者を遣わし、あなたの前に道を準備させよう』と書いてあるのは、この人のことだ。11はっきり言っておく。およそ女から生まれた者のうち、洗礼者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なかった。しかし、天の国で最も小さな者でも、彼よりは偉大である。」(マタイ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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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ム・ジュンチョル トマス・アクィナス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福音を見ると、牢に入れられていた洗礼者ヨハネは、自分の弟子たちをイエス様のもとに遣わして、次のように尋ねます。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ほか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おそらくヨハネは、イエス様についてのうわさを聞き、自分が思い描いていたメシア像とは違うと感じ、この問いを発したのでしょう。では、ヨハネはなぜこのような疑問を抱いたのでしょうか。
ヨハネは荒れ野で、「神様の裁きが近づいている。だから悔い改めよ」と叫び続けました。
神様の正義のみを強調した結果、神様を罰し、裁く恐ろしい方として描いてしまったのです。
しかし、イエス様は愛とゆるしを強調し、誰とでも交わりを持たれました。罪人たちとも共にされたため、次のような非難さえ受けました。
「ヨハネの弟子たちは、たびたび断食して祈り、ファリサイ派の弟子たちもそうしているのに、あなたの弟子たちは飲み食いしている」(ルカ 5・33)。
このように、愛そのものであるイエス様は、神様を恐れ、あるいは罪のゆえに「自分は神様に見捨てられた」と絶望している人々に、神様を取り戻してくださいます。
「目の見えない人は見えるようになり……耳の聞こえない人は聞こえるようになり……貧しい人は福音を告げ知らされている。」
続いてイエス様は、神様のみ旨を知り、それを実行することの大切さを語り、次のように結ばれます。
「およそ女から生まれた者のうち、洗礼者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なかった。しかし、天の国で最も小さな者でも、彼よりは偉大である。」
この御言葉のとおり、御言葉と行いをもってイエス様のみ旨を実践するために、全力を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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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福音を読み、悔い改めとイエス様への信仰を深め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